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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격
  • 아마미키요

    아마미키요

    신격

    あまみきよ

    류큐를 개척한 개벽신 아마미키요

    신령・신격Okinawa

    아마미키요는 바다 저편 니라이카나이에서 건너와 류큐의 섬들을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개벽의 신이다. 쿠다카지마에 가장 먼저 내려와 아스무이 우타키를 비롯한 일곱 개의 우타키를 열고 사람들을 살게 했다고 한다. 『오모로소시』는 아마미키요・시네리키요의 두 신 창세를 읊고, 『중산세감』은 아마미키요 한 신의 창성을 기록한다. 신사의 본전에 모셔지는 본토의 신과는 계보를 달리하며, 아마미키요는 숲의 우타키와 바다의 성지 그 자체에 깃든다. 국왕이 동방을 순배하는 아가리우마이는 이 신의 내방담을 지리에 빗댄 것으로, 오키나와에서는 신화가 지금도 걸어서 되짚어 볼 수 있는 형태로 남아 있다.

  • 아부라히 다이묘진

    아부라히 다이묘진

    신격

    あぶらひだいみょうじん

    아부라히다케에 불빛과 함께 강림한 고카의 총진수

    신령·신격Shiga

    아부라히 다이묘진은 자연령, 불교, 무가 신앙이 하나로 포개진 고카 고유의 신격이다. 출발점은 아부라히다케라는 신체산에 대한 산악 신앙으로, 산 정상의 다케 신사에 수신 미쓰하노메노카미를 모시는 옛 지층을 간직하고 있다. 거기에 '기름불 같은 빛과 함께 신이 내렸다'는 강림담이 겹쳐져 신사 이름의 유래로 이야기된다. 나아가 무로마치 시대의 연기(緣起)가 쇼토쿠 태자를 창건자이자 본지불(여의륜관음)과 연결 지었고, 중세에는 고카 무사가 군신으로 우러러보는 '고카의 소자(총사)'로 전개되었다. '와타나베가 문서'의 기청문에 이름이 오르는 것은 아부라히 다이묘진이 고카의 닌자에게 있어 맹세를 세우는 신이었음을 보여준다. 불빛, 신체산, 군신, 불과 기름의 수호라는 다면성은 첩보, 화술, 수험도가 교차하는 고카라는 토지의 정신사를 비추고 있다.

  • 아카기 다이묘진

    아카기 다이묘진

    신격

    あかぎだいみょうじん

    아카기산을 통치하는 신・아카기 다이묘진

    신령・신격GunmaTochigi

    아카기 다이묘진은 간토 평야의 북쪽 가장자리에 솟은 아카기산 전체를 신격화한 존재이다. 단일한 인격신이라기보다는 산, 늪, 숲, 용천수를 아우르는 '장소의 신'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며, 그로 인해 도요키이리히코노미코토나 오아나무치노미코토, 또는 여신인 아카기히메와 결부되어 다면적으로 이야기되어 왔다. 신전(神戦) 전설에서 거대한 지네(혹은 거대한 뱀)로 둔갑하는 것은 이 신의 맹렬하고 거친 전투적 측면을 나타내며, 이는 평상시 농업신 및 수신으로서 보여주는 온화한 모습과 대비를 이룬다. 센조가하라, 아카누마, 오이가미와 같은 실존 지명들이 모두 신전의 흔적으로 전해진다는 점에서, 이 전승이 지역 풍토에 얼마나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지 엿볼 수 있다. 닛코의 신을 적대자로 삼는 설화군은 고즈케와 시모쓰케라는 옛 국가 간의 경계 갈등을 신들의 대결로 이야기화한 것이며, 둔갑한 모습과 승패의 차이(아카기가 지네인지 뱀인지, 승리했는지 패배했는지)는 곧 각 지역의 자부심이 그대로 표출된 결과이다.

  • 야마사치히코

    야마사치히코

    신격

    やまさちひこ

    아마츠히다카히코호호데미노미코토

    신령·신격Miyazaki

    본명은 아마츠히다카히코호호데미노미코토. 우미사치 야마사치 신화에서 시오츠치노카미의 인도로 해궁에 가서 토요타마히메와 결혼했다. 조수 구슬로 형을 굴복시켰으나, 금기를 깨어 비극을 낳았다. 그의 후손은 황통을 이었으며, 우도 신궁에 모셔져 있다.

  • 야마타노오로치

    야마타노오로치

    신격

    Yamata no Orochi

    이즈모 히이강의 뱀신, 야마타노오로치

    신령·뱀신ShimaneHiroshima

    오로치는 단순한 뱀이 아닙니다. 오로치라는 옛말은 산봉우리나 산등성이를 뜻하는 말과 영적인 힘을 뜻하는 치가 결합한 것으로 설명되곤 합니다. 《고사기》는 뱀의 몸에 이끼, 노송나무, 삼나무가 나고 여덟 골짜기와 여덟 산등성이를 건넌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동물이라기보다 살아 있는 산맥에 가깝습니다. 스와의 고가 사부로, 에치고 야히코의 큰 뱀, 아소의 다케이와타쓰 전승도 같은 뱀신 계열에서 볼 수 있습니다. 《고사기》 숭신천황 단의 오모노누시가 뱀으로 나타나는 이야기 역시 고대 일본 뱀신 신앙의 또 다른 큰 축입니다. 사철과 붉은 강바닥. 오쿠이즈모는 사철과 다타라 제철의 중심지였습니다. 간나나가시는 산흙을 물길로 흘려 사철을 가려 내는 작업이었고, 그 과정에서 강바닥은 붉게 물들었습니다. 《고사기》가 말하는 늘 피로 짓무른 오로치의 배는 붉은 강을 신화 언어로 옮긴 것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노불, 독립적인 제철 집단, 좋은 칼을 중앙 권력이 손에 넣는 구도도 이 해석을 뒷받침합니다. 《물의 문화》 54호는 이를 중요한 지역 해석으로 소개합니다. 반복되는 여덟. 야마타, 여덟 머리와 여덟 꼬리, 여덟 골짜기와 여덟 산등성이, 야시오리 술, 여덟 술통, “야쿠모 다쓰”는 모두 여덟을 반복합니다. 이는 실제 숫자일 수도, 신성한 많음을 나타내는 수일 수도 있습니다. 구시나다히메를 지키는 여덟 겹 울타리는 여덟에 공간적이고 의례적인 힘을 줍니다. 《일본서기》 제1권 제8단에 이 이야기가 놓였다는 점도 논의되지만, 편찬 의도에 관한 추정의 영역에 남아 있습니다. 이즈모가 야마토 신화로 들어가는 장면. 오로치 퇴치는 정치적으로도 읽힙니다. 이즈모의 뱀신이 다카마가하라 계열의 스사노오에게 베이고, 꼬리 안의 보물이 황통의 신기로 들어갑니다. 뒤이어 오쿠니누시의 국양 신화도 이즈모가 중앙 신화 질서 안으로 들어가는 문제를 다룹니다. 이즈모국조 가문은 스사노오 계통을 자처하면서 오쿠니누시 제사를 맡았기 때문에, 이 이야기는 정복의 기억이면서 동시에 이즈모 쪽의 제사 기억으로도 남았습니다. 이와미 가구라는 뱀을 움직이게 합니다. 이와미 가구라 〈오로치〉는 고대 신화를 오늘의 몸짓 공연으로 바꿉니다. 종이와 대나무로 만든 뱀 몸통이 무대에서 감기고 부딪치고 교차합니다. 원래는 신사 축제의 봉납이었지만, 전후에는 정기 공연과 관광 자원이 되었습니다. 관객은 추상적인 신화가 아니라, 이즈모와 이와미가 움직임과 음악과 무대로 뱀 이야기를 이어 가는 방식을 봅니다.

  • 염라대왕

    염라대왕

    신격

    Enma-o

    명계의 제5재판관

    神霊・神格インド神話のヤマが仏教化した渡来神格、在地発祥地なし

    베다의 신에서 불교의 심판관으로의 진화. 기본 설명에서 염마왕의 기원이 인도의 베다 신 야마(Yama)에서 비롯되었다고 언급했습니다. 이 심층 해설에서는 이 '최초의 사망자'가 어떻게 명계의 절대적인 심판관으로 진화했는지 탐구합니다. 초기 인도 신화에서 야마는 벌을 주는 자가 아니라 단순히 가장 먼저 죽음을 맞이한 인간이었으며, 이후 평화로운 사후 세계로 다른 영혼들을 인도하는 자비로운 통치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불교의 우주관이 발전하고 힌두교, 나아가 중국의 도교 사상과 결합하면서 사후 세계는 고도로 관료화되고 체계화되었습니다. 염라대왕이 중국에 도달했을 때, 그는 이미 당나라 시대 관료의 복장을 하고 명부의 장부와 서기들을 거느리게 되었습니다. 신화 속 '죽음의 개척자'에서 엄격하고 무시무시한 '재판관'으로의 변모는, 종교의 제도화와 중세 사회가 요구했던 '도덕적 억지력'의 필요성을 완벽하게 반영한 것입니다. 업경대: 궁극의 감시 기술. 염마왕의 법정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장치는 단연 '업경대(정파리경)'입니다. 이 거울은 현대의 비디오 재생 장치와 완벽하게 동일한 기능을 수행합니다. 죄인이 염마왕 앞에 서서 생전의 죄를 숨기거나 거짓말을 하려 하면, 업경대는 그 사람의 평생의 행적을 수정처럼 맑고 거부할 수 없는 영상으로 재생해 냅니다. 사진이나 영화가 발명되기 훨씬 이전의 시대에, 인간의 행동을 완벽하게 기록하고 재생하는 마법 거울이라는 개념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진보된 개념적 '테크놀로지'였습니다. 이는 우주가 인간의 모든 죄를 객관적이고 시각적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최종 심판관 앞에서는 그 어떤 변명이나 거짓말도 소용없다는 공포를 심어주는 강력한 심리적 억지력으로 작용했습니다. 본지수적의 신학: 지장보살로서의 염마. 일본 불교에서 가장 심오한 신학적 발전 중 하나는 염마왕을 지장보살과 동일시한 것입니다. 일본의 승려들은 '본지수적(本地垂迹)' 사상을 통해 무섭고 분노한 염마왕은 무한한 자비를 지닌 지장보살(본지)이 전략적으로 현현한 모습(수적)에 불과하다고 주창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자비로운 구원자가 분노한 심판관의 모습을 띠는 것일까요? 신학적인 대답은 '방편(方便)'입니다. 어떤 영혼들은 무지와 죄악에 너무 깊이 빠져 있어 온화한 설법으로는 도저히 구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토록 고집스러운 죄인들을 고통의 굴레에서 억지로라도 벗어나게 하기 위해, 보살은 염마라는 공포의 가면을 쓰고 두려움과 심판이라는 수단을 동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원적 신학은 인과응보라는 가혹한 현실과 만인을 구원하겠다는 대승불교의 이상을 훌륭하게 조화시켰습니다. 지옥으로 출퇴근한 관료, 오노노 타카무라. 염라대왕을 둘러싼 민간 전승은 헤이안 시대의 전설적인 관료 오노노 타카무라(802~853)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뛰어난 학자이자 시인, 관리였던 타카무라는 이중생활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낮에는 교토에서 덴노를 모시는 관료로 일하고, 밤에는 로쿠도 친노지의 우물을 타고 명계로 내려가 염마왕을 보좌하는 서기로 일했다는 것입니다. 이 전설은 일본의 명계관이 가진 흥미로운 특징을 보여줍니다. 명계는 뚫고 들어갈 수 없는 혼돈의 심연이 아니라, 지상의 조정(朝廷)을 그대로 모방한 견고한 관료 조직이었으며, 지상에서 유능한 관료라면 명계의 관료로도 매끄럽게 이직(?)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든 타카무라의 이야기는 중세 일본 우주관에서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얼마나 다공성(多孔性)을 띠고 있었는지를 방증합니다. '혀를 뽑는다'는 말의 문화적 파급력. "거짓말을 하면 염라대왕이 혀를 뽑아버린다." 이 문구는 아마도 일본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도덕적 밈(meme)일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일본의 거의 모든 아이들은 거짓말을 하다 들키면 부모에게 이 말을 듣습니다. 거대한 쇠집게로 혀를 뽑아버린다는 직관적이고 끔찍한 이미지는, 복잡한 카르마의 신학적 논증을 단숨에 건너뛰어 정직하지 못한 행동에 대한 즉각적이고 무시무시한 결과를 들이밉니다. 이는 염마왕이 '시왕 중 제5재판관'이라는 복잡한 교리적 위치에서 벗어나, 피할 수 없는 절대적인 책임 추궁을 상징하는 보편적인 문화 아이콘으로 정제되었음을 보여줍니다.

  • 오구치노마가미 (대구진신)

    오구치노마가미 (대구진신)

    신격

    おおぐちのまがみ

    지치부 미쓰미네의 어권속・오이누사마

    신령・신격SaitamaTokyo

    오구치노마가미는 단순한 짐승 요괴가 아니라, 일본늑대라는 실존했던 산림의 최상위 포식자를 '참된 신(真의 神)'으로 받든 신앙의 결정체이다. 무사시국 지치부의 미쓰미네 신사를 중심으로, 무사시미타케 신사, 호도산 신사 등으로 이어지는 간토의 늑대 신앙권을 관통하는 수호신격으로, 그 본질은 '재앙을 쫓는 정화(祓い)'에 있다. 집을 덮치는 화재, 몰래 숨어드는 도적, 사람에게 씌는 마물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재앙의 냄새를 맡고 쫓아내는 번견(番犬)으로서의 신성이 근세의 서민들에게 절실히 요구되었다. '고켄조쿠 하이샤쿠'라는 독특한 의식은 신 자체를 1년간 집으로 모셔 들인다는 매우 농밀한 신앙 형태로, 반납과 갱신을 반복함으로써 신과 집안의 인연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멸종된 짐승을 오늘날까지도 신으로 대우한다는 점에서 이 신앙의 뿌리 깊음을 엿볼 수 있다.

  • 오야마쓰미

    오야마쓰미

    신격

    oyamatsumi

    산・바다・무(武)의 총괄신・오야마쓰미

    神霊・神格Ehime

    생명의 영원성과 유한성을 관장하는 자. 오야마쓰미가 딸 이와나가히메(바위의 영원성)와 고노하나사쿠야히메(꽃의 덧없는 아름다움)를 천손에게 바친 신화는 단순한 혼인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수명과 자연의 섭리를 결정짓는 철학적인 신화입니다. 니니기노 미코토가 아름다운 동생만을 선택하고 추한 언니를 돌려보낸 것에 대해, 오야마쓰미는 "바위처럼 영원해야 했을 천손의 수명은 꽃처럼 덧없이 지게 될 것이다"라며 저주이자 예언과도 같은 선고를 내립니다. 그는 자연계의 아름다움과 가혹함, 그리고 생명의 유한성을 인간에게 가르치는, 냉철하고 근원적인 부성(父性)을 가진 신으로 그려집니다. 의인화를 거부하는 거대한 자연의 퍼스펙티브. 일본의 신들 중에서도 오야마쓰미는 특정하게 의인화된 모습(예를 들어 노인의 모습 등)으로 그려지기보다는, 거대한 산괴나 울창한 삼림, 혹은 항해의 이정표가 되는 섬 자체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한 신입니다. 그 스케일의 큼은 인간 사회의 도덕이나 윤리를 초월한 대자연의 퍼스펙티브 그 자체이며, 신불습합의 시대에 있어서도 특정한 부처와 결부되기(본지수적) 이전에 압도적인 자연 에너지의 집합체로서 신앙받아 왔습니다. 광산・대장간・양조의 수호자. 산의 신의 다면성은 더욱 넓어져, 산에서 산출되는 광석을 다루는 광산 종사자나 대장장이들로부터도 직업신으로서 두터운 신앙을 받았습니다. 또한 사카토케노 카미(술을 빚는 신)로서 양조의 신이라는 측면도 겸비하고 있습니다. 이는 산에 자생하는 열매나 용천수로 술을 빚었던 고대의 기억이나, 신전 제사에서 술이 불가결했던 것에 유래합니다. 오야마쓰미는 자연의 은혜를 인간의 문화(생업)로 변환하는 모든 경계선에 나타나는 만능의 우부스나가미(수호신)인 것입니다.

  • 용신

    용신

    신격

    류진 (용신)

    폭풍을 잠재우는 물의 신·용신

    신령・신격KanagawaKyoto

    「폭풍을 잠재우는 물의 신」으로서의 용신은, 바다와 하늘의 경계에서 날씨를 손에 쥔 존재로서 어부와 뱃사람, 그리고 벼를 짓는 마을 사람들에게 가장 절실하게 기원받아 왔다. 그 힘은 양날의 검이다. 때로는 단비를 내려 논을 적시고, 때로는 큰 파도와 폭풍을 일으켜 배를 부순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사나운 면을 가라앉히고 은혜의 면을 끌어내고자 갖가지 의례로 용신을 마주했다. 바다 용신이 손에 쥔 가장 큰 신보는, 밀물과 썰물을 부리는 시오미츠타마와 시오히루타마다. 야마사치히코는 해신에게서 이 두 구슬을 받아, 밀물 구슬로 형을 빠뜨리고 썰물 구슬로 구해 복종시켰다. 조수를 마음대로 다루는 이 힘이야말로 바다를 다스리는 용신의 본질을 보여 준다. 해안의 신사에서는 풍랑이 가라앉기와 풍어를, 내륙에서는 비를 빌었고, 가뭄에는 검은 말을 바치고 깊은 못에는 공물을 가라앉혀 그 비위를 살폈다. 아시노코와 각지의 못에 전해지는 인신공양 유래담은, 사나운 용을 고승이 항복시켜 수호신으로 바꾸는 줄거리를 공유하며, 두려움과 공경이 안팎의 한 짝이었음을 이야기한다. 용궁의 주인이라는 얼굴도 이 물의 신성과 한 줄기로 이어진다. 바다 저편, 물밑에 있는 용신의 궁은 부와 시간의 이계이며, 그곳을 찾은 자는 보물을 얻거나, 다마테바코처럼 되돌릴 수 없는 세월을 짊어진다. 용신은 한낱 괴물이 아니라 물이라는 생사의 자원 그 자체를 구현한 신격이며, 폭풍을 잠재운다는 것은 곧 사람과 자연 사이에 가까스로 맺어진 약속을 지키게 하는 일이기도 했다.

  • 우두천왕 (고즈텐노)

    우두천왕 (고즈텐노)

    신격

    ごずてんのう

    기온·역병 퇴치의 최대 신격·우두천왕

    신령·신격KyotoAichi

    우두천왕(별명 무당신=무토노카미)은 일본 독자적인 존격으로, 인도·중국·조선 등 해외에서는 그 존재가 확인되지 않는다. 기원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병립하며 학술적으로 확정되지 않았다: ① 불교 전래 유래설로, 기원정사(고대 인도·기수급고독원 정사, 석가모니가 설법한 정사)의 수호신이라는 설. '우두'는 인도 마가다국의 '우두산(고시르샤)'에서 유래했다는 설로, 이곳이 전단향목의 산지이며 여기에 '우두천왕'이라는 수호신이 모셔져 있었다는 것이다. ② 한반도의 '우두산(수두산)' 유래설로, 고대 조선의 도래인(고려 사신)을 거쳐 일본에 전해졌다는 설(조선의 건국 신화에서 단군이 강림한 우두산과의 관련). ③ 고대 일본의 도래신·농경신(소는 농경의 상징)을 불교·도교풍으로 재해석한 습합 신격이라는 설이다. 모두 결정적 증거는 없으나, 도래계의 영향과 중세 이후의 스사노오노미코토와의 습합이 주류 설이다. 신앙의 핵심이 되는 이야기는 『빙고국 풍토기』(8세기 초 성립·현재는 『석일본기』에 인용된 일문만 잔존)의 소민장래 설화이다. 무당신(=우두천왕, 무당은 고대 인도 대자재천=마헤슈바라 유래설이 있음)이 남해에 사는 용왕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러 가는 도중, 빙고국(현 히로시마현 동부)의 소민장래·거단장래 형제의 집에 숙박을 청했다. 형 거단장래는 부유했으나 방을 내주지 않았고, 동생 소민장래는 가난하지만 조밥으로 환대했다. 수년 후, 무당신은 여덟 명의 자식을 데리고 재방문하여 소민장래에게 '띠로 엮은 고리(치노와)를 허리에 차고 "나는 소민장래의 자손이다"라고 외치면 역병을 면할 것이다'라고 고하고 떠났다. 다음 날, 거단장래 일족은 모두 역병으로 전멸했고, 소민장래 일족은 치노와 덕분에 살아남았다. 이것이 '소민장래 자손의 문부'(집 입구에 붙이는 호부)와 '치노와쿠구리'(나고시노 오오하라이·6월 그믐의 제사)의 기원이 되어, 현재까지도 전국의 기온사·천왕사·이세 신궁에서 행해지고 있다. 교토·야사카 신사(구 기온사·감신원기온사·기온감신원)는 우두천왕 신앙의 중추이다. 사전(社伝)에는 여러 설이 있어, ① 사이메이 천황 2년(656년)에 고려 사신 이리시가 우두산의 스사노오를 권청했다는 설(가장 유력), ② 조간 18년(876년)에 엔뇨·남도(나라)의 승려가 우두천왕을 권청했다는 설, ③ 조간 11년(869년) 역병 대유행 시 조정이 기온에서 기도를 시작했다는 설(기온고료에의 기원) 등이 병립한다. 헤이안 시대에는 조정의 22사(중7사)에 포함되어 기온사·감신원으로서 조정·귀족·교토 시민의 가장 중요한 신앙 거점이 되었다. 기온 마쓰리는 우두천왕(=스사노오)의 역병 퇴치 제사로서 869년에 개창된 일본 3대 축제(아오모리 네부타, 아와 오도리와 나란히 함) 중 하나이다. 869년(조간 11년) 교토 및 전국에 역병이 대유행했을 때(조간의 대역), 조정이 기온사에 기도를 명하여 당시의 구니(国) 수 66개국에 해당하는 66개의 창(鉾)을 만들어 역신을 모아 불제하고, 신센엔(현 교토시 나카교구)으로 보내 퇴치한 것이 기원이다(이를 '기온고료에'라 부름). 중세·근세를 거쳐 발전하여, 무로마치 시대에는 야마호코 순행·병풍 장식·요이야마가 정착되었고, 현재의 1개월(7월)에 걸친 교토의 여름 풍물시가 되었다. 2009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야마·호코·야타이 행사의 하나로서)되어 교토 관광 자원의 정점을 이룬다. 다른 주요 우두천왕 신앙 거점으로는 히로미네 신사(현 효고현 히메지시 히로미네산, 733년 쇼무 천황 칙명 창건·키비노 마키비 관여설 있음)가 '우두천왕의 총본궁'을 자처하며, 교토 기온사는 히로미네로부터 권청되었다는 설(=히로미네 본궁설)을 전한다. 다만 교토 기온·히로미네·쓰시마·야사카 각 신사가 본말 관계를 둘러싸고 중세~에도 시대에 길게 논쟁했기 때문에, 학술적으로 '총본궁'은 미확정이다. 쓰시마 신사(아이치현 쓰시마시)는 도카이 지방 우두천왕 신앙의 중추로, 텐노 마쓰리(오와리 쓰시마 텐노 마쓰리, 8월)는 일본 3대 강 축제 중 하나이다. 전국에 '천왕', '야쿠모', '기온', '스사노오', '히카와'를 관으로 하는 신사가 무수히 존재하며, 우두천왕 신앙의 확산을 보여준다. 메이지 유신(1868년 신불분리령·1872년 수험도 폐지령)에 의해 우두천왕은 불교계 칭호로서 금지되었고, 전국의 우두천왕사·천왕사·기온사·감신원은 스사노오노미코토를 주 제신으로 하는 신사로 강제 개칭되었다. 교토 기온감신원은 '야사카 신사'로, 각지의 천왕사·기온사도 '야사카 신사', '스사노오 신사', '히카와 신사', '기온 신사' 등으로 개칭되었다. 그러나 서민들 사이에서는 '텐노상', '기온상'이라는 통칭이 보존되어 치노와쿠구리, 소민장래 부적, 기온 마쓰리 등의 민속 습속은 연속되고 있다. 현대의 전염병·코로나 사태(2020-)에서는 기온 마쓰리·치노와쿠구리가 다시 주목받으며, 역병 퇴치 신격으로서 우두천왕의 기억이 환기되었다. 민속·종교사적으로 '신불분리의 최대 희생자'로 자리매김되는 신격이다.

  • 우미사치히코

    우미사치히코

    신격

    うみさちひこ

    바다의 행운을 관장하는 형・하야토의 조상・우미사치히코

    신령・신격Miyazaki

    우미사치히코의 정체는 『고사기』 및 『일본서기』의 주역인 호데리노미코토이다. 니니기노미코토와 코노하나사쿠야히메의 세 아들 중 장남으로, 불 속에서 태어났다. 바다의 행운, 산의 행운 신화에서 동생이 낚싯바늘을 잃어버리자 형은 엄격하게 원래의 바늘만을 요구했다. 동생은 해신의 도움으로 돌아와 형을 굴복시켰다. 남규슈 하야토족의 조상신으로서 동생 야마사치히코가 황통의 조상이 된 것과 대비된다. 물에 빠졌을 때의 아시우라 동작은 하야토마이의 기원이 되었다. 우시오다케 신사는 그를 모시는 유일한 주신 신사로, 산중에 위치해 패자로서 쫓겨난 전승을 반영한다.

  • 우바가미

    우바가미

    신격

    うばがみ

    다테야마의 여성을 구원하는 노여신・우바가미

    신령・신격Toyama

    우바가미는 단순한 요괴가 아니라, 지옥과 정토가 공존하는 다테야마라는 영산의 구조 자체를 체현하는 신격이다. 다테야마 만다라에서 우바가미는 사이노카와라, 삼도천, 피연못 지옥 등 명계의 도상들 곁에 그려져 있으며, 망자를 심판하는 탈의파로서의 얼굴과 여성을 정토로 이끄는 구원자로서의 얼굴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특히 중세 이후 여성은 출산 시 흘리는 피의 부정함 때문에 반드시 피연못 지옥에 떨어진다는 《혈분경(血盆經)》 신앙이 널리 퍼져 있었는데, 그 끔찍한 공포 속에서 우바가미는 여성 신자들에게 유일한 구원자 역할을 했다. 아시쿠라지의 우바도에 66구의 불상이 늘어서 있는 것은 과거 일본 전국을 66개 국으로 나누고 각 국가에 하나씩 법화경을 봉납했던 66부 회국 신앙(六十六部廻国信仰)과 통한다고도 일컬어진다. 누노바시 간조에에서 여성이 눈을 가리고 다리를 건너며 어둠 속에서 기도하는 과정은, 이승의 자신을 한 번 죽게 한 뒤 우바가미 앞에서 새롭게 생명을 부여받는 의례적인 죽음과 재생 그 자체이다. 우바가미를 염라대왕의 아내로 여기는 전승은 남편이 망자를 심판하는 지옥의 왕인 반면, 아내인 우바가미는 여성을 구원하는 자비로운 어머니가 되어 상호 보완적인 대립 구도를 이룬다. 이러한 설정은 다테야마의 명계관에 음양의 조화를 부여하고 있다.

  • 유도노산 다이곤겐 (탕전산 대권현)

    유도노산 다이곤겐 (탕전산 대권현)

    신격

    ゆどのさんだいごんげん

    말해서는 안 되는 유도노산 영암의 신

    신령・신격 (신불습합의 신)Yamagata

    유도노산 다이곤겐은 형태를 가진 신상이 아니라, 끓는 물을 내뿜는 다갈색의 거대한 영암 자체를 신체(神体)로 삼는다는 점에서, 일본 산악 신앙의 가장 오래된 자연 숭배의 모습을 오늘날까지 전해주고 있다. 데와산잔은 하구로산이 현세의 행복을, 갓산이 사후 세계를, 유도노산이 다시 태어나는 미래를 상징하는 삼산일체의 수행장으로 여겨졌으며, 그 오쿠노인인 유도노산은 삼산 순례의 종착점에 놓였다. 신체에는 신전 건물도 지붕도 없으며, 참배객은 신발을 벗고 흙과 돌이 섞인 참배길을 맨발로 밟고 영암에 오른다. 산속에서 보고 들은 것을 입 밖으로 내서는 안 된다는 엄격한 금기——'말하지 말라, 묻지 말라'——가 오늘날까지 지켜지고 있으며, 사진 촬영도 굳게 금지되어 있다. 메이지 시대의 폐불훼석으로 권현이라는 칭호를 잃고 오야마쓰미노미코토 등을 모시는 신사가 되었지만, 말 없는 영암을 향해 두 손을 모으는 신앙 그 자체는 끊어지지 않았다. 재생과 즉신성불을 주관하는 데와 지역의 침묵의 신격이다.

  • 이와나가히메

    이와나가히메

    신격

    いわながひめ

    영원·견고·인연 맺기의 여신·이와나가히메

    신령·신격Shizuoka

    이와나가히메의 정체는 『고사기』 상권 말 및 『일본서기』 신대 하 제9단에 등장하는 오야마쓰미의 딸이다. 『고사기』의 표기는 '이시나가히메'이며, 『일본서기』와 『선대구사본기』에서는 '이와나가히메'로 기록되어 있고, 코케무스히메 또는 고노하나치루히메와 동일신이라는 설도 있다. 신명의 어의에 대해 고쿠가쿠인 대학 고전문학사업의 해석에서는 "바위(이와)처럼 영원하고 견고하며 오래도록 변치 않는 여성" ── 즉 불사·장수·견고함·반석을 상징하는 여신임이 분명하다. 여동생인 고노하나사쿠야히메와 함께 오야마쓰미의 두 딸로 자리매김하여, "바위 vs 꽃", "영원 vs 덧없음", "견고함 vs 아름다움", "불사 vs 단명", "거절당한 언니 vs 선택받은 여동생"이라는 대비 구조의 핵심을 이룬다. 이야기의 핵심은 『고사기』 상권 말과 『일본서기』 신대 하 제9단의 천손강림 설화에 있다. 니니기노미코토(천손)가 휴가국 다카치호에 강림한 후, 가사사곶에서 아름다운 고노하나사쿠야히메를 만나 아버지 오야마쓰미에게 구혼했다. 오야마쓰미는 크게 기뻐하며 언니 이와나가히메와 동생 사쿠야히메를 많은 예물과 함께 바쳤다. 그러나 니니기노미코토는 이와나가히메의 용모가 추하다며 돌려보내고 사쿠야히메만을 아내로 맞이했다. 이를 한탄한 오야마쓰미가 남긴 말이 이야기의 절정이다 ── 『고사기』판: "이시나가히메를 함께 곁에 두었다면 천손의 수명은 바위처럼 영원부동했을 것이나, 사쿠야히메만 남겨두었기에 수명은 나무의 꽃처럼 짧아질 것이다"(오야마쓰미의 서약 불성립으로 인한 수명 단축), 『일본서기』판: "거절당한 이시나가히메의 저주로 인한 단명화"(보다 직접적인 인과). 양서의 서술은 약간 다르지만, 모두 천황가와 인류의 수명이 짧아진 기원 신화(죽음의 기원 설화)로 기능하며, 불교 전래 이전 일본 고유의 생사관의 근간을 이룬다. 비교신화학자 오바야시 타로는 이 이와나가히메와 고노하나사쿠야히메의 대비 설화를 '바나나형 신화'(돌과 바나나의 선택 설화)의 일본판 변형으로 분류했다.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섬의 죽음의 기원 신화(신이 인류에게 돌과 익은 바나나를 선택하게 했는데, 인류가 '맛있는' 바나나를 선택했기 때문에 돌과 같은 영원성을 잃고 바나나처럼 한 세대만에 시드는 짧은 수명을 얻었다는 이야기)와 같은 계통으로, 구약성서 창세기(에덴 추방)나 그리스 신화(판도라의 상자)에 해당하는 보편적 죽음의 기원 신화의 일본판이다. 주요 제사 신사로는 구모미 센겐 신사(시즈오카현 가모군 마쓰자키초 구모미)가 전국 약 2,000개의 센겐 신사 중 유일하게 이와나가히메만 모시는 희귀한 신사로서 신도사 및 민속학 연구에서 주목받는다. 에보시산(해발 162m) 정상에 진좌하며, "에보시산이 맑으면 후지산이 흐리다"는 옛 전승(18세기 말 모토오리 노리나가의 『고사기전』에 기록)이 있어, 여동생 사쿠야히메의 후지산과 대조되는 언니의 진좌지로 옛부터 비정되었다. 명력 3년(1657)에 재건되었으며 창건일은 미상이다. 호소이시 신사(후쿠오카현 이토시마시 미쿠모)는 이토국의 중심지에 위치하며 자매 양쪽을 주 제신으로 모시는 고사(1695년 『호소이시 신사 연기기』에 기록)이다. 자매 한 쌍을 제사지내는 귀중한 사례로, 이토국(지쿠젠국 이토군)이 고대 일본의 대륙을 향한 관문이었던 점에서 도래 문화와 이와나가히메 신앙의 연결성을 시사한다. 시로미 신사(미야자키현 사이토시 시로미, 구 니시메라촌 권역)는 이와나가히메·오야마쓰미·가네나가 친왕(남북조 시대 정서장군궁)의 세 신을 모시는 신사로 1489년에 창건되었으며, 원궁은 1675년에 세워졌다. 신체는 '은거울(은경)'이며 ── 이와나가히메가 자신의 추한 용모를 한탄하며 던진 거울이 류보산의 큰 나무에 걸려, '시로미(白見) 마을'에서 '은경(銀鏡·시로미) 마을'로 지명이 바뀌었다는 지명 기원 설화가 전해진다. 거울=바위의 상징적 등가물로서, 이와나가히메의 암석 신앙과 거울 신앙이 습합된 특이한 제사이다. 매년 12월 12~16일에 봉납되는 시로미 카구라 33번은 국가지정 중요무형민속문화재로, 이와나가히메 신앙의 현대적 계승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거점으로서 규슈 민속 예능의 정점을 이룬다. 교토 기후네 신사 유이노야시로(중궁, 교토시 사쿄구)는 인연 맺기의 신사로 헤이안 시대 이전부터 깊이 신앙받아 왔다. 이와나가히메가 거절당한 수치심에 기후네에 숨어, "사람들에게 좋은 인연을 내려주리라"고 다짐하며 진좌했다는 역설적인 전승에서 비롯되어, '인연을 끊지 않고 영속시키는 신'으로 신앙받았다. 헤이안 시대의 가인 이즈미 시키부(978?~1041?)가 남편 후지와라노 야스마사와의 불화를 기후네 유이노야시로에 기원하며 반딧불이 노래(『고슈이와카슈』 제20권)를 바쳐 부부 관계를 회복했다는 고사가 인연 맺기 신격의 문학적 근거가 되었다. 바위 = 영원부동의 상징이 '영속하는 인연'과 결부되는 역설적인 신앙 구조가 헤이안 시대부터 현대까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민속 신앙에서는 이즈 지방의 오무로산(해발 580m)이 이와나가히메의 화신으로 여겨져, "오무로산에 올라가 여동생인 후지산을 칭찬하면 다치거나 물고기가 잡히지 않는다는 저주"가 동정적인 속신으로 전해진다 ── "추하다고 거절당한 언니를 배려하는" 민간 신앙의 전형적인 예이다. 또한 쓰쿠바산 겟스이세키 신사(이바라키현 쓰쿠바시)에는 이와나가히메가 죽었다고 전해지는 이와쿠라가 모셔져 있어, 고대 일본의 암석 신앙권(이와쿠라·이와사카)과 이와나가히메 신격의 습합을 보여준다. 오야마쓰미 신사의 경내 신사인 아나바 신사(에히메현 이마바리시 오미시마)에는 아버지 오야마쓰미와 함께 이와나가히메가 모셔져 있어 부녀 제사의 원점을 보존하고 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후지산 세계유산 등록(2013) 이후 구모미 센겐 신사와 에보시산이 관광 자원화되었으며, 또한 "미의 기준으로 거절당한 언니"로서 현대 여성 독자들의 공감 대상이 되어 페미니즘적 재평가가 진행되고 있다. 애니메이션·게임·소설 등에서 '불사·견고함', '추함 이면의 다정함', '인연 맺기'를 모티프로 빈번하게 재등장하며, 고대 신화의 현대적 재해석이 발전하고 있다.

  • 이즈타마히코노 미코토

    이즈타마히코노 미코토

    신격

    izutamahiko

    조즈산의 수호신·이즈타마히코노 미코토

    신령·신격Kagawa

    이즈타마히코노 미코토는 실존했던 고승·곤고보 유세이(곤코인 제4대 원주, 1613년 몰)가 사후에 텐구·호법신이 되고, 나아가 메이지 시대의 신불분리를 거쳐 신도의 신격으로 재정의된, 3단계의 승화 과정을 거친 희귀한 신격이다. 도래 수신(쿰비라)을 기원으로 하는 주 제신·곤피라(오모노누시)가 '해상 수호'를 관장하는 반면, 이즈타마히코노 미코토는 '산악 수험·텐구 신앙'의 계보를 체현한다. 한 산 안에 바다의 신과 산의 텐구가 동거하는 조즈산 신앙의 이중 구조를, 주 제신과 오쿠샤 제신이라는 형태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 이 신격의 종교사적 중요성이 있다. 오쿠샤·이즈타마 신사는 본궁에서 1,368단, 해발 421m의 산 위에 진좌하며 고토히라구에 버금가는 영지로 꼽힌다.

  • 이치키시마히메노미코토

    이치키시마히메노미코토

    신격

    ichikishima-hime

    바다를 지키는 재계의 섬 여신·이치키시마히메노미코토

    신령·신격HiroshimaFukuoka

    이치키시마히메노미코토 신격의 핵심은 '재계의 섬(이쓰키시마)의 공주' ─ 신을 모시고 제사 지내는 섬 자체에 깃든 여신이라는 점에 있다. 무나카타(겐카이나다)에서는 대륙과의 해상 교통을, 아키(세토 내해)에서는 내해의 항로를 수호하며, '해북도중'의 신칙이 나타내듯 국가와 바다를 잇는 경계 수호의 여신으로 위치 지어진다. 벤자이텐과의 습합으로 인해 물·재물·예능·미·지혜의 덕이 중층적으로 쌓였고, 이쓰쿠시마 신사의 해상 사전과 붉은 오토리이라는 장엄한 무대 장치가 그 신격을 상징한다. 밀물 때는 바다에 떠오르고 썰물 때는 육지와 이어지는 경관 자체가 바다와 육지, 신역과 속계의 경계를 주관하는 여신의 표현이다. 무나카타 3여신으로서 자매신(타고리히메, 다기쓰히메), 습합 대상인 벤자이텐, 같은 바다·복덕의 신인 에비스와 신격 상의 인연이 깊다.

  • 종기

    종기

    신격

    Shōki

    전통 도상·액막이의 종규

    신령신격Kyoto

    종규는 당대의 일화를 바탕으로 동아시아에 퍼진 액막이 신격으로, 일본에서는 주로 액막이와 천연두·전염병을 막는 효험으로 수용되었다. 도상은 긴 수염의 무인 풍모에 관복과 관을 쓰고, 큰 눈으로 노려보며 한 손 또는 양손에 검을 든다. 작은 오귀를 쫓거나 밟거나 자루에 넣는 모습으로도 그려진다. 연초나 단오에 족자·기·병풍으로 장식하고, 마치야에서는 지붕 모서리나 처마에 기와제 상을 올리는 예가 많다. 일본의 가장 이른 예는 헤이안 말기의 벽사회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무로마치 이후 화제로 정착했고 에도 후기에는 단오 인형화도 보인다. 상이나 그림은 현관·문·상좌에 걸어 역신과 사령의 침입을 막는다고 믿었다. 현대의 사사(사당)는 제한적이나, 근세 이래의 민간 신앙으로 지역적으로 계승되어 지붕 위의 종규상은 긴키에서 주부에 걸쳐 지금도 확인된다. 능력은 ‘노려봄’과 검세로 사귀를 물리치는 상징으로 여겨지며, 약해와 유행병을 물리치는 부적적 기능을 맡는다.

  • 주작

    주작

    신격

    すざく

    남방을 지키는 사신·주작

    동물 변화NaraKyoto

    주작을 읽는 열쇠는 “남방의 불의 새”라는 방위 상징과, 봉황과의 미묘한 동이(同異)에 있다. 그 기원은 하늘의 별에 있다. 중국 천문학은 남방칠수(정·귀·류·성·장·익·진)의 연이은 별을 새 형상에 견주어 이를 주조(주작)라 하였다. 『회남자』 천문훈은 남방의 제를 염제, 그 짐승을 주조로 삼아 화기·여름·붉음에 배당했다. 『예기』 곡례의 “앞은 주조, 뒤는 현무”, 『사기』 천관서의 남궁 주조도 같은 체계에 선다. 주작의 주는 화기의 색으로, 타오르는 여름의 남쪽 하늘을 본뜬다. 주작과 봉황의 관계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도상도 상서의 함의도 매우 닮아 둘은 동일시되기 쉽지만, 주작은 사신(천문·방위에서 유래)에, 봉황은 사령(기린·영귀·응룡과 나란한 서수)에 속하는, 본디 다른 범주의 영조이다. “주작=봉황”이라 단정하기보다, 매우 닮은 탓에 겹쳐 이야기되어 왔다고 파악하는 것이 정확하다. 일본에서는 남방=주작의 관념이 도성에 새겨졌다. 헤이안쿄의 주작대로·주작문이 그 자취이다. 도상 유물로는 다카마쓰즈카 고분의 사신 벽화가 있었으나 남벽의 주작은 도굴로 사라졌고, 사방 완비는 기토라 고분에 한한다. 쉽게 사라졌던 남방의 불의 새가, 아스카의 석실에 여전히 날개를 펼치고 있다.

  • 청룡

    청룡

    신격

    せいりゅう

    동방을 지키는 사신·청룡

    동물 변화Nara

    청룡은 홀로 선 용이 아니라, 사신이라는 방위 체계 안에서 비로소 의미를 갖는 영수이다. 이 판에서는 그 천문적 기원과 일본에서의 수용을 더듬는다. 기원은 하늘에 있다. 중국 천문학은 이십팔수를 사방에 일곱씩 배당하고, 동방칠수(각·항·저·방·심·미·기)의 연이은 별을 한 마리 용에 견주었다. 이것이 청룡이다. 『회남자』 천문훈은 동방의 제(帝)를 태호, 그 짐승을 창룡으로 삼아 목기·봄에 배당하고, 오방·오색·오계·오행을 하나의 우주론으로 엮었다. 『사기』 천관서 또한 하늘의 동궁을 창룡으로 삼아 성좌와 영수를 잇는다. 청룡의 청(창)은 목기의 색으로, 동에서 떠오르는 봄의 생기를 본뜬다. 그 고층은 유물에 새겨져 있다. 증후을묘 칠의상자(기원전 433년경)는 이십팔수의 이름을 갖춘 최고(最古)의 천문 유물로, 청룡과 백호를 한 쌍으로 그린다. 한대에는 사신 문양이 와당·동경·화상석을 장식하여 벽사초복의 상징이 되었다. 일본에서 사신은 천문·묘제·도성의 이론으로 받아들여졌다. 『속일본기』 대보 원년(701)의 사신 깃발이 문헌상 확실한 초출이며, 도상으로는 아스카 기토라 고분 동벽의 청룡이 사방이 갖춰진 사신 벽화의 한 날개로 현존한다. 청룡은 이렇게 별과 지상 사이에 놓여, 동방을 맡고 봄을 가져오는 수호의 짐승으로 자리매김했다.

  • 카리바묘진 (수렵명신)

    카리바묘진 (수렵명신)

    신격

    kariba-myojin

    구카이를 고야로 이끈 사냥의 신·타카노미코노오카미

    신령·신격Wakayama

    카리바묘진은 '인도의 신'이라는 성격을 가장 순수하게 체현하는 고야산의 진수 신이다. 성지는 사람이 찾는 것이 아니라 신이 보여주는 것이라는 종교적 논리를, 사냥꾼과 신견이 밀교 수행자를 산으로 안내한다는 연기로서 이야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타카노미코노오카미라는 정명(正名)은 니우쓰히메의 자식 신을 의미하며, 모자 두 명신이 함께 구카이에게 신의 영토를 양보함으로써 토착 신통이 진언밀교의 성지화를 승인한 형태를 취한다. 가리기누·활과 화살·두 마리의 개라는 도상은 산의 생업(사냥)을 관장하는 오래된 산악 신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며, 니우씨가 제물을 바치기 위한 개를 데리고 다녔던 사냥꾼 집단이었다는 사적 사실과도 공명한다. 신견은 '인도의 신견'으로서 좋은 인연과 행복으로 사람을 이끈다는 신앙을 낳았고, 현대 니우쓰히메 신사의 기슈견·시로마루 쿠로마루의 모티프에 계승되고 있다. 고야산 쵸이시미치나 니우칸쇼후 신사 등 참배길 곳곳에 이 인도의 신의 발자취가 새겨져 있다.

  • 킨마몬

    킨마몬

    신격

    Kinmamon

    전승판(류큐신도기)

    신령신격Okinawa

    17세기 초 성립으로 알려진 복중의 『류큐신도기』에 따른 이해. 킨마몬은 음양 이상을 지니며, 하늘에서 내리는 위상은 저편의 상서로운 영원세계(토코요)를 환기하고, 바다에서 올라오는 위상은 해상 내방신의 성격을 띤다. 내방은 일정한 주기와 의례에 결부되며, 최고 신녀인 키ンアミチュ(킨아미チュ, 키키요미 오오키미)에의 빙의를 통해 왕부와 공동체에 탁선을 내린다. 민속적으로는 니라이카나이로 상징되는 타계관, 바다 건너로부터의 은혜와 질서 부여, 신녀 제의의 정당성을 떠받치는 권위 부여가 핵심이다. 문학작품에서는 수호신성이나 해저궁 이미지가 보강되지만, 기록은 시대에 따라 차이가 있고 실제 제의 세목은 불명한 점이 많다. 근현대에는 일부에서 주신으로 재해석되는 예가 보이지만, 일반적 민간신앙으로서의 광범한 분포는 확인하기 어렵다. 창작적 각색을 제외하면 내방, 빙의, 탁선, 바다 너머의 타계라는 네 요소가 안정된 특징이다.

  • 하치만

    하치만

    신격

    hachiman

    삼신일체・무운국가의 수호신・하치만

    神霊・神格Oita

    천황・무사・불교를 하나로 묶는 하이브리드 신. 하치만 신의 본질은 그 경이로운 '업데이트 능력(습합의 역사)'에 있습니다. 이름 없는 지방의 대장간이나 광산의 토착신에서 출발하여, 국가의 위기(대불 건립)를 구함으로써 불교의 수호자(보살)가 되었고, 나아가서는 오진 천황의 영혼으로서 황실의 조상신(천황의 권위)과 결부되었으며, 최종적으로는 실력 행사로 천하를 차지한 무사 계급의 탑(미나모토씨)의 수호신이 되었습니다. 일본 권력 구조의 변천(천황・귀족에서 무사로, 신도와 불교의 융합)의 모든 결절점에 하치만 신은 존재하고 있으며, 그는 일본인의 종교관과 국가관이 복잡하게 얽혀 낳은 '최강의 하이브리드 신격'인 것입니다. 신탁(계시)에 의한 정치 개입의 무서움. 고대의 하치만 신앙에서 특기할 만한 것은, 무녀(신들림)를 통한 '신탁'에 의해 종종 국가의 정치에 직접 개입했다는 점입니다. 가장 유명한 '우사 하치만구 신탁 사건(도쿄 사건)'에서는 황위를 찬탈하려는 승려 도쿄에 대해 "황족 이외의 자를 천황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라는 강렬한 신탁을 내려 국가의 전복을 막았습니다. 그는 단순하게 지켜보기만 하는 신이 아니라, 국가의 위기 시에는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역사의 표면 무대에 개입하는, 지극히 정치적이고 생생한 권력성을 가진 신이기도 합니다. '히메가미(比売神)'에 숨겨진 고대의 기억. 하치만 3신 중에서 가장 오래된 신앙의 형태를 남기고 있는 것이 정체불명의 '히메가미'입니다. 일반적으로는 무나카타 3여신(항해 안전의 신)으로 해석되지만, 민속학적으로는 우사의 땅에 예로부터 있던 샤먼(무녀)의 신격화, 혹은 하치만 신이 불교나 천황의 영혼과 습합하기 이전의 '원초의 지주신(토착 여신)'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무신이나 황조신이라는 나중에 덧붙여진 거대한 권위의 그늘에 조용히 자리 잡은 히메가미의 존재야말로, 하치만 신앙이 완전히 국가에 집어삼켜지지 않고 지역의 기층 신앙으로서의 생명력을 계속 유지한 비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현무

    현무

    신격

    げんぶ

    북방을 지키는 사신·현무

    동물 변화Nara

    현무는 사신 가운데 가장 특이한 모습——거북과 뱀이 얽힌 모습——을 지닌, 북방·수기·겨울의 영수이다. 이 판에서는 그 도상의 의미와, 일본에서의 “사신 상응” 관념을 더듬는다. 기원은 하늘의 별에 있다. 북방칠수(두·우·여·허·위·실·벽)의 연이은 별을, 뱀이 감긴 거북에 견준 것이 현무이다. 『회남자』 천문훈은 북방의 제를 전욱, 그 짐승을 현무로 삼아 수기·겨울·현(검음)에 배당했다. 현(검음)은 수기의 색으로, 만물이 닫혀 갈무리되는 북방의 겨울 하늘을 본뜬다. 거북과 뱀의 모습에는 이중의 의미가 겹친다. 첫째는 본의——북방칠수의 별의 상이다. 둘째는 후한의 『주역참동계』가 설하는 상징으로, 거북(장수)과 뱀(생식)이 얽힌 모습을 음양 화합·빈모로 본다. 후자는 본의에 덧씌워진 해석으로, 둘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또한 현무는 도교에서 “현천상제(진무대제)”로 인격화되었으나, 이는 일본의 방위 수호 사신과는 다른 계통의 발전이다. 일본에서 현무는 “사신 상응”의 지상관 안에서 가장 구체적으로 이야기되었다. 뒤에 산을 진 지세를 현무의 길상으로 삼는 것이다. 다만 “헤이안쿄는 사신 상응의 땅(북의 현무=후나오카산 등)”이라는 비정은, 천도 당초의 확증이 아니라 쇼와 50년 무렵에 정리·정설화된 후세의 해석으로, 비정지마저 연구자에 따라 어긋난다. 확실한 것은 사신 상응이라는 풍수 관념이 헤이안기에 존재했다는 데까지이다. 『속일본기』의 사신 깃발이 문헌상의 초출이며, 도상은 기토라 고분 북벽의 현무에 귀사상락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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