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신은 물과 비, 바다를 다스리는 용이나 뱀 형상의 신이다. 하나의 전통에서 생긴 신격이 아니라, 뱀을 물의 신으로 섬긴 일본 고유의 믿음에 중국의 용 관념과 불교의 나가, 곧 팔대용왕 신앙이 겹쳐져 형성되었다. 고대 신화에서 바다의 지배자는 와타쓰미로 나타난다. 《고사기》[1]와 《일본서기》[2]의 야마사치히코 신화에서는 해신의 딸 도요타마히메가 아이를 낳을 때 와니라 불린 바다 생물 또는 용의 본모습을 드러낸다. 용신은 비를 부르고 거센 물을 잠재우기에, 가뭄에는 비를 청하고 홍수 때에는 비가 그치기를 비는 대상으로 일본 각지의 신사에 모셔졌다. 밀물과 썰물을 다루는 두 구슬이나 여의보주를 든 모습으로도 그려지며, 바다와 호수, 큰 강과 깊은 못을 아우르는 최고의 물신으로 여겨진다.
민화・전승
용신 신앙의 밑바탕에는 뱀과 물을 하나로 본 일본의 오래된 관념이 있다. 미와산의 오모노누시는 작은 뱀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히이강의 범람은 야마타노오로치라는 거대한 뱀으로 형상화되었다. 몸을 감아 또아리를 튼 뱀은 물이 지닌 신비롭고 두려운 힘의 상징이었다. 여기에 뱀이 오랜 세월을 살면 용이 된다는 중국의 관념이 더해지면서 뱀신과 용신은 서로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결합했다.
용이 사는 용궁에 대한 생각도 오래되었다. 야마사치히코가 잃어버린 낚싯바늘을 찾아 방문한 해신의 궁은 중세 설화에서 오토히메가 사는 용궁성이 되었고, 우라시마 타로가 보물 상자를 받아 인간 세상으로 돌아오는 이계로 이어졌다. 각지의 신사는 저마다 다른 용신 이야기를 전한다. 에노시마의 《에노시마 연기》[5]에는 후카사와의 호수에서 홍수와 역병을 일으키던 오두룡이 하늘에서 내려온 벤자이텐을 사모한 끝에 잘못을 뉘우치고 수호신이 되었다고 적혀 있다. 《태평기》[6]는 호조 도키마사가 에노시마에서 기도하던 때 벤자이텐이 용으로 변해 비늘 세 장을 남겼고, 이것이 호조 가문의 문장이 되었다고 전한다. 교토 기후네 신사에서는 가뭄에 검은 말, 장마에 흰 말을 바쳐 비를 청하거나 멈추기를 빌었으며, 이를 에마 봉납의 기원과 연결하기도 한다. 도가쿠시와 하코네 아시노호에는 아홉 머리 용을 최고의 물신으로 섬기는 구즈류 신앙이 뿌리내렸다.
미술 속 용신은 비늘과 뿔이 돋은 긴 몸에 네 다리와 긴 수염을 지니고, 여의보주를 쥔 모습이 일반적이다. 도리야마 세키엔의 《곤자쿠 가즈 조쿠 햣키》[7]는 물속에 사는 용뱀 미즈치를 그려 아직 완전한 용이 되지 않은 물의 정령상을 보여 준다. 근대 이후 용신은 재물운과 행운을 비는 신으로도 널리 숭배되었다. 다만 고대부터 내려온 것으로 소개되는 ‘용신 노리토’는 실제로는 근대 민간에서 만들어진 글이며, 신사본청의 공식 축문이 아니다.
폭풍을 잠재우는 물의 신으로서 용신은 바다와 하늘의 경계에서 날씨를 쥔 존재다. 어부와 뱃사람은 물론 벼농사를 짓는 마을 사람들도 절박한 순간마다 용신에게 빌었다. 그 힘에는 두 얼굴이 있다. 때맞춰 내린 비는 논을 살리지만 큰 파도와 거센 바람은 배를 부순다. 사람들은 용신의 힘을 얻는 데 그치지 않고, 사나운 물을 달래 생명을 기르는 면을 불러내고자 여러 의식을 발전시켰다.
해신의 가장 위대한 보물은 밀물과 썰물을 부리는 시오미쓰타마와 시오히루타마[2]다. 야마사치히코는 해신에게 두 구슬을 받아 하나로 형을 물에 빠뜨리고 다른 하나로 물을 물려 목숨을 구한 뒤 복종시켰다. 바닷물을 뜻대로 움직이는 힘은 용신 권능의 핵심을 보여 준다. 해안 신사에서는 풍랑이 잦아들고 물고기가 많이 잡히기를 빌었고, 내륙에서는 비를 청하거나 깊은 못에 제물을 가라앉혔다. 아시노호와 각지의 연못에는 사나운 용을 고승이 제압해 수호신으로 바꾸었다는 이야기가 남아 있다. 용신을 향한 두려움과 공경이 한 뿌리에서 나왔음을 보여 주는 전승이다.
용신이 용궁의 주인이라는 면모도 물신으로서의 성격과 이어진다. 바다 저편이나 물밑의 용궁은 풍요로운 보물이 쌓이고 인간 세계와 다른 속도로 시간이 흐르는 이계다. 그곳을 다녀온 사람은 보물을 얻기도 하지만, 우라시마 타로가 보물 상자를 연 뒤 그랬듯 되찾을 수 없는 세월을 한꺼번에 떠안을 수도 있다. 용신은 단순한 괴물이 아니라 삶과 죽음을 함께 좌우하는 물 자체가 신격화된 존재다. 폭풍을 잠재운다는 것은 사람과 자연 사이에 가까스로 맺은 약속을 다시 지키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