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키시마히메노미코토는 다고리히메·다기쓰히메와 함께 무나카타 삼여신을 이루며, 세계유산 이쓰쿠시마 신사에서 중심으로 모시는 신이다[1]. 《고사기》와 《일본서기》의 서약 신화에서는 아마테라스가 스사노오의 도쓰카노쓰루기를 세 조각으로 꺾어 씹은 뒤 내뿜은 안개에서 세 여신이 태어난다. 이름의 ‘이치키’는 신을 정결하게 모시는 행위와 연결되며, ‘제사를 올리는 성스러운 섬의 공주’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바다와 물, 항해를 관장하는 여신이다. 무나카타 삼여신은 겐카이나다의 항로를 지키는 신으로 무나카타 타이샤에 모셔졌고, 그 신앙이 아키의 이쓰쿠시마로 전해져 세토 내해의 뱃길도 수호하게 되었다. 중세에는 물과 재물, 예술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불교의 벤자이텐과 하나로 여겨져 이쓰쿠시마 다이묘진으로 숭배받았다. 메이지 시대의 신불 분리로 벤자이텐은 다이간지, 이치키시마히메는 이쓰쿠시마 신사에 나뉘어 모셔졌지만, 아름다운 물의 여신이라는 이미지는 양쪽에 남았다.
민화・전승
서약 신화에서 태어난 무나카타의 여신.《고사기》와 《일본서기》는 이치키시마히메를 아마테라스와 스사노오의 서약에서 태어난 무나카타 삼여신 가운데 하나로 전한다[1]. 다카마가하라로 올라온 스사노오의 속뜻을 의심한 아마테라스가 그의 칼을 세 조각으로 꺾어 아메노마나이의 물에 씻고 씹은 뒤, 입김과 함께 내뿜은 안개에서 다고리히메·다기쓰히메·이치키시마히메가 태어났다고 한다. 세 여신은 아마테라스의 명을 받아 규슈와 한반도, 대륙을 잇는 겐카이나다의 ‘북쪽 바닷길 한가운데’에 내려왔다. 왕실의 제사를 받으며 나라와 해상 교통을 지키라는 임무였다. 이 신화는 오키노시마의 오키쓰구, 오시마의 나카쓰구, 무나카타 다지마의 헤쓰구로 이루어진 무나카타 타이샤 삼궁 신앙의 바탕이 되었다.
무나카타에서 미야지마로. 이쓰쿠시마 신사 전승은 593년 사에키노 쿠라모토가 신탁을 받고 무나카타 삼여신을 모시면서 신사를 세웠다고 한다. 미야지마, 곧 이쓰쿠시마는 섬 전체가 신성한 영역으로 여겨졌고, 사람이 사는 일과 출산·매장을 둘러싼 엄격한 금기가 있었다. 헤이안 시대 말에는 아키국의 행정을 맡은 다이라노 기요모리가 깊이 숭배했고, 1166년에서 1169년 무렵 오늘날 볼 수 있는 신덴즈쿠리 양식의 해상 신전을 크게 조성했다. 이쓰쿠시마 신사는 다이라 가문의 수호 신사로 번성했으며, 화려한 경전 두루마리인 국보 《헤이케 노쿄》는 그 신앙을 상징한다.
신불 분리 이후. 1868년의 신불 분리 정책은 하나로 섬겨 온 두 신격을 제도상 갈라놓았다. 벤자이텐은 다이간지에, 이치키시마히메는 이쓰쿠시마 신사에 남았다. 오늘날 무나카타 삼여신에게는 안전한 항해와 교통, 재물복, 예술, 좋은 인연을 빈다. 밀물 때 붉은 대문과 신전은 바다 위에 떠 있는 듯 보이고, 썰물 때에는 다시 육지와 이어진다. 건축과 끊임없이 움직이는 세토 내해가 함께 바다와 땅의 경계를 지키는 이치키시마히메의 신성을 눈앞에 보여 준다.
이치키시마히메의 신격에서 핵심은 ‘성스러운 섬의 공주’라는 생각이다. 신을 정결하게 모시는 섬 그 자체에 깃든 여신인 셈이다. 겐카이나다의 무나카타에서는 대륙으로 향하는 항로를, 아키의 이쓰쿠시마에서는 세토 내해의 뱃길을 지킨다. ‘북쪽 바닷길 한가운데’를 지키라는 신의 명은 그녀가 나라와 바다를 잇는 경계의 수호자임을 보여 준다.
벤자이텐과 하나로 숭배된 역사는 바다의 수호에 물과 재물, 음악과 예능, 아름다움과 지혜라는 덕을 겹쳐 놓았다. 물 위에 세운 이쓰쿠시마 신사의 전각과 거대한 붉은 대문은 그 신성을 가장 장엄하게 드러낸다. 밀물 때에는 신전이 떠 있는 듯 보이고 썰물 때에는 땅과 다시 이어진다. 움직이는 물가가 바다와 육지, 성스러운 영역과 사람의 세계 사이의 선을 계속 새로 그리며, 바로 그 경계를 여신이 지킨다.
이치키시마히메는 자매 여신 다고리히메와 다기쓰히메의 계보에서 떼어 볼 수 없고, 역사적으로는 벤자이텐과의 결합을 빼고 이해하기 어렵다. 바다와 복을 관장하는 에비스의 역할과도 일부 맞닿는다. 따라서 그녀는 미야지마 한곳의 지방신에 머물지 않는다. 겐카이나다와 세토 내해를 잇는 신앙 속에서 안전한 항해와 문화적·물질적 번영을 함께 관장하는 여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