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망령각지 (주로 도호쿠, 간토, 규슈)
이 버전의 핵심은 우부메를 이미 완성된 '피투성이 여자 요괴'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아기를 건네받는 순간 사람과 괴이의 관계가 어떻게 변하는가를 추적하는 데 있다. 《금석물어집》 권27 제43화에서 다이라노 스에타케는 미나모토노 요리미쓰의 가신 동료들과 담력 시험 내기를 한다. 9월 하순의 캄캄한 밤, 갑옷과 투구, 활을 갖추고 홀로 미노국의 나루터로 향해 건너편 기슭에 증거가 될 화살을 꽂고 돌아오던 중, 강물 속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그를 불러 세운다. 여자는 "이것을 안으라"고 다그치고, 아기는 울음을 터뜨렸으며, 비릿한 피냄새가 기슭의 파수꾼에게까지 닿는다. 스에타케는 소매 위에 아이를 받고, 이번에는 돌려달라며 쫓아오는 여자를 물리치고 그대로 저택까지 데리고 돌아온다. 소매를 열었을 때 남은 것은 아기도 돌도 아닌, 약간의 나뭇잎이었다.
이 장면이 보여주는 것은 우부메의 정체가 아니라, 괴이 앞에 선 인간의 태도이다. 스에타케는 여자를 베지 않았고, 기도로 쫓아내지도 않았으며, 부탁을 받아들여 아이를 안았다. 동료들은 그 담력을 칭찬하지만, 설화의 말미는 우부메를 여우가 둔갑한 것이라 하는 설과 출산 시 죽은 여자의 혼령이라 하는 설을 나란히 늘어놓을 뿐 결말을 짓지 않는다. 피투성이의 허리천, 긴 흑발, 새의 날개 등 후세에 정형화된 요소들도 본문에는 없다. 즉, 가장 오래된 층위의 우부메 전승에서 고정되어 있는 것은 어두운 나루터, 여자의 목소리, 우는 아기, 피비린내, 안으라는 요구, 나뭇잎으로의 변화이지, 요괴의 외모가 아니다.
산욕으로 죽은 자의 신체가 전면에 드러나는 것은 근세이다. 《백물어평판》은 "출산 중에" 죽은 여자의 집념이 우부메가 되어 허리 아래를 피로 물들인 채 운다고 설명한다. 《기의잡담집》은 임신한 채 죽은 여자를 들판에 버렸더니 태내의 아이가 태어났고, 어머니의 혼백이 아이를 안고 밤을 걷는다는 유래를 이야기하며, 등에 업어달라는 부탁을 받아들인 자에게는 부를 가져다준다고 한다. 여기서 우부메의 피는 단순한 잔혹 묘사가 아니라, 사인을 숨기지 않고 신체에 새기는 기호이다. 동시에 조우자가 아기를 안는 행위는 단순한 담력 시험에서 벗어나, 죽은 자가 다하지 못한 출산과 양육을 일시적으로 떠맡는 행위로 재해석된다.
아기의 변화는 지역에 따라 이야기의 결론을 재구성한다. 니가타시의 채록 사례에서는 다리 위에서 건네받은 아이가 조금씩 무거워지더니, 들여다보니 돌이 되어 있었다. 분고국 나오이리 지방의 채록 사례에서는 나무망치나 돌이 된다고 전한다. 한편, '우부메의 사례물' 유형에서는 그 무게를 견뎌내거나 부탁을 거절하지 않은 자가 괴력, 대도, 재물을 얻는다. 아기가 무거워지는 것은 일률적인 공격 능력이 아니라, 안아주는 자를 시험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견디지 못하면 공포담이 되고, 끝까지 안고 있으면 복을 받는 이야기가 된다. 이러한 반전이 우부메를 순수한 가해자로도, 순수한 수호령으로도 분류할 수 없게 만든다.
물가는 우부메가 산 자에게 부탁을 건네는 경계로서 작용한다. 《금석물어집》의 나루터, 니가타의 다리, 후세 화보 속의 강가는 모두 이쪽과 저쪽을 잇는 장소이다. 야스이 마나미의 도상 연구는 산욕사자를 위해 강가에 천을 치고 통행인에게 물을 뿌려달라고 청하는 나가레칸조(流れ灌頂) 풍습이 세키엔의 그림에도 묘사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물을 통한 공양이 모든 우부메 전승의 기원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모르는 통행인에게 행위를 부탁한다"는 점과 "물가에서 죽은 자와 산 자가 접촉한다"는 구조는 깊은 공명을 일으킨다. 우부메의 부탁은 단지 아기뿐만 아니라, 공양의 임무를 다음 사람에게 건네는 이야기로도 읽을 수 있다.
고카쿠초와의 습합은 어머니의 혼령에게 날개와 아이를 채어가는 성질을 더했다. 《유양잡조》의 야행유녀는 깃털을 입으면 새가 되고, 벗으면 여자가 된다. 자신에게 아이가 없기 때문에 남의 아이를 훔치며, 아이의 옷을 밤이슬에 노출시키지 말라고 경고하는 새 요괴이다. 이에 반해 일본의 우부메는 자신이 이미 안고 있는 아이를 타인에게 맡기려 한다. 양쪽 모두 산욕으로 죽은 자라는 설명과 아기에 대한 집착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한쪽은 '빼앗고', 다른 한쪽은 '맡긴다'. 하야시 라잔이 1631년의 《신간다식편》에서 '고카쿠초'에 '우부메도리' 혹은 누에를 대응시킨 것은, 정반대 방향을 가진 두 가지 이야기를 하나의 이름으로 포개는 커다란 결절점이 되었다.
화사(繪師)들은 그 중첩을 시각화했다. 《백괴도권》에서는 우부메가 이름을 가진 요괴도감의 일원이 되었고, 토리야마 세키엔의 《화도백귀야행》은 피 묻은 흰 천, 아기, 비, 물가를 한 장의 그림으로 집약시켰다. 쓰키오카 요시토시의 《화한백물어》 '슈메노스케 우라베 스에타케'는 중세의 스에타케 전설을 소재로 삼으면서도 여자의 등에 날개를 달아 중국계 괴조의 형상을 겹쳐 놓았다. 원전에는 날개가 없으므로, 이는 충실한 삽화가 아니라 19세기의 감상자가 이해한 '우부메'를 중세 설화로 되돌려 놓은 재해석이다. 도상을 연대순으로 살펴보면, 우부메의 모습이 전승의 출발점이 아니라 독서, 출판, 회화의 축적을 통해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가마쿠라 다이교지에 전해지는 '온메사마'는 우부메의 또 다른 반전을 보여준다. 사찰의 연기에 따르면, 텐분 원년(1532년) 난산으로 죽은 여자를 니치토 상인이 독경으로 구제하고 우부메 탑을 세워 안산 수호의 영신으로 모셨다. 민속 자료에서는 여자가 나메리가와의 다리 위에서 "강을 건널 수 없고, 아이가 젖을 빨아 고통스럽다"며 상인에게 구원을 호소했고, 훗날 난산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원할 탑을 바랐다고 전한다. 여기서 밤의 다리 위에서 산 자에게 부탁을 건네던 우부메는 공양을 받은 후 사람들의 출산을 돕는 쪽으로 이동한다. 공포와 안산 신앙은 별개의 속성이 아니라, 구원받지 못한 영혼이 모셔진 영신으로 변화하는 연속된 이야기인 것이다.
근연 관계에 있는 고소다테 유레이(子育て幽霊, 아이 키우는 유령)와도, 모자의 죽음이라는 주제만으로 동일시할 수는 없다. 고소다테 유레이는 죽은 뒤에도 무덤 속의 아이를 기르기 위해 엿을 사러 오는 이야기를 핵심으로 하며, 어머니에서 아이로 양육이 이어진다. 반면 우부메는 밤길에서 타인을 불러 세우고, 아기를 안는 역할을 일시적으로 넘긴다. 전자가 '죽은 자가 기르는' 이야기라면, 후자는 '산 자에게 맡기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차이를 유지한 채 연관 짓는다면, 우부메는 모성애에 대한 미담도, 산욕사자에 대한 징벌도 아니며, 출산 중의 죽음을 둘러싼 공포, 공양, 증여, 사회의 기억이 교차하는 괴이로서 읽어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