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괴 도감

이름·종류·지역·주제로 찾는 일본 요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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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냉장수호

    냉장수호

    일반

    Reizōmori

    현대판

    가정정령도시의 공동주택

    예전부터 단지나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선 “냉장고 자석이 제멋대로 떨어지거나 움직이면 냉장수호의 짓”이라며 속삭여 왔다. 어떤 집에선 한밤중 냉장고 문을 열자 자석 장식 하나가 다른 곳으로 옮겨져 있었고, 다음 날 그 집 주인은 냉동고의 고기를 쓰지 못해 썩게 했다고 한다. 또 다른 집에선 아이가 밤중에 냉장고 앞에서 울고 있었는데, 이유를 묻자 “냉장고에서 목소리가 나와서 과자를 먹으라고 했다”고 답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이야기들로부터 냉장수호는 사람의 식사 리듬을 흐트러뜨리는 현대의 요괴로 알려지게 되었다.

  • 너구리바야시

    너구리바야시

    드문

    Tanukibayashi

    혼조 바카바야시(에도 전승)

    산림정령Tokyo

    에도 혼조 일대에 전해진 너구리 풍악의 전형. 피리와 북, 샤미센이 겹쳐 울리는 듯한 소리가 들리고, 다가설수록 멀어지며, 골목을 돌면 다른 방향으로 옮겨 간다. 수로와 해자 근처에서 갑자기 끊기는 예가 많고, 민간에서는 바람과 지형에 의한 굴절과 반향을 이유로 들었으나 당시엔 너구리의 장난으로도 이해됐다. 혼조 칠불가사의의 하나로 구경거리와 독물에서도 자주 언급되며, 이름은 바카바야시와 다누키바야시가 혼용된다. 실체 목격이 따르지 않고 소리만이 주체인 괴이로 기록적 가치가 높다. 속신으로는 지나치게 쫓다 보면 길을 잃어 새벽에 교외로 나가게 되니, 중간에 귀를 막고 멈춰 서면 좋다고 했다.

  • 네코마타

    네코마타

    전설

    nekomata

    늙은 고양이 변화의 두 갈래 꼬리 네코마타

    동물 변화Tochigi

    인가에서 오래 기른 고양이가 나이를 먹어 꼬리를 두 갈래로 가르고 둔갑하게 된 네코마타. 에도 시대에 널리 믿어진 집의 네코마타로, 한밤중에 수건을 쓰고 일어서며 불덩이를 띄워 집안사람들을 괴롭힌다. 도리야마 세키엔이 『화도백귀야행』에 그린 툇마루의 고양이들과 사와키 스시 『백괴도권』의 샤미센 타는 네코마타가 그 모습을 전한다.

  • 네코마타

    네코마타

    전설

    nekomata

    화로지기 늙은 네코마타

    동물 변화Tochigi

    화로지기 늙은 네코마타는 오랫동안 한 곳에서 길러지며, 그을음과 재에 물든 화롯가에서 나이를 먹은 고양이가 어느 날 밤 문득 꼬리를 두 갈래로 나누며 나타나는 버전이다. 산에서 사람을 습격하는 난폭한 네코마타(『명월기』에 기록된 남도의 네코마타나 『도연초』가 소문으로 전하는 깊은 산의 네코마타)와는 대척점에 위치하며, 이 자는 집안의 숨결과 역대의 삶을 들이마시고 불기운과 밥 짓는 연기를 몸에 품기 때문에 가내신(혹은 자시키와라시)에 가까운 행동을 취한다. 『도연초』에 나오는 '고양이가 나이를 먹으면 네코마타가 된다'는 이야기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도 보다 수호적인 성질을 띠고 있다. 사람의 말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냄비 뚜껑을 딸랑 울리고, 재에 무늬를 그려 신호를 보낸다. 한밤중 안방 구석을 달리는 푸르스름한 괴화(네코마타의 불)는 『야마토 괴이기』에서 무가를 괴롭힌 불덩이와는 달리, 이 늙은 네코마타가 가옥의 화재 위험을 미연에 핥아내고 악한 기운을 태워 없애는 정화의 표식으로 여겨진다. 꼬리 한 가닥은 '가문의 맥'을, 다른 한 가닥은 '불의 신기'를 잇는다고 믿어지며, 두 갈래는 단순한 이형이 아니라 두 가지 임무를 지닌 신성한 징표라고 설파하는 마을도 있다. 늙은 네코마타는 가족이 유해를 둘러쌀 때 반드시 근처로 온다. 흔히 고양이는 죽은 자를 되살린다는 두려움이 있어 유해를 앗아가는 화차와 혼동되기 쉽지만, 이 버전은 결코 소란을 피우지 않고 그저 코끝으로 호흡의 흐트러짐을 맡고, 미련을 떨쳐내기 위해 작은 불씨를 켤 뿐이다. 그러므로 가족은 네코마타 앞에서 흉기를 휘두르지 않고 향을 한 줄기 피워 '배웅불'로 삼는 것이 예의로 여겨진다. 오래 기른 고양이를 함부로 대하면, 한밤중에 부뚜막이 헛돌고 벽에 축축한 발자국이 겹겹이 나타난다. 반면 정중하게 애도한 집에서는 눈 내리는 아침에 장지문 아래만 따뜻하고, 쌀독에 쥐 그림자가 사라진다고 한다. 이 버전은 과거 산으로 사라진 늙은 고양이가 집을 그리워하여 돌아온 모습으로도, 애초에 집을 나서지 않은 늙은 고양이가 자연스레 꼬리가 갈라진 모습으로도 이야기된다. 화로지기의 땅에서는 고양이의 꼬리를 다치게 하는 것을 꺼리며 "꼬리를 상하게 하면 가문의 덕도 갈라진다"고 엄격히 훈계한다. 용모는 등가죽이 늘어져 외투처럼 보이며, 불빛이 적은 방에서는 사람 그림자처럼 비친다. 이것이 죽은 사람으로 둔갑한다고 오인받는 까닭이지만, 늙은 네코마타는 쓸데없는 둔갑을 좋아하지 않는다. 가끔 할머니의 모습을 빌리는 것은 어린아이를 재우기 위해서이며, 소리는 내지 않고 그저 그을음과 재 냄새만을 남긴다. 나그네에게는 모습을 보이지 않지만, 데릴사위를 들이거나 집을 새로 짓는 첫날밤 등 집안의 대소사에는 마루 밑에서 작게 발톱을 두드려 길흉을 알린다. 세 번 두드리면 길함, 두 번은 불조심이다. 등심지가 축축해지면 혀로 다듬어 주고, 부뚜막 불이 너무 세면 꼬리로 부채질하여 약하게 한다. 이렇게 일상의 작은 재앙을 맡아주는 대신, 가족에게는 '밥의 가장자리'를 나누어주는 예절이 남아 있다. 쌀알 세 개, 소금 한 줌, 수증기 약간. 이것만 지키면 네코마타는 사람을 홀리지 않고, 밤의 괴상한 소리도 그저 '집 울림'으로 끝난다고 여겨졌다.

  • 노데라보

    노데라보

    드문

    노데라보

    황폐한 절의 종지기·노데라보

    인간형 요괴와 반인반요Tokyo

    황폐한 절의 종지기로 볼 때, 노데라보는 '소리가 울리지 않아야 할 장소'에 깃든 요괴이다. 절의 종은 공동체의 시간을 새기고 법요나 장례를 알리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세키엔의 화면에서 종루는 풀과 담쟁이로 덮여 있고 절은 사람의 손길을 떠나 있다. 그곳에 선 승려의 모습은 종을 치고 있지도, 경을 읽고 있지도 않다. 그저 종 곁에 있을 뿐이다. 역할을 잃은 장소에 오직 역할만 남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고요함이 노데라보의 두려움이다. 『화도백귀야행』 전편 양의 「노데라보」는 해설문을 통해 의미를 한정 짓지 않는다. 세키엔은 여윈 승려의 모습, 찢어진 옷, 종루, 담쟁이덩굴, 들풀을 조합하여 독자가 '이것은 황폐한 절에 나오는 것이다'라고 직감할 수 있을 만큼의 단서만 두었다. 요괴화로서는 대단히 강렬한 구도이며, 화면의 태반은 여백에 가깝다. 요괴의 정체보다 절 구석에 부는 바람, 방치된 목조물, 종에 얽힌 식물의 시간이 더 눈에 남는다. 노데라보는 요괴가 말로 설명되기 이전, 무언가를 '봐버렸다'는 감각을 보존하고 있다. 이 요괴를 승려의 망령이라고 단정하기는 쉽지만, 그것만으로는 협소하다. 노데라보는 원령이 된 승려인 텟소나 라이고(頼豪)처럼 명확한 생전의 이름이 없다. 테라츠츠키(寺つつき)처럼 불법을 파괴한다는 유래도 나타나지 않는다. 아오보즈나 누로보토케에 가까운 승려 모습의 불기함을 지니면서도 노데라보는 더욱 '장소'에 기대어 있다. 즉, 괴이의 주체는 '승려'뿐만 아니라 '들판의 절(野寺)'이기도 하다. 사람이 없는 절이 여전히 승려의 그림자를 필요로 하고 있다. 그렇게 읽을 때, 노데라보는 폐사 그 자체의 의인화에 다가간다. 무라카미 켄지의 『요괴 사전』이 보여주듯, 노데라보는 특정 토지에서 전해진 농밀한 옛날이야기라기보다 세키엔의 도상으로부터 후세의 해설이 만들어져 간 요괴이다. 이 종류의 요괴는 자료가 적다는 것을 약점으로서 감추는 것이 아니라, 그 적음이 무엇을 낳았는지를 살펴야 한다. 이름과 그림만 있기 때문에 독자는 종소리를 상상한다. 왜 승려는 그곳에 있는가, 누구를 위해 종을 지키는가, 절은 왜 황폐해졌는가. 대답의 결여가 황폐한 절의 여백과 겹쳐진다. 미즈키 시게루 이후의 요괴 도감은 이 여백을 현대의 독자에게 다리를 놓아주었다. 미즈키 계통의 요괴 명감에 들어감으로써, 노데라보는 세키엔을 읽는 사람만의 존재가 아니라 요괴 도감을 넘기는 독자에게도 알려진 이름이 되었다. 단, 현대적인 캐릭터화를 거쳐도 노데라보의 핵심은 화려한 능력이 아니다. 황폐해진 절, 종, 흑의, 풀, 침묵. 이 다섯 가지가 모이면 이야기가 없어도 요괴는 일어선다. 노데라보는 사람이 떠난 신앙 공간에 남은 기척을 읽어내기 위한 요괴이다. 절이 살아 있을 때 종은 소리를 낸다. 절이 황폐해지면 종은 침묵한다. 그러나 침묵한 종 곁에 만약 여윈 승려가 서 있다면 그 장소는 완전한 폐허가 아니게 된다. 누군가가 아직 파수를 보고 있다. 혹은 파수를 보는 것만 남아버렸다. 노데라보는 그 위화감을 그림 한 장에 가두어 놓은 요괴이다.

  • 노부스마

    노부스마

    드문

    nobusuma

    얼굴을 덮는 산야의 활공수 노부스마

    동물 변이Tokyo

    이 모습의 노부스마는 나무 위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와 나그네의 얼굴에 천 같은 활공막을 밀어 붙이는 작은 짐승이다. 공포의 핵심은 이빨이나 발톱보다 시야와 숨을 한순간에 빼앗는 데 있다. 산길을 걷는데 머리 위에서 무언가가 떨어지고, 축축한 막이 얼굴에 달라붙으며, 눈과 코가 가려져 방향을 잃는다. 이 연속된 신체 감각이 평범한 날다람쥐를 요괴로 바꾼다. 세키엔의 그림 속 노부스마는 거대한 괴물이 아니다. 작고 날렵하며 어둠 속에서 윤곽을 알아보기 어렵기 때문에 오히려 무섭다. 뱀이나 오니처럼 정면에서 달려드는 대신 나뭇가지, 처마, 벼랑의 그늘에서 나그네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각도로 떨어진다. 펼친 활공막은 천처럼 보이지만 천은 아니다. 바로 이 점이 후스마와 갈라지는 지점이다. 흰 천의 후스마가 주인 잃은 직물에서 시작한다면, 노부스마는 동물의 몸을 천으로 잘못 본 순간에 태어난다. 공격을 ‘얼굴 덮기’로 이해하면 노데포와의 가까운 관계도 드러난다. 노데포는 입에서 박쥐 같은 것을 토해 사람의 얼굴을 가리고 눈을 막는다고 한다. 노부스마는 그 토해진 것과 비슷한 존재로도, 늙은 박쥐가 변한 것으로도 설명된다. 어느 쪽이든 공격의 순서는 닮아 있다. 먼저 시야를 빼앗고, 다음으로 호흡과 방향 감각을 흐트러뜨린 뒤, 마침내 피나 정기를 빤다는 것이다. 산길에서 갑자기 방향을 잃는 공포가 요괴의 행동으로 다시 짜인 셈이다. 그렇다고 ‘실제 날다람쥐임을 알면 두렵지 않다’고 간단히 정리할 수도 없다. 동물은 실제로 존재하지만, 밤중에 머리 위를 가르는 그림자를 보고 곧바로 정체를 알아낼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산에서는 새와 짐승, 천과 그림자, 바람에 흔들린 가지와 살아 있는 몸이 한순간에 겹친다. 노부스마는 바로 그 식별 불가능한 틈에 산다. 박물서는 동물의 이름을 건넸고, 세키엔은 그것을 요괴 그림으로 바꾸었으며, 기담은 흡혈과 얼굴 덮기의 성질을 보탰다. 지식은 괴이를 없애지 않고 오히려 괴이의 재료가 되었다. 이 판본은 노부스마가 ‘산의 작은 동물’과 ‘천의 츠쿠모가미’ 사이에 걸쳐 있다는 점을 살린다. 몸은 짐승이고, 보이는 모습은 천이며, 행동은 요괴다. 나그네에게는 정체를 판단할 시간이 거의 없다. 얼굴이 덮이는 순간에는 이름보다 공포가 먼저 온다. 그래서 노부스마는 거대한 서사의 주인공보다 밤길의 찰나에 응축된 괴이로 읽을 때 가장 선명하다. 몸집이 작을수록 습격은 더 가까이 느껴진다. 손으로 떼어 낼 수 있을 듯하면서도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거리감이 핵심이다. 지역적으로도 노부스마를 한 현에 묶기는 어렵다. 천 형태의 후스마는 사도와 도사의 전승에 연결할 수 있지만, 노부스마에는 에도 출판물이 야행성 산짐승을 요괴로 다시 만든 흔적이 더 짙다. 이 판본은 그 출판 문화를 출발점으로 삼고, 밤의 산림과 골짜기, 마을 가까운 숲 가장자리를 서식지로 둔다. 그곳에서 기다리는 것은 모습을 온전히 드러내는 거대한 괴물이 아니라, 보았다고 생각한 순간 이미 얼굴에 붙어 있는 작은 어둠이다.

  • 놋페라보

    놋페라보

    에픽

    nopperabo

    기이노쿠니자카의 얼굴 없는 괴이

    인요·반인반요Tokyo

    이 판본에서는 놋페라보를 '얼굴을 지우는 무지나형 괴담'으로 읽는다. 고이즈미 야쿠모의 〈무지나〉가 강렬한 이유는 얼굴 없는 여자를 보여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도망쳐 들어간 소바 포장마차의 남자에게 똑같은 짓을 하게 만든다는 점에 있다. 첫 번째 조우가 밤길의 괴이라면, 두 번째 조우는 일상의 제도가 무너지는 괴이이다. 비탈길의 어둠에서 가게의 불빛으로 도망쳤음에도 불구하고 괴이는 오히려 다가와, 대화의 상대 그 자체를 공백으로 바꾸어버린다. 이 괴담의 무서움은 얼굴의 조형보다 '확인의 실패'에 놓여 있다. 남자는 우는 여자가 인간인지 확인하려다 실패한다. 다음으로 소바 포장마차를 안전한 인간 사회라고 확인하려다 또 실패한다. 놋페라보는 덮치지 않지만, 보는 자의 판단 절차를 두 번 부순다. 얼굴이란 신원·감정·적의의 유무를 읽기 위한 화면이며, 그것이 완전히 지워지면 사람은 상대방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 수 없게 된다. 무지나와의 관계는 이 판본의 깊은 초점이다. 야쿠모의 제목은 〈무지나〉였으며, 놋페라보라는 이름은 후세의 정리 과정에서 강하게 전면화되었다. 무지나·너구리·여우는 민간 전승 속에서 종종 서로 자리를 바꾸며 둔갑하는 짐승으로, 정체를 모호하게 한 채 사람을 위협한다. 이 모호함을 유지할 때, 놋페라보는 '얼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으로 보이는 것으로 둔갑한 무언가'로서 일어선다. 정체불명이기에 공포는 설명으로 닫히지 않는다. 도상화된 놋페라보는 전승의 모호함을 하나의 강렬한 그림으로 응축했다. 미즈키 시게루의 요괴 도감류에서는 얼굴 없는 인간형이라는 윤곽이 명확해져, 독자는 이름만 들어도 매끄러운 안면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러나 그 명료한 도상 배후에는 원래 '누구의 얼굴인지 모른다', '무엇이 둔갑한 것인지 모른다'는 불명료함이 있다. 그림으로서는 단순하고, 이야기로서는 이중으로 불안정하다. 이 판본의 놋페라보는 직접적인 살상 능력을 갖지 않는 대신 상대를 읽는 능력을 빼앗는다. 만약 공포가 '위험한 적을 발견하는' 것에서 생겨난다면, 놋페라보는 반대로 '적인지 아닌지조차 알아낼 수 없는' 상태를 만든다. 얼굴이 없는 자는 화가 났는지 웃고 있는지, 이쪽을 보고 있는지 외면하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그곳에 남겨진 하얀 얼굴은 괴이의 얼굴인 동시에 보는 자 자신의 불안을 비추는 공백이기도 하다. 이 판본에서 중요한 것은 놋페라보가 '표정의 결여'가 아니라 '신원의 소거'를 행한다는 점이다. 화난 얼굴이나 웃는 얼굴이라면 그래도 상대의 감정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눈도 코도 입도 없다면 연령, 성별, 시선, 감정, 발화의 가능성마저 상실된다. 인간으로서 대우하기 위한 단서가 모두 사라지기 때문에, 보는 자는 상대를 사람인지 물건인지 요괴인지 결정할 수 없게 된다. 더 나아가, 소바집 남자가 같은 얼굴을 보여줌으로써 괴이는 복수성(複数性)을 얻는다. 한 마리의 괴물로부터 도망친 것이 아니라, 세계의 측면이 얼굴을 지워버리는 규칙으로 변해버린 것처럼 느껴진다. 여기에 놋페라보 이야기의 현대적인 두려움이 있다. 얼굴을 잃은 것은 여자나 가게 주인뿐만 아니라, 인간끼리 서로를 확인하는 구조 그 자체인 것이다.

  • 놓고가 버리

    놓고가 버리

    드문

    Oitekebori

    오키나이보리(전통담 정리판)

    수중정령Tokyo

    에도 저지대의 도랑과 용수로에 깃든 괴이로 전해지며, 풍어에 대한 경계와 수역의 타부를 드러내는 민속적 장치로 이해된다. 주체는 특정한 모습이 없고 목소리만 들리는 경우가 많으나, 지역에 따라 갓파나 너구리 등 기존 동물 변이로 동일시되기도 한다. 무대는 혼조의 긴시오보리·센다이보리·스미다강 변이 중심이며, 카메이도·호리키리·가와고에에도 파생이 있다. 전형은 ‘대어·퇴거를 재촉하는 목소리·어획의 소실’의 3단으로, 물고기를 나누거나 몇 마리를 놓아주면 화를 면한다는 예법담이 따른다. 간세이 연간의 기담집과 지역 전승에 보이며, 후대에는 라쿠고로 정착했다. 자연음과 동물의 행태가 괴이의 재료가 되어, 도랑의 관리와 공유 자원의 규범을 상징하는 이야기로 기능했다.

  • 뇌수(雷獣)

    뇌수(雷獣)

    전설

    Raijū

    벼락과 함께 떨어지는 짐승, 뇌수

    동물요괴IbarakiTochigi

    천둥과 함께 하늘에서 떨어지고, 구름을 타고 돌아간다고 믿어진 짐승. 교쿠테이 바킨 『겐도 호겐』의 뇌수 화도, 구리모토 단슈가 옮겨 그린 이와쓰키의 뇌수, 시모사 고가네에서 붙잡힌 「사사구마」, 게 같은 아키의 뇌수를 견주어 보고, 쓰쿠바의 천둥 사냥, 『산해경』의 기와 뇌수의 뼈, 히가시오미의 후지 신사로 이어 간다.

  • 뇌신

    뇌신

    신격

    らいじん

    북을 두드려 천둥을 일으키는 신·뇌신

    神霊・神格賀茂別雷神社 (上賀茂神社、現·京都府京都市北区) / 北野天満宮 (現·京都府京都市上京区、天神信仰) / 雷電神社 (現·群馬県邑楽郡板倉町)

    뇌신 도상의 결정판은 다와라야 소타쓰의 『풍신뇌신도 병풍』으로, 이곡일쌍(二曲一双)의 금박 병풍에, 보는 방향을 기준으로 왼쪽의 흰 뇌신(여러 개의 북이 연결된 렌다이코(連太鼓)를 등에 고리 모양으로 짊어짐)과 오른쪽의 녹색 풍신(바람주머니를 짊어짐)을 대치시킨다. 이 구도는 오가타 고린(尾形光琳), 사카이 호이쓰(酒井抱一) 등 린파(琳派) 화사들에게 충실히 모사되며 현재 풍신뇌신 도상의 규범이 되었다. 뇌신이 등 주위에 두른 북은 두드리면 천둥소리를 낸다고 여겨지며, 오니의 형상·호랑이 가죽으로 만든 훈도시·날카로운 발톱이라는 조형과 함께 천공의 거친 힘을 시각화한 것이다. 신앙사적인 측면에서 뇌신은 크게 세 계보로 나뉜다 ── 첫째는 가모와케이카즈치노오카미로 대표되는 고전적 뇌신(가미가모 신사), 둘째는 스가와라노 미치자네의 원령을 가라이텐진으로 삼는 텐진 계통(기타노 텐만구, 947년 창건), 셋째는 이름에 번개(雷)를 지녔으나 본질은 검신이자 무신인 다케미카즈치로, 이는 뇌신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간토(関東) 지방에서는 군마(群馬) 이타쿠라(板倉)의 라이덴 신사(雷電神社)를 총본궁으로 하는 라이덴 신앙이 퍼져, 호노이카즈치노오카미(火雷大神)·오이카즈치노오카미(大雷大神)·와케이카즈치노오카미(別雷大神)를 모시고 낙뢰 방지와 풍작 기원의 대상으로 삼았다. 농경 사회에서 번개는 논에 떨어져 벼를 여물게 하는 '이나즈마(稲妻, 벼의 지아비)'로서 풍요의 전조이기도 했기에, 뇌신은 천벌을 내리는 외경의 신임과 동시에 비와 결실을 가져다주는 은혜로운 신이라는 양의적인 존재로서 숭배되어 왔다.

  • 누라리횬

    누라리횬

    전설

    누라리횬

    요괴 총대장, 누라리횬

    반인반요Akita

    크게 부푼 머리를 한 노인은 에도의 요괴 그림에서 이름과 모습으로 먼저 나타난다. 1737년의 『백괴도권』과 1776년에 처음 간행된 『화도백귀야행』에 그려진 말없는 모습은 후대의 상상력을 계속 불러일으켰다. 1929년의 ‘괴물의 우두머리’상, 1972년의 바쁜 집에 불쑥 올라오는 노인상, 그리고 TV 애니메이션에서 무리를 이끄는 적역으로. 누라리횬은 출판과 영상 속에서 역할을 더해 가며 ‘요괴 총대장’이라는 오늘날의 대표적 모습을 얻었다. 고전이 남긴 여백과 근현대의 대담한 이야기 만들기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요괴다.

  • 누레온나

    누레온나

    에픽

    nure-onna

    물가의 젖은 머리 여자 누레온나

    수변 요괴ShimaneNiigata

    누레온나는 바닷가나 강가에서 물에 흠뻑 젖은 긴 머리의 여자로 나타난다. 이야기는 지역마다 다르다. 어떤 전승에서는 지나가던 사람에게 아기를 안겨 주며, 받아 든 순간 아이가 돌처럼 무거워져 꼼짝할 수 없게 된다. 다른 이야기와 그림에서는 거대한 꼬리를 지닌 뱀 몸의 위압적인 수괴로 묘사된다. 에도 시대 요괴화에는 뱀 몸의 누레온나가 자주 등장하지만, 그 모습과 구전을 직접 잇는 이야기 자료는 충분하지 않다. 이와미에서는 우시오니와 함께 나타나는 수괴로 전해지며, 낯선 아이를 맨손으로 받아 들지 말라는 경계가 따른다. 가까운 계통의 이소온나와 뒤섞여 불리기도 하므로, 이름과 성질은 해안마을마다 조금씩 다르다.

  • 누리카베

    누리카베

    에픽

    Nurikabe

    누리카베

    일반분류FukuokaOita

    눈에 보이진 않지만 손끝으로는 분명한 벽처럼 느껴지는 형. 규슈 북부의 길잃음 괴담을 바탕으로 강한 해를 가하진 않고 진행을 멈추게 하는 데 특화된다. 발목에서 어깨 높이까지 퍼져 있는 감각이 있어 정면 돌파는 어렵다. 옆으로 비켜서기, 잠시 쉬기, 지면이나 길가를 지팡이로 더듬기 같은 예전의 대처로 약해진다. 사람을 시험하는 길의 영적 장애로 이해된다.

  • 누에

    누에

    전설

    Nue

    『헤이케 이야기』·요리마사 퇴치담의 누에

    동물 변화KyotoOsaka

    누에는 요리마사의 화살에 맞은 한 종류의 합성수만을 가리키는 이름이 아니다. 『짓킨쇼』에서는 궁중 전각에서 우는 작은 새로 여겨진다. 『헤이케 이야기』 제4권에는 먹구름에서 떨어진 ‘괴이한 존재’(変化の物)의 소리가 누에라는 새와 닮았다는 고노에인 시대의 사건과, ‘누에라는 괴조’를 쏘는 니조인 시대의 사건이 연이어 나온다. 널리 유통된 판본의 원숭이·너구리·호랑이·뱀 몸은 오늘날까지 이어진 대표적 형상이다. 하지만 전승 문헌마다 부위가 달라지고, 노 『누에』에서는 속 빈 배에 실려 떠내려간 망령이 아시야에 나타나 여행 승려에게 구원을 청한다. 새 이름과 괴조, 합성수, 망령이 하나의 이름에 겹쳐진 데서 누에의 깊이가 생겨난다.

  • 눈노인

    눈노인

    드문

    Yukijijii

    산중에 서 있는 눈의 장로

    자연령도호쿠·호쿠리쿠·코신 지방의 산지(미상)

    눈보라의 장막이 내릴 때, 유키지이는 흰 옷을 입은 노인의 모습으로 나타나 멀리서 부르며 사람의 방향 감각을 빼앗는다. 눈에 얽힌 괴이담의 계보에 속하며 유키온나와 유키뉴도와 기능이 겹치지만 노인의 형태라는 점이 특징이다. 모습은 뚜렷하지 않아 가까이 갈수록 희미해지고, 소리만이 등 뒤에서 울린다고 전해진다. 민속적으로는 설해를 경계하게 하는 상징적 존재로 해석된다.

  • 눈동자

    눈동자

    드문

    Yukiwarashi

    에치고 전승형 설동자

    자연령NiigataGifu

    에치고국에 전해지는 설동자의 상에 따른다. 눈 오는 날에 나타나는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폭설의 밤에 문간으로 찾아와 아궁가에서 몸을 녹인다. 보살핌을 받으면 집안을 위로하고 집안일을 거들기도 하나, 봄기운이 감돌면 힘이 약해지고 자취가 옅어진다. 해를 끼치지 않으며 오히려 객신처럼 계절의 도래를 알리는 내방자의 성격을 띤다. 방문은 되풀이되지만 영속적이지 않고 끝내는 발길이 끊기는데, 그 점에 눈 자체의 무상함이 비친다. 이름은 ‘유키와라시’, ‘유키코’ 등 이칭이 있으나, 모두 눈과 동자상을 결부한다는 점이 같다.

  • 눗페후호후

    눗페후호후

    에픽

    Nuppefuhofu

    전통상(에마키 출전 준거)

    일반분류일본 민간전설

    에도기 요괴 그림두루마리에 근거한 전형적 형상. 주름 많은 희끄무레한 살덩이가 한 머리 키로 서 있고 사지는 짧으며 얼굴 기관은 분명치 않다. 이름과 도상만 전해져 행동이나 목적은 정해지지 않는다. 문헌상으로는 눗페라보의 고형으로 보는 해석이나 늙은 두꺼비·호리의 변이로 보는 주석이 있다. 사레본에는 ‘시신의 기름을 빨아먹는다’ ‘의사로 변장했다’는 서술도 있으나 지역 전승의 확산은 확인되기 어렵다. 사찰 출현설이나 부패취에 관한 설은 후대 해석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지적되며, 실견담은 제한적이다. 외형은 분가루를 바른 듯한 흰 피부감과 연달아 이어진 주름이 특징이다.

  • 니니기노미코토

    니니기노미코토

    전설

    ににぎのみこと

    천손강림

    '천손강림'이라는 고대 국가 신화의 구조. 기본 설명에서는 천손강림의 개요를 다루었지만, 철저 해설에서는 '천손강림'이라는 고대 일본 국가 신화의 구조를 파헤친다. 천손강림은 다카마가하라(천상 세계·청정·질서)에서 아시하라노나카쓰쿠니(지상 세계·혼돈·정복 대상)로의 신격 강림을, 고대 일본의 건국·지배권 확립·농경 문명의 기원으로 그리는 핵심 신화이다. 삼종의 신기·이쓰토모노오·신칙·마도코오후스마라는 구체적인 기물·종자·명령·침구를 동반하는 정교한 구조는 고대 천황 즉위 의례·신상제·대상제 등 종교 의례의 근본적 근거를 이룬다. 단순한 신화담을 넘어 고대부터 현대까지 일본의 국가·종교·정치·문화를 관통하는 근원적 서사 장치이다. 세계 신화학에서의 강림 신화 비교. 천손강림 신화는 세계 신화학에서는 '천강(하늘에서 내려옴)·신격 강림' 신화의 대표 사례로 자리매김된다. 한반도의 단군 신화(천제의 아들 환웅이 태백산에 강림), 몽골의 칭기즈칸 전승, 북방 퉁구스 제 민족의 샤먼 강림담, 인도의 크리슈나 강림, 기독교의 성육신 등 고대 세계 각지에 '하늘에서 지상으로의 신격 강림'형 신화가 널리 분포한다. 특히 한반도·몽골 등의 동북아시아 천강 신화와의 유사성은 고대 일본 신화가 동북아시아 광역 문화권 속에서 형성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중요한 비교종교학적 문제이다. 천손강림을 고립된 일본 고유의 현상이 아니라 고대 동북아시아 공통의 신화적 상상력의 일본적 변형으로 해석하는 시각은 전후 일본 신화학의 중요한 성과이다. 강림지 논쟁의 역사성. 니니기노미코토의 강림지 '쓰쿠시 휴가의 타카치호 봉우리'의 비정지가 미야자키현 타카치호초와 가고시마현 기리시마 산계의 2대 전승지로 분열되어 있는 사실은 고대 국가 신화가 지역 민속·지리적 구상화·정치적 경합 속에서 다층적으로 전개된 결과이다. 고대의 중앙 정권(야마토 조정)은 구체적 지리를 확정하지 않고 '휴가의 타카치호'라는 추상적 호칭을 채택했으나, 중세·근세·근대를 거치며 남큐슈 각지에서 '우리 땅이야말로 강림지'라는 전승이 독자적으로 발달했다. 현대의 관광 브랜드 경쟁·향토사 연구·신사 제사의 계승 체제 속에서 2대 전승지는 병존하며 독자적인 문화 자원으로 기능하고 있다. 고대 신화가 지역 문화에 복층적으로 편입되는 과정의 전형적 사례이다. 코노하나사쿠야히메와 수명의 기원 신화 ── 아름다움과 영원의 선택. 니니기노미코토가 코노하나사쿠야히메(벚꽃의 여신)를 선택하고 이와나가히메(바위처럼 영원한 여신)를 거절함으로써 자손인 천황 황통·인류가 영원한 생명을 갖지 못하게 된 기원 신화가 되었다는 점은 고대 일본에서의 '아름다움과 영원의 근원적 긴장'을 표현한다. 벚꽃은 아름답지만 지고, 바위는 추하지만 영원하다는 대비는 고대 일본인의 생명관·미의식·무상감의 근원적 구조를 보여준다. 이는 불교 전래 이전의 고대 일본 고유의 무상관으로서 훗날 우키요·벚꽃 문화·무사도·다도 등 일본 문화 전체를 관통하는 근원적 사상으로 계승되어 왔다. '지기 때문에 아름답다'는 일본적 미의식의 신화적 근거를 제공하는 중요 소재이다. 우미사치히코·야마사치히코에서 진무동정으로. 니니기노미코토와 코노하나사쿠야히메의 세 기둥 자식 중, 야마사치히코(호오리노미코토)가 해신궁을 찾아가 토요타마히메와 결혼하여 우가야후키아에즈노미코토를 낳고, 우가야후키아에즈와 타마요리히메 사이에 진무 천황이 태어난 4대의 계보는 고대 일본 국가 정통성의 중핵을 이룬다. 진무동정(진무 천황이 휴가에서 야마토로 동진하여 즉위한 신화)은 천손강림의 논리적 귀결로, 고대 일본 국가 성립을 '다카마가하라 → 휴가 → 야마토'라는 3단계의 지리적 이동으로 그린다. 니니기노미코토는 고대 일본 국가 신화의 출발점으로서 진무동정·역대 천황 즉위·고대 율령제·전전 국가 신도·전후 황실·현대 천황제까지 2천 년이 넘는 정치사를 관통하는 근원적 신격이다. 남큐슈의 천손강림 문화권. 니니기노미코토의 주요 진좌지인 남큐슈(미야자키현·가고시마현·구마모토현 남부)는 고대부터 '천손강림의 땅'으로서 독자적인 종교·문화·민속을 발전시켜 왔다. 타카치호초의 요카구라(국가 지정 중요 무형 민속 문화재·아마노이와토 열기를 재현하는 전통 예능), 기리시마 신궁의 어신악·제례, 닛타 신사의 어릉 참배, 미야자키 신궁의 진무 즉위제 등 고대 신화를 현대에 계승하는 종교·예능·제례의 중층적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현대의 '신화의 고향 미야자키', '기리시마 관광' 등 지역 브랜드 형성은 고대 신화가 현대 지방 창생·관광 산업·교육 소재로 전개되는 흐름의 대표 사례이다. 고대 신화가 2천 년을 넘어 살아 숨 쉬는 문화 자원으로 기능하는 희귀한 사례이다. 21세기의 니니기노미코토 ── 고대 신화와 현대 일본. 21세기 현재 니니기노미코토와 천손강림 신화는 고대사 연구·남큐슈 관광·신도 제사·서브컬처의 소재로 계승되고 있다. 전전·전중의 국가 신도에서의 정치적 강조에서 전후 정교 분리 체제하의 문화적 소재화, 21세기의 관광·서브컬처·교육 소재라는 다층적 전개를 거쳐 고대 신화와 현대 일본의 정신문화가 연속성을 유지하고 있다. 게임 『오오카미』·『여신전생』·만화 『귀멸의 칼날』 등의 서브컬처 작품에서 반복해서 재창조되며, 고대의 천손강림 신화가 2천 년을 넘어 21세기 일본인의 정신문화를 계속 이끌고 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문화적 계승의 연속성을 체현하는 일본 신화의 상징적 신격이다.

  • 니우쓰히메

    니우쓰히메

    신격

    niutsuhime

    고야산의 지주신·니우묘진

    신령·신격Wakayama

    니우쓰히메는 고야산의 종교 경관의 근저에 있는 '토지의 신'이다. 진언밀교의 성지는 부처(대일여래)의 산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기반은 구카이 이전부터 토착 신이 다스리던 땅이었으며, 개창 연기는 그 양도(신령 봉헌)의 이야기로서 니우·타카노 양 명신을 필수 불가결한 역할에 자리매김했다. 신의 이름 '니우'의 주사는 방부·마귀 쫓음·주술의 광물로서 고대부터 진중되었고, 고야산 기슭에 수은 광맥이 분포한다는 사실이 니우씨라는 채광 집단과 그 봉재신의 존재를 뒷받침한다. 동시에 기노카와 수원을 장악하는 입지로 인해 수신으로도 숭배되어 농경·수리의 수호에까지 미친다. 신불습합 하에서는 태장계 대일여래의 수적(垂迹)으로 여겨져, 고야산 내의 미야시로·아마노샤에 권청되어 산의 진수 신이 되었다. 세계유산 니우쓰히메 신사의 누문과 본전은 이 여신이 고야산 1,200년 신앙의 기점임을 오늘날에 전한다.

  • 다고리히메노카미

    다고리히메노카미

    신격

    Tagorihime-no-Kami

    오키노시마에 깃든 해북도중의 여신, 다고리히메노카미

    신령신격Fukuoka

    다고리히메노카미를 읽는 열쇠는 오키노시마가 ‘먼 섬’이라는 데 있다. 무나카타 대사의 세 궁은 규슈 본토의 헤쓰미야, 오시마의 나카쓰미야, 겐카이나다의 오키노시마에 깃든 오키쓰미야로, 바다를 건널수록 신역 깊숙이 들어가는 배치를 취한다. 가장 먼바다에 놓인 오키쓰미야의 제신이 다고리히메노카미라는 사실은 그녀의 성격을 잘 보여 준다. 사람의 마을 곁을 지키는 수호신이 아니라, 항해자가 섬 그림자를 발견하고, 조수를 읽고, 아직 보이지 않는 위험을 두려워할 때 떠오르는 신격이다. 고전 본문에서 그녀는 칼에서 태어난다. 『고사기』의 우케이(誓約) 대목은 아마테라스 오미카미가 스사노오노미코토의 도쓰카노쓰루기를 받아 아메노마나이에서 흔들어 씻고, 깨물어 부수어, 내뿜은 숨의 안개에서 다키리비메노미코토가 생겨났다고 적는다. 칼은 군사와 맹세의 물건이고, 우물물은 정화의 매개이며, 숨과 안개는 형체가 없는 경계다. 다고리히메노카미는 이 셋이 엇갈리는 곳에서 태어나기에, 단순한 바다의 신이라기보다 무력이 기도로 바뀌는 순간의 여신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신의 이름이 흔들린다는 것은 그녀가 하나의 읽기에 갇히지 않는 신임을 보여 준다. 『고사기』에서는 다키리비메노미코토, 또 오키쓰시마히메노미코토라고도 불리며, 『일본서기』 계통에서는 다고리히메, 다기리히메라는 이름으로 이야기된다. ‘다키리’를 들끓는 조수의 움직임으로 읽을지, ‘다기리(田霧)’를 바다 위의 안개로 읽을지에 따라 보이는 표정은 조금 달라진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그녀의 중심에는 수면 한가운데에서 시야를 바꾸는 힘이 있다. 항해자에게 안개는 위험이었고, 동시에 신의 영역을 알리는 징표이기도 했다. 무나카타 신앙에서는 이 신화가 실제 바닷길과 이어진다. 오키노시마는 일본 열도와 한반도를 잇는 해상 교통의 요충이며, 세계유산 공식 자료는 4세기 후반부터 9세기 말까지 항해 안전과 교류 성취를 비는 제사가 행해졌다고 설명한다. 봉헌품의 변화는 제사의 자리가 거암 위, 바위 그늘, 반쯤 바위 그늘이고 반쯤 노천인 곳, 노천으로 옮겨 간 과정을 보여 주며, 오키노시마의 고대 제사가 자연 숭배에서 사전(社殿) 제사로 나아가는 일본 고유 신앙의 형성을 생각하는 데 빼놓을 수 없음을 말해 준다. 섬을 둘러싼 금기는 다고리히메노카미의 ‘보이지 않음’을 더욱 짙게 한다. 세계유산 공식 자료는 오키노시마에서 보고 들은 것을 입 밖에 내지 않고,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돌 하나도 가지고 나오지 않으며, 신직이라도 바닷속에서 미소기를 한 뒤에 들어간다는 관습을 전한다. 이는 비밀주의라기보다 신역을 소비하지 않기 위한 법도다. 다고리히메노카미는 신상이나 이야기 속에 모든 것을 드러내는 신이 아니다. 말해지지 않는 것, 가져가지 않는 것, 섬에 되돌려 놓이는 것에 의해 오히려 짙게 존재한다. 한편 그녀는 오키노시마에만 갇혀 있지 않다. 무나카타 대사의 유서는 세 여신을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의 세 딸로 삼고, 해외와의 외교·무역·국방의 기능을 맡았던 무나카타 땅이 국가 제사와 깊이 맺어졌음을 이야기한다. 무나카타 대사의 유서에 보이는 ‘국가 제사’에 관한 기술은 다고리히메노카미를 항해 안전의 신에만 머물게 하지 않는다. 바다를 건너는 일은 고대 국가에게 교역이자 외교이고, 군사이자 기도이기도 했다. 그 복합성이 있기에, 그녀의 고요함은 약함이 아니라 바다 앞에서 국가와 사람이 지켜야 할 자세로 울린다. 나아가 『고사기』의 계보에서 다키리비메노미코토는 오쿠니누시노카미와의 사이에 아지스키타카히코네노카미와 다카히메노미코토를 낳는다. 이는 무나카타의 해상신이 이즈모 계보 안에도 자리를 가진다는 뜻이다. 오쿠니누시노카미의 계보에 놓인 다고리히메노카미는 해북도중(海北道中, 한반도로 향하는 바닷길)의 수호신인 동시에, 이즈모 신화의 혈맥을 넓히는 어머니 신이기도 하다. 먼바다로 물러나는 여신이 거꾸로 뭍의 신화를 잇는다. 이 이중성이 다고리히메노카미의 조용한 강함이다. 그녀는 섬 깊숙이 물러날수록 신화 전체의 매듭으로 넓어져 간다.

  • 다기쓰히메노카미

    다기쓰히메노카미

    신격

    Tagitsuhime-no-Kami

    오시마에 깃든 바닷길 중간의 여신, 다기쓰히메노카미

    신령신격Fukuoka

    오시마에 깃든 다기쓰히메노카미를 이해하려면, 먼저 나카쓰미야를 ‘세 궁의 한가운데’로서가 아니라 바닷길 도중에 놓인 성역으로 볼 필요가 있다. 무나카타 대사는 오키노시마의 오키쓰미야, 오시마의 나카쓰미야, 다시마의 헤쓰미야를 세 궁으로 묶고, 이를 통틀어 무나카타 대사라고 한다. 공식 유서는 세 여신을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의 세 딸로 삼고, 국가 제사와 해외 교류의 기억을 오키노시마에서 출토된 국보들과도 겹쳐 설명한다. 나카쓰미야의 다기쓰히메노카미는 이 거대한 신앙권의 한가운데에서, 대양에 대한 두려움과 본토의 기도를 주고받는다. 현재의 나카쓰미야는 세계유산 공식 자료에서도 무나카타 대사 나카쓰미야로 다뤄지며, 후쿠오카현 무나카타시 오시마 1811에 자리하고, 무나카타 대사 공식 페이지는 그 제신을 다기쓰히메노카미(湍津姫神)로 적는다. 여기서 다기쓰히메노카미는 추상적인 물의 신이 아니라, 구체적인 섬과 사전과 참배길과 제례를 지닌 신이다. 오시마는 본토에서 배로 건너가는 유인도이며, 오키노시마처럼 원칙적으로 사람을 거부하는 섬이 아니다. 그러나 동시에 오시마는 오키노시마를 멀리 바라보고, 오키쓰미야 요배소를 품으며, 바다의 금기를 마을로 전하는 섬이기도 하다. 다기쓰히메노카미의 ‘가운데’는 다가갈 수 있는 성지와 다가갈 수 없는 성지 사이에 있다. 신명의 읽기를 따라가면 이 여신의 윤곽은 더욱 날카로워진다. ‘다기쓰’에는 물이 세차게 흐르고 끓어오르듯 움직이는 모습이 담겨 있다. 다기쓰히메노카미는 잔잔한 호수의 신이라기보다, 조수가 움직이고 흐름이 바뀌며 배의 판단이 시험받는 곳의 신이다. 항해를 지킨다는 것은 그저 파도를 잠재우는 일이 아니다. 때로는 나아가게 하고, 때로는 기다리게 하고, 때로는 되돌아가게 한다. 다기쓰히메노카미의 수호는 바다를 사람에게 따르게 하는 힘이 아니라, 사람을 바다의 리듬으로 되돌려 놓는 힘으로 작용한다. 나카쓰미야 뒤에 있는 미타케산은 다기쓰히메노카미의 아라미타마를 생각할 때 빼놓을 수 없다. 무나카타 대사 공식 페이지는 미타케 신사가 오시마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으며, 제신을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와 다기쓰히메노카미의 아라미타마로 한다고 소개하고, 일본 신화에 따르면 다기쓰히메노카미가 내려온 곳으로 전해진다고 적는다. 기슭의 나카쓰미야가 참배자를 맞는 신사라면, 산 위의 미타케는 섬 자체가 신을 받아들인 곳이다. 바다에서 보이는 산 그림자, 산에서 내려다보는 뱃길, 그 오가는 시선이 다기쓰히메노카미의 신격을 만든다. 세계유산 공식 자료가 보여 주는 제사의 역사도 이 이중성을 뒷받침한다. 7세기 후반까지 오시마의 미타케산 제사 유적과 본토의 시모타카미야 제사 유적에서 오키노시마 제사와 공통점을 지닌 노천 제사가 행해졌다고 한다. 그리고 8세기 전반의 『고사기』와 『일본서기』에는 무나카타씨가 세 궁에서 무나카타 삼여신을 모신다는 사실이 기록된다. 여기서 바다로 이어지는 세 궁이라는 짜임이 성립한다. 다기쓰히메노카미는 그 안에서 오키노시마의 고대 제사를 본토 쪽의 사전 제사로 잇는, 중간의 기억을 맡는다. 고전 본문과의 어긋남은 오히려 다기쓰히메노카미를 풍부하게 읽기 위한 입구다. 『고사기』의 서약 대목에는 다기쓰히메노미코토의 이름이 보이고, 무나카타 삼여신의 하나로 모셔진다는 사실이 적혀 있다. 한편 현재의 무나카타 대사에서는 다기쓰히메노카미가 나카쓰미야의 제신이다. 이 차이를 ‘어느 쪽이 옳은가’로 좁혀 버리면 무나카타 신앙의 두께를 잃는다. 고전의 신명, 사가(社家)가 지켜 온 세 궁의 제사, 세계유산으로 정리된 고고학적 경관은 저마다 시대가 다른 층이다. 다기쓰히메노카미는 그 층을 건너는 신이기도 하다. 무나카타씨가 맡았던 해상 제사를 배경에 두면, 다기쓰히메노카미는 그저 ‘세 여신 가운데 둘째’가 아니게 된다. 세계유산 공식 자료는 오키노시마의 고대 제사를 뛰어난 항해 기술과 대외 교류에 종사한 무나카타 지역 사람들이 맡았다고 한다. 바다는 교역로이자 위험 지대이고, 외교의 통로이며, 신에게 비는 자리이기도 했다. 오시마의 나카쓰미야는 그 모든 것이 한 점으로 응축되는 곳이다. 나그네는 여기서 먼바다로 향하는 두려움과 본토로 돌아가는 안도를 동시에 느낀다. 이 모습을 도감으로 읽는다면, 다기쓰히메노카미는 ‘흐름의 수호신’이다. 흐름이란 물의 흐름만이 아니다. 신화에서 제사로, 오키노시마에서 오시마로, 금기에서 참배로, 고대 국가의 기도에서 오늘날의 교통 안전으로, 신앙은 모습을 바꾸며 흘러왔다. 다기쓰히메노카미는 그 도중에서 끊어질 듯한 것을 다시 잇는다. 아라미타마를 산 위에 모시고, 니기미타마(신의 온화한 면)를 나카쓰미야에서 우러르며, 요배소 너머로 오키노시마를 바라본다. 그녀의 신위는 화려한 기적보다, 건너야 할 때를 알려 주는 물때로 나타난다.

  • 다누키

    다누키

    일반

    Tanuki

    일곱 변신보다 한 단계 위, 다누키의 여덟 변신

    동물 변신 요괴일본 전역, 특히 서일본에 바케다누키 전승이 집중

    “여우 일곱, 다누키 여덟”의 뜻. “여우는 일곱 번 변하고 다누키는 여덟 번 변한다”는 일본에서 잘 알려진 속담입니다. 다누키가 여우보다 변신 능력에서 한 단계 위라는 뜻입니다. “여우 일곱, 다누키 여덟, 수달 아홉, 고양이 열”이라는 확장형도 있어, 짐승의 요력을 계단처럼 배열합니다. 《곤자쿠 이야기집》 권27 제22화에서 늙은 다누키가 귀신이 되는 이야기도 같은 생각을 보여 줍니다. 오래 산 짐승일수록 강한 힘을 얻고, 긴초, 단자부로, 다사부로, 시바에몬, 이누가미 교부 같은 이름난 다누키는 다이묘진으로까지 모셔집니다. 여덟 다다미 음낭과 에도의 웃음. 다누키의 거대한 음낭은 생물학이 아니라 도시적인 농담입니다. 에도 금박 장인이 적은 금을 다누키 가죽에 싸서 여덟 다다미만큼 넓게 두드렸다는 말에서, 다누키의 금옥이 넓게 늘어난다는 상상이 생겼습니다. 우타가와 구니요시는 이를 우산, 그물, 방, 샤미센, 씨름판으로 그렸고, 쓰키오카 요시토시는 모린지 차가마의 기괴함으로 방향을 달리했습니다. 서민적 희화와 절의 괴담이 함께 근세 다누키 이미지를 만들었습니다. 삼명리狸와 삼대 다누키 전설. 두 목록은 자주 혼동됩니다. 일본 삼명리狸는 단자부로, 다사부로, 시바에몬입니다. 삼대 다누키 전설은 이누가미 교부, 모린지 분부쿠 차가마, 쇼조지 다누키바야시입니다. 긴초와 로쿠에몬을 중심으로 한 아와 다누키 전쟁은 다사부로가 중재자로 나오는 또 다른 흐름이며, 강담과 영화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시가라키 다누키의 팔상연기. 시가라키 다누키의 팔상연기는 삿갓, 눈, 웃는 얼굴, 술병, 장부, 배, 돈주머니, 꼬리를 장사의 길상으로 읽습니다. 재난을 피하고, 사방을 살피고, 손님을 맞고, 먹고사는 덕을 얻고, 신용을 지키고, 침착하게 판단하고, 재물을 부르고, 끝까지 해낸다는 뜻입니다. 전후 상인의 윤리가 둥글고 친근한 다누키 몸에 투영된 셈입니다. 《폼포코》가 개발에 밀려나는 다누키를 그린 것은, 가게 앞 시가라키 다누키를 낳은 소비사회와 맞닿아 있는 또 다른 얼굴입니다. 다누키가 살아남는 이유. 1994년 《폼포코》는 다마 뉴타운 개발에 쫓겨난 지령으로 다누키를 그리고, 이누가미 교부를 비롯한 유명 다누키를 모읍니다. 2007년 《유정천 가족》은 교토를 다누키, 인간, 텐구, 여우가 겹쳐 사는 도시로 상상합니다. 다누키가 오래 살아남는 이유는 시대마다 새 모습으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에도의 농담, 메이지의 그림, 전후의 장사 길상물, 현대 도시 판타지는 모두 같은 다누키의 다른 변신입니다.

  • 다마노오야노미코토

    다마노오야노미코토

    신격

    Tamanooya-no-Mikoto

    아마노이와토에 구슬을 꿰어 건 구슬 만들기의 신, 다마노오야노미코토

    신령신격Wakayama

    아마노이와토에 구슬을 꿰어 건 다마노오야노미코토는, 빛을 알갱이로 가다듬는 신이다. 아마테라스 오미카미가 바위굴에 숨었을 때, 신들은 오모이카네노카미의 계책에 따라 거울을 만들고, 구슬을 만들고, 천을 드리우고, 점을 친다. 『고사기』 「아마노이와야」 대목은 다마노오야노미코토에게 야사카노마가타마의 이오쓰노미스마루노타마를 만들게 했다고 적는다. 여기서 다마노오야노미코토가 만드는 것은 한 개의 보석이 아니다. 많은 구슬을 꿰어 신 앞에 거는 영적인 구슬 꿰미다. 구슬은 아마노이와토의 자리에서 거울과 짝을 이룬다. 거울은 한 면으로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의 모습을 비추고, 구슬은 많은 알갱이로 신 앞의 공간을 채운다. 거울이 ‘보는’ 기물이라면 구슬은 ‘맺는’ 기물이다. 구멍을 뚫고, 실을 꿰고, 알갱이를 흐트러짐 없이 늘어놓을 때, 흩어진 작은 빛이 하나의 제구가 된다. 다마노오야노미코토의 일은 소재를 아름답게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하나하나의 반짝임을 신에게 향하는 질서 속에 늘어놓는 데 있다. 고쿠가쿠인 대학의 기물 해설이 아마노이와토 신화를 고대 제사의 기원담으로 읽을 때, 구슬은 거울, 천, 철제품, 점뼈와 함께 제사를 이루는 주요한 물건이다. 구슬은 몸에 가까운 기물로, 지닌 이를 꾸미고 지키며 신분과 영력을 드러낸다. 그것이 바위굴 앞의 마사카키에 걸릴 때, 개인의 장신구는 신 앞의 표시로 바뀐다. 다마노오야노미코토는 이 전환을 가능하게 하는 신이다. 천손강림에서 다마노오야노미코토의 직능은 씨족의 내력으로 이어진다. 『고사기』 「천손강림」 대목은 다마노오야노미코토를 이쓰토모노오에 꼽고, 다마노오야노무라지 등의 조상으로 삼는다. 이는 구슬 만들기가 단순한 손일이 아니라, 하늘의 제사에 뿌리를 둔 직능으로서 지상에 내려왔음을 보여 준다. 구슬을 갈고, 뚫고, 꿰는 기술은 천손의 세계를 떠받치는 제사 기술의 일부가 되었다. 히노쿠마 신궁·구니카카스 신궁의 공식 개요에서는 구니카카스 신궁의 상전에 다마노오야노미코토가 모셔진다. 구니카카스 신궁은 히보코노카가미를 신체로 하는 신궁이며, 같은 페이지는 아마테라스 오미카미가 바위굴에 숨었을 때 두 거울이 주조된 내력을 전한다. 거울의 신화를 중심으로 하는 신궁에 다마노오야노미코토가 상전신으로 모셔진다는 것은, 이와토 신화의 제구들이 거울만으로 완결되지 않음을 잘 보여 준다. 구슬은 거울 둘레에서 빛을 잇는다. 다마노오야노미코토의 힘은 세부를 소홀히 하지 않는 데 있다. 구슬 만들기에는 소재 고르기, 연마, 구멍 뚫기, 끈 꿰기, 배열이 필요하다. 어느 하나라도 흐트러지면 구슬 꿰미는 신 앞에 어울리는 모양이 되지 못한다. 큰 빛을 한 번에 낳는 것이 아니라, 작은 빛을 하나씩 가다듬고 이어 의미 있는 배열로 만든다. 다마노오야노미코토는 세상을 바꾸는 큰 의례 속에서 가장 섬세한 손일의 무게를 가르쳐 주는 신이다. 오늘의 시각으로 보면 다마노오야노미코토는 보석, 장신구, 염주, 비즈, 기념품, 디자인, 가계, 인연 맺기의 감각과 잘 어울린다. 작은 것을 갈고, 고르고, 잇는 일은 눈에 띄지 않지만 사람의 기억과 기도를 떠받친다. 바위굴 앞에 구슬을 꿰어 건 다마노오야노미코토는 한 알의 빛도 함부로 하지 않는 신이다. 흩어진 것을 아름답게 맺어, 잃어버린 빛을 맞이할 자리로 가다듬는다. 그 조용한 손길이야말로 다마노오야노미코토의 신격이다. 또 다마노오야노미코토는 이시코리도메노미코토와 좋은 짝을 이룬다. 이시코리도메노미코토가 한 장의 거울 면에 빛을 모은다면, 다마노오야노미코토는 많은 알갱이에 빛을 나누고, 거기서 다시 하나의 꿰미를 만든다. 집중과 연결, 반사와 장식, 한 면과 여러 알갱이. 아마노이와토의 제사는 이 두 공예로 보기 위한 빛과 맺기 위한 빛을 함께 갖추었다. 다마노오야노미코토의 구슬은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 신들의 협동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바꾸는 기물이었다. 신들의 작전은 한 영웅의 행위가 아니라, 지혜, 춤, 노리토, 미테구라, 거울, 구슬이 서로를 떠받치는 집단의 제사다. 다마노오야노미코토는 그 집단성을 알갱이의 꿰미로 상징하는 신이기도 하다. 작은 것을 맺는 힘이 큰 신사(神事)를 깊이 떠받치는 것이다.

  • 다마모노마에

    다마모노마에

    전설

    다마모노마에

    도바인의 총애를 받은 구미호 다마모노마에

    동물 변화KyotoTochigi

    이 판에서는 다마모노마에가 정체를 드러내고 토벌당하기까지의 전말을 들여다본다. 도바 상황의 병이 마침내 깊어지자, 점을 명받은 음양사 아베노 야스나리(실존 인물 아베노 야스치카가 모델로 여겨진다)는 병의 근원이 다마모노마에 바로 그 사람임을 알아맞혔다. 야스나리가 궁중에서 기도를 올려 몰아붙이자, 다마모노마에는 끝내 사람의 모습을 지키지 못하고 여우의 정체를 드러내며 도읍에서 동쪽으로 달아난다. 달아난 곳은 시모쓰케 지방의 나스노(지금의 도치기현 나스 일대)였다. 들에 숨어 사람과 가축을 해치는 요호를 퇴치하기 위해, 조정은 동국의 무사 가즈사노스케 히로쓰네와 미우라노스케 요시아키 등을 보냈다. 무사들은 들을 에워싸 몰아세우다가 마침내 화살로 여우를 쏘아 쓰러뜨렸다고 전한다. 다마모노마에를 처치한 이 무사들의 이름은 겐페이 무렵 실존했던 반도 무사들의 것과 겹쳐, 전설과 사실이 맞닿은 채 이야기되는 점이 흥미롭다. 이야기 속에서 다마모노마에는 대개 「경국지색(傾國之色)」—그 아름다움과 지혜로 나라의 정점에 파고들어 안에서부터 기울게 하는 자—의 대표로 그려져 왔다. 그러나 한편으로 토벌당한 뒤에는 사당에 모셔져 신으로 받들어지기도 했다. 무서운 요호이면서도 어딘가 마음이 끌리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이 양면성이 다마모노마에를 단순한 악역으로 끝내지 않고, 오래도록 사랑받는 존재로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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