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데라보는 도리야마 세키엔의 『화도백귀야행』 전편 ‘양’ 권에 그려진 승려 모습의 요괴다. 담쟁이덩굴이 얽힌 종루 곁에, 해진 검은 승복을 걸친 수척한 인물이 여윈 두 손을 굽힌 채 웅크리고 있다. ‘노데라’는 인가에서 떨어진 절이나 황폐해져 들판으로 돌아가는 절을, ‘보’는 승려의 형상을 떠올리게 한다. 세키엔은 노데라보[1] 그림에 자세한 설명을 남기지 않았으므로 어느 절의 누가 변한 것인지, 그보다 앞선 구전이 있었는지는 확정할 수 없다. 무라카미 겐지도 이를 세키엔의 도상에서 먼저 알려진 승려형 요괴로 다루며, 후대에 덧붙은 기원을 오래된 전승처럼 말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2].
노데라보의 힘은 행동보다 장소에서 나온다. 사람이 떠난 절, 오랫동안 울리지 않은 종, 해진 승복, 풀에 잠기는 당우가 한데 모여 성스러운 공간이 서서히 일상에서 벗어나는 불안을 만든다. 아오보즈나 누리보토케가 종교적 형상의 기괴함을 앞세운다면, 노데라보는 주변의 폐허와 떼어 놓을 수 없다. 사람의 윤곽을 지녔지만 사람 없는 절에 묶여 있다는 점에서, 그는 승려의 잔영이자 황폐한 절 자체가 드리운 그림자다.
민화・전승
노데라보의 출발점은 이야기가 아니라 그림이다. 토리야마 세키엔의 『화도백귀야행』은 안에이(安永) 5년(1776)에 간행된 요괴 화집으로, 노데라보는 전편 양(陽)의 한 그림으로서 우미자토(海座頭), 타카온나(高女), 테노메(手の目), 텟소(鉄鼠) 등과 나란히 수록되어 있다[1]. 단, 노데라보에는 긴 유래문이 첨부되어 있지 않다. 독자에게 주어지는 정보는 이름, 승려의 모습, 황폐한 절의 기척, 종루의 일부, 담쟁이덩굴과 풀숲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요괴를 이야기할 때는 후세에 만들어진 줄거리를 오래된 전승처럼 단정 짓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세키엔이 어딘가의 구전을 그림으로 그렸을 가능성도 남아 있지만, 현시점에서 확실한 것은 에도의 요괴 화본에 '노데라보'라는 이름과 모습이 고정되었다는 사실이다.
도상의 중심에 있는 것은 절의 기능이 거의 상실된 장소의 불기함이다. 종은 본래 시간을 알리고 법회를 통지하며 마을이나 거리에 부처의 목소리를 울리게 하는 도구이다. 그러나 세키엔의 화면에서는 종루가 화면 가장자리에 잘려 있고 담쟁이가 얽혀 있으며 승려 모습의 요괴는 그곳에 기대어 서 있다. 청정한 절이 아니라 풀에 파묻힌 들판의 절(野寺)이라는 점이 중요하며, 그곳에서는 부처의 장소와 요괴의 장소가 겹쳐버리고 만다. 노데라보는 사람을 덮치는 장면을 보여주지 않고 그저 '아직 누군가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만으로 두렵다. 승려였던 것인지, 승려의 모습을 빌린 것인지, 절 자체가 낳은 그림자인지 그림은 답을 주지 않는다.
근세의 독자에게 황폐한 절이나 인적이 끊긴 절은 단순한 폐건물이 아니었다. 공양의 단절, 무덤이나 불구(仏具) 관리의 부족, 마을 변두리, 밤의 종소리 등은 괴이를 부르는 조건으로 쉽게 이해되었다. 노데라보라는 이름은 그러한 감각을 한 단어로 묶어내고 있다. 무라카미 켄지의 『요괴 사전』이 정리하듯, 노데라보는 지명이나 퇴치자가 존재하는 지방 전설이라기보다 세키엔의 그림을 기점으로 후세의 요괴 해설에 계승된 존재이다[2]. 그 때문에 구체적인 사찰 이름을 만들어 지도에 올려놓기보다 에도 판본 문화 속에서 성립된 도상 요괴로 읽는 편이 성실한 태도이다.
미즈키 시게루(水木しげる) 이후의 요괴 도감류에서 노데라보 역시 현대의 요괴 명감에 편입되었다. 미즈키의 『일본 요괴 대전』[3]과 같은 도감은 세키엔 이후 도상이 선행된 요괴들을 아이들도 읽을 수 있는 짧은 설명과 다시 그린 그림을 통해 재유통시켰다. 여기서 노데라보는 황폐한 절의 어두운 여백을 짊어진 채 요괴 도감의 한 항목으로 정착한다. 거대한 이야기가 없기 때문에 독자는 종 곁에 서 있는 흑의의 모습에서 폐사(廃寺), 염불, 밤바람, 아무도 치지 않는 종소리를 상상하게 된다. 노데라보는 설명의 적음 자체가 여운이 되는 요괴이다.
황폐한 절의 종지기로 볼 때, 노데라보는 '소리가 울리지 않아야 할 장소'에 깃든 요괴이다. 절의 종은 공동체의 시간을 새기고 법요나 장례를 알리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세키엔의 화면에서 종루는 풀과 담쟁이로 덮여 있고 절은 사람의 손길을 떠나 있다. 그곳에 선 승려의 모습은 종을 치고 있지도, 경을 읽고 있지도 않다. 그저 종 곁에 있을 뿐이다. 역할을 잃은 장소에 오직 역할만 남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고요함이 노데라보의 두려움이다.
『화도백귀야행』 전편 양의 「노데라보」[1]는 해설문을 통해 의미를 한정 짓지 않는다. 세키엔은 여윈 승려의 모습, 찢어진 옷, 종루, 담쟁이덩굴, 들풀을 조합하여 독자가 '이것은 황폐한 절에 나오는 것이다'라고 직감할 수 있을 만큼의 단서만 두었다. 요괴화로서는 대단히 강렬한 구도이며, 화면의 태반은 여백에 가깝다. 요괴의 정체보다 절 구석에 부는 바람, 방치된 목조물, 종에 얽힌 식물의 시간이 더 눈에 남는다. 노데라보는 요괴가 말로 설명되기 이전, 무언가를 '봐버렸다'는 감각을 보존하고 있다.
이 요괴를 승려의 망령이라고 단정하기는 쉽지만, 그것만으로는 협소하다. 노데라보는 원령이 된 승려인 텟소나 라이고(頼豪)처럼 명확한 생전의 이름이 없다. 테라츠츠키(寺つつき)처럼 불법을 파괴한다는 유래도 나타나지 않는다. 아오보즈나 누로보토케에 가까운 승려 모습의 불기함을 지니면서도 노데라보는 더욱 '장소'에 기대어 있다. 즉, 괴이의 주체는 '승려'뿐만 아니라 '들판의 절(野寺)'이기도 하다. 사람이 없는 절이 여전히 승려의 그림자를 필요로 하고 있다. 그렇게 읽을 때, 노데라보는 폐사 그 자체의 의인화에 다가간다.
무라카미 켄지의 『요괴 사전』이 보여주듯, 노데라보는 특정 토지에서 전해진 농밀한 옛날이야기라기보다 세키엔의 도상으로부터 후세의 해설이 만들어져 간 요괴이다[2]. 이 종류의 요괴는 자료가 적다는 것을 약점으로서 감추는 것이 아니라, 그 적음이 무엇을 낳았는지를 살펴야 한다. 이름과 그림만 있기 때문에 독자는 종소리를 상상한다. 왜 승려는 그곳에 있는가, 누구를 위해 종을 지키는가, 절은 왜 황폐해졌는가. 대답의 결여가 황폐한 절의 여백과 겹쳐진다.
미즈키 시게루 이후의 요괴 도감은 이 여백을 현대의 독자에게 다리를 놓아주었다. 미즈키 계통의 요괴 명감[3]에 들어감으로써, 노데라보는 세키엔을 읽는 사람만의 존재가 아니라 요괴 도감을 넘기는 독자에게도 알려진 이름이 되었다. 단, 현대적인 캐릭터화를 거쳐도 노데라보의 핵심은 화려한 능력이 아니다. 황폐해진 절, 종, 흑의, 풀, 침묵. 이 다섯 가지가 모이면 이야기가 없어도 요괴는 일어선다.
노데라보는 사람이 떠난 신앙 공간에 남은 기척을 읽어내기 위한 요괴이다. 절이 살아 있을 때 종은 소리를 낸다. 절이 황폐해지면 종은 침묵한다. 그러나 침묵한 종 곁에 만약 여윈 승려가 서 있다면 그 장소는 완전한 폐허가 아니게 된다. 누군가가 아직 파수를 보고 있다. 혹은 파수를 보는 것만 남아버렸다. 노데라보는 그 위화감을 그림 한 장에 가두어 놓은 요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