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평록은 기이국 구마노 바닷가를 근거지로 삼았던 오니들의 두목이다. 오니가성 절벽의 ‘오니 바위굴’을 본거로 여러 오니를 거느려 해상과 연안을 괴롭혔다고 전한다. 사카노우에노 다무라마로의 구마노 토벌담에 등장하며, 관음의 가호를 받은 화살에 왼쪽 눈을 꿰뚫려 토벌된 것으로 전해진다. 자료에 따라 해적 우두머리 ‘다가마루’와 동일시되기도 하나, 세부 전승은 지역과 문헌에 따라 차이가 있다.
민화・전승
바다가 잠잠할 때만 다가갈 수 있다는 오니가성의 바위굴에 금평록이 틀어박혔다. 다무라마로가 공략에 애를 먹자 먼바다 작은 섬에 동자가 나타나 춤을 권했다. 군사가 배를 나란히 대고 춤을 추자 바위굴의 돌문이 열려 금평록이 얼굴을 내밀었고, 가르쳐 준 활로 왼쪽 눈을 꿰뚫었다. 부하 오니들이 달려 나왔으나 화살에 쓰러졌다. 동자는 천수관음의 화현으로 빛과 함께 사라졌고, 그 섬은 ‘마미가시마(마견도)’라 불리게 되었다. 베어낸 머리는 땅에 묻어 화를 막았다고 한다.
구마노나다 연안에 전해지는 사카노우에노 다무라마로 계열의 토벌담에서 오니장으로 묘사된 ‘가네히라 시카’상들을 정리한 판본. 해식동인 ‘오니의 바위집’을 근거지로 삼아 휘하 오니들을 거느리고 해로를 교란했다고 전해진다. 다무라마로와의 전투에서는 관음의 가호를 두려워해 결계를 굳히고 석문의 문짝을 닫아 장기전을 꾀했다. 그러나 동자(천수관음의 화신)가 유인하는 춤 가락에 주의를 빼앗겨 문가로 고개를 내민 틈에 왼쪽 눈을 화살에 맞아 치명상을 입었다. 토벌 후 수급은 골짜기에 매납되고 진혼의 주문이 더해졌다. 지역 전승에서는 해적두 ‘다가마루’로도 불리며, 사찰 연기와 지명(마미가섬, 도마리 관음〈기요미즈데라〉, 오오마 신사, 오니노모토 등)에 흔적이 남아 있다. 사료적 사실성은 불확실하나, 구마노에서의 반란 진압 전승이나 재지 세력의 기억이 후대에 다무라마로 설화로 전이되었다는 견해가 있으며, 모두 전승상의 이야기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