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쿠신부츠(즉신불, 즉신성불)란 가혹한 수행의 끝에 자신의 육신을 살아있는 채로 부처로 만들기 위해 땅속에 들어가 입정(入定)하여, 미라화되어 남은 수행자의 유해를 말한다. 특히 데와(出羽)의 유도노산[1]을 성지로 삼는 유도노산계 수행자들은, 나무열매와 풀뿌리, 나무껍질만을 먹으며 지방과 수분을 끊는 '모쿠지키교(목식행)'를 수천 일에 걸쳐 거듭했다. 사후에 몸이 썩지 않도록 육신을 정돈한 뒤 땅속 석실에 들어가 종을 치며 단식하다가 절명했다고 전해진다. 이는 죽음이 곧 끝이 아니라,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영원한 선정(禅定)에 든 모습으로 여겨졌으며, 파낸 유해는 부처로서 절에 모셔졌다. 살아있는 사람이면서도 죽어 반쯤 신격화된 존재로, 야마가타의 산악 신앙이 낳은 독특한 타계관을 잘 보여준다. 유도노산계 소쿠신부츠는 지금도 다이니치보[2]와 추렌지 등에 안치되어 참배의 대상이 되고 있다.
민화・전승
유도노산계 소쿠신부츠 중 가장 잘 알려진 이가 추렌지의 테츠몬카이 상인(鉄門海上人)[3]이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그는 호레키 9년(1759년) 쇼나이 쓰루오카에서 태어나 21세에 추렌지에 들어갔으며, 2천 일에 달하는 목식행을 닦고 유도노산 신앙의 부흥에 몸을 바쳐 분세이 12년(1829년) 12월 8일 71세의 나이로 입정하였다[3]. 다이니치보에 모셔진 신뇨카이 상인(真如海上人)[2]은 조쿄 4년(1687년) 아사히무라(현 쓰루오카시) 출신으로 알려져 있으며, 70여 년의 고행 끝에 텐메이 3년(1783년) 96세로 땅속에 입정하여 소쿠신부츠가 되었다고 한다[2]. 수행자는 입정에 앞서 옻나무 수액을 마셔 체내의 방부 처리를 도모했다고도 전해지며, 이러한 장렬한 수행은 기근에 고통받는 백성의 구제를 기원하는 헌신적인 고행으로 경외받았다. 메이지 시대에 들어 땅속 입정이 법으로 금지되면서, 유도노산계 소쿠신부츠는 오늘날 제한된 수만이 전해진다. 이들은 '살아있는 부처' 또는 '미라 부처'라고도 불리며, 죽어서도 산의 신성함과 결부된 반신(半神)의 존재로서 야마가타 사람들의 신앙을 계속해서 모으고 있다.
다른 요괴들이 상상 속의 이형(異形)인 반면, 소쿠신부츠는 실재했던 수행자가 그 극진한 신앙을 통해 반신격으로 승화한 희귀한 존재이다. 유도노산의 오쿠노인(奥の院)은 신전 건물이 없고 끓는 물이 솟아오르는 다갈색 거대한 영암(霊巌) 자체를 신체(神体)로 모시며, 참배길은 맨발로 걸어야만 한다. 이러한 자연 숭배의 원형을 간직한 영역에서 수행자들은 이생에서 부처가 되는 '즉신성불(即身成佛)'을 목표로 삼았다. '목식행'은 곡물을 끊고 점차 소금과 물까지 한계에 다다를 정도로 줄여 몸을 메마르게 하는 자기 미라화의 준비 과정이었으며, 마지막에는 방울이 달린 대나무통으로만 바깥과 이어진 땅속 석실에 틀어박혀 절명했다. 종소리가 끊긴 때가 곧 입정의 성취로 여겨졌다. 파낸 유해는 썩지 않고 부처가 되어 절의 본존 곁에 모셔져 중생의 고통을 짊어진다. 이들은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죽음을 넘어서 사람을 구하고자 했던 의지의 화신이며, 야마가타・데와산잔 지역의 사생관과 '산중 타계(산속의 저승)' 사상을 가장 강렬하게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