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그림의 한 쪽을 읽다
도리야마 세키엔의 스즈히코히메를 이해하는 출발점은 후대의 채색화가 아니라 판본의 한 쪽이다. 국립국회도서관이 공개한 『백기쓰레즈레부쿠로』 하권 4코마에서 스즈히코히메는 펼침면의 왼쪽 면에 인쇄되고, 오른쪽의 운외경(雲外鏡)과 마주한다. 왼쪽 끝에는 난간이 이어지고, 그 너머의 인물이 상체를 기울여 펼친 부채를 앞으로 내민다[1]. 소매와 부채는 화면에 크게 뻗지만 머리는 작은 방울과 긴 끈 같은 세부로 덮여 있어, 사람 얼굴과 제구의 경계가 선명하지 않다.

원그림은 스즈히코히메가 춤추는 일련의 동작을 기록하지 않는다. 부채를 펼친 한순간은 보이지만 발놀림·박자·방울 소리는 그려지지 않고 곁글에도 행위로 적히지 않는다. 난간 있는 공간도 고유한 이름의 신사나 가구라를 행하는 공간이 아니다. 그림에서 확실히 읽히는 자세와 감상자가 거기서 떠올리는 춤을 나누면 세키엔의 구도가 더 또렷해진다.
짧은 곁글이 여는 신화의 원경
세키엔은 그림 곁에, 숨은 신을 나오게 하려고 이와토 앞에서 가구라를 연주한 天鈿女命(아메노우즈메노미코토)의 옛일을 꿈결에 그리워한다는 글을 붙였다. 원본에는 구두점이 없다. 여기에는 스즈히코히메의 부모·나이·주소·주인·요괴가 된 까닭이 없다. 곁글의 화자도 스즈히코히메 본인이라고 밝히지 않아 세키엔의 꿈 이야기로 읽을 여지가 있다.
‘히메’라는 이름도 역사 속 공주를 특정하는 열쇠는 아니다. 그림에 나타난 여성상에 우아한 울림을 더해 방울의 이름과 잇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세키엔은 명명의 근거를 설명하지 않았다. 스즈히코히메는 이름만으로 전기를 좇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이름·그림·곁글이 한데 어우러져 모습을 갖춘 존재다.
아메노우즈메의 기억을 비춘 근세의 창작
세키엔은 天鈿女命 신화를 그대로 다시 그리지 않고 근세의 가구라와 방울에 대한 기억을 겹쳐 새 요괴상으로 엮었다. 『고지키』의 아마노이와토 단에서 天宇受売命(아메노우즈메노미코토)은 히카게를 띠로, 마사키를 머리장식으로, 대나무 잎을 손에 들고 뒤집은 통을 밟아 울리며 신들린다. 본문에는 가구라 방울이 나오지 않는다[2]. 또한 ‘天宇受売命’은 『고지키』의 표기이고, ‘天鈿女命’은 『일본서기』에 쓰인 표기다[5]. 세키엔은 뒤의 표기를 써 고대 신화를 근세 독자가 아는 가구라 도상에 이었다.
이 차이는 스즈히코히메의 매력을 줄이지 않는다. 오히려 고전 본문에 방울이 없기에 신화·가구라·방울·여성상을 한 장의 꿈 그림으로 다시 엮은 세키엔의 창작이 돋보인다. 원전에 없는 방울을 天鈿女命이 실제로 든 신구라고 설명하면 그 구상이 흐려진다.
세키엔 이전의 가구라 방울 실물 가운데에는 에이쇼 13년(1516) 명문을 지닌 철제 열 방울이 기록되어 있다[6]. 고전 신화의 동작과 근세까지 굳어진 제구 형태를 시간축에서 나누면, 스즈히코히메는 고대 신화의 유물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대의 도상을 근세 화폭에서 마주하게 한 이미지로 볼 수 있다.
이름 없는 방울 든 상에서 이름 가진 요괴로
세키엔 이전의 방울 든 상과 견주면 바뀐 점이 뚜렷하다. 국립국회도서관 소장 에도 중기 사본 『백귀야행 그림두루마리』 16코마에는 머리에 흰 천을 길게 드리운 듯하거나 볏털처럼 보이는(被衣·冠羽) 형상을 지닌 새 모양 요물이 작은 방울 묶음을 들고 가는 모습이 있다[3]. 이마이는 이런 상을 ‘방울을 든 무녀 차림의 학’이라 부르고, 세키엔의 스즈히코히메를 무녀와 방울 도상을 합친 요괴로 설명한다[4].


공통점은 무녀를 떠올리게 하는 옷차림, 새를 연상시키는 윤곽, 방울이라는 모티프다. 차이도 크다. 두루마리의 상은 방울을 손에 든 새 모양이고, 세키엔 그림은 방울을 머리와 하나로 만든 인물상으로 읽히며 펼친 부채를 내민다. 비교는 세키엔의 재구성을 보이지만 ‘두루마리 시대의 스즈히코히메’라는 이름을 거슬러 붙일 수는 없다. 사본이 여럿이므로 국립국회도서관본 하나를 세키엔의 유일한 원화로 단정할 수도 없다.
요시토시의 군상으로 돌아간 모습
세키엔이 한 쪽에서 이름 붙인 상은 약 80년 뒤 다시 군상 속에 들어간다. 쓰키오카 요시토시의 『백기야행』은 게이오 원년(1865) 두 장 이어진 그림으로, 달마·비파·솥·물고기 모양 기물 요괴를 짙은 색면에 겹쳐 놓는다. 화면 중앙 왼쪽에는 방울을 이고 부채를 든 스즈히코히메 계열의 모습이 배치된다[7]. 세키엔의 옅은 판본과 요시토시의 니시키에는 색·밀도·움직임이 크게 다르다.

이마이는 요시토시 그림에 스즈히코히메와 매우 닮은 모습이 있고, 쓰쿠모가미 14체가 세키엔의 요괴화집에서 차용되었다고 지적한다[4]. 이는 새 지방 전설을 얻었다는 증거가 아니라 세키엔의 윤곽이 인용 가능한 요괴 도상으로 자리 잡았다는 증거다. 이름 없는 행렬상, 세키엔의 단독 쪽, 요시토시의 색채 군상을 나란히 놓으면 스즈히코히메의 역사는 이야기보다 이미지의 계승에 기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방울과 부채가 남기는 고요한 여운
세키엔의 스즈히코히메는 격한 움직임 한가운데가 아니라 춤이 막 시작되기 전이나 끝난 직후 같은 고요한 순간에 서 있다. 내리뜬 얼굴, 앞으로 내민 부채, 머리 위에서 늘어진 방울 끈. 소리 자체는 그리지 않았지만 다음 순간 가느다란 방울 소리가 날 듯한 기운이 화면에 찬다.
곁글의 ‘꿈결’이라는 말도 이 고요함을 깊게 한다. 성격을 상상할 단서는 행동이 이어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내리뜬 얼굴, 부채를 내미는 자세, 오래된 가구라를 그리워하는 꿈의 말이다. 여기서 고요하고 우아하며 어딘가 몽환적인 인물상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신을 맞는 제구인 방울과 밤을 가는 요물의 행렬을 세키엔은 한 여성상에 포갰다. 정결함과 기이함 어느 한쪽으로만 정해지지 않고, 보는 이 앞에서 막 춤출 듯 멈춰 있는 점이 스즈히코히메의 잊기 어려운 매력이다.
세키엔의 한 쪽은 말해지지 않은 목소리와 움직임을 보는 이의 상상에 맡긴다. 그 여백 덕분에 스즈히코히메는 고요한 얼굴을 지닌 채 시대마다 다른 색·소리·이야기를 받아들여 왔다. 짧은 원전에서 풍부한 인물상이 생겨나는 까닭은 이 여운에 있다.
요괴 설정
이 구획은 이야기를 즐기기 위한 본 사이트 고유의 설정입니다. 사실이나 고증이 아닙니다.
요괴 타입 - 전통 요괴
카테고리 - 가정정령
희귀도 - 희귀
성격 - 고요하고 우아하며 어딘가 몽환적이다. 오래된 가구라를 그리워하는 듯한 잔잔한 기운을 두른다.
궁합 - 가구라·제구·기물 요괴의 이야기와 잘 어울린다. 고요한 여운과 오래된 도상에 끌리는 사람과 친화적이다.
능력·특기 - 가구라 방울과 사람 모습이 포개진 기물 변화춤부채를 펴고 방울의 여운으로 자리의 공기를 바꾼다오래된 가구라의 기억을 꿈처럼 불러낸다
약점 - 정해진 약점은 없다. 세키엔의 그림과 곁글에도 퇴치법이나 공양법은 적혀 있지 않다.
서식지 - 난간이 있는 무대 같은 공간. 특정 신사나 지역과 이어지는 출현 전승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