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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霊・神格
  • 오야마쓰미

    오야마쓰미

    신격

    oyamatsumi

    산・바다・무(武)의 총괄신・오야마쓰미

    神霊・神格Ehime

    생명의 영원성과 유한성을 관장하는 자. 오야마쓰미가 딸 이와나가히메(바위의 영원성)와 고노하나사쿠야히메(꽃의 덧없는 아름다움)를 천손에게 바친 신화는 단순한 혼인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수명과 자연의 섭리를 결정짓는 철학적인 신화입니다. 니니기노 미코토가 아름다운 동생만을 선택하고 추한 언니를 돌려보낸 것에 대해, 오야마쓰미는 "바위처럼 영원해야 했을 천손의 수명은 꽃처럼 덧없이 지게 될 것이다"라며 저주이자 예언과도 같은 선고를 내립니다. 그는 자연계의 아름다움과 가혹함, 그리고 생명의 유한성을 인간에게 가르치는, 냉철하고 근원적인 부성(父性)을 가진 신으로 그려집니다. 의인화를 거부하는 거대한 자연의 퍼스펙티브. 일본의 신들 중에서도 오야마쓰미는 특정하게 의인화된 모습(예를 들어 노인의 모습 등)으로 그려지기보다는, 거대한 산괴나 울창한 삼림, 혹은 항해의 이정표가 되는 섬 자체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한 신입니다. 그 스케일의 큼은 인간 사회의 도덕이나 윤리를 초월한 대자연의 퍼스펙티브 그 자체이며, 신불습합의 시대에 있어서도 특정한 부처와 결부되기(본지수적) 이전에 압도적인 자연 에너지의 집합체로서 신앙받아 왔습니다. 광산・대장간・양조의 수호자. 산의 신의 다면성은 더욱 넓어져, 산에서 산출되는 광석을 다루는 광산 종사자나 대장장이들로부터도 직업신으로서 두터운 신앙을 받았습니다. 또한 사카토케노 카미(술을 빚는 신)로서 양조의 신이라는 측면도 겸비하고 있습니다. 이는 산에 자생하는 열매나 용천수로 술을 빚었던 고대의 기억이나, 신전 제사에서 술이 불가결했던 것에 유래합니다. 오야마쓰미는 자연의 은혜를 인간의 문화(생업)로 변환하는 모든 경계선에 나타나는 만능의 우부스나가미(수호신)인 것입니다.

  • 오쿠니누시노카미

    오쿠니누시노카미

    전설

    오쿠니누시노카미

    이즈모 신화의 주신이자 인연의 신, 오쿠니누시노카미

    신령・신격Shimane

    이름이 많은 신과 지방 신앙의 집약. 기본 설명에서 오쿠니누시의 많은 별명을 살폈다면, 깊이 보아야 할 점은 그 많은 이름이 지닌 종교사적 의미이다. 오오나무치, 오오나무치노미코토, 오모노누시, 아시하라시코오, 야치호코, 우쓰시쿠니타마, 오쿠니타마 같은 이름들은 각지의 토지신, 농경신, 무신, 의약신, 뱀 신앙이 오쿠니누시라는 신격으로 흡수된 흔적으로 해석된다. 『고사기』와 『일본서기』가 편찬된 8세기 초의 율령 국가는 중앙 권력과 지방 신앙을 연결할 신화 구조가 필요했다. 그 결과 다카마가하라와 아마테라스의 천상 계통, 아시하라노나카쓰쿠니와 오쿠니누시의 지상 계통이 서로 대응하는 체계로 짜였다. 이즈모국조계 신도, 미와산 신앙, 이나바와 호키, 고시, 노토, 오미 등의 지방 신앙이 오쿠니누시에게 모이는 과정은 고대 일본의 종교, 정치, 지리가 통합되는 역사를 보여 준다. 이나바의 흰토끼, 자비와 의약의 기원. 이나바의 흰토끼는 오쿠니누시의 자비, 의약, 동물과의 소통을 상징하는 대표적 신화이다. 맑은 물로 상처를 씻고 부들 꽃가루를 묻히는 치료는 고대 약초 지식과 주술적 치료가 신화로 표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토끼의 예언으로 야가미히메가 힘센 형제들이 아니라 오오나무치를 선택하는 전개는, 진정한 인연이 외모나 힘이 아니라 내면의 자비에서 맺어진다는 윤리를 보여 준다. 오늘날 이즈모 대사의 인연 신앙도 이 생각을 바탕에 둔다. 인연은 우연히 생기는 것이 아니라 덕에 이끌려 맺어진다는 것이다. 네노카타스쿠니의 시련과 저승으로 내려가는 영웅. 오오나무치가 네노카타스쿠니에서 스사노오의 시련, 곧 뱀의 방, 지네와 벌의 방, 들판의 불공격을 수세리비메의 도움으로 이겨 내는 이야기는 비교신화학에서 영웅의 저승 방문, 시련 극복, 이계 여성과의 결혼이라는 넓은 유형에 들어간다. 오디세우스, 헤라클레스, 시구르드, 날라, 후예와 같은 여러 문화권의 영웅담과도 비교된다. 일본 신화의 이 변주는 아버지 신의 시험, 그 딸과의 혼인, 마지막 축복과 힘의 계승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세대 계승과 이계 사위라는 주제를 뚜렷하게 드러낸다. 스쿠나비코나와의 국토 경영, 문명의 기원 신화. 오쿠니누시와 스쿠나비코나가 함께 국토를 경영하는 이야기는 의약, 농경, 주술적 치료, 온천 같은 생활 기술의 기원 신화이다. 스쿠나비코나는 엄지손가락만큼 작은 신으로, 나방의 가죽을 입고 아시하라노나카쓰쿠니에 왔다고 전해진다. 큰 남신과 작은 남신의 짝은 여러 문화의 문명 기원 신화에서도 보이는 구조이며, 문명은 협력에서 태어난다는 상상력을 보여 준다. 스쿠나비코나가 도코요노쿠니로 떠난 뒤 오모노누시가 나타나 국토 완성을 돕는 흐름도, 세계가 한 신의 힘만이 아니라 신격의 분화와 협력으로 만들어진다는 관념을 드러낸다. 구니유즈리, 정치 통합의 종교적 표현. 나라를 넘기는 구니유즈리 신화는 고대 일본의 중앙과 지방의 정치 통합을 신화로 표현한 이야기이다. 다카마가하라의 압력, 오쿠니누시의 승낙, 이즈모 대사의 조영, 보이지 않는 세계의 주인으로 물러남이라는 전개는 이즈모의 독자적인 종교 문화가 율령 중앙 질서 안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반영한다. 다케미카즈치와 다케미나카타의 힘겨루기는 스와 신앙과 무신 신앙의 기원 신화로도 중요하며, 지방 신앙이 중앙 신화 체계에 포섭되는 모습을 겹겹이 보여 준다. 고대 이즈모 대사의 48미터 또는 96미터 거대 사전 전승은 나라를 넘긴 대가로 받은 파격적인 제사의 우대를 상징한다. 이즈모 대사와 가미아리즈키 신앙. 이즈모 대사, 곧 기즈키 대사는 이세 신궁과 함께 고대 신도의 큰 성지로 꼽히며, 오쿠니누시를 주제신으로 모신다. 음력 10월은 이즈모에서는 가미아리즈키, 다른 지역에서는 간나즈키이다. 전국의 신들이 이즈모에 모여 인연, 운명, 인간사를 의논한다는 믿음은 오늘날의 가미아리 축제로 이어진다. 이 의례적 상상력이 오쿠니누시를 인연과 운명의 신으로 지탱한다. 이즈모에는 신이 있고 다른 곳에는 신이 없다는 달 이름의 차이 자체가 고대 일본의 종교 지리를 보존하고 있다. 다이코쿠텐 습합과 칠복신 신앙. 중세 이후 오쿠니누시는 불교의 마하칼라인 다이코쿠텐과 합쳐졌다. 대국과 대흑이 모두 다이코쿠로 읽히는 소리가 두 신을 연결했고, 땅을 만들고 병을 고치며 인연을 잇는 신은 근세 다이코쿠텐의 상업과 재복의 힘까지 받아들였다. 에도 시대 칠복신 신앙이 퍼지면서 오쿠니누시는 다이코쿠사마의 모습으로 서민 생활에 들어갔고, 장사 번창과 재물, 풍요의 신이 되었다. 벤자이텐과 다른 복신들과 나란히 보면, 고대 신화와 에도 도시 신앙, 현대의 종교 관광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잘 드러난다. 21세기의 오쿠니누시, 인연과 이즈모 브랜드. 오늘날 오쿠니누시는 이즈모 대사의 주신이자 일본을 대표하는 인연의 신으로 여전히 많은 참배객을 모은다. 인연, 치유, 나라 만들기, 상업, 운명이라는 여러 속성은 현대의 결혼, 인생 선택, 사업, 점복, 여행 문화 속에서도 살아 있다. 이 모든 층위가 오늘날의 이즈모 이미지를 만든다. 게임 『오카미』, 만화 『귀멸의 칼날』 같은 현대 작품도 이즈모 신화의 기호를 반복해서 다시 빚는다. 오쿠니누시는 고대 신격이 현대에도 이야기되고, 찾아가고, 새롭게 소비되는 대표 사례이다.

  • 와쿠무스비노 카미

    와쿠무스비노 카미

    신격

    わくむすひのかみ

    불과 오줌에서 곡물을 맺는 젊은 산령(産霊) · 와쿠무스비노 카미

    神霊・神格신화상의 신 낳기

    와쿠무스비노 카미의 진면목을 보려면 표면에 나서는 음식의 신이 아니라, 음식의 신을 낳는 내면의 힘으로 읽어야 한다. 『고지키』에서는 이자나미노 카미가 히노카구츠치노 카미를 낳고 화상을 입어 병으로 누웠을 때, 오줌에서 미츠하노메노 카미와 와쿠무스비노 카미가 생성된다. 곧 오줌에서 생성되는 와쿠무스비노 카미이다. 여기서 신은 청아한 천공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다. 화상, 질병, 오줌이라는 생명의 위기와 부정에 가까운 장소에서 생겨난다. 그 때문에 와쿠무스비노 카미의 생성력은 처음부터 흙내음이 나고, 신체적이며, 농경에 가깝다. '와쿠(和久)'라는 이름은 젊음을 띠고 있다. 고쿠가쿠인은 『일본서기』의 '치(稚)' 표기를 단서로 삼아 와쿠를 젊다는 의미로 보며, '무스히(産巣日)'를 다카미무스비노 카미·카미무스비노 카미와 같은 어휘로 본다. 무스히는 사물을 발생시키고, 맺으며, 이루게 하는 힘이다. 다카미무스비노 카미·카미무스비노 카미가 우주의 시발에 가까운 무스히라면, 와쿠무스비노 카미는 이자나미노 카미의 신체가 망가져 가는 장면에 서 있는 젊은 무스히이다. 창조는 완성된 질서에서가 아니라, 상처 입은 신체의 밑바닥에서 다시 기동한다. 이 신이 오줌에서 생성된다는 것은 단순한 기괴한 출생이 아니다. 농경의 눈으로 보면 오줌과 똥은 비료가 되고, 물은 관개가 되며, 불은 화전과 토양의 갱신으로 이어진다. 고쿠가쿠인은 불·비료·물을 받아 젊은 농업 생산력이 태어난다고 보는 설, 또한 화전 농법의 반영으로 보는 설을 소개하고 있다. 곧 불·비료·물에서 태어나는 농업 생산력이다. 이 읽기에서 와쿠무스비노 카미는 부정을 피하는 신이 아니라, 부정을 작물로 변환하는 신이다. 생활의 밑바닥에 있는 순환을 신화화한 존재라 할 수 있다. 『일본서기』의 와카무스히는 그 성격을 보다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카구츠치와 하니야마히메 사이에 와카무스히가 태어나고, 머리 위에는 누에와 뽕나무가, 배꼽 속에는 오곡이 생겨난다. 곧 누에·뽕나무와 오곡을 품은 와카무스히이다. 불의 신과 흙의 신에게서 태어난다는 점도 농경적이다. 태우는 불, 받아내는 흙, 거기서 생겨나는 뽕나무·누에·오곡. 이는 우케모치노 카미나 오게츠히메노 카미 같은 살해 후 사체 화생과는 다르지만, 신체의 부위에 음식이나 양잠의 근원이 깃든다는 신화적 감각을 공유하고 있다. 와쿠무스비노 카미는 음식 기원 신화의 전 단계에 있는 생성력이다. 도요우케비메노 카미와의 관계는 와쿠무스비노 카미를 음식 신의 계보에 단단히 묶어준다. 고쿠가쿠인의 도요우케비메노 카미 항목은 그녀를 와쿠무스비노 카미의 자식 신이라 하고, '우케'는 음식 혹은 벼의 의미라고 설명한다. 도요우케비메노 카미는 훗날의 도요우케 오카미 신앙을 생각할 때도 중요한 이름이며, 미케(신에게 바치는 음식)·음식·벼의 영의 영역에 접속한다. 와쿠무스비노 카미는 그 부모 신으로서 음식 자체가 아니라, 음식을 맺게 하는 뿌리의 작용을 짊어진다. 식탁 앞에는 논이 있고, 논 앞에는 물과 비료와 불이 있으며, 그보다 더 신화적인 내면에 와쿠무스비노 카미가 있다. 이 신은 물에 관한 읽기도 끌어당긴다. 오줌에서 생성된다는 것, 같은 오줌에서 물의 신 미츠하노메노 카미가 생성된다는 것, 그리고 '와쿠(和久)'가 '솟아나다(湧く)'는 감각을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온천이나 냉천의 용출을 둘러싼 설도 있다. 곧 용수(湧水)·온천과의 관계이다. 화산 활동이 불과 물을 동시에 보여주듯, 신화에서도 불의 신 탄생 직후에 물과 생성의 신이 나타난다. 불에 탄 신체에서 물과 생산력이 나온다. 이 반전은 재앙 뒤에 생활을 지탱하는 자원이 나타난다는 오래된 감각을 잘 표현하고 있다. 와쿠무스비노 카미를 읽는 데 있어 출현의 짧음은 단점이 아니다. 오히려 짧은 기술 속에 불의 신 탄생, 이자나미노 카미의 죽음, 배설물에서 나온 신들, 도요우케비메노 카미, 오곡, 누에·뽕나무, 화전, 물, 비료가 겹쳐져 있다. 그는 이야기의 주역으로서 외치는 신이 아니라, 복수의 신화를 내면에서 묶는 신이다. 우케모치노 카미나 오게츠히메노 카미가 '음식은 신체나 죽음에서 나온다'는 것을 보여준다면, 와쿠무스비노 카미는 '그 음식을 낳는 생성력은 부정의 밑바닥에서 젊게 일어난다'고 고한다. 거기에 젊은 산령(産霊)이라는 이름의 깊이가 있다.

  • 요모쓰시코메 (황천추녀)

    요모쓰시코메 (황천추녀)

    전설

    よもつしこめ

    고사기의 명계 추격자·요모쓰시코메

    신령·신격요미 (황천, 신화) / 요모쓰히라사카 전승지 (현 시마네현 마쓰에시 히가시이즈모초 이야)

    기키 신화에서 이형신의 위치. 기본 설명에서는 고사기와 일본서기의 기술을 언급했지만, 철저 해설에서는 요모쓰시코메가 기키 신화 체계 내에서 차지하는 '이형신'의 위치를 파헤친다. 기키 신화의 신격은 (1) 타카마가하라 계열(천진신·청정 신격), (2) 아시하라노나카쓰쿠니 계열(국진신·토착 신격), (3) 황천국 계열(사령신·이형신)의 세 층으로 대별된다. 요모쓰시코메는 (3)의 계통에 속하며, 마찬가지로 황천국에 몸을 둔 이자나미, 여덟 뇌신, 황천 군대와 함께 하나의 체계를 형성한다. 기키 신화는 단순한 선악 이원론이 아니라 '삶·청정·빛'과 '죽음·부정·어둠'의 3층 구조를 가지며, 이형신은 명계의 질서의 한 축을 담당하는 필수 불가결한 존재로서 배치된다. 시코의 어원론—고대 일본어의 의미장. '시코'를 '추하다, 못생겼다'로 읽는 것은 중세 이후의 축소된 해석으로, 고대 일본어의 '시코'는 '강함, 단단함, 무서움'을 함의하는 풍부한 단어이다. 동원어인 '시코부치(단단한 암초의 늪)', '시코후네(튼튼한 배)' 등은 바위의 단단함을 나타내며, '시코메'는 단순히 '못생긴 여자'가 아니라 '단단하고 강하며 무서운 여성 귀신'으로 이해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고대 신격의 이름은 '시각적 특징'보다는 '영력·기능'으로 명명되는 경향이 강하며, 요모쓰시코메는 '죽음을 관장하는 무서운 힘을 가진 여성 귀신'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중세 이후의 에토키(그림 해설)에서 고정된 '피부가 썩어 문드러지고 송곳니를 드러낸 추한 귀신 할멈'의 이미지는 고대 신화의 본래 모습과는 다른 후대의 재조형이다. 복숭아 마귀 퇴치 신앙의 동아시아 비교. 이자나기가 요모쓰시코메를 격퇴할 때 복숭아를 사용한 삽화는 동아시아 마귀 퇴치 문화의 대표적 사례로서 비교 종교학의 소재가 된다. 중국 도교에서는 도목검, 도부, 도인, 복숭아 공물 등 복숭아를 이용한 사귀 퇴치가 체계화되어 조선, 베트남, 몽골 등 동아시아 권역에 널리 전개되었다. 일본의 궁중 의례(추나, 단오절, 복숭아 축제)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복숭아의 주력은 고사기의 이자나기 신화와 중국 도교의 복숭아 신앙이 복층적으로 얽혀 형성된 것이다. 고대 일본이 중국 대륙과 한반도의 종교 문화를 수용하면서 독자적인 체계를 구축해 나가는 과정의 전형적인 사례이다. 추적담이라는 설화 유형. 망자의 나라에서 탈출하는 영웅이 추격자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마귀 퇴치 기물을 던져 변화시킨다—는 추적담은 세계 신화학적으로 '도주 주물형(Magic Flight)'이라 불리는 광역 분포의 설화 유형이다. 그리스 신화의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동유럽 민담의 바바 야가 이야기, 북미 원주민의 창세 신화 등에도 동형의 설화가 있어, 고대 인류의 명계관 및 탈출 설화의 보편적 구조를 보여준다. 일본의 이자나기와 요모쓰시코메 설화는 이 세계적 설화 유형의 동아시아 최고(最古)의 문헌 기록 중 하나로서 비교 신화학적 가치가 극히 높다. 요모쓰히라사카의 지리학—이즈모 신앙권과의 관계. 요모쓰히라사카의 현대 비정지인 시마네현 마쓰에시 히가시이즈모초 이야는 이즈모 구니노미야쓰코의 본거지, 구마노 타이샤, 가미아리즈키 전승 등과 나란히 고대 이즈모 신앙권의 핵심 지역에 위치한다. 이즈모는 고사기와 일본서기에서 타카마가하라, 아시하라노나카쓰쿠니, 황천국의 3층 신화의 교차점으로 그려지며, '황천의 입구'가 이즈모에 놓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즈모가 고대 일본에서 '죽음, 이계, 네노카타스쿠니' 신앙의 중심지였음을 반영하며, 오쿠니누시, 스사노오, 이자나기, 이자나미의 신화군이 이 지역에서 교차하는 고대 신앙 지리를 해독하는 열쇠가 된다. 중세 이후의 축소와 현대의 재조목. 중세의 설교, 에토키, 노가쿠, 조루리에서 요모쓰시코메는 '피부가 썩어 문드러지고 송곳니를 드러낸 추한 귀신 할멈'의 이미지로 고정되었고, 고대 신화 본래의 '강한 여성 귀신'이라는 의미장은 상실되었다. 그러나 2010년대 이후 일본 신화가 다시 주목받는 흐름 속에서 고대 어학, 신화학, 고고학의 지식을 바탕으로 한 재평가가 진행되고 있다. 게임 『여신전생』 시리즈, 만화 『종말의 발키리』,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 등 현대 서브컬처는 고대 신화의 소재를 현대적으로 재조형하여, 결과적으로 젊은 세대에게 요모쓰시코메, 황천 군대, 황천국의 신화적 세계를 다시 친숙하게 만드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문화사적 순환의 상징적 사례이다. '일본 최고(最古)의 요괴'라는 자리매김. 요모쓰시코메는 서기 712년의 『고사기』라는 일본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서적에 등장하는 여성 귀신으로, 단순히 '헤이안 시대 이후의 요괴'와는 다른 '일본 신화 원전에 기록된 이형신'이라는 독자적인 격을 지닌다. 오니, 텐구, 갓파 등 중세 이후에 성립된 요괴 체계의 전 단계, 고대의 신(카미)과 요괴의 경계가 미분화되었던 시대의 존재로서 요괴학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는 중요 소재이다. '신인가 요괴인가'라는 이항 대립을 해체하고, 고대 일본 이형 신격의 풍부한 다층성을 고찰하는 매우 훌륭한 출발점이 된다.

  • 욧카부이 (Yokkabu-i)

    욧카부이 (Yokkabu-i)

    일반

    Yokkabu-i

    물가의 훈계를 설파하는 신

    신・정령Kagoshima

    욧카부이 행사는 가랏파(갓파) 전설이 짙게 남아 있는 사쓰마 반도에서 수신 신앙과 어린이 교육이 멋지게 융합된 희귀한 민속 사례이다. 종려나무 껍질로 만든 기괴한 가면과 '요기'라는 일상적인 도구를 사용하여 비일상적인 '신'을 출현시키는 수법은 일본의 가면신·내방신 신앙의 옛 지층을 전해주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로 인해 이러한 전통 행사의 존속이 위태로운 가운데서도, 지역의 유대를 깊게 하고 자연의 무서움과 은혜를 다음 세대에 전하는 중요한 문화적 장치로서 기능해 왔다.

  • 용신

    용신

    신격

    ryūjin

    폭풍을 잠재우는 물의 신 용신

    물과 용의 신KanagawaKyoto

    폭풍을 잠재우는 물의 신으로서 용신은 바다와 하늘의 경계에서 날씨를 쥔 존재다. 어부와 뱃사람은 물론 벼농사를 짓는 마을 사람들도 절박한 순간마다 용신에게 빌었다. 그 힘에는 두 얼굴이 있다. 때맞춰 내린 비는 논을 살리지만 큰 파도와 거센 바람은 배를 부순다. 사람들은 용신의 힘을 얻는 데 그치지 않고, 사나운 물을 달래 생명을 기르는 면을 불러내고자 여러 의식을 발전시켰다. 해신의 가장 위대한 보물은 밀물과 썰물을 부리는 시오미쓰타마와 시오히루타마다. 야마사치히코는 해신에게 두 구슬을 받아 하나로 형을 물에 빠뜨리고 다른 하나로 물을 물려 목숨을 구한 뒤 복종시켰다. 바닷물을 뜻대로 움직이는 힘은 용신 권능의 핵심을 보여 준다. 해안 신사에서는 풍랑이 잦아들고 물고기가 많이 잡히기를 빌었고, 내륙에서는 비를 청하거나 깊은 못에 제물을 가라앉혔다. 아시노호와 각지의 연못에는 사나운 용을 고승이 제압해 수호신으로 바꾸었다는 이야기가 남아 있다. 용신을 향한 두려움과 공경이 한 뿌리에서 나왔음을 보여 주는 전승이다. 용신이 용궁의 주인이라는 면모도 물신으로서의 성격과 이어진다. 바다 저편이나 물밑의 용궁은 풍요로운 보물이 쌓이고 인간 세계와 다른 속도로 시간이 흐르는 이계다. 그곳을 다녀온 사람은 보물을 얻기도 하지만, 우라시마 타로가 보물 상자를 연 뒤 그랬듯 되찾을 수 없는 세월을 한꺼번에 떠안을 수도 있다. 용신은 단순한 괴물이 아니라 삶과 죽음을 함께 좌우하는 물 자체가 신격화된 존재다. 폭풍을 잠재운다는 것은 사람과 자연 사이에 가까스로 맺은 약속을 다시 지키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 우두천왕 (고즈텐노)

    우두천왕 (고즈텐노)

    신격

    ごずてんのう

    기온·역병 퇴치의 최대 신격·우두천왕

    신령·신격KyotoAichi

    우두천왕(별명 무당신=무토노카미)은 일본 독자적인 존격으로, 인도·중국·조선 등 해외에서는 그 존재가 확인되지 않는다. 기원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병립하며 학술적으로 확정되지 않았다: ① 불교 전래 유래설로, 기원정사(고대 인도·기수급고독원 정사, 석가모니가 설법한 정사)의 수호신이라는 설. '우두'는 인도 마가다국의 '우두산(고시르샤)'에서 유래했다는 설로, 이곳이 전단향목의 산지이며 여기에 '우두천왕'이라는 수호신이 모셔져 있었다는 것이다. ② 한반도의 '우두산(수두산)' 유래설로, 고대 조선의 도래인(고려 사신)을 거쳐 일본에 전해졌다는 설(조선의 건국 신화에서 단군이 강림한 우두산과의 관련). ③ 고대 일본의 도래신·농경신(소는 농경의 상징)을 불교·도교풍으로 재해석한 습합 신격이라는 설이다. 모두 결정적 증거는 없으나, 도래계의 영향과 중세 이후의 스사노오노미코토와의 습합이 주류 설이다. 신앙의 핵심이 되는 이야기는 『빙고국 풍토기』(8세기 초 성립·현재는 『석일본기』에 인용된 일문만 잔존)의 소민장래 설화이다. 무당신(=우두천왕, 무당은 고대 인도 대자재천=마헤슈바라 유래설이 있음)이 남해에 사는 용왕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러 가는 도중, 빙고국(현 히로시마현 동부)의 소민장래·거단장래 형제의 집에 숙박을 청했다. 형 거단장래는 부유했으나 방을 내주지 않았고, 동생 소민장래는 가난하지만 조밥으로 환대했다. 수년 후, 무당신은 여덟 명의 자식을 데리고 재방문하여 소민장래에게 '띠로 엮은 고리(치노와)를 허리에 차고 "나는 소민장래의 자손이다"라고 외치면 역병을 면할 것이다'라고 고하고 떠났다. 다음 날, 거단장래 일족은 모두 역병으로 전멸했고, 소민장래 일족은 치노와 덕분에 살아남았다. 이것이 '소민장래 자손의 문부'(집 입구에 붙이는 호부)와 '치노와쿠구리'(나고시노 오오하라이·6월 그믐의 제사)의 기원이 되어, 현재까지도 전국의 기온사·천왕사·이세 신궁에서 행해지고 있다. 교토·야사카 신사(구 기온사·감신원기온사·기온감신원)는 우두천왕 신앙의 중추이다. 사전(社伝)에는 여러 설이 있어, ① 사이메이 천황 2년(656년)에 고려 사신 이리시가 우두산의 스사노오를 권청했다는 설(가장 유력), ② 조간 18년(876년)에 엔뇨·남도(나라)의 승려가 우두천왕을 권청했다는 설, ③ 조간 11년(869년) 역병 대유행 시 조정이 기온에서 기도를 시작했다는 설(기온고료에의 기원) 등이 병립한다. 헤이안 시대에는 조정의 22사(중7사)에 포함되어 기온사·감신원으로서 조정·귀족·교토 시민의 가장 중요한 신앙 거점이 되었다. 기온 마쓰리는 우두천왕(=스사노오)의 역병 퇴치 제사로서 869년에 개창된 일본 3대 축제(아오모리 네부타, 아와 오도리와 나란히 함) 중 하나이다. 869년(조간 11년) 교토 및 전국에 역병이 대유행했을 때(조간의 대역), 조정이 기온사에 기도를 명하여 당시의 구니(国) 수 66개국에 해당하는 66개의 창(鉾)을 만들어 역신을 모아 불제하고, 신센엔(현 교토시 나카교구)으로 보내 퇴치한 것이 기원이다(이를 '기온고료에'라 부름). 중세·근세를 거쳐 발전하여, 무로마치 시대에는 야마호코 순행·병풍 장식·요이야마가 정착되었고, 현재의 1개월(7월)에 걸친 교토의 여름 풍물시가 되었다. 2009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야마·호코·야타이 행사의 하나로서)되어 교토 관광 자원의 정점을 이룬다. 다른 주요 우두천왕 신앙 거점으로는 히로미네 신사(현 효고현 히메지시 히로미네산, 733년 쇼무 천황 칙명 창건·키비노 마키비 관여설 있음)가 '우두천왕의 총본궁'을 자처하며, 교토 기온사는 히로미네로부터 권청되었다는 설(=히로미네 본궁설)을 전한다. 다만 교토 기온·히로미네·쓰시마·야사카 각 신사가 본말 관계를 둘러싸고 중세~에도 시대에 길게 논쟁했기 때문에, 학술적으로 '총본궁'은 미확정이다. 쓰시마 신사(아이치현 쓰시마시)는 도카이 지방 우두천왕 신앙의 중추로, 텐노 마쓰리(오와리 쓰시마 텐노 마쓰리, 8월)는 일본 3대 강 축제 중 하나이다. 전국에 '천왕', '야쿠모', '기온', '스사노오', '히카와'를 관으로 하는 신사가 무수히 존재하며, 우두천왕 신앙의 확산을 보여준다. 메이지 유신(1868년 신불분리령·1872년 수험도 폐지령)에 의해 우두천왕은 불교계 칭호로서 금지되었고, 전국의 우두천왕사·천왕사·기온사·감신원은 스사노오노미코토를 주 제신으로 하는 신사로 강제 개칭되었다. 교토 기온감신원은 '야사카 신사'로, 각지의 천왕사·기온사도 '야사카 신사', '스사노오 신사', '히카와 신사', '기온 신사' 등으로 개칭되었다. 그러나 서민들 사이에서는 '텐노상', '기온상'이라는 통칭이 보존되어 치노와쿠구리, 소민장래 부적, 기온 마쓰리 등의 민속 습속은 연속되고 있다. 현대의 전염병·코로나 사태(2020-)에서는 기온 마쓰리·치노와쿠구리가 다시 주목받으며, 역병 퇴치 신격으로서 우두천왕의 기억이 환기되었다. 민속·종교사적으로 '신불분리의 최대 희생자'로 자리매김되는 신격이다.

  • 우미사치히코

    우미사치히코

    신격

    うみさちひこ

    바다의 행운을 관장하는 형・하야토의 조상・우미사치히코

    신령・신격Miyazaki

    우미사치히코의 정체는 『고사기』 및 『일본서기』의 주역인 호데리노미코토이다. 니니기노미코토와 코노하나사쿠야히메의 세 아들 중 장남으로, 불 속에서 태어났다. 바다의 행운, 산의 행운 신화에서 동생이 낚싯바늘을 잃어버리자 형은 엄격하게 원래의 바늘만을 요구했다. 동생은 해신의 도움으로 돌아와 형을 굴복시켰다. 남규슈 하야토족의 조상신으로서 동생 야마사치히코가 황통의 조상이 된 것과 대비된다. 물에 빠졌을 때의 아시우라 동작은 하야토마이의 기원이 되었다. 우시오다케 신사는 그를 모시는 유일한 주신 신사로, 산중에 위치해 패자로서 쫓겨난 전승을 반영한다.

  • 우바가미

    우바가미

    신격

    うばがみ

    다테야마의 여성을 구원하는 노여신・우바가미

    신령・신격Toyama

    우바가미는 단순한 요괴가 아니라, 지옥과 정토가 공존하는 다테야마라는 영산의 구조 자체를 체현하는 신격이다. 다테야마 만다라에서 우바가미는 사이노카와라, 삼도천, 피연못 지옥 등 명계의 도상들 곁에 그려져 있으며, 망자를 심판하는 탈의파로서의 얼굴과 여성을 정토로 이끄는 구원자로서의 얼굴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특히 중세 이후 여성은 출산 시 흘리는 피의 부정함 때문에 반드시 피연못 지옥에 떨어진다는 《혈분경(血盆經)》 신앙이 널리 퍼져 있었는데, 그 끔찍한 공포 속에서 우바가미는 여성 신자들에게 유일한 구원자 역할을 했다. 아시쿠라지의 우바도에 66구의 불상이 늘어서 있는 것은 과거 일본 전국을 66개 국으로 나누고 각 국가에 하나씩 법화경을 봉납했던 66부 회국 신앙(六十六部廻国信仰)과 통한다고도 일컬어진다. 누노바시 간조에에서 여성이 눈을 가리고 다리를 건너며 어둠 속에서 기도하는 과정은, 이승의 자신을 한 번 죽게 한 뒤 우바가미 앞에서 새롭게 생명을 부여받는 의례적인 죽음과 재생 그 자체이다. 우바가미를 염라대왕의 아내로 여기는 전승은 남편이 망자를 심판하는 지옥의 왕인 반면, 아내인 우바가미는 여성을 구원하는 자비로운 어머니가 되어 상호 보완적인 대립 구도를 이룬다. 이러한 설정은 다테야마의 명계관에 음양의 조화를 부여하고 있다.

  • 우케모치노 카미

    우케모치노 카미

    신격

    うけもちのかみ

    죽음에서 오곡을 낳는 음식 기원신 우케모치노 카미

    神霊・神格아시하라노 나카쓰쿠니 (신화상의 지상 세계)

    우케모치노 카미의 핵심은 음식이 깨끗한 완성품으로서가 아니라, 신체에서 나오는 것으로 이야기된다는 점에 있다. 쓰쿠요미노 미코토를 맞이한 우케모치노 카미는 창고에서 쌀을 꺼내는 것이 아니다. 육지를 향하면 밥이, 바다를 향하면 물고기가, 산을 향하면 짐승이 입에서 나온다. 이것이 입에서 생겨나는 음식이다. 그것은 예의 없는 행동이 아니라, 신의 신체가 그대로 산·바다·육지의 음식 창고가 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자연계의 음식은 인간의 부엌이나 신찬의 형식으로 정돈되기 전, 신의 신체 안쪽에 혼연하게 존재한다. 우케모치노 카미는 그 혼연한 풍요를 손님에게 내민다. 그러나 쓰쿠요미노 미코토는 거기서 풍요를 보지 않고 더러움을 본다. 식(食)은 사람을 살리는 가장 친밀한 것이지만, 입에서 나오는 순간 타액이나 구토의 이미지를 띠게 된다. 신화는 이 이중성을 숨기지 않는다. 쓰쿠요미노 미코토의 분노는 불합리하면서도, 음식이 신체와 불가분이라는 사실에 대한 두려움을 비추고 있다. 우케모치노 카미는 음식의 은혜를 청정한 공물로서만 보고 싶어 하는 의식에 대해, 먹는다는 것은 본래 다른 생명이나 신체의 내부에 닿는 것임을 들이댄다. 그렇기에 이 신의 향응은 축복인 동시에 견디기 힘든 가까움이기도 하다. 살해를 통해 이야기는 반전된다. 쓰쿠요미노 미코토가 우케모치노 카미를 베자, 음식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고정된 자원으로서 나타난다. 정수리에서 소와 말, 두개골에서 조, 눈썹에서 누에, 눈에서 피, 배에서 벼, 음부에서 보리·콩·팥이 생겨난다. 이것이 시체에서 생겨나는 음식군이다. 신체의 각 부위가 가축, 곡물, 양잠으로 할당되는 이 나열은 그저 기괴한 변신이 아니다. 음식은 신의 생명을 분해하여 얻는 것이라는, 농경 사회 근저에 있는 감각을 신화의 형태로 만든 것이다. 씨앗은 청정한 추상물이 아니라 죽음의 편에서 온다.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의 역할은 우케모치노 카미의 죽음을 그저 한탄하는 것이 아니다. 아메노쿠마히토가 가져온 것을 보고, 아마테라스 오미카미는 그것을 사람들이 먹고 살아갈 것이라며 받아들여, 조·피·보리·콩을 밭의 씨앗으로, 벼를 논의 씨앗으로 나눈다. 이것이 밭과 논의 씨앗이다. 나아가 고치를 입에 머금고 실을 뽑아 양잠의 길을 시작한다. 여기서 폭력의 결과는 태양신의 손에 의해 생활 기술로 다시 짜인다. 우케모치노 카미의 신체는 단순한 시체가 아니라, 논밭, 가축, 뽕나무 누에, 계절의 노동으로 옮겨지는 원재료가 된다. 아마테라스 오미카미는 죽음에서 나온 것을 질서로 바꾸는 신이다. 이 신화가 무거운 것은 음식 기원과 일월 분리가 같은 장면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우케모치노 카미의 살해 소식을 들은 아마테라스 오미카미는 쓰쿠요미노 미코토를 악한 신으로 거부하며, 이후로 만나지 않겠다고 한다. 『일본서기』는 그것을 해와 달이 하루 낮밤을 격하여 살게 된 유래로 이야기한다. 이것이 낮밤이 나뉘는 이유이다. 즉 인간이 먹는 세계의 성립은, 태양과 달이 같은 장소에 있을 수 없게 되는 사건이기도 하다. 먹거리의 기원에는 시간의 기원이 겹쳐 있다. 아침에 밭을 보고 밤에 달을 보는 일상은, 우케모치노 카미의 죽음을 통과하여 질서화된 세계인 것이다. 『고지키』의 오게쓰히메노 카미와 비교하면 이 차이는 더욱 뚜렷해진다. 고쿠가쿠인 대학의 쓰쿠요미노 미코토 항목은 음식신이 살해되는 신화가 『고지키』에서도 보이지만, 거기서는 스사노오노 미코토가 오게쓰히메노 카미를 죽인다고 정리하고 있다. 이것이 스사노오노 미코토와 오게쓰히메노 카미의 형태이다. 스사노오노 미코토의 경우, 이야기의 무게중심은 난폭한 신의 폭력과 곡물 기원에 있다. 우케모치노 카미의 경우, 살해자가 쓰쿠요미노 미코토이기 때문에 달의 신의 침묵, 태양신과의 단절, 낮밤의 분리가 일체화된다. 비슷한 형태이면서도 신화의 울림은 크게 다르다. 우케모치노 카미는 음식 신화를 우주의 시간표에까지 밀어 넓히는 존재이다. 그렇기에 우케모치노 카미를 단순한 '음식을 내놓는 편리한 신'으로 취급하면, 가장 중요한 어두움이 사라진다. 우케모치노 카미는 음식이 언제나 죽음과 이웃해 있다는 것, 청결한 식상 앞에 신체의 찢김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찢김을 인간의 생활로 바꾸는 질서가 필요함을 이야기하는 신이다. 쌀, 조, 보리, 콩, 물고기, 짐승, 명주실이 늘어설 때, 거기에는 생명을 받는다는 말만으로는 다 희석할 수 없는 신화적인 폭력과 감사가 겹쳐 있다. 우케모치노 카미는 그 겹침을 한 몸으로 받아낸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신의 죽음에서 태어난 음식은 그저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낮과 밤 사이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세계 자체를 지탱하는 양식이 된다.

  • 원숭이신

    원숭이신

    에픽

    Sarugami

    중세 설화에 보이는 원숭이 신상

    신령신격ShigaOkayama

    중세의 원숭이 신은 산의 신격과 사루의 괴이담이 혼합된 존재로 전해진다. 산역을 지배하며 희생을 요구하는 일종의 연중 의례적 요구는 고층의 신혼 의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이는 한편, 이야기화 과정에서 폭虐한 요괴상이 강조되었다. 퇴치담에서는 지나가던 사냥꾼이나 법력이 있는 승려가 대리가 되고, 길들여진 개가 결정적 역할을 하는 서사가 반복된다. 패배한 원숭이 신이 신직자에게 빙의해 용서를 구하는 전환은 신령성의 잔흔을 드러낸다. 지역에 따라서는 빙의물로 전해져 발작적인 난동을 원숭이 신의 저주로 보았다. 근세 괴담에서는 인육을 먹는 흉성과 엉덩이를 어루만지는 익살스러움이 병치되어, 원숭이에 대한 경멸과 두려움의 양의성이 그려진다.

  • 유도노산 다이곤겐 (탕전산 대권현)

    유도노산 다이곤겐 (탕전산 대권현)

    신격

    ゆどのさんだいごんげん

    말해서는 안 되는 유도노산 영암의 신

    신령・신격 (신불습합의 신)Yamagata

    유도노산 다이곤겐은 형태를 가진 신상이 아니라, 끓는 물을 내뿜는 다갈색의 거대한 영암 자체를 신체(神体)로 삼는다는 점에서, 일본 산악 신앙의 가장 오래된 자연 숭배의 모습을 오늘날까지 전해주고 있다. 데와산잔은 하구로산이 현세의 행복을, 갓산이 사후 세계를, 유도노산이 다시 태어나는 미래를 상징하는 삼산일체의 수행장으로 여겨졌으며, 그 오쿠노인인 유도노산은 삼산 순례의 종착점에 놓였다. 신체에는 신전 건물도 지붕도 없으며, 참배객은 신발을 벗고 흙과 돌이 섞인 참배길을 맨발로 밟고 영암에 오른다. 산속에서 보고 들은 것을 입 밖으로 내서는 안 된다는 엄격한 금기——'말하지 말라, 묻지 말라'——가 오늘날까지 지켜지고 있으며, 사진 촬영도 굳게 금지되어 있다. 메이지 시대의 폐불훼석으로 권현이라는 칭호를 잃고 오야마쓰미노미코토 등을 모시는 신사가 되었지만, 말 없는 영암을 향해 두 손을 모으는 신앙 그 자체는 끊어지지 않았다. 재생과 즉신성불을 주관하는 데와 지역의 침묵의 신격이다.

  • 이나리신 (稲荷神)

    이나리신 (稲荷神)

    전설

    いなりのかみ

    오곡풍양과 사업번창의 신앙왕·이나리신

    신령·신격Kyoto

    이나리신의 주축 제신인 우카노미타마노카미(별칭: 우카노미타마노미코토)는 『고지키』 상권(712)에 등장하는 곡물과 음식의 여신격이다. 신명 ‘우카’(고대어 ‘식’)와 ‘미타마(영혼)’의 합성어로, ‘곡물에 깃든 영력의 의인화’라는 소박한 민속 기원을 간직하고 있다. 신앙의 본궁인 후시미 이나리 대사(야마시로국 기이군 이나리야마, 현 교토시 후시미구)는 711년(와도 4년) 2월 첫 오일에 하타 씨(도래계 씨족으로 교토 분지와 후시미 일대의 개척자)의 수장 하타노 이로구가 “떡으로 과녁을 만들어 쏘았더니 백조로 변해 날아가, 떨어진 산 정상에 벼가 자라났다”라는 기서(奇瑞)에 의해 이나리야마에 세 기둥의 신을 권청한 것을 기원으로 한다(『야마시로국 풍토기』 일문). 세 기둥이란 우카노미타마노오카미(주신)·사타히코노오카미·오미야노메노오카미이며, 훗날 다나카노오카미·시노오카미를 더한 다섯 기둥을 이나리 대신으로 총칭하게 된다. 헤이안 시대 이후 신앙이 급속히 확대되는 데에는 진언밀교의 본산인 도지(東寺)와의 결연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구카이가 도지 축조 당시 이나리신에게 협력을 구했다는 전설을 기점으로 진언밀교와 이나리 신앙은 깊게 결합했고, 인도 밀교의 여성 귀신 다키니텐(Ḍākinī)과 습합되는 전개를 보였다. 다키니텐은 본래 ‘인육을 먹는 야차녀’였으나 티베트와 중국을 거쳐 일본에 전래되는 과정에서 온화해져 ‘흰 여우를 탄 천녀’로 도상화되었고 이나리신과 동일시되기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불교계 이나리(도요카와 이나리·묘곤지=1441년 창건·아이치현, 사이조 이나리·묘쿄지=1300년대·오카야마현 등)라는 독자 계통이 성립되어 신도계 이나리(후시미 계열)와 병존하게 되었다. 에도 시대에는 무사·정인·농민을 불문하고 ‘터주신(야시키가미)’으로서 집집마다 소사당을 지어 권청하는 붐이 들끓었고, 에도 시내에서 보기 쉬운 것을 늘어놓은 센류 “이세야, 이나리, 개똥”이 성립될 정도로 보급되었다. 현대의 이나리 신사는 약 3만 2천 곳(주신 2,900곳 + 분사 + 터주 사당)으로 추산되어 신사 수에서 일본 최대의 신앙 계통을 이룬다. 여우와의 관계는 주의가 필요하다. 후시미 이나리 대사의 공식 설명에서는 “여우는 이나리신의 사자(신사·권속)일 뿐 신 자체가 아니다”라고 명시하고 있으나, 민속적으로는 여우 자체를 이나리신으로 보는 지역이 많아 에도 시대 이후의 ‘여우신 신앙’(오이나리상=여우신)은 지금도 민간 신앙의 주류를 이룬다. 신의 사자인 여우는 ‘흰 여우(뱟코·시로기쓰네)’라 불리며, 구슬·열쇠·벼이삭·두루마리 등 네 가지 중 하나를 입에 문 도상이 정형이다. 구슬은 신덕, 열쇠는 영창(靈仓)의 열쇠, 벼이삭은 곡물, 두루마리는 경전을 의미한다. 주요 기원 내용은 오곡풍양·사업번창·가내안전·화재예방·역병퇴산이며, 특히 에도 시대 이후 상가의 터주신화 과정에서 사업번창과 재물운이 주축이 되었다. 현대에는 회사·점포 내 제단(상업 빌딩 옥상 소형 사당) 및 길가 사당까지 보급되어 신사·사찰·저택·기업의 4층 구조로 일본 사회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연중행사로는 2월 첫 오일의 하쓰우마 마쓰리(이나리 대신 강림일)가 전국 이나리 신사에서 성대하게 치러진다.

  • 이와나가히메

    이와나가히메

    신격

    いわながひめ

    영원·견고·인연 맺기의 여신·이와나가히메

    신령·신격Shizuoka

    이와나가히메의 정체는 『고사기』 상권 말 및 『일본서기』 신대 하 제9단에 등장하는 오야마쓰미의 딸이다. 『고사기』의 표기는 '이시나가히메'이며, 『일본서기』와 『선대구사본기』에서는 '이와나가히메'로 기록되어 있고, 코케무스히메 또는 고노하나치루히메와 동일신이라는 설도 있다. 신명의 어의에 대해 고쿠가쿠인 대학 고전문학사업의 해석에서는 "바위(이와)처럼 영원하고 견고하며 오래도록 변치 않는 여성" ── 즉 불사·장수·견고함·반석을 상징하는 여신임이 분명하다. 여동생인 고노하나사쿠야히메와 함께 오야마쓰미의 두 딸로 자리매김하여, "바위 vs 꽃", "영원 vs 덧없음", "견고함 vs 아름다움", "불사 vs 단명", "거절당한 언니 vs 선택받은 여동생"이라는 대비 구조의 핵심을 이룬다. 이야기의 핵심은 『고사기』 상권 말과 『일본서기』 신대 하 제9단의 천손강림 설화에 있다. 니니기노미코토(천손)가 휴가국 다카치호에 강림한 후, 가사사곶에서 아름다운 고노하나사쿠야히메를 만나 아버지 오야마쓰미에게 구혼했다. 오야마쓰미는 크게 기뻐하며 언니 이와나가히메와 동생 사쿠야히메를 많은 예물과 함께 바쳤다. 그러나 니니기노미코토는 이와나가히메의 용모가 추하다며 돌려보내고 사쿠야히메만을 아내로 맞이했다. 이를 한탄한 오야마쓰미가 남긴 말이 이야기의 절정이다 ── 『고사기』판: "이시나가히메를 함께 곁에 두었다면 천손의 수명은 바위처럼 영원부동했을 것이나, 사쿠야히메만 남겨두었기에 수명은 나무의 꽃처럼 짧아질 것이다"(오야마쓰미의 서약 불성립으로 인한 수명 단축), 『일본서기』판: "거절당한 이시나가히메의 저주로 인한 단명화"(보다 직접적인 인과). 양서의 서술은 약간 다르지만, 모두 천황가와 인류의 수명이 짧아진 기원 신화(죽음의 기원 설화)로 기능하며, 불교 전래 이전 일본 고유의 생사관의 근간을 이룬다. 비교신화학자 오바야시 타로는 이 이와나가히메와 고노하나사쿠야히메의 대비 설화를 '바나나형 신화'(돌과 바나나의 선택 설화)의 일본판 변형으로 분류했다.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섬의 죽음의 기원 신화(신이 인류에게 돌과 익은 바나나를 선택하게 했는데, 인류가 '맛있는' 바나나를 선택했기 때문에 돌과 같은 영원성을 잃고 바나나처럼 한 세대만에 시드는 짧은 수명을 얻었다는 이야기)와 같은 계통으로, 구약성서 창세기(에덴 추방)나 그리스 신화(판도라의 상자)에 해당하는 보편적 죽음의 기원 신화의 일본판이다. 주요 제사 신사로는 구모미 센겐 신사(시즈오카현 가모군 마쓰자키초 구모미)가 전국 약 2,000개의 센겐 신사 중 유일하게 이와나가히메만 모시는 희귀한 신사로서 신도사 및 민속학 연구에서 주목받는다. 에보시산(해발 162m) 정상에 진좌하며, "에보시산이 맑으면 후지산이 흐리다"는 옛 전승(18세기 말 모토오리 노리나가의 『고사기전』에 기록)이 있어, 여동생 사쿠야히메의 후지산과 대조되는 언니의 진좌지로 옛부터 비정되었다. 명력 3년(1657)에 재건되었으며 창건일은 미상이다. 호소이시 신사(후쿠오카현 이토시마시 미쿠모)는 이토국의 중심지에 위치하며 자매 양쪽을 주 제신으로 모시는 고사(1695년 『호소이시 신사 연기기』에 기록)이다. 자매 한 쌍을 제사지내는 귀중한 사례로, 이토국(지쿠젠국 이토군)이 고대 일본의 대륙을 향한 관문이었던 점에서 도래 문화와 이와나가히메 신앙의 연결성을 시사한다. 시로미 신사(미야자키현 사이토시 시로미, 구 니시메라촌 권역)는 이와나가히메·오야마쓰미·가네나가 친왕(남북조 시대 정서장군궁)의 세 신을 모시는 신사로 1489년에 창건되었으며, 원궁은 1675년에 세워졌다. 신체는 '은거울(은경)'이며 ── 이와나가히메가 자신의 추한 용모를 한탄하며 던진 거울이 류보산의 큰 나무에 걸려, '시로미(白見) 마을'에서 '은경(銀鏡·시로미) 마을'로 지명이 바뀌었다는 지명 기원 설화가 전해진다. 거울=바위의 상징적 등가물로서, 이와나가히메의 암석 신앙과 거울 신앙이 습합된 특이한 제사이다. 매년 12월 12~16일에 봉납되는 시로미 카구라 33번은 국가지정 중요무형민속문화재로, 이와나가히메 신앙의 현대적 계승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거점으로서 규슈 민속 예능의 정점을 이룬다. 교토 기후네 신사 유이노야시로(중궁, 교토시 사쿄구)는 인연 맺기의 신사로 헤이안 시대 이전부터 깊이 신앙받아 왔다. 이와나가히메가 거절당한 수치심에 기후네에 숨어, "사람들에게 좋은 인연을 내려주리라"고 다짐하며 진좌했다는 역설적인 전승에서 비롯되어, '인연을 끊지 않고 영속시키는 신'으로 신앙받았다. 헤이안 시대의 가인 이즈미 시키부(978?~1041?)가 남편 후지와라노 야스마사와의 불화를 기후네 유이노야시로에 기원하며 반딧불이 노래(『고슈이와카슈』 제20권)를 바쳐 부부 관계를 회복했다는 고사가 인연 맺기 신격의 문학적 근거가 되었다. 바위 = 영원부동의 상징이 '영속하는 인연'과 결부되는 역설적인 신앙 구조가 헤이안 시대부터 현대까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민속 신앙에서는 이즈 지방의 오무로산(해발 580m)이 이와나가히메의 화신으로 여겨져, "오무로산에 올라가 여동생인 후지산을 칭찬하면 다치거나 물고기가 잡히지 않는다는 저주"가 동정적인 속신으로 전해진다 ── "추하다고 거절당한 언니를 배려하는" 민간 신앙의 전형적인 예이다. 또한 쓰쿠바산 겟스이세키 신사(이바라키현 쓰쿠바시)에는 이와나가히메가 죽었다고 전해지는 이와쿠라가 모셔져 있어, 고대 일본의 암석 신앙권(이와쿠라·이와사카)과 이와나가히메 신격의 습합을 보여준다. 오야마쓰미 신사의 경내 신사인 아나바 신사(에히메현 이마바리시 오미시마)에는 아버지 오야마쓰미와 함께 이와나가히메가 모셔져 있어 부녀 제사의 원점을 보존하고 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후지산 세계유산 등록(2013) 이후 구모미 센겐 신사와 에보시산이 관광 자원화되었으며, 또한 "미의 기준으로 거절당한 언니"로서 현대 여성 독자들의 공감 대상이 되어 페미니즘적 재평가가 진행되고 있다. 애니메이션·게임·소설 등에서 '불사·견고함', '추함 이면의 다정함', '인연 맺기'를 모티프로 빈번하게 재등장하며, 고대 신화의 현대적 재해석이 발전하고 있다.

  • 이자나기

    이자나기

    전설

    이자나기

    창세, 국생, 미소기의 조신 이자나기노미코토

    신령・신격Hyogo

    신세 칠대의 구조와 창세 신화의 우주론. 기본 설명에서는 국생과 신생을 보았다. 더 깊이 보면, 이자나기와 이자나미가 속한 신세 칠대 자체가 하나의 창세 질서이다. 『고사기』는 천지가 열린 뒤 조화 삼신과 별천신이 나타나고, 이어 구니노토코타치에서 시작하는 신세 칠대가 펼쳐진다고 말한다. 이 계보는 홀로 있는 추상적 신에서 점차 짝을 이룬 신으로 나아가고, 마지막에 부부신 이자나기와 이자나미에 이른다. 곧 신화는 추상에서 관계, 성, 혼인, 생산으로 이동한다. 두 신의 혼인과 국토의 탄생은 신적 가능성이 구체적 세계로 바뀌는 결정적인 순간이다. 아메노우키하시, 아메노누보코, 오노고로섬. 두 신이 아메노우키하시 위에 서서 아메노누보코로 바다를 젓는 장면은 고대 일본 우주관에서 매우 중요한 이미지이다. 다리는 하늘과 땅을 잇는 수직의 세계축이고, 창은 창조의 도구이다. 소금물이 굳어 섬이 되는 일은 액체가 고체로, 무형이 형태로 바뀌는 것을 뜻한다. 오노고로섬이라는 이름에는 저절로 굳어진 섬이라는 뉘앙스가 있어, 창조가 신의 명령만이 아니라 자연이 스스로 형성되는 힘을 지닌다는 생각도 드러난다. 이 장면은 중국의 반고 신화, 인도의 우주 알, 유라시아의 원초적 물을 젓는 신화와도 함께 읽을 수 있다. 요미노쿠니 방문, 동아시아 초기의 오르페우스형 신화. 이자나기가 요미노쿠니로 내려가고, 금기를 어기고, 죽은 자들에게 쫓겨 달아나는 이야기는 세계 신화학에서 죽은 아내를 되찾기 위해 저승에 들어갔다가 금기 위반으로 실패하는 유형으로 읽힌다. 그리스 신화의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가 가장 유명하지만, 『고사기』의 이자나기 이야기는 712년에 적힌 동아시아의 이른 문헌 사례이다. 몰래 보는 장면, 깨진 금기, 추격하는 죽은 자들, 벽사력을 지닌 복숭아는 인도, 중국, 유럽의 저승 이야기와도 통하며, 고대 유라시아 종교 상상력의 깊은 공명을 보여 준다. 미소기, 신도 정화 의례의 기원 신화. 요미노쿠니에서 돌아온 이자나기는 아와기하라에서 부정을 씻는다. 이것이 미소기와 하라에의 기원 신화이다. 몸에서 옷과 물건을 벗을 때 신들이 태어나고, 물가에서 몸을 씻을 때 바다 신들이 태어나며, 마지막에는 눈과 코에서 최고 신격이 나온다. 이 구조는 몸, 부정, 청정, 신의 탄생을 단단히 묶는다. 오늘날 신사 참배 전의 데미즈, 여름의 나고시노오하라에, 큰 제사 전의 정화 수행은 모두 이 신화에서 근원을 찾을 수 있다. 에다 신사와 이자나기 신궁이 이자나기를 미소기의 조신으로 모시는 일은 고대 신화가 현대 신도 실천 속에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 준다. 삼귀자 분치, 고대 일본의 우주 질서. 이자나기는 하늘, 밤, 바다를 삼귀자에게 나누어 준다. 아마테라스 오미카미는 다카마가하라, 곧 하늘과 낮과 빛을 맡는다. 쓰쿠요미노미코토는 밤의 나라, 곧 밤과 정적과 달력의 리듬을 맡는다. 스사노오노미코토는 바다, 곧 해양과 거친 힘을 맡는다. 이 삼분법은 단순한 신화 줄거리가 아니다. 훗날 황실 계보와 이세 신도의 정통성을 뒷받침하는 이야기로 쓰인다. 중세, 근세, 근대 일본의 정치사상과 국가론은 이 서사를 반복해서 불러냈다. 일본의 국가, 종교, 우주 질서를 관통하는 핵심 선이다. 다가 대사, 이자나기 신궁, 에다 신사의 역할. 이자나기 신앙의 세 성지는 신화의 서로 다른 단계와 대응한다. 효고현 아와지시 이자나기 신궁은 국생의 출발점, 두 신의 혼인, 이자나기의 유궁과 이어진다. 미야자키현 미야자키시 에다 신사는 아와기하라, 미소기, 삼귀자 탄생과 이어진다. 시가현 다가초 다가 대사는 근세 민간 신앙에서 장수와 생명력의 신으로 사랑받았다. 세 성지는 창세, 정화, 장수라는 흐름을 지리와 순례로 바꾸어 일본 전역의 이자나기 신앙을 떠받친다. 모토오리 노리나가의 『고사기전』과 국학 형성. 에도 시대 국학자 모토오리 노리나가(1730-1801)는 1798년에 『고사기전』 44권을 완성했다. 그는 엄밀한 문헌학과 언어학으로 『고사기』를 주석했고, 그 안에는 이자나기 신화도 포함된다. 신화를 역사적 사실로 읽을지, 상징적 서사나 문화 기억으로 읽을지에 대해서는 지금도 논쟁이 있다. 그러나 노리나가의 방법은 근대 일본 인문학의 중요한 토대를 놓았다. 이자나기는 그래서 단순한 신화 인물을 넘어 국학, 신도, 근대 국가론, 전후 민속학의 지식 전통 안으로 들어갔고, 일본 종교, 학문, 정치, 문화에 오래 영향을 주는 상징적 존재가 되었다.

  • 이자나미

    이자나미

    전설

    이자나미

    생산과 죽음을 구현하는 고대 모신, 이자나미노미코토

    신령・신격Mie

    생산과 죽음의 순환, 고대 모신의 성격. 기본 설명에서는 이자나미의 신화적 역할을 보았다. 더 깊이 들어가면, 그녀의 핵심은 생산과 죽음을 한 몸에 담은 고대 모신이라는 점이다. 이자나미는 오야시마와 서른다섯 자연신을 낳고, 죽음의 자리에서도 토사물, 오줌, 똥에서 광산, 흙, 곡식의 신들을 계속 낳는다. 이는 그리스의 가이아, 수메르의 이난나, 인도의 칼리 같은 고대 세계의 모신들과 통하는 양면성이다. 생명을 낳는 존재가 동시에 죽음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이자나미는 단순한 창조신이 아니다. 생산과 죽음, 현세와 저승, 청정과 부정을 한 신격 안에 모은 일본적 고대 모신의 모습이다. 가구쓰치 출산과 불의 상징. 이자나미의 죽음은 불의 신 가구쓰치의 탄생에서 비롯된다. 이 사건은 고대 일본 우주관에서 중요한 상징을 지닌다. 불은 문명의 출발점이다. 대장간, 토기, 조리를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동시에 대규모 파괴와 죽음도 가져온다. 고대 사회에서 출산 역시 여성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었다. 가구쓰치가 태어나고, 이자나미가 죽고, 그녀의 몸에서 광산, 흙, 곡식의 신들이 이어져 태어나는 흐름은 물질 문명의 기원을 모신의 죽음과 연결한다. 문명은 어머니의 희생 위에 선다는 고대적 세계관이 여기에 정밀하게 표현되어 있다. 요미노쿠니, 죽은 자의 나라의 여왕. 이자나미는 장례 뒤 요미노쿠니의 여왕으로 군림한다. 이는 고대 신화에서 드문 구조이다. 중국의 저승은 풍도나 태산부군 같은 남성 신격이, 인도는 염마가, 그리스는 하데스가 다스리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일본 신화의 저승은 본래 창세 여신이 다스린다. 이자나미의 요미 지배는 고대 일본에서 여성, 죽음, 저승이 긴밀하게 이어져 있었음을 보여 준다. 뒤의 염마 신앙, 지장 신앙, 삼도천 신앙도 이런 죽은 자의 세계 상상력을 바탕으로 자랐다. 죽음을 여성 원리로 이해하는 점은 비교종교학적으로 매우 흥미롭다. 장지 논쟁, 이즈모와 구마노. 『고사기』는 이자나미의 장지를 이즈모와 호키 국경의 히바산이라고 기록한다. 반면 『일본서기』의 한 전승은 기이국 구마노라고 한다. 두 전승은 서로 다른 종교 지리를 이룬다. 이즈모 계통 장지, 곧 히로시마현 쇼바라시, 시마네현 야스기시, 시마네현 마쓰에시 히가시이즈모초는 이즈모국조계 신도와 네노카타스쿠니 신앙에 닿아 있다. 구마노 계통 장지, 미에현 구마노시 하나노이와야와 와카야마현 신구시 구마노 하야타마 대사는 구마노 삼산, 보타락 도해, 정토 신앙과 이어진다. 이즈모는 북쪽과 일본해, 구마노는 남쪽과 태평양을 향한다. 두 장지 전승은 고대 일본 종교 지리의 핵심 문제를 이룬다. 하나노이와야 신사와 고대 이와쿠라 신앙. 미에현 구마노시의 하나노이와야 신사는 『일본서기』에 이자나미의 장지로 적힌 일본 최고층의 신사 가운데 하나로, 높이 45미터의 거대한 바위를 신체로 모시며 본전이 없다. 이와쿠라 신앙은 고대 일본 고유의 자연신 제사 형태이다. 큰 나무, 바위, 폭포, 산꼭대기 같은 자연물 자체에 신령이 깃든다고 보고 제사를 지낸다. 후대의 신사 건축은 본래 이런 이와쿠라 신앙에서 발전했다. 하나노이와야는 본전을 두지 않는 오래된 층위를 보존한 귀중한 성지이다. 매년 2월 2일과 10월 2일의 오쓰나카케 신사, 곧 바위 위에서 경내 남쪽까지 약 170미터의 큰 줄을 거는 의례는 고대 이와쿠라 제사를 현대에 전하는 드문 민속 실천이다. “하루 천 명, 하루 천오백 명”, 삶과 죽음의 우주론. 요모쓰히라사카에서 이자나미가 하루에 천 명을 죽이겠다고 하고, 이자나기가 하루에 천오백 명을 태어나게 하겠다고 답하는 장면은 고대 일본의 삶과 죽음의 질서를 세우는 중요한 순간이다. 두 신의 대립은 부부 이별의 슬픔인 동시에, 죽음과 삶, 저승과 현세, 여성 원리와 남성 원리를 우주 질서로 세우는 선언이다. 죽는 수는 천, 태어나는 수는 천오백이다. 생명이 죽음보다 많다는 이 불등식은 생명의 지속을 긍정하는 종교적 표현이 된다. 일본 신화는 단순한 비극에 머물지 않고, 삶과 죽음의 긴장을 우주론으로 구성한다. 21세기의 이자나미 재평가. 전후 페미니즘 신화학과 문화 연구는 이자나미를 단순히 가부장제 신화의 희생자로만 보지 않게 했다. 오히려 생산, 죽음, 저승을 통합하는 고대 모신의 현현으로 다시 읽는 흐름이 생겼다. 에도 시대 모토오리 노리나가의 『고사기전』(1798년 완성)은 엄밀한 문헌학적 토대를 놓았고, 전후 오리쿠치 시노부, 오바야시 다료, 요시다 아쓰히코 등의 비교신화학은 새로운 해석층을 더했다. 21세기의 이자나미는 단순한 신화 속 신을 넘어 일본 신화의 여성적 근원, 어머니로서의 우주 질서를 보여 주는 문화적 아이콘이 되었다.

  • 이즈타마히코노 미코토

    이즈타마히코노 미코토

    신격

    izutamahiko

    조즈산의 수호신·이즈타마히코노 미코토

    신령·신격Kagawa

    이즈타마히코노 미코토는 실존했던 고승·곤고보 유세이(곤코인 제4대 원주, 1613년 몰)가 사후에 텐구·호법신이 되고, 나아가 메이지 시대의 신불분리를 거쳐 신도의 신격으로 재정의된, 3단계의 승화 과정을 거친 희귀한 신격이다. 도래 수신(쿰비라)을 기원으로 하는 주 제신·곤피라(오모노누시)가 '해상 수호'를 관장하는 반면, 이즈타마히코노 미코토는 '산악 수험·텐구 신앙'의 계보를 체현한다. 한 산 안에 바다의 신과 산의 텐구가 동거하는 조즈산 신앙의 이중 구조를, 주 제신과 오쿠샤 제신이라는 형태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 이 신격의 종교사적 중요성이 있다. 오쿠샤·이즈타마 신사는 본궁에서 1,368단, 해발 421m의 산 위에 진좌하며 고토히라구에 버금가는 영지로 꼽힌다.

  • 이치모쿠렌

    이치모쿠렌

    에픽

    Ichimokuren

    타도의 히토츠메렌(전승 준거)

    신령신격MieAichi

    타도산을 의지처로 삼는 바람의 신격으로, 본디 한쪽 눈을 잃은 용신으로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에도기 자료에 보이는 ‘신풍’의 관념과 토착의 기상 관찰이 겹쳐 이세만 항로의 선인과 연안 마을에서 두터운 신앙을 받았다. 이후 대장장이의 신인 아메노 마히토츠노카미와 민간에서 습합되어 사전에 문을 두지 않아 신의 출입을 막지 않는 구조가 전통화되었다. 폭풍과 비를 거느려 기우와 기청, 해난 방지의 신앙 대상으로 여겨지나, 거친 아라미타마의 면모도 전해진다. 도상은 일정치 않으며 용체나 외눈의 신으로 기록된 예가 있으나 상세는 불명하다.

  • 이치키시마히메노미코토

    이치키시마히메노미코토

    신격

    ichikishima-hime-no-mikoto

    성스러운 섬과 뱃길의 여신 이치키시마히메

    바다와 항해의 여신HiroshimaFukuoka

    이치키시마히메의 신격에서 핵심은 ‘성스러운 섬의 공주’라는 생각이다. 신을 정결하게 모시는 섬 그 자체에 깃든 여신인 셈이다. 겐카이나다의 무나카타에서는 대륙으로 향하는 항로를, 아키의 이쓰쿠시마에서는 세토 내해의 뱃길을 지킨다. ‘북쪽 바닷길 한가운데’를 지키라는 신의 명은 그녀가 나라와 바다를 잇는 경계의 수호자임을 보여 준다. 벤자이텐과 하나로 숭배된 역사는 바다의 수호에 물과 재물, 음악과 예능, 아름다움과 지혜라는 덕을 겹쳐 놓았다. 물 위에 세운 이쓰쿠시마 신사의 전각과 거대한 붉은 대문은 그 신성을 가장 장엄하게 드러낸다. 밀물 때에는 신전이 떠 있는 듯 보이고 썰물 때에는 땅과 다시 이어진다. 움직이는 물가가 바다와 육지, 성스러운 영역과 사람의 세계 사이의 선을 계속 새로 그리며, 바로 그 경계를 여신이 지킨다. 이치키시마히메는 자매 여신 다고리히메와 다기쓰히메의 계보에서 떼어 볼 수 없고, 역사적으로는 벤자이텐과의 결합을 빼고 이해하기 어렵다. 바다와 복을 관장하는 에비스의 역할과도 일부 맞닿는다. 따라서 그녀는 미야지마 한곳의 지방신에 머물지 않는다. 겐카이나다와 세토 내해를 잇는 신앙 속에서 안전한 항해와 문화적·물질적 번영을 함께 관장하는 여신이다.

  • 종기

    종기

    신격

    Shōki

    전통 도상·액막이의 종규

    신령신격Kyoto

    종규는 당대의 일화를 바탕으로 동아시아에 퍼진 액막이 신격으로, 일본에서는 주로 액막이와 천연두·전염병을 막는 효험으로 수용되었다. 도상은 긴 수염의 무인 풍모에 관복과 관을 쓰고, 큰 눈으로 노려보며 한 손 또는 양손에 검을 든다. 작은 오귀를 쫓거나 밟거나 자루에 넣는 모습으로도 그려진다. 연초나 단오에 족자·기·병풍으로 장식하고, 마치야에서는 지붕 모서리나 처마에 기와제 상을 올리는 예가 많다. 일본의 가장 이른 예는 헤이안 말기의 벽사회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무로마치 이후 화제로 정착했고 에도 후기에는 단오 인형화도 보인다. 상이나 그림은 현관·문·상좌에 걸어 역신과 사령의 침입을 막는다고 믿었다. 현대의 사사(사당)는 제한적이나, 근세 이래의 민간 신앙으로 지역적으로 계승되어 지붕 위의 종규상은 긴키에서 주부에 걸쳐 지금도 확인된다. 능력은 ‘노려봄’과 검세로 사귀를 물리치는 상징으로 여겨지며, 약해와 유행병을 물리치는 부적적 기능을 맡는다.

  • 쥬로진

    쥬로진

    전설

    じゅろうじん

    현록을 거느린 순수한 장수의 노선인·쥬로진

    신령·신격중국 (도교·남극노인성의 화신) / 무로마치 시대 도래 / 간토·긴키 지방의 칠복신 순례지 (선종·황벽종·천태종계 사원)

    쥬로진의 본상(본래 모습)은 남극노인성 (카노푸스)이다. 이는 용골자리 알파성 ── 밤하늘 전체에서 태양과 시리우스에 이어 두 번째로 밝은 항성 ── 으로, 북반구 남쪽의 낮은 하늘에만 나타나기 때문에, 고대 중국에서는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해는 천하태평·확인할 수 있는 땅은 장수의 땅"이라고 전해졌다. 『사기』 천관서·『진서』 천문지에 이미 천문신으로 등재되어 있으며, 중국 민속의 수성(寿星) 신앙의 핵심을 이룬다. 도교는 이를 의인화하여 수성·수노선인이라 부르고, 1500년을 산다는 현록(검은 수사슴), 서왕모의 반도(한 입 베어물면 천 년의 수명을 늘려주는 불로장생의 복숭아), 불사의 영약을 담은 표주박을 서물로 배치했다. 도상은 키가 작고 머리가 길며 긴 수염을 늘어뜨린 노옹으로, 지팡이 머리에는 경권을 매달고 있다. '단구장두(짧은 몸과 긴 머리)'는 중국 관상술에서 장수를 뜻하는 신체적 상서로움이며, 이는 동원의 후쿠로쿠쥬와 완전히 같은 조형 원리에 기반한다. 두 신이 예로부터 동체이명으로 간주되어 온 까닭이다. 일본으로의 도래는 무로마치 후기(15세기), 송·명에 입국한 승려들과 선림의 도석화(도교와 불교 그림) 수입을 경로로 한다. 히가시야마 문화기의 선승·화승 계층 (노아미, 소아미, 셋슈 등)이, 이미 토착화되어 있던 에비스, 다이코쿠텐, 비샤몬텐, 벤자이텐에, 도래 신인 호테이, 후쿠로쿠쥬, 쥬로진을 조합하여 '복덕칠신'으로 묶은 것이 현행 칠복신의 조형이다. 후쿠로쿠쥬와의 중복 문제는 송나라 이전부터의 오래된 과제로, 일본에서는 "후쿠로쿠쥬 = 복·록·수의 삼덕이 종합된 세속 신", "쥬로진 = 장수 일덕으로 순화된 수도적 장수 신"이라는 역할 분담으로 해소가 도모되었다. 에도 시대에 들어서면 중복을 피하기 위해 쥬로진을 빼고, 대신 술을 좋아하는 이수(異獸)인 쇼죠나 길상천, 후쿠스케를 더한 변칙 칠복신도 적지 않게 유통되었다. 쥬로진은 술을 즐기는 소박한 노선생의 풍모로 서민들에게 사랑받아, 산토 교덴의 『골동집』(1813)·가쓰시카 호쿠사이·우타가와 구니요시·쓰키오카 요시토시 등의 보물선 그림에 빈출한다. 에도·도쿄의 각 칠복신 순례에서는 선종·황벽종·천태종계의 작은 불당이 찰소로 지정되는 경우가 많아, 특히 고령자·환자들의 장수 및 건강 기원을 모았다. 민속적으로는 원단 이른 아침에 쥬로진이 포함된 보물선 그림을 베개 밑에 깔면 길몽을 꾼다고 하는 '첫꿈 보물선' (에도 중기 성립)의 주요 구성 신으로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 진구 황후

    진구 황후

    신격

    jingu-kogo

    신탁을 받고 바다를 건너는 황후

    신령・신격FukuokaOsaka

    이 판본의 진구 황후는 역사적 사실의 인물 소개가 아니라 신탁을 받는 신체로서 읽는다. 주아이 천황 앞에서 신의 뜻이 내려오는 장면에서 황후는 단순한 비(妃)가 아니라 신의 목소리가 통과하는 그릇이 된다. 고대 왕권에서 정치와 제사는 나뉘어 있지 않다. 그녀의 결단은 군사 행동인 동시에 신의 뜻을 실행하는 의례이기도 하다. 삼한 정벌담의 신화성은 이 판본의 중심이다. 임신한 채 바다를 건너고 돌로 출산을 늦추며 귀환하여 오진 천황을 낳는다는 줄거리는 현대적인 리얼리즘에서 보면 기이하다. 하지만 신화로서 보면 미래의 왕을 태내에 품은 여성이 신들의 가호로 먼 바다를 넘는 이야기이다. 모체 자체가 국가의 미래를 나르는 배가 된다. 마츠라의 은어 낚시는 그녀의 신화를 지역으로 내려놓는 장면으로서 중요하다. 대규모 원정담 속에 다마시마 마을에서 물고기를 낚아 길흉을 점치는 섬세한 행위가 들어간다. 여기서 진구 황후는 바다를 건너는 군사 신화의 주인공인 동시에 물가의 조짐을 읽는 무녀적 존재가 된다. 거대한 서사시와 작은 민속이 같은 인물에 겹친다. 하치만 신앙에서의 진구 황후는 오진 천황의 어머니일 뿐만 아니라 하치만의 신위를 지탱하는 신격이다. 하치만 신이 무가의 수호신으로서 퍼질 때, 그 배후에는 어머니와 아이, 신탁과 군사, 해상 교통과 국가 수호의 복합적인 구조가 있다. 황후를 단독으로 떼어내어 하치만 신·스미요시 3신과의 관계선을 끊으면 힘이 반감된다. 이 판본을 시각화한다면 갑옷 입은 여왕이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카시이의 숲, 거친 바다, 스미요시의 신위, 배에 품은 황자, 낚아 올린 은어, 원정의 선단. 그런 요소들을 겹치면 진구 황후는 싸우는 여성이 아니라 신화적 왕권을 몸에 두른 존재로 보인다. 현대의 진단이나 기사에서 진구 황후는 '역할을 짊어지는 힘'의 상징이 된다. 바라지 않아도 거대한 흐름을 떠맡아야 할 때, 지켜야 할 것을 태내나 마음속에 품은 채 나아갈 때 그녀의 이야기는 강하게 울린다. 다만 역사적 사실로서 단언하는 것이 아니라 기기신화와 신사 신앙이 만든 신격으로서 다루는 성실함이 필요하다. 진구 황후의 무서움은 개인의 감정보다 거대한 신의 뜻이 신체를 통과해버리는 데 있다. 신탁을 받는 사람은 동시에 신탁에 얽매이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녀는 자유롭게 모험하는 영웅이 아니라 신들과 왕권의 미래로 밀려나는 존재이다. 그 무게를 넣으면 전설은 단순한 승리담이 아니게 된다. 오진 천황과의 관계는 진구 황후를 하치만 신앙으로 연결하는 가장 중요한 선이다. 태내에 깃든 황자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는데도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 어머니의 원정, 신들의 가호, 귀환 후의 탄생이 연결됨으로써 하치만 신의 신성함이 준비된다. 황후는 하치만의 전사를 신체로 나르는 존재인 것이다. 또한 진구 황후는 장소를 움직이는 신격이기도 하다. 카시이, 마츠라, 스미요시, 우사라는 지명이 이야기 속에서 의미를 가지며 각각 현대의 참배지로 남는다. YOKAI.JP의 place 기사와 연동시키면 신화를 읽으면서 실제 지리로 걸어갈 수 있다. 거기에 이 페이지를 추가하는 실용적인 가치도 있다.

  • 천역매

    천역매

    에픽

    Amanozako

    도해 준거·괴신상

    신령신격불명(기록은 주로 에도 시대의 서지에 보임)

    본 버전은 『와한삼재도회』의 기사를 골자로 하여, 아마노사카코를 사나운 기운에서 태어난 괴신으로 묘사한다. 모습은 인수상으로 코가 높고 귀가 길며 어금니가 굳세다. 마음기운은 늘 거슬러 서고 조리를 따르길 꺼리며 모든 것을 거꾸로 하길 좋아한다. 강대한 영위를 지녀 강신마저 멀리 내던질 기력과 기세를 자랑한다. 천사귀와의 관념적 근연은 말해지나 계보는 일정치 않으며, 텐구의 조상으로 단정하는 견해는 제한적이다. 천마웅의 모친으로 본 조항은 도회의 인용 범위에 그치며 시대·지역의 구전으로 폭넓게 뒷받침되기 어렵다. 여기서는 전적상의 괴신으로서의 성질—역언, 역행, 강맹—을 중심으로 정리하고, 근세 도상과 기술에 맞춘 범위에서 상을 보존한다.

  • 촉음

    촉음

    에픽

    Shokuin

    서적전래·도권소재판

    신령신격불명(『산해경』의 기록에서 유래하며, 일본에는 서적을 통해 전래)

    일본에서는 『산해경』과 그를 전거로 한 박물지적 관심 속에서 소개된 외래의 신령으로 이해된다. 도상은 사람 얼굴에 장대한 붉은 뱀의 몸으로 그려지며, 눈의 개폐가 낮과 밤을 가르고 호흡이 계절풍과 한서의 변화를 불러온다는 요점을 계승한다. 촉룡과의 혼칭은 근세 해설에도 보이나, 원전의 절과 서술 차이를 병기하는 절제된 소개가 통례이며, 신앙 대상의 흔적은 국내에서 확인하기 어렵다. 이로써 토착의 제의·금기·구전은 빈약하고, 열람·사생·화제화에 의한 수용이 중심이 된다. 외국의 신격을 요괴보에 편입한 예로 자주 인용되며, 시간과 계절의 의인화상으로 자리매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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