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말기에서 헤이안 초기의 황족. 고닌 천황의 황자이자 간무 천황의 동복 아우. 황태자에 올랐으나, 후지와라 노 다네츠구 암살 사건에 연좌되어 폐위되고, 아와지로 유배되는 길에 단식 끝에 서거했다. 이후 역병과 기근, 궁중의 잇단 병사가 그의 원령의 재앙으로 여겨져, ‘스도 천황’의 존호가 추증되고 진혼이 진행되었다. 오령 신앙을 대표하는 존재로 두려움과 공경의 대상이 되었다.
민화・전승
엔랴쿠 연간, 궁중과 도성에 흉사가 잇따르자 점복이 친왕의 원령을 가리켰다고 한다. 조정은 수호민 배정, 법회와 독경, 관사에서의 봉제를 거듭하고, 아와지의 영전에 승려를 보내 사죄했다. 후에 산릉에 다시 모시고, 제국 각지에도 작은 사당을 세워 공물을 올렸다. 고후쿠지 승려가 수법을 행해 병이 나았다는 이야기와, 야시마의 절에서 두텁게 모셨다는 전승이 전한다.
사와라 친왕의 원한이 오령으로 드러났다는 지방과 궁정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 형상. 죄과를 둘러싼 의혹 속에 절식으로 세상을 떠났고, 그 뒤의 역병과 기근, 황통의 병난이 화로 해석되었다. 조정은 수호민 기증, 독경과 수법, 개장과 존호 추증을 거듭하고 오령을 정중히 모셔 화해를 도모했다. 오령은 시비를 바로잡는 영위로 경외되었고, 사찰과 사당에서의 봉제, 절기마다의 법회, 산릉에서의 진사가 이어졌다. 후년에는 숭도천황사를 대표로 제의가 정비되어, 도읍과 야마토 사이에 진호 신앙이 퍼졌다. 원한은 사적 원망을 넘어 정치의 문란과 참언을 경계하는 징표로 받아들여졌고, 위정자는 결백과 공정을 맹세하는 표징으로 희생 제물, 맹서문, 경공양을 행했다. 오령은 거칠게 노하는 면모와, 진혼이 이루어지면 수호로 전환하는 면모를 함께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