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amato Province 国家が生まれた地の怪異。大和国の妖怪事典

三輪山の大物主・大和猿楽の般若・崇道天皇の祟り。日本という名の発祥地、大和

国家が生まれた地の怪異。大和国の妖怪事典

Yamato Province · やま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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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やまと」という言葉は、もとは奈良盆地の東南、三輪山のふもとの一帯を指す地名であった。そこに王権が興り、その王権が列島を束ねるにつれて、「やまと」は国全体の名 ──「日本」そのものの呼び名へと広がっていった。つまり大和国とは、ただの令制国の一つではない。日本という国家が産声をあげ、その名前さえ生み出した、列島の心臓部なのである[1]

だから大和の怪異を読むことは、国家が生まれる瞬間を、その裏側から覗くことに等しい。三輪山の神は蛇の姿で女のもとへ通い、その神婚から箸墓の伝説が生まれた[2]。王権にまつろわぬ者は土蜘蛛と呼ばれ、人ならぬ姿に描かれた[3]。都を移そうとした帝の弟は、無実を訴えて餓死し、やがて天皇号を贈られる大怨霊となった[4]。そして興福寺と春日大社に仕えた猿楽の徒は、嫉妬に身を焼く女の顔を、般若という一枚の面に彫りあげた[5]

ここでは、現在の奈良県全体を束ねる宏観 ── 元興寺の鬼、大峰の修験、飛鳥の四神 ── は奈良県の妖怪事典に譲り、本稿はあくまで「国家が生まれた地・大和国の古代」という一本の軸から、その古層に根ざした怪異だけをたずねていきたい。

国家が生まれた地、大和 ── 三輪山と古層の神

奈良盆地は四方を山に囲まれた、列島でもまれな大きな閉じた盆地である。その東南の隅にひときわ整った円錐形の山がそびえる。三輪山(みわやま)である。標高こそ四六七メートルにすぎないが、この山は本殿を持たぬ古社・大神神社(おおみわじんじゃ)の神体そのものであり、山に入ること自体が長く禁じられてきた。社殿の奥に三ツ鳥居があり、その向こうの山を直に拝む ── 神を社の中に閉じこめるより前の、もっとも古い祈りのかたちが、ここには残っている[2]

この三輪山に坐す神が、大物主神(おおものぬしのかみ)である。『古事記』『日本書紀』はこの神の物語を、いずれも蛇の姿で語る。崇神天皇の御代、国に疫病が流行して人民の半ばが死に絶えたとき、天皇の夢に大物主が現れ、わが子・大田田根子(おおたたねこ)に自分を祀らせれば疫病はやむと告げた。神の言うとおりにすると、疫病はおさまり、国は鎮まったという[2]。災いを起こすのも、それを鎮めるのも、同じ一柱の神である。祟る神を畏れ、丁重に祀ることで福へ転じる ── のちに早良親王の怨霊を天皇号で鎮める発想の、はるかな源流が、すでにここにある。

三輪山の神の正体が蛇であることを、もっとも鮮やかに語るのが三輪山型神話と呼ばれる説話だ。『古事記』では、活玉依毘売(いくたまよりひめ)のもとへ夜ごと麗しい男が通い、やがて娘は身ごもる。両親が正体を知ろうと、男の衣の裾に麻糸を刺しておくと、翌朝、糸は戸の鍵穴を抜けて三輪山の社へと続いており、手元には糸が三勾(みわ)だけ残っていた── これが「三輪」の名の由来だと記す。男は大物主の化身たる蛇であった。『日本書紀』はさらに苛烈で、神の妻となった倭迹迹日百襲姫(やまとととひももそひめ)が、夫の正体が櫛笥(くしげ)のなかの小蛇であるのを見て驚き叫ぶと、神は恥じて山へ帰ってしまう。後悔した姫は座りこんだ拍子に箸で陰部を突いて死に、その墓は「箸墓(はしはか)」と呼ばれたと伝える。

この箸墓こそ、三輪山西麓に広がる纒向(まきむく)遺跡のただなかに築かれた、最古級の巨大前方後円墳である。三世紀の大規模な集落と祭祀の跡が見つかる纒向は、いまや初期ヤマト王権の中枢、邪馬台国や卑弥呼の都の有力候補として議論される地だ[6]。神話のなかで神と人とのあいだに生まれた死が、現実の地図のうえで国家最初の大王墓と重なる ── 大和では、神話と国家の起源が、同じ一つの丘に折り重なっている。怪異の最古層とは、ここでは王権の発生そのものなのである。

王権が興れば、それにまつろわぬ者が現れる。大和各地に蟠踞(ばんきょ)した土豪を、記紀は人ならぬ姿で描いた。土蜘蛛である。『日本書紀』神武即位前紀は、身が短く手足の長い土蜘蛛が大和の各地にいたと記し、高尾張邑(たかおわりのむら)の土蜘蛛を葛(かずら)の網で捕えたことから、その地を葛城(かつらぎ)と改めたと伝える。中央に従わぬ者を人ならぬ蜘蛛として描くこの手つきは、勝者が敗者を怪物化する政治の作法にほかならない。大和の古層には、こうして「国家の側が誰を人ならざるものと呼んだか」の記憶が、地名そのものに刻まれている(葛城を本拠とした古代豪族や、布都御魂を奉じた物部氏ら大和の有力氏族の興亡については、奈良県の妖怪事典が葛城山の土蜘蛛と一言主の物語として詳しく語っている)。

能楽を生んだ大和猿楽と般若

大和は、日本の舞台芸能の母胎でもある。中世、興福寺と春日大社に芸能をもって奉仕した猿楽(さるがく)の集団が、大和には四つあった。結崎(ゆうざき)座・円満井(えんまんい)座・坂戸(さかど)座・外山(とび)座、あわせて大和猿楽四座である。これらはのちにそれぞれ観世(かんぜ)・金春(こんぱる)・金剛(こんごう)・宝生(ほうしょう)の流派へと連なり、能を大成した観阿弥・世阿弥の父子は、この結崎座から出て京へ進出した。いまも春日若宮おん祭の神事に四座が奉仕するように、能楽の故郷はまぎれもなく大和である。古都に育まれた信仰と芸能の土壌から、世界に類を見ない仮面劇が生まれた。

その能の鬼女面の代表が、般若である。これは単一の妖怪というより、中世の説話と謡曲、そして面打ちの工(たくみ)が作りあげた「情念の型」だ。二本の角、金色を帯びた眼と歯、強くしかめた眉。だがこの面の凄みは、ただ恐ろしいことにあるのではない。怒りの奥に、怒りから抜け出せない苦しみと悲しみが彫りこまれているところにある。能面のデータベースでも般若は怨霊の面に分類され、嫉妬・恨み・悲しみ・嘆きが融合した表情と説明される[7]。本来「般若」とは仏教で悟りへ向かう智慧を意味する語であり、奈良の般若坊なる面打ちがこの造形を芸術へ高めたという説も伝わる ── 智慧の名を持つ面が、煩悩に囚われた女を表す、というねじれが、この面を忘れがたいものにしている[7]

한냐

Hannya

한냐(般若)는 특정 요괴의 종족 이름이 아니라, 일본의 전통 예능인 '노가쿠(能楽)'에서 극도의 질투와 원한으로 인해 인간에서 귀녀(鬼女)로 변모한 여성의 모습, 그리고 그때 사용되는 '가면(노멘)' 자체를 가리키는 명칭이다. 이마에서 튀어나온 금니의 두 뿔, 귀까지 찢어진 입, 드러난 송곳니, 그리고 흐트러진 머리카락이라는 그 비주얼은 일본에서 '여귀'의 결정적인 이미지로 전 세계에 정착해 있다. 이 요괴(노멘)의 가장 큰 특징은 그 조형에 숨겨진 '궁극의 이중성'에 있다. 가면의 얼굴을 위아래 반으로 나누어 관찰하면 그 엄청난 조형미가 드러난다. 아래 절반(입가와 턱)은 송곳니를 드러내고 위협하는 순수한 '분노와 광포함'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위 절반(특히 눈꼬리와 미간)에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당해 스스로 추악한 괴물로 타락해가는 것에 대한 깊은 '비애와 절망'이 새겨져 있다. 노의 무대에서 배우가 가면을 약간 위로 향하게(테라스) 하면 분노하여 날뛰는 무서운 오니로 보이고, 약간 아래로 향하게(쿠모라스) 하면 허물어지듯 우는 가여운 여성으로 보이도록 철저하게 계산되어 있는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한냐(Prajñā)'라는 명칭이 가진 강렬한 아이러니이다. 불교에서 '한냐(반야)'란 번뇌를 끊는 '최고의 지혜(깨달음)'를 의미하는 신성한 단어이다. 가장 세속적인 감정인 '질투'와 '정욕'에 빠져 마물로 타락한 귀녀가 왜 대극에 있는 '지혜'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일까? 여기에는 무로마치 시대의 천재 가면 제작자 '한냐보'가 창작했기 때문이라는 설과, 이 귀녀를 퇴치(조복)하기 위해서는 반야심경의 독경이 필수 불가결했기 때문이라는 설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어쨌든 인간이 이성을 잃고 짐승(오니)으로 변해가는 심리적 공포를 이토록 세련된 예술적 표현으로 구현한 요괴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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般若の本質をもっともよく示すのが、謡曲『葵上』だ。病に伏す葵上は役者として登場せず、舞台に置かれた一領の小袖でその存在が示される。巫女が梓弓で物の怪を呼び出すと、現れるのは光源氏の愛人・六条御息所の生霊である。高貴な女でありながら、源氏の足が遠のいた寂しさと、賀茂祭の車争いで葵上方に押しのけられた屈辱に苦しみ、その行き場のない思いが嫉妬の鬼となって葵上を責めさいなむ[8]。ここで肝心なのは、般若が外から来た怪物ではなく、貴婦人の内側にあった感情が舞台上で可視化された姿だという点である。鬼は、人の心の底から立ちのぼる。

もう一つの大きな系譜が『道成寺』だ。紀伊国道成寺の鐘供養の日、女人禁制を破った白拍子が舞いながら鐘へ近づき、その中へ身を隠す。住僧の語る昔語りでは、男に裏切られたと思いこんだ娘が毒蛇と化して日高川を渡り、鐘の中へ逃げた男を炎で焼き殺したという[9]。般若が嫉妬によって人の顔のまま鬼へ寄った段階だとすれば、清姫の物語はそこからさらに蛇・真蛇へと落ちていく最終段階を描く。人の顔を保って怒り泣く般若と、人を捨てて蛇となる清姫は、同じ情念の坂を別々の高さで示している。三輪山の神が蛇であったこの大和の地で、女の情念もまた蛇へと変じてゆく ── 古層の神話と中世の能とが、蛇という一筋の糸で結ばれているのは、偶然ではないのかもしれない。

都を移した怨霊 ── 早良親王

国家が生まれた地は、国家の最初の遷都にともなう悲劇の地でもあった。その中心にいるのが、御霊信仰の起点に立つ早良親王である。光仁天皇の皇子で、桓武天皇の同母弟にあたる親王は、幼くして東大寺で出家し、親王禅師と称された。法華堂(羂索院)に住んだこの僧形の皇族が、天応元年(七八一年)に還俗して皇太弟に立てられる ── 大和の大寺で育った祈りの人が、にわかに政治の渦中へ引き出されたのである[10]

사와라 친왕

Sawara Shinnō

나라 말기에서 헤이안 초기의 황족. 고닌 천황의 황자이자 간무 천황의 동복 아우. 황태자에 올랐으나, 후지와라 노 다네츠구 암살 사건에 연좌되어 폐위되고, 아와지로 유배되는 길에 단식 끝에 서거했다. 이후 역병과 기근, 궁중의 잇단 병사가 그의 원령의 재앙으로 여겨져, ‘스도 천황’의 존호가 추증되고 진혼이 진행되었다. 오령 신앙을 대표하는 존재로 두려움과 공경의 대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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桓武天皇は延暦三年(七八四年)、平城京を捨てて長岡京への遷都を企て、信任厚い藤原種継を造営の責任者に任じた。ところが遷都まもない延暦四年(七八五年)、種継が夜の工事現場で何者かに射殺される。桓武は大伴・佐伯ら遷都反対勢力の仕業とみて峻厳な詮議を進め、その嫌疑はついに皇太弟・早良親王にまで及んだ。親王は廃太子されて乙訓寺に幽閉され、淡路への配流の途上、無実を訴えて飲食を断ち、絶食のすえに憤死したと伝わる[4]。遺骸は淡路に葬られた。都を移すという国家の大事業が、帝の弟一人の餓死という暗い影を曳いたのである。

その後、宮廷を次々と不幸が襲う。皇太子に立った安殿親王が発病し、桓武の皇后藤原乙牟漏や、早良親王の生母でもある高野新笠が相次いで世を去り、都には疫病と天変が続いた。神祇官の卜占はこれを早良親王の祟りと告げ、朝廷は淡路の墓に守冢を充て、僧を遣わして謝罪し[10]、延暦十九年(八〇〇年)にはついに「崇道天皇」の尊号を追贈して、その墓を山陵に改めた[4]。実際には即位していない人物に天皇号を贈るという異例の措置は、怨霊への怖れがいかに深刻だったかを物語る。さらに貞観五年(八六三年)、都に疫病が広がると神泉苑で御霊会が修され、崇道天皇をはじめ非業に倒れた六所の御霊が鎮められた[11]。早良親王はこうして、菅原道真や平将門に先立つ御霊信仰の代表的存在として、後世まで畏れ敬われていく。

早良親王の事件は長岡京・平安京という都の側の出来事と語られがちだが、その魂は故郷である大和に深く根を張っている。出家して暮らしたのは東大寺であり、奈良市西紀寺町の崇道天皇社をはじめ、大和には親王を祀る社が点在する。新たな都を造るために、古い都・平城京の記憶を背負った皇族が犠牲となり、その怨霊を鎮めるために天皇号という最高の格が与えられた ── 早良親王の物語は、「国家が生まれた地」が同時に「国家のために葬られた者を祀る地」でもあったことを、静かに告げている。

闇に光る怪 ── 青鷺火と白粉婆

古代史の重い物語の一方で、大和の地には、もっと暮らしに近い、夜と闇の怪も棲んでいた。その一つが青鷺火である。夜、サギの体が青白く光って見える怪火で、別名を五位の火・五位の光ともいう。正体はゴイサギとされることが多く、飛ぶときに青い火のように尾を引いて、人々を驚かせた。江戸後期にはこの怪が広く知られ、絵師・鳥山石燕も『今昔画図続百鬼』にその姿を描きとめている

청사기비

Aosagibi

밤에 왜가리의 몸이 청백색으로 빛나 보이는 괴이. ‘고위의 불’, ‘고위의 빛’으로도 불린다. 에도 시대의 화집과 수필에 기록이 있으며, 달 밝은 밤이나 비 오는 밤에도 목격된다. 정체는 주로 괭이갈매기(고이사기)로 여겨지며, 비상할 때 푸른 불처럼 보여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발광은 물가의 부착물이나 깃털의 반사로 설명되기도 하지만, 지역에서는 괴화(火)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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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和国に伝わる青鷺火の話は、ことに印象的だ。柳の大木に青い火が現れ、近づくとその木全体が青く光ったという。古い木に宿る光、闇のなかで青く燃える鳥 ── これは荒唐無稽な作り話ではなく、夜の水辺や林で実際に目撃された不思議な発光を、人々が「怪火」という器で受けとめた記録である。発光の正体は羽毛への付着物や反射などと説明されることもあるが、大事なのは、大和の人々が夜の闇に立ちあがる青い光を、ただの自然現象ではなく語るべき怪として後世に伝えたことだ。古代の星図や神獣を地下に残した飛鳥の地(これらは奈良県の妖怪事典とキトラ古墳の記事に詳しい)と同じ土地に、闇に光るものへの古い感受性が、こんなかたちでも息づいている。

もう一つ、大和の闇に現れるのが白粉婆だ。顔に白粉を厚く塗り、破れ笠をかぶった老女の妖怪で、雪道にも徳利を提げ、杖を頼りに現れて、道行く者に酒を所望する。鳥山石燕は『今昔画図続百鬼』に、破れ傘をかぶり杖と酒徳利を手にした老婆としてこれを描いている。この怪はとりわけ、大和国の南部 ── 吉野郡十津川流域の在地伝承に結びついて語られてきた[14]。十津川村は面積の大半を山林が占める日本有数の大きな村で、その深い谷あいに、白粉婆の話は息づいている。

白粉婆の物語が肝心とするのは、姿かたちよりも「どう応じるか」である。冬の夜、白粉で顔を白く塗った婆が徳利を提げて戸口に立ち、「一杯くれ」と頼む。少量でも振る舞えば婆は静かに去るが、追い返すと、戸口で杖を鳴らし続けて家人を夜更けまで怯えさせたという[15]。酒造りの時季や搗(つ)き仕事の匂いに誘われて現れるとも伝わるこの怪は、来訪する者を無下に追い返してはならぬ、分かち合いを惜しんではならぬという、雪深い山里の暮らしの掟を映している。姿を見せて脅すのではなく、応対の作法を試す ── 白粉婆は、妖怪が共同体の倫理を担う、その典型なのである。なお、十津川をはじめとする大和南部の山々には、伯母ヶ峰の一本だたらや砂かけ婆など、雪と峠と夜道に根ざした怪が濃く伝わるが、その南部山村の妖怪世界については奈良県の妖怪事典が深く語っている。

大和国の妖怪を歩くための見取り図

大和国の怪異を訪ねることは、日本という国家が生まれた現場を、その裏側からたどり直すことでもある。最後に、この旧国の妖怪を、古代という一本の時間軸で整理しておきたい。

  • 三輪山と纒向(王権の発生)では、大物主の蛇身、活玉依毘売の麻糸、倭迹迹日百襲姫と箸墓のように、神話と国家の起源とが同じ丘で重なりあう。まつろわぬ者は土蜘蛛と呼ばれ、地名に怪物化の記憶を残した。
  • 興福寺・春日大社圏(芸能の母胎)では、大和猿楽四座が能を生み、般若という面に、女の嫉妬が鬼へ変わる瞬間を彫りこんだ。
  • 東大寺・崇道天皇社(遷都の悲劇)では、早良親王(崇道天皇)が、長岡京遷都と藤原種継暗殺の渦中に餓死し、天皇号で鎮められる大怨霊となった。
  • 吉野・十津川と各地の闇(暮らしの怪)では、青鷺火が古木に青く燃え、白粉婆が雪夜の戸口で応対の作法を試した。

この時間軸を貫いて見えてくるのは、大和の怪異がつねに「国家」と背中合わせだということだ。祟る神を祀って疫病を鎮め、まつろわぬ者を怪物と呼び、遷都の犠牲者を天皇として祀る ── ここでは、怪異を畏れ鎮めることが、そのまま国を治める作法であった。三輪山の蛇から般若の角、崇道天皇の祟りから雪夜の白粉婆まで、大和の妖怪は「日本という国がどう始まったか」を、神話と芸能と怨霊と山里の闇の四つの層で、いまも静かに語り続けている。現在の奈良県全体に広がる怪異の宏観 ── 元興寺の鬼、大峰の修験、飛鳥の四神 ── をあわせて知りたい読者は、奈良県の妖怪事典へと足をのばしてほしい。

Yamato Province의 모든 요괴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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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타가라스

    야타가라스

    신격

    yatagarasu

    쿠마노에서 야마토로 이끄는 영조·야타가라스

    신령·신격쿠마노 혼구 타이샤·쿠마노 산잔 (현 와카야마현) / 야마토국 우다 (현 나라현)

    이 판본에서는 야타가라스를 '길을 여는 신의 사자'로 읽는다. 야타가라스는 적을 쓰러뜨리는 무신이 아니라,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를 보여주는 존재이다. 진무 동정의 이야기에서 일행이 쿠마노의 산길에서 길을 잃었을 때, 천상의 신은 군세를 늘려주는 대신 까마귀 한 마리를 보낸다. 여기에 이 영조의 본질이 있다. 힘이 아닌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야타가라스의 신덕인 것이다. 기키(記紀)에서의 야타가라스는 지리와 정통성을 동시에 연결한다. 쿠마노에서 야마토로 들어가는 길은 단순한 산길이 아니라, 새로운 왕권이 성립하기 위해 넘어야만 하는 경계이다. 『고사기』에서 까마귀가 선도하는 장면은 산속의 진로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진무의 발걸음이 신들에게 승인받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새가 날아가는 방향이 그대로 정치적인 진로가 된다. 발이 세 개인 도상은 야타가라스에 대한 후세의 이해를 크게 넓혔다. 삼족오는 동아시아의 태양조 관념과 겹치며 일본의 야타가라스에게도 태양, 방위, 하늘의 질서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단, 기키의 본문에서 가장 강한 것은 '세 개의 발'보다 '인도'이다. 이 판본에서는 도상의 화려함에 너무 기대지 않고, 어두운 산길에서 앞서 날아가는 검은 새라는 원초적인 감각을 중심에 둔다. 쿠마노 신앙 속에서 야타가라스는 신의 사자로서 구체적인 신앙의 터전을 얻었다. 쿠마노 고오 호인의 까마귀 문자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서약과 부적의 힘을 지니는 기호이다. 까마귀는 사체를 쪼아먹는 불길한 새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신의 말씀을 전하는 새가 되기도 한다. 이 양의성(両義性)이 야타가라스를 그저 밝은 승리의 마크로만 두지 않는다. 검은 새가 성스러운 안내자가 되는 지점에 쿠마노의 산과 신화의 깊이가 있다. 현대의 야타가라스상은 스포츠의 승리나 팀의 진로를 나타내는 상징으로도 읽힌다. 하지만 그 뿌리에 있는 것은, 길을 잃은 자가 혼자서는 나아갈 수 없을 때 전방에 하나의 이정표가 나타난다는 경험이다. 이 판본의 야타가라스는 답을 길게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앞서 날아갈 뿐이다. 따를지 말지는 인간의 몫으로 남겨져 있다. 이 판본에서는 야타가라스의 '검은색'에도 주목하고 싶다. 까마귀는 종종 불길한 새로 여겨지지만, 쿠마노의 문맥에서는 신의 사자가 된다. 불길함과 신성함이 반전되는 곳에 산악 신앙의 깊이가 있다. 어두운 산길에서 검은 새를 놓치지 않고 나아가는 것은 어둠 속에서 신의 뜻을 읽어내는 것과 가깝다. 또한, 야타가라스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 인도자이다. 사루타히코처럼 신으로서 앞에 서는 것이 아니라, 새로서 앞서 날아간다. 사람은 그 날아가는 방향을 해석하고 자신의 발로 나아가야 한다. 인도는 강제가 아니라 독해를 요구한다. 그 점이 야타가라스의 조용한 엄격함이다. 발이 세 개인 도상이나 축구 엠블럼이 널리 알려진 현재에도 이 영조의 뿌리는 쿠마노에서 야마토로 빠져나가는 신화적인 산길에 있다. 화려한 상징의 껍질을 벗겨내면 마지막에 남는 것은, 길을 잃은 일행의 앞을 날아가는 한 마리의 큰 까마귀이다. 그 단순한 장면이야말로 야타가라스의 가장 강렬한 이미지이다. 그렇기에 야타가라스는 목적지 그 자체가 아니라, 목적지를 향해 가기 위한 신뢰를 상징한다.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사람은 먼저 나아갈 방향을 믿어야 한다. 검은 새의 선도는 그 신뢰를 형태화한 신화적인 몸짓인 것이다.

  • 베토베토산 (Betobeto-san)

    베토베토산 (Betobeto-san)

    에픽

    betobeto-san

    밤길에 이어지는 발소리

    산야의 괴이야마토국 우다군 (현 나라현 우다시 주변) / 시즈오카현

    이 판본에서는 베토베토산을 '모습 없는 발소리의 동행자'로 파악한다. 보이지 않는 요괴는 많지만, 베토베토산처럼 소리의 거리감만으로 성립하는 요괴는 드물다. 발소리는 등 뒤에 있는 것 같으면서도 결코 따라잡지 않는다. 뒤돌아보면 사라지고, 걷기 시작하면 다시 시작된다. 이 반복을 통해 걷는 자는 '나 혼자가 아니다'라는 감각을 증명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는 채로 계속 안고 가게 된다. 이 요괴의 무대가 '길'이라는 점은 중요하다. 집 안의 괴음이라면 방이나 천장의 괴이가 되겠지만, 베토베토산은 이동 중인 신체에 달라붙는다. 밤길에서 사람은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고, 등 뒤를 계속 확인할 수는 없다. 그곳에 발소리가 생기면 공포는 시야 바깥쪽에 고정된다. 등 뒤의 소리는 인간의 신체가 가장 확인하기 어려운 곳에서 다가오기 때문에, 모습을 가진 괴이보다 지속적인 불안을 낳는다. "먼저 가시지요"라는 말은 이 판본의 핵심적인 대처법이다. 베토베토산은 퇴치되는 것이 아니라 통행의 순서를 양보받는다. 이 발상은 요괴를 적으로서가 아니라 길에서 만나는 상대로 대하는 민속적 태도를 비춘다. 말을 건넴으로써 보이지 않는 발소리는 등 뒤의 위협에서 앞서가는 동행자로 변한다. 공포의 위치를 바꾸는 것이야말로 이 요괴에 대한 최선의 대처인 것이다. 미즈키 시게루의 도상화는 무형의 소리를 친근한 요괴로 변환시켰다. 모자를 쓴 작은 그림자 같은 모습은 아이들도 기억하기 쉬웠고, 캐릭터로서의 베토베토산을 널리 알렸다. 하지만 이 판본에서는 그림보다 소리에 무게를 둔다. 둥근 모습을 보고 안심해 버린다면 베토베토산 본래의 힘은 반감된다. 그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듣는 자의 상상 속에서 늘어나고 줄어든다. 베토베토산은 위해가 적은 요괴이면서도 고독한 보행을 변질시킨다. 아무도 없어야 할 길에 자신의 보폭을 모방하는 다른 리듬이 겹쳐진다. 그 소리를 무시하면 등 뒤에 남고, 인정하고 양보하면 앞으로 이동한다. 즉 이 괴이는 보이지 않는 것과 함께 길을 걷기 위한 최소한의 민속적 매너를 가르쳐 주고 있다. 이 판본에서는 발소리를 '타자의 기척'뿐만 아니라 '자신의 불안의 메아리'로도 읽는다. 베토베토산의 소리는 밖에서 오는 것 같으면서도 자신의 보행과 완전히 동기화된다. 완전히 타자라면 거리가 변해야 하지만 계속 같은 간격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듣는 자는 외부의 괴이와 내부의 불안을 구별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먼저 가시지요"라는 말은 외부의 요괴를 향한 인사이자 자신의 불안을 앞으로 덜어내는 몸짓이기도 하다. 등 뒤에 달라붙은 것을 앞으로 옮김으로써 사람은 비로소 계속 걸을 수 있다. 베토베토산은 퇴치해야 할 요괴가 아니라 걷는 자의 심신 리듬을 재조정하는 요괴인 것이다. 이 판본의 마지막에 남는 것은 길을 양보한다는 작은 윤리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무시하고 억지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있을지도 모르는 상대에게 한마디를 건넨다. 베토베토산은 약한 괴이 같으면서도 인간이 어두운 길을 독점하고 있지 않음을 상기시켜 준다.

  • 청사기비

    청사기비

    에픽

    Aosagibi

    전통담 준거

    동물요괴각지 전승(주로 에도·야마토·사도)

    아오사ギ비는 오야사ギ 등 야행성 왜가리가 밤하늘이나 수면 위에서 청백색으로 빛나 보이는 현상으로 전해진다. 에도 시기에는 세키엔의 화도에 그려졌고 수필류에도 다수 수록되었다. 버드나무나 매화의 고목, 하구·만, 사찰과 신사의 경내 등 ‘기운이 모이는 곳’에 괴화가 머문다 두려워했으며, 그 정체가 쏘아 떨어뜨린 끝에 왜가리로 밝혀졌다는 사례가 전한다. 달빛과 수면 반사, 젖은 깃의 광택, 가슴 깃의 흰 빛 반사, 수변 미생물 부착 등의 설명이 근세부터 이미 거론되어, 사람들은 자연현상과 요괴담의 경계를 오가며 받아들였다. 노성한 곡괭이왜가리가 계절에 따라 옅은 빛을 띤다거나, 불덩이로 변한다거나, 입에서 불을 뿜는다는 이야기도 병존해, 괴화담·요조담·용등담이 서로 교차하는 것이 특징이다. 공포담이면서도 쏘아 떨어뜨린 뒤에는 그저 새였다고 맺는 결말이 많아, 착각에서 빚어진 괴이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 사와라 친왕

    사와라 친왕

    에픽

    Sawara Shinnō

    숭도천황·오령담 전통판

    유령망령야마토국

    사와라 친왕의 원한이 오령으로 드러났다는 지방과 궁정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 형상. 죄과를 둘러싼 의혹 속에 절식으로 세상을 떠났고, 그 뒤의 역병과 기근, 황통의 병난이 화로 해석되었다. 조정은 수호민 기증, 독경과 수법, 개장과 존호 추증을 거듭하고 오령을 정중히 모셔 화해를 도모했다. 오령은 시비를 바로잡는 영위로 경외되었고, 사찰과 사당에서의 봉제, 절기마다의 법회, 산릉에서의 진사가 이어졌다. 후년에는 숭도천황사를 대표로 제의가 정비되어, 도읍과 야마토 사이에 진호 신앙이 퍼졌다. 원한은 사적 원망을 넘어 정치의 문란과 참언을 경계하는 징표로 받아들여졌고, 위정자는 결백과 공정을 맹세하는 표징으로 희생 제물, 맹서문, 경공양을 행했다. 오령은 거칠게 노하는 면모와, 진혼이 이루어지면 수호로 전환하는 면모를 함께 지닌다.

  • 백분할미

    백분할미

    에픽

    Oshiroi-babaa

    눈밤의 백분할멈

    반인반요북국의 설심이 큰 지역(전승 분포는 불명)

    눈 내리는 밤에 나타나 백분을 바른 듯 희게 보이는 얼굴에 해진 삿갓을 쓰고, 도쿠리를 들고 문앞에 선다. 술이나 단술을 청하며, 조금이라도 내어주면 예를 표하고 물러나지만, 매정하게 대하면 문 두드림과 부름으로 집안을 괴롭힌다. 겨울철의 내방신 관념과 괴담이 교차한 형상을 지니며, 분배와 응대의 예법을 상징하는 존재로 전해진다.

  • 한냐

    한냐

    에픽

    Hannya

    고귀한 생령・백한냐 (로쿠조노 미야스도코로)

    오니・거대 요괴야마토국(현 나라현, 노가쿠 발상지) 및 야마시로국(현 교토부, 설화)의 노가쿠 및 연기(縁起)에 깃든 질투의 귀녀 가면

    수많은 한냐의 변형 중에서도 가장 품격이 높고, 그리고 가장 깊은 심리적 공포를 체현하는 '백한냐(시로한냐)'의 해석판이다. 이 버전의 원형은 『겐지모노가타리』 및 노가쿠 『아오이노 우에』에 등장하는 황족의 비, 로쿠조노 미야스도코로의 영적인 모습이다. 그녀는 절세의 미모와 와카, 한시를 즐기는 지극히 높은 교양을 지녔으며, 자존심이 센 귀부인이었다. 그러나 사랑하는 히카루 겐지의 발길이 뜸해지면서 생긴 고독, 그리고 축제 장소에서 정실인 아오이노 우에의 종자들로부터 겪은 '수레 싸움(소가마 자리다툼)'에서의 결정적이고 공개적인 굴욕으로 인해 그녀의 마음속에 한계를 넘어선 질투와 원한이 싹트고 만다. 무섭게도, 로쿠조노 미야스도코로 본인은 겐지를 원망하지 않으려 이성을 유지하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무의식 속에 억눌린 거대한 정념이 밤마다 육체를 빠져나가 '생령(이키료)'이 되어 아오이노 우에의 머리맡에 서서 그녀를 저주해 죽이려 하는 것이다. 이 백한냐는 깊은 산속에 사는 야만적인 오니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얼굴의 창백함은 귀족 여성 특유의 고귀함을 나타내는 동시에, 질투의 불꽃에 의해 핏기가 가시고 생명력을 깎아내리는 창백한 고뇌를 표현하기도 한다. 그녀는 난폭한 물리적 공격이 아니라, 병마나 악몽의 형태로 표적의 정신과 육체를 서서히 침식해 들어간다. 노의 무대에서 백한냐가 부서진 수레를 타고 등장하는 모습은 그녀의 산산조각 난 자존심과 깊은 비애의 상징이다. 이 고귀한 생령을 물리치기 위해 검이나 무력은 일절 통하지 않는다. 요카와노 코히지리와 같은 고승이 마를 쫓는 아즈사유미(가래나무 활)의 시위를 울리고, 법화경이나 반야심경을 격렬하게 독경함으로써만 대항할 수 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백한냐가 물러나는 것은, 기도를 통해 조복(힘으로 굴복당함)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독경 소리로 인해 자신의 추악한 귀신의 모습(집착의 죄)을 깨닫고, 법열(불교적인 구원)을 얻어 마음을 가라앉히기 때문이다. 인간 최고봉의 지성이 너무나도 쉽게 마물로 전락해 버리는 연약함과, 마지막에는 깨달음을 통해 구원받는다는 일본 불교의 정신성을 완벽하게 드라마화한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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