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생석은 도치기현 나스유모토 온천 곁에 있는 커다란 용암 덩어리로, 가까이 다가온 생물의 목숨을 앗아가는 독석으로 예로부터 두려움을 사 왔다. 일대는 화산 분기 지대로, 땅의 갈라진 틈에서 황화수소와 아황산가스[1] 같은 유독한 화산 가스가 끊임없이 뿜어져 나온다. 이 가스들은 공기보다 무거워 움푹한 곳에 고이기 때문에, 곁에 다가온 새나 벌레, 작은 짐승이 중독되어 죽고 만다. 생물을 죽이는 돌이라는 뜻에서 「살생석」이라 불리게 되었다.
초목도 자라지 않는 유황 냄새 나는 황무지는 「사이노카와라」라 불리며 무수한 지장보살이 늘어서 있다. 1689년에 이곳을 찾은 마쓰오 바쇼는 『오쿠노호소미치(깊은 곳으로의 좁은 길)』[2]에, 독기 탓에 벌과 나비 따위가 모래땅의 빛깔도 보이지 않을 만큼 겹겹이 쌓여 죽어 있었다고 적어 남겼다. 전설에서는 이 돌이 토벌당한 구미호(다마모노마에)의 화신으로 여겨지지만, 그 이야기는 따로 자세히 다룬다.
민화・전승
살생석을 둘러싼 전승의 절정은 무로마치 시대 겐노 화상에 의한 퇴치이다. 각지에 절을 연 조동종 승려 겐노 신쇼는 1385년에 나스를 찾아, 독석에 들러붙은 요호의 원념을 법력으로 제도하고 큰 망치로 돌을 깨부수었다고 전한다. 목수가 쓰는 쇠망치를 「겐노」라 부르는 것은, 이 화상이 살생석을 쳐서 깬 고사에서 비롯한 것으로 여겨진다 [3].
쳐서 깨진 돌은 셋으로 갈라져, 그 조각이 일본 각지로 날아갔다고 한다. 특히 「다카다」라는 지명의 고장—미마사카 다카다(오카야마현 마니와시), 에치고 다카다(니가타현 조에쓰시), 아키 다카다(히로시마현)—에 떨어졌다고 전해진다. 날아간 조각이 각지의 빙의물로 화했다 하여, 히다의 고보다네, 시코쿠의 이누가미, 고즈케의 오사키의 기원을 살생석에 결부 짓는 전승도 있으나, 이는 고장마다 제각각이어서 일정하지 않다.
요괴로서 그림에 그려지기도 하여, 도리야마 세키엔은 『곤자쿠 햣키 슈이』[4](1781)에 살생석을 한 폭으로 실었다.
살생석은 지금도 나스를 대표하는 명소로, 2014년에는 마쓰오 바쇼와 인연이 깊은 「오쿠노호소미치의 풍경지」의 하나로서 국가 명승[1]으로 지정되었다. 2022년 3월에는 그 살생석이 둘로 갈라진 것이 발견되어 화제가 되었다. 나스마치는 몇 해 전부터 균열이 보였다 하여 자연히 갈라진 것으로 보고 있으며, 지역에서는 시메나와를 다시 걸고 진혼 의례를 올렸다.
이 판에서는 독석으로서의 살생석이 노 무대와 신앙의 장에서 어떻게 이야기되어 왔는지를 살핀다. 요쿄쿠 『살생석』[5]에서는 떠도는 승려 겐노가 나스노에서 돌에 다가가자, 한 마을 여인이 나타나 돌의 유래를 이야기하고, 이윽고 돌이 갈라지며 그 속에서 여우의 영이 모습을 드러낸다. 영은 생전의 악행을 뉘우치고, 승려의 법력으로 구원받아 성불을 약속하며 사라져 간다. 여기서 살생석은 그저 사람을 죽이는 돌이 아니라, 길 잃은 혼이 깃들어 천도로써 진정되는 대상으로 그려져 있다.
살생석 둘레는 초목도 자라지 않고 유황 연기가 자욱한 황량한 땅으로, 예로부터 「사이노카와라」라 불리며 죽은 이를 천도하는 무수한 지장보살이 늘어서 있다. 바로 곁에는 나스 온천 신사가 자리하여, 해마다 5월의 고신카 축제에서는 신사의 불을 돌 앞까지 옮겨 산의 불과 돌의 영험을 진정시키는 신사(神事)가 행해진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살생석의 무서움은 돌 자체가 의지를 지니고 움직인다기보다, 「여기서 더 들어가면 목숨을 잃는다」는 경계(境)의 감각에 뿌리내리고 있다. 독기가 가득한 일대 그 자체가 사람의 세상과 저승의 사이처럼 두려움을 사며, 그 경계를 침범하는 자에게만 재앙이 미친다고 여겨져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