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zen Province 火の国・松浦の海。古代肥前国の妖怪

磯撫で・ひょうすべ・神社姫・精霊風。風土記と不知火が照らす旧国の怪

火の国・松浦の海。
古代肥前国の妖怪

Hizen Province · ひぜ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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肥前国(ひぜんのくに)は、いまの佐賀県と長崎県をあわせた古代の一国である。もとは肥後とひとつづきの「肥国(ひのくに)」── すなわち火の国だった。七世紀の末、この火の国は都に近い側の肥前(ひのみちのくち)と、遠い側の肥後(ひのみちのしり)とに分かたれ、肥前国が立つ。その名の由来を、奈良時代初期に編まれた『肥前国風土記』は、夜の山に天から火が降りた怪異の記憶として書きとめている。火の国 ── 肥前は、その起こりからして怪火を名に負った土地なのである。

地理を見れば、肥前は二つの海にはさまれている。北は朝鮮半島・大陸へ開けた荒い外海・玄界灘。南は干満差が日本最大級にもなる遠浅の泥海・有明海。そのあいだに佐賀平野が低く横たわり、多良岳(たらだけ)の山塊が両海をへだてる。北の海には松浦(まつら)の海の武士団が割拠し、南の海には景行天皇を導いた不知火が灯った。海と火と古代の記憶 ── 本稿は、現代県としての佐賀県の妖怪事典長崎県の妖怪事典が個別の怪を深く語るのに対し、その両県の母胎である「火の国・松浦の海」という古代肥前の地層をたどり、そこに像を結んだ四つの妖異を訪ねていく。

火の国・肥前という古代

肥前国の妖怪を理解するには、まずこの国が「火の国」であったことから始めねばならない。『肥前国風土記』によれば、肥前はもと肥後と合わせて一つの国であり、のちに前後に分けられた。風土記が語る国名の由来はこうである ── 崇神天皇の御代、肥国の益城(ましき)に打猿(うちさる)・頸猿(くびさる)という二人の土蜘蛛が一八〇余人を率いて朝命に背いた。天皇は火の君の祖・健緒組(たけおぐみ)に討伐を命じ、健緒組が土蜘蛛をことごとく平らげて国を巡視したところ、夜、八代郡の白髪山に宿った折に天から火が燃え下り、おのずと山を焼いた。健緒組がこの不思議を奏上すると、天皇は「火の下った国は火の国と呼ぶがよい」と告げ、健緒組に火の君の姓を賜って治めさせた。

火が天から降って国の名となる ── この始原の怪火の記憶が、のちに肥前・肥後を貫く「火」の主題の根になった。風土記はまた、各郡の地名起源を語るなかで、しばしば土蜘蛛や女首長(おんなしゅちょう)の物語を交える。中央の王権に従わぬ在地の者を「土蜘蛛」と呼ぶこの記述群は、古代肥前が朝廷から見て辺境の、まつろわぬ異形の住む地と意識されていたことを示している。妖怪以前の「異類の記憶」が、すでに八世紀の公的な地誌に書きこまれているのである。

肥前の北辺・松浦の地名にも、古い物語が宿る。『古事記』は、神功皇后が筑紫の末羅県(まつらのあがた)・玉島の里の河のほとりで食事をした折、四月の上旬に裳(も)の糸を抜いて飯粒を餌とし、河の年魚(あゆ)を釣ったと伝える。以来、四月になると女たちが裳の糸で鮎を釣る習わしが続いたという。この珍(めず)らしい出来事から、土地を「梅豆羅(めずら)の国」と呼び、それが訛って「松浦」になったと説話は語る ── もっとも『魏志倭人伝』はすでに弥生期にこの地を「末蘆国」と記しており、地名は神功皇后より古い。後付けの地名起源譚であるにせよ、皇后の伝説を呼び寄せるだけの磁力が、古代から松浦の海にはあった。

そしてその松浦の海を、中世には武士団が支配する。嵯峨源氏の末流を称する一族が平安後期から土着し、やがて松浦党(まつらとう)── 松浦四十八党とも呼ばれる連合を形成した。大陸・半島に近いという地の利から、彼らは武装した交易者となり、水軍となり、ときに海賊とも目された。源平の海戦に加わり、文永・弘安の二度の元寇では元軍の船に奇襲を仕掛けて応戦した。海に生き、海で戦い、海の彼方の異国と渡り合う ── 松浦党の存在は、肥前北辺の海がどれほど外界に開かれ、どれほど荒々しい場であったかを物語る。その海から、姿なき海の怪が立ち上がる。

不知火の海 ── 景行天皇の神話

火の国の名を決定づけたのは、風土記の健緒組の話だけではない。より広く知られるのは、『日本書紀』景行紀の伝える、もうひとつの火の物語である。

景行天皇が熊襲(くまそ)を平定して筑紫の国々を巡ったとき、葦北(あしきた)から船出して火の国へ渡ろうとした。海上で日が暮れ、夜の闇に方角を見失う。そのとき、はるか遠くに赤々と燃える火が一つ現れた。天皇はその火を目あてに舵を取らせ、船は無事に岸へたどり着く。上陸して土地の者に「あれは誰が灯した火か」と問うても、誰一人として知る者がない。誰も知らぬ火 ── そこからこの火を「不知火(しらぬひ)」と名づけ、火の国の名の由来にも結びつけられた、と書紀は記す。

火が天皇を導き、その火を誰も知らぬ。この神話の構図こそ、有明海・八代海に近世まで語りつがれた怪火・不知火の原型である。不知火は旧暦八月一日(八朔)前後の風弱い夜、沖に親火が生じ、それが左右に分かれて数を増し、横一線に連なって現れる現象として恐れられた。近づこうとすれば遠ざかり、海面近くからは見えにくく高所からよく見える ── 漁師たちはこれを尋常ならぬものと信じ、その夜の出漁を忌んだ。神話に淵源をもつ火が、千数百年を経て漁村の暦のなかに降りてきたのである。今日では大気の異常屈折による蜃気楼の一種と解されているが、その火が「火の国」という一国の名を生んだという来歴は、肥前・肥後という旧国の地層に深く刻まれている。

この不知火が近世の有明海ぞいで具体的にどう語られ、八代海の永尾剱神社でいかに観望されたかは、現代県の佐賀県の妖怪事典が詳しく扱う。ここで押さえておきたいのは、肥前という旧国そのものが、その始まりにおいて「火に導かれて開かれた国」だったという一点である。土地の名に怪火が刻まれた国 ── それが古代肥前の出発点だった。

玄界灘の海の怪 ── 磯撫で

火の物語が南の有明海に属するとすれば、北の玄界灘・松浦の海が生んだのは、姿を見せぬ海の怪である。荒い外海と、その海で生きる松浦の船乗りたちの恐れが、一匹の怪魚に結晶した。

이소나데

Isonade

이소나데는 서일본 연안에 전해지는 바다의 요괴로, 생김새는 상어를 닮았으나 꼬리 지느러미에 무수한 가는 바늘이 돋아 있다고 한다. 북풍이 강하게 불 때 나타나 바다 표면을 스치듯 다가와, 눈에 띄지 않게 꼬리의 바늘로 배 위의 사람을 걸어 바다로 떨어뜨리고 삼킨다고 전한다. 에도의 기담집 『그림책 백물어』와 본초서에도 기록이 보이며, 이름은 바다를 쓰다듬듯 움직이는 모습 혹은 사람을 습격하는 방식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선원에게는 막기 어려운 재액의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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磯撫で(いそなで)は、外見はサメに似るが、尾びれに無数の細かい針を備えるとされる海の怪である。北風が強く吹く折に現れ、海面を撫でるように音もなく近づき、人目につかぬまま尾の針で船上の人を引っ掛けて海中へ落とし、呑み込むという。肥前松浦では、海の色がふと変わり、仰ぐような風を感じたとき、すでに磯撫での尾が海面に現れている前触れとされた。姿は人を襲う刹那まで見えず、気づいた時には尾の針に絡め取られている ── この「見えなさ」こそが、磯撫でを海難そのものの擬人化に近いものにしている。

この怪を後世に伝えたのは、天保12年(1841)の桃山人作・竹原春泉斎画『絵本百物語(桃山人夜話)』である。同書は「礒撫(磯撫で)」の名を肥前松浦の沖に結びつけ、その姿をフカ(大鮫)に擬し、尾を上げて船人を撫で海へ引き込むと描いた。古い本草書には巨口鰐(おおぐちわに)の名でも見え、三重県熊野地方では海辺の変死に際し「磯撫でに撫でられた」と語られた例もある。だが、その名と最も濃い縁をもつのは、絵師たちが描いた西海 ── ほかでもない肥前松浦の沖だった。

なぜ松浦の海がこの怪を呼んだのか。それは、ここが大陸・半島へ向けて船を出しつづけた外海だったからにほかならない。松浦党が水軍として外洋を駆け、漁民が荒い玄界灘へ漕ぎ出す土地では、北風の日の海難は日常の恐怖だった。突風に船が傾き、人が波にさらわれて二度と帰らぬ ── その不可解で理不尽な消失を、人びとは「海面を撫でて人を連れ去る、姿なきサメ」のかたちに像を結んだ。磯撫では、火の国の南の不知火と対をなす、北の海の妖異である。一方は人を導く火、もう一方は人をさらう魚 ── 肥前を挟む二つの海は、ちょうど正反対の海の怪を生み出したのである。

田と川の河童 ── ひょうすべ

海から内陸へ目を転じよう。佐賀平野を縦横に走る川と、低湿の田の世界には、九州ならではの毛深い河童 ── ひょうすべが棲んでいた。

효스베

효스베

효스베는 규슈 각지에 전해지는, 물가에 깃든 털 많은 요괴다. 갓파와 같은 무리, 혹은 가까운 친족으로 여겨지며, 춘분·추분 무렵이면 강에서 산으로 오간다고도 한다. 「효—효—」 하고 새처럼 우는 데서 그 이름이 붙었다고 전한다. 가지를 즐겨 먹어, 그해 첫 가지를 바치는 풍습이 일부 지방에 남아 있다. 인가의 욕조에 몰래 들어가 물을 쓰고 나면 그 뒤의 물에 짐승 털 같은 체모가 잔뜩 떠 있었다는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있으며, 그 모습을 본 사람은 열병에 걸린다고도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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ひょうすべ(へうすへ)は、河童と同類、あるいは近い仲間とされる毛深い妖怪である。「ヒョーヒョー」と鳥のように鳴くことから名がついたといい、彼岸のころには川から山へと行き来するとも伝わる。佐賀や長崎では、河童をガワッパ・ガアタロと呼ぶ一方、ひょうすべ・ヒョウスボなどさまざまに呼び分け、その境界はしばしば入り混じった。茄子(なす)を好み、初物の茄子を供えて機嫌をとる習俗が一部に残った。もっとも知られるのが、湯と馬にまつわる祟りの話型である。毛深いひょうすべが浸かったあとの風呂の湯には大量の体毛が浮き、その湯に馬が触れて死んだ、湯を抜いた者が祟られて馬を殺された、という話が各地に伝わる。

肥前でこの河童が特別なのは、確かな縁起と祀る場所をもつ点にある。肥前の軍記『北肥戦誌』の伝えるところでは、その名は「兵主部(ひょうすべ)」── すなわち兵部(つわものべ)に支配された者の意で、天平年間の春日大社造営の折に職人が秘術で命を吹き込んだ人形が、用済みののち川へ捨てられて河童と化したものという。橘氏の祖が勅命を受けてこれを鎮め、以来ひょうすべと呼ばれた。後世、橘氏の末裔・橘公業(たちばなのきんなり)が嘉禎3年(1237)に伊予から肥前武雄へ移り住んで潮見城を築いた際、ひょうすべもまた主に従い、潮見川へ移ってきたと語られる。武雄市の潮見神社は、その河童を祀る社として知られる。妖怪が、人形から生まれ、武家の移住に従って土地を移り、ついには社に祀られる ── この縁起のもつ具体性こそ、ひょうすべが肥前の暮らしにどれほど深く根を張っていたかの証である。

「見ただけで必ず死ぬ」といった過激な言い方は後世の誇張で、本来は家のなかの衛生や禁忌、そして田の神信仰と結びついて穏やかに語られた、暮らしのそばの妖怪だった。彼岸に川と山を行き来するという伝えは、水神でありながら田の神・山の神とも通じる、農の循環の守り手としての性格をうかがわせる。火の国の海に磯撫でが棲んだとすれば、その内陸の田と川には、退治される害でありながら土地を見守る神でもある、両義の河童が棲んでいたのである。

龍宮の予言姫 ── 神社姫

ふたたび肥前の海へ。だが今度は、人をさらう怪ではなく、人に未来を告げる怪である。災いを予言し、その姿を写し見ることで難を逃れさせるという予言獣 ── 神社姫が、肥前の浜に現れた。

신사히메

Jinjahime

에도 후기에 히젠국의 바닷가에 나타났다고 전해지는 예언수(予言獣) 계열 인어형 요괴. 얼굴은 사람이고 몸은 물고기이며, 배는 붉고, 두 개의 뿔과 삼지창 모양의 꼬리를 지녔다고 한다. 스스로를 “용궁에서 온 사자, 신사히메”라 칭하며 풍년 뒤에 유행병 ‘코로리’가 퍼질 것을 알리고, 자신의 모습을 베낀 그림을 보면 화를 면하고 장수를 얻는다고 선언했다. 『아고로모(我衣)』 등에 판본과 모사 그림에 관한 문구가 남아 있으며, 부적으로 각 가정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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加藤曳尾庵の随筆『我衣』によれば、文政2年(1819)4月、肥前の浜に全長二丈余(約六メートル)の異魚が現れた。顔は人、体は魚、腹は紅色、二本の角と三つ叉の剣形の尾をもつ。自らを「龍宮よりの使者・神社姫」と名乗り、向こう七年の豊作と、その後に流行する病「ころり」を予言し、わが姿を写した絵を見れば疫を避け長寿を得られると告げて去ったという。「ころり」は急激に人を死に至らしめる流行病で、のちのコレラや赤痢を思わせる。この文言と図は瓦版として板行され、行商の手で各地へ広まり、護符として家々の柱や戸口に掲げられた。類例として平戸の「姫魚」、越後の「大神社姫」「人魚之図」などがあり、いずれも出現と予言、そして写し絵の効験を唱える点で共通する。

神社姫が妖怪史において重要なのは、それが疫病退散の妖怪として近年世界的に再注目されたアマビエの、約四半世紀前を行く先行例だという点である。出現を告げ、豊凶と疫病を予言し、写し絵に効験を宿す ── この予言獣の型は、弘化3年(1846)に肥後の海に現れたとされるアマビエへと受け継がれていく。アマビエが肥後(熊本)なら、神社姫はその隣、肥前(佐賀・長崎)の海から生まれた。かつて一つの火の国だった肥前と肥後の海が、予言する海の女怪を続けて世に送り出したことになる ── これは偶然ではあるまい。海の彼方に龍宮があり、そこから使者が訪れて未来を告げるという信仰は、半島と大陸へ開けた九州西岸の沿岸文化に深く根ざしている。

その古い海の信仰が、近世の商業出版という新しい器を得て、疫病という人びとの最大の不安を妖怪のかたちで流通させた。文政2年の浜は史料の上では「肥前」とのみ記され、平戸沖とする伝えもある。佐賀・長崎の県境にまたがる肥前の海全体が、この姫の故郷だといってよい。予言獣としての神社姫がアマビエへ連なる系譜の細部は、現代県の佐賀県の妖怪事典がさらに詳しく辿っている。

盆に吹く精霊風

最後に、姿をもたない妖異を一つ。肥前の海辺、とりわけ長崎の島嶼にかけては、盆に吹く不吉の風 ── 精霊風が伝わる。

정령바람

Shōrōkaze

정령바람은 백중(오본) 마지막 날인 16일 아침에 분다고 여겨지는 불길한 바람이다. 실체는 없지만 이 바람을 맞으면 갑작스런 발열, 오한, 어지럼증 같은 액운이 따른다고 두려워했다. 여기서 말하는 ‘정령’은 불교에서의 망자 넋(쇼로)을 뜻하며, 오본에 돌아오는 혼을 실어 나르는 바람으로 해석된다. 고토에서는 이날 무덤과 묘로 가는 길에 가까이하지 않는 풍습이 있어, 영에 의한 탈을 피하는 금기로 지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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精霊風(しょうろうかぜ)は、盆の十六日の朝に吹くとされる風である。実体はなく、当たると急な発熱や悪寒、ふらつきといった災厄を招くと畏れられた。ここでの「精霊(しょうろう)」は、仏教でいう死者の霊を指す。盆に帰っていた死者の霊が、十六日にあの世へ戻る ── その霊を運ぶ風が精霊風だと解されたのである。だから人びとはこの日、霊の通り道を避けた。五島では墓や墓道へ近づかない忌みが守られ、壱岐では病をもたらす風を死霊風・生霊風と呼び分け、生霊風は胸苦しさを生むという例も報告されている。風そのものが、見えない霊の往来の痕跡として受けとめられていたのである。

各地に魔風と総称される信仰があり、清川ダシやヤマジ、一目連の風のように、局地的な突風が災厄の由来と解された例は全国に珍しくない。だが精霊風が際立つのは、それが盆という死者と生者が往き来する暦の節目に、ぴたりと重ねられている点である。火の国の海に灯る不知火、その海から現れる神社姫、玄界灘で人を撫でる磯撫で、川辺のひょうすべ ── 古代肥前の妖怪はみな海と水と土地に棲んだが、精霊風はそのなかでただ一つ、空間ではなく時間の境界に吹く風として、この系譜を静かに締めくくる。

結び ── 火の国の地層に立つ怪

こうして古代肥前の四つの妖異を並べると、一本の軸が見えてくる。すべては「火の国・松浦の海」という旧国の地層の上に立っている。風土記が天降る火に名づけた火の国、書紀の不知火が景行天皇を導いた海、神功皇后の鮎釣りと松浦党の水軍が往き来した外海 ── その古代の記憶のなかに、玄界灘の磯撫で、佐賀平野の田と川のひょうすべ、龍宮の使者・神社姫、盆の精霊風が、それぞれの位置を占めている。

肥前は七世紀の末に肥後と分かたれ、近世には佐賀(鍋島)と長崎(対外貿易の窓)という、性格の異なる二つの世界へと枝分かれしていった。化け猫が騒いだ佐賀城の奥座敷も、豊玉姫が龍に還った対馬の海宮も、もとはこの一つの火の国から育った枝である。現代県のそれぞれの怪は佐賀県の妖怪事典長崎県の妖怪事典が深く語る。だがその根をたどれば、いつも「火に導かれて開かれた国」── 古代肥前の海と火の記憶に行き着く。妖怪を訪ねることは、土地の最も古い名と、その名を生んだ怪火の記憶を読みなおすことにほかならない。

Hizen Province의 모든 요괴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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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소나데

    이소나데

    에픽

    Isonade

    이소나데(전통담 준거)

    수중정령히젠 마쓰우라를 비롯한 서일본 근해

    에도기의 기담과 본초 기록을 바탕으로 한 이소나데 상을 정리한 판본. 수면을 어지르지 않고 다가오며 바다빛이나 바람의 변화를 징조로 드러낸다는 점을 중시한다. 몸은 상어와 유사하고 꼬리에서 등까지 거칠게 솟은 돌기와 바늘 모양 기관을 지녔다고 전해진다. 나타나는 철은 찬바람이 서는 때가 많아 특히 북풍이 강한 날 경계되었다. 뱃사람들은 떠들썩한 작업을 피하고 그물과 밧줄을 정리하며 갑판 가장자리로 몸을 기대지 않는 등 해난 회피의 작법과 함께 전승했다. 고장마다 명칭과 세부는 흔들리나 핵심은 ‘눈치챘을 때는 이미 늦다’는 보이지 않는 접근과 꼬리의 일격으로 떨어지는 공포다. 근세의 기록은 해상 위험 인식과 계율담으로서의 성격도 보여 준다.

  • 후지와라노 히로츠구

    후지와라노 히로츠구

    에픽

    fujiwara-no-hirotsugu

    어령 신앙의 전조가 된 반란자의 영

    영·망령히젠국 마쓰라군(현 사가현 가라쓰시 주변) / 카가미 신사

    이 판본의 후지와라노 히로츠구는 원령이 되기 전의 정치사를 짊어지고 있다. 그는 처음부터 괴물이었던 것은 아니다. 후지와라 씨의 일원으로 중앙 정치에 관여하다가 정쟁 속에서 다자이후로 멀어지게 되고, 기비노 마키비·겐보에 대한 비판을 내걸고 군사를 일으켰다. 원령성은 그 패배 이후에 생겨난다. 히로츠구의 난은 도읍의 권력 투쟁이 규슈의 군사 공간으로 옮겨진 사건이다. 다자이후는 외교와 군사의 요충지였으며, 그곳에 놓인 히로츠구의 불만은 단순한 개인 감정으로 끝나지 않는 확산을 가졌다. 병사를 모으고 쫓기고 사로잡혀 처형된다. 반란의 줄거리는 짧지만 그 후에 남는 영적인 그림자는 길다. 이 판본에서 중요한 것은 원령을 '사후에 갑자기 발생하는 유령'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일본의 어령 신앙에서는 정치적인 부정, 원통한 죽음, 역병이나 재해에 대한 두려움, 진혼 의례가 얽혀 영위가 만들어진다. 히로츠구는 훗날 사와라 친왕이나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로 이어지는 구조를 이른 시기에 보여주는 인물로 읽을 수 있다. 즉 그는 어령 신앙의 전조이다. 카가미 신사에 관련된 전승은 중앙의 반란자가 지역의 신령으로 변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도읍에서 패배한 인물의 이름이 규슈의 토지에 남아 제사나 전승 속에서 진혼된다. 역사의 중심에서 배제된 자가 주변의 토지에서 다른 중심을 얻는다. 이 반전은 YOKAI.JP의 장소 기사와도 잘 맞는다. 겐보와의 인연은 히로츠구를 이야기화하는 강한 실이다. 정적으로 지목한 승려의 말년의 불행을 히로츠구 영의 작용으로 읽는 이야기는 사실의 확인과는 별개로 원령담의 상상력을 보여준다. 원한은 곧장 상대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정치·종교·병의 불안을 끌어들이며 이야기된다. 현대의 카드나 진단에서는 히로츠구를 화려한 괴물이 아니라 기록의 행간에 남는 압력으로 표현하는 것이 좋다. 갑옷보다도 다자이후의 어두운 청사, 해변의 처형장, 찢겨진 상표, 거울 신사, 먼 도읍을 향한 시선이 어울린다. 그는 승자의 이야기에 지워질 뻔한 자가 영으로서 역사로 돌아오는 틀을 보여주고 있다. 히로츠구는 원령으로서의 모습이 화려하게 고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정성스럽게 쓸 가치가 있다. 모습이 모호한 영은 자료의 얄팍함이 아니라 역사의 층으로서 표현할 수 있다. 정사에 기록된 반란, 지역에 남는 제사, 정적과의 인연이 조금씩 겹쳐 윤곽이 뚜렷하지 않은 압력이 된다. 그곳이 그의 무서움이다. 어령 신앙의 페이지군에서는 히로츠구는 도입과 심층 탐구 모두에 어울린다. 사와라 친왕으로 가면 황위 계승의 비극,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로 가면 학문의 신으로의 전환, 타이라노 마사카도로 가면 동국의 무위가 보인다. 그 전 단계에 히로츠구를 두면 원령이 어떻게 정치사에서 생겨나는지를 보다 긴 시간 축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 판본을 카드화한다면 얼굴을 무섭게 과장하기보다는 찢겨진 상표, 먼 도읍을 향하는 바다, 카가미 신사의 사전, 추토군의 그림자를 조합하고 싶다. 히로츠구는 괴물 같은 외형보다 기록과 기억 사이에 서 있는 영이다. 그 절제된 어두움이 YOKAI.JP의 중후한 원령 라인에 맞는다.

  • 효스베

    효스베

    드문

    효스베

    규슈 강가의 털 갓파, 효스베

    물의 요괴규슈 (규슈 강가의 털 많은 갓파 무리·각지)

    이 판본에서는 효스베가 「집안의 금기」와 깊이 결부된 규슈형 갓파라는 점을 살펴본다. 갓파 이야기 대부분이 강이나 깊은 못을 무대로 삼는 데 비해, 효스베의 이야기는 욕실과 목욕탕, 그리고 마구간 안으로 파고든다. 털 많은 효스베가 쓰고 난 목욕물은 체모가 떠 더럽혀진 것으로 여겨져, 그 물에 닿은 말이 쓰러진다거나, 물을 함부로 빼낸 자가 앙갚음을 당해 말을 잃는다는 이야기가 각지에 전한다. 목욕물을 언제 빼는가, 누가 쓰는가 — 그러한 생활의 법도에 대한 경계가 효스베의 재앙이라는 형태로 이야기된 것이다. 밭에서는 가지를 즐겨 망친다 하여, 첫 가지를 바쳐 비위를 맞추었다. 「효—효—」 하는 새 같은 울음소리는 그 이름의 유래라고도 한다. 에도 시대의 『百怪図巻』과 『画図百鬼夜行』에 그려진, 털북숭이에 대머리인 우스꽝스러운 모습은 두려움보다는 오히려 사람의 생활 바로 곁에 깃든 친근한 요괴로서의 효스베를 잘 전해 준다.

  • 신사히메

    신사히메

    드문

    Jinjahime

    전승판(히젠·분세이 출현)

    수중정령히젠국(현 나가사키현·사가현)

    가토에비안의 『아가ころ모(와がころ모)』에 전사된 판행 문언을 바탕으로 한 상. 인면, 두 개의 뿔, 붉은 배, 세 검 형태의 꼬리를 특징으로 하며, 용궁의 사자로 나타나 풍요와 역병 유행을 알렸다고 전한다. 모습의 베껴 그린 그림을 문에 붙이거나 배관하면 재난을 물리치고 연명을 돕는 효험이 있다고 선전되어 각지에 도상이 유포되었다. 히라도의 ‘히메우오’나 에치고의 유사 예는 도상과 글귀가 유사하여, 당시 민간의 역병 대처 신앙 실천과 출판 유통의 결절점으로 이해된다. 기원을 구체적 생물에 비정하려는 설도 있으나 확증은 없고, 민속적으로는 예언수(아마비에·아마비코 등)와 동계의 기능을 맡은 존재로 취급된다.

  • 정령바람

    정령바람

    드문

    Shōrōkaze

    정령풍(전승판)

    기상재해령나가사키현 고토 지방

    정령풍은 형체 없는 바람으로 전해지며, 스친 이에게 갑작스런 오한과 발열, 현기증을 일으킨다고 한다. 특히 오봉 열엿새 아침에 분다는 시기성이 중요시되며, 여기서의 정령은 조상이나 인연 없는 망자의 혼을 뜻한다. 귀유와 송혼의 경계에서 현세를 건너는 영기를 실어 나르는 바람으로 이해된다. 고토에서는 그날 묘지와 묘도로를 피하고 외출을 삼가는 금기가 철저히 지켜진다. 이키에서는 병을 바람이 붙은 것으로 보아, 묘지 유래는 사령풍, 산 자의 원한 유래는 생령풍이라 부르기도 한다. 각지의 마풍 신앙과 동계로, 계절성 피로와 돌풍 같은 자연 조건이 민간의 설명 틀과 겹치며 영장으로 전승되어 왔다. 요괴로서의 능동적 악의는 전해지지 않으며, 날짜와 장소를 그르는 사람에게 재앙이 미친다는 금기의 형태로 경계하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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