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설명
다누키는 동물로는 학명 _Nyctereutes procyonoides_ 인 너구리류이며, 혼슈와 에조의 일본 아종을 포함하는 아시아 재래종입니다. 일본 환경성의 2022년 다누키·여우·오소리 서식 분포 조사[1]에 따르면 오키나와현을 제외한 일본의 넓은 지역에 서식합니다. 요괴로는 여우와 함께 일본 동물 변신담의 양대 대표로 여겨집니다. “여우는 일곱 번 변하고 다누키는 여덟 번 변한다”는 속담은 다누키가 여우보다 한 단계 더 많은 변신 능력을 지닌다고 말합니다. 가장 이른 문헌 단서는 《일본서기》 627년 조의 “무쓰국에 무지나가 있어 사람으로 변해 노래했다”는 기록[2]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다만 고전 문헌에서는 다누키, 무지나, 마미, 그리고 여러 한자 표기가 지역과 시대에 따라 자주 뒤섞였습니다. 1924년의 “다누키·무지나 사건” 무죄 판결[3]은 이 혼동이 법정 문제로까지 이어졌음을 보여 줍니다. 바케다누키의 능력에는 머리에 잎을 얹고 변신하기, 달밤에 배를 두드리는 하라쓰즈미, “여덟 다다미” 크기로 늘어나는 음낭을 방·그물·우산·무기로 쓰기, 그리고 일곱 변신 또는 여덟 변신이 있습니다. 에도 시대 우타가와 구니요시와 쓰키오카 요시토시는 다누키를 강한 시각 이미지로 만들었습니다. 유명한 전승은 시코쿠, 사도, 아와지에 몰려 있습니다. 아와의 큰 다누키에는 긴초 다누키[4], 로쿠에몬, 다사부로가 있고, 사도에는 단자부로 다누키[5], 아와지에는 시바에몬 다누키[6]가 있습니다. 또 두 가지 틀이 함께 쓰입니다. 삼대 다누키 전설은 이누가미 교부[7], 모린지 분부쿠 차가마[8], 쇼조지 다누키바야시이고, 일본 삼명리狸는 단자부로, 다사부로, 시바에몬입니다. 메이지 이후 시가라키 도자기 다누키는 1951년 쇼와 천황 행차와 어제시를 계기로 전국적으로 알려졌고[9], 1952년의 “팔상연기” 설명을 통해 오늘날 가게 앞의 길상물로 굳어졌습니다. 전후 대중문화에서는 다카하타 이사오의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1994)[10]이 전국의 이름난 다누키를 불러 모았고, 모리미 도미히코의 《유정천 가족》(2007)[11]은 교토를 다누키와 여우 가족이 함께 사는 도시로 그렸습니다.
민화・전승
다누키, 무지나, 마미라는 얽힌 이름들. 다누키를 이해하려면 먼저 이름과 글자를 풀어야 합니다. 한자 狸는 중국에서 원래 들고양이나 삵류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았지만, 일본에서는 다누키를 쓰는 글자가 되었습니다. 근대 동물학 용어가 자리 잡기 전에는 다누키, 무지나, 마미와 여러 표기가 문헌과 방언에서 섞였고, 어떤 지역에서는 오소리나 사향고양이, 너구리를 모두 무지나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일본서기》 627년 조[2]의 “무쓰에 무지나가 있어 사람으로 변해 노래했다”는 기록이 정확히 오늘날의 너구리를 뜻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1924년 다누키·무지나 사건[3]에서 사냥꾼은 무지나는 다누키가 아니라고 믿었다고 주장했고, 고의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가 되었습니다. 이름의 혼란은 문헌 속 문제만이 아니었습니다.
고전 속 바케다누키. 《일본서기》 627년 조[2]는 변신하는 다누키 또는 무지나의 가장 이른 기록으로 자주 인용됩니다. 《곤자쿠 이야기집》 권27 제22화[12]에서는 사냥꾼의 늙은 어머니가 귀신으로 변해 아들을 잡아먹으려 하지만, 아들이 쏘아 죽이고 보니 정체가 늙은 다누키였다고 합니다. 오래 산 짐승이 요괴가 된다는 생각을 분명히 보여 주는 이야기입니다. 《일본영이기》, 《우지슈이 이야기》, 《고금저문집》에도 다누키와 무지나의 변신담이 보입니다. 에도 요괴화에서는 도리야마 세키엔의 《화도백귀야행》(1776)[13]에 다누키 그림이 실려, 차가마를 들여다보는 승려 모습 다누키 도상의 이른 사례로 여겨집니다.
능력 목록. 다누키의 재주는 다양합니다. 하라쓰즈미는 달밤에 배를 두드려 장단을 내는 소리로, 쇼조지 다누키바야시 전설[14]과 이어집니다. “여덟 다다미” 음낭은 방, 절의 대청, 우산, 그물, 무기로 변한다고 여겨졌습니다. 이는 에도 시대 금박 장인이 다누키 가죽에 금을 싸서 얇게 두드려 넓힌다는 기술담에서 나온 과장으로 설명됩니다. 실제 너구리의 몸과는 상관없는 문화적 상상입니다. 다누키는 머리에 잎을 얹고 변신하고, 죽은 척하거나 잠든 척하는 다누키네이리도 하며, 여우보다 한 단계 많은 여덟 변신을 지닌다고 여겨집니다.
시코쿠, 사도, 아와지의 이름난 다누키. 바케다누키 전승은 서일본에 강하게 모입니다. 도쿠시마 고마쓰시마의 긴초 다누키[4]는 로쿠에몬과 벌인 아와 다누키 전쟁의 중심이고, 야시마의 다사부로는 미노야마 다이묘진으로 모셔집니다. 사도의 단자부로 다누키[5]는 무이자로 돈을 빌려 주는 의리 있는 두목 다누키로, 후타쓰이와 다이묘진에 모셔졌습니다. 아와지의 시바에몬 다누키[6]는 미쿠마산에 살며 달밤에 배를 두드리고, 사람으로 변해 오사카에서 가부키를 보다가 개에게 물려 죽었다고 합니다. 일본 삼명리狸는 단자부로, 다사부로, 시바에몬이고, 삼대 다누키 전설은 이누가미 교부[7], 모린지 분부쿠 차가마[8], 쇼조지 다누키바야시입니다.
시가라키 도자기 다누키와 근대 이미지. 시가라키야키는 시가현 고카시 시가라키초의 도자기로, 일본 육고요 가운데 하나입니다. 에도 말에도 다누키 도자기는 있었지만, 오늘날의 둥글고 친근한 모습은 20세기에 굳어졌습니다. 1951년 쇼와 천황은 국기를 든 시가라키 다누키들이 늘어선 모습을 보고 노래를 남겼고[9], 이 일이 전국적인 유명세를 가져왔습니다. 1952년 이시다 고쇼는 팔상연기를 설명했습니다. 삿갓은 재난 회피, 큰 눈은 주의 깊음, 웃는 얼굴은 손님맞이, 술병은 먹고사는 덕, 장부는 신용, 배는 침착한 판단, 돈주머니는 재운, 굵은 꼬리는 유종의 미를 뜻합니다. 다누키는 장사의 번창을 비는 수호상이 되었습니다.
여우와 다누키의 지리. 여우와 다누키는 동물 변신담의 두 대표지만, 분포는 다릅니다. 동일본과 동북에는 여우 이야기가 강하고, 시코쿠·사도·아와지 같은 서일본에는 다누키 이야기가 많습니다. 환경성의 2022년 분포 조사[1]는 오키나와에 다누키가 없다는 점도 보여 줍니다. 오키나와의 숲 요괴 역할은 키지무나나 아마미의 겐문이 맡습니다. 동물의 실제 분포와 요괴 지도가 서로 비치는 셈입니다.
불교, 차가마, 다누키 신격화. 불교와 다누키가 만나는 대표 이야기는 군마현 다테바야시의 모린지 분부쿠 차가마[8]입니다. 절 전승에 따르면, 7대 주지 겟슈 쇼초를 모시던 노승 슈카쿠가 1570년 천인 법회에서 아무리 물을 떠도 마르지 않는 차가마를 내놓았고, 훗날 무지나 또는 다누키의 본모습을 드러내고 절을 떠났다고 합니다. 마쓰우라 세이잔의 《갑자야화》는 모린지의 차가마를 기록했고, 이와야 사자나미의 동화판은 고물상이 주운 차가마 다누키가 재주를 부리는 이야기로 널리 퍼졌습니다. 단자부로[5], 긴초, 다사부로, 시바에몬도 다이묘진으로 모셔지거나 존숭됩니다. 일본의 신불습합 세계에서는 다누키도 동물에서 신이 될 수 있습니다.
전후 대중문화. 스튜디오 지브리의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1994)[10]은 다마 뉴타운 개발에 밀려나는 다누키들을 그리고, 다사부로, 6대 긴초, 이누가미 교부[7] 같은 이름난 다누키를 한자리에 모읍니다. 모리미 도미히코의 《유정천 가족》[11]은 교토 다다스 숲과 시모가모 집안을 현대 다누키 이야기의 무대로 삼습니다. 고전 문헌, 우키요에, 시가라키 도자기, 지역 전승을 지나 애니메이션과 소설까지, 다누키는 시대마다 다른 모습으로 살아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