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누키, 무지나, 마미라는 얽힌 이름들. 다누키를 이해하려면 먼저 이름과 글자를 풀어야 합니다. 한자 狸는 중국에서 원래 들고양이나 삵류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았지만, 일본에서는 다누키를 쓰는 글자가 되었습니다. 근대 동물학 용어가 자리 잡기 전에는 다누키, 무지나, 마미와 여러 표기가 문헌과 방언에서 섞였고, 어떤 지역에서는 오소리나 사향고양이, 너구리를 모두 무지나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일본서기》 627년 조[2]의 “무쓰에 무지나가 있어 사람으로 변해 노래했다”는 기록이 정확히 오늘날의 너구리를 뜻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1924년 다누키·무지나 사건[3]에서 사냥꾼은 무지나는 다누키가 아니라고 믿었다고 주장했고, 고의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가 되었습니다. 이름의 혼란은 문헌 속 문제만이 아니었습니다.
고전 속 바케다누키. 《일본서기》 627년 조[2]는 변신하는 다누키 또는 무지나의 가장 이른 기록으로 자주 인용됩니다. 《곤자쿠 이야기집》 권27 제22화[12]에서는 사냥꾼의 늙은 어머니가 귀신으로 변해 아들을 잡아먹으려 하지만, 아들이 쏘아 죽이고 보니 정체가 늙은 다누키였다고 합니다. 오래 산 짐승이 요괴가 된다는 생각을 분명히 보여 주는 이야기입니다. 《일본영이기》, 《우지슈이 이야기》, 《고금저문집》에도 다누키와 무지나의 변신담이 보입니다. 에도 요괴화에서는 도리야마 세키엔의 《화도백귀야행》(1776)[13]에 다누키 그림이 실려, 차가마를 들여다보는 승려 모습 다누키 도상의 이른 사례로 여겨집니다.
능력 목록. 다누키의 재주는 다양합니다. 하라쓰즈미는 달밤에 배를 두드려 장단을 내는 소리로, 쇼조지 다누키바야시 전설[14]과 이어집니다. “여덟 다다미” 음낭은 방, 절의 대청, 우산, 그물, 무기로 변한다고 여겨졌습니다. 이는 에도 시대 금박 장인이 다누키 가죽에 금을 싸서 얇게 두드려 넓힌다는 기술담에서 나온 과장으로 설명됩니다. 실제 너구리의 몸과는 상관없는 문화적 상상입니다. 다누키는 머리에 잎을 얹고 변신하고, 죽은 척하거나 잠든 척하는 다누키네이리도 하며, 여우보다 한 단계 많은 여덟 변신을 지닌다고 여겨집니다.
시코쿠, 사도, 아와지의 이름난 다누키. 바케다누키 전승은 서일본에 강하게 모입니다. 도쿠시마 고마쓰시마의 긴초 다누키[4]는 로쿠에몬과 벌인 아와 다누키 전쟁의 중심이고, 야시마의 다사부로는 미노야마 다이묘진으로 모셔집니다. 사도의 단자부로 다누키[5]는 무이자로 돈을 빌려 주는 의리 있는 두목 다누키로, 후타쓰이와 다이묘진에 모셔졌습니다. 아와지의 시바에몬 다누키[6]는 미쿠마산에 살며 달밤에 배를 두드리고, 사람으로 변해 오사카에서 가부키를 보다가 개에게 물려 죽었다고 합니다. 일본 삼명리狸는 단자부로, 다사부로, 시바에몬이고, 삼대 다누키 전설은 이누가미 교부[7], 모린지 분부쿠 차가마[8], 쇼조지 다누키바야시입니다.
시가라키 도자기 다누키와 근대 이미지. 시가라키야키는 시가현 고카시 시가라키초의 도자기로, 일본 육고요 가운데 하나입니다. 에도 말에도 다누키 도자기는 있었지만, 오늘날의 둥글고 친근한 모습은 20세기에 굳어졌습니다. 1951년 쇼와 천황은 국기를 든 시가라키 다누키들이 늘어선 모습을 보고 노래를 남겼고[9], 이 일이 전국적인 유명세를 가져왔습니다. 1952년 이시다 고쇼는 팔상연기를 설명했습니다. 삿갓은 재난 회피, 큰 눈은 주의 깊음, 웃는 얼굴은 손님맞이, 술병은 먹고사는 덕, 장부는 신용, 배는 침착한 판단, 돈주머니는 재운, 굵은 꼬리는 유종의 미를 뜻합니다. 다누키는 장사의 번창을 비는 수호상이 되었습니다.
여우와 다누키의 지리. 여우와 다누키는 동물 변신담의 두 대표지만, 분포는 다릅니다. 동일본과 동북에는 여우 이야기가 강하고, 시코쿠·사도·아와지 같은 서일본에는 다누키 이야기가 많습니다. 환경성의 2022년 분포 조사[1]는 오키나와에 다누키가 없다는 점도 보여 줍니다. 오키나와의 숲 요괴 역할은 키지무나나 아마미의 겐문이 맡습니다. 동물의 실제 분포와 요괴 지도가 서로 비치는 셈입니다.
불교, 차가마, 다누키 신격화. 불교와 다누키가 만나는 대표 이야기는 군마현 다테바야시의 모린지 분부쿠 차가마[8]입니다. 절 전승에 따르면, 7대 주지 겟슈 쇼초를 모시던 노승 슈카쿠가 1570년 천인 법회에서 아무리 물을 떠도 마르지 않는 차가마를 내놓았고, 훗날 무지나 또는 다누키의 본모습을 드러내고 절을 떠났다고 합니다. 마쓰우라 세이잔의 《갑자야화》는 모린지의 차가마를 기록했고, 이와야 사자나미의 동화판은 고물상이 주운 차가마 다누키가 재주를 부리는 이야기로 널리 퍼졌습니다. 단자부로[5], 긴초, 다사부로, 시바에몬도 다이묘진으로 모셔지거나 존숭됩니다. 일본의 신불습합 세계에서는 다누키도 동물에서 신이 될 수 있습니다.
“여우 일곱, 다누키 여덟”의 뜻. “여우는 일곱 번 변하고 다누키는 여덟 번 변한다”[15]는 일본에서 잘 알려진 속담입니다. 다누키가 여우보다 변신 능력에서 한 단계 위라는 뜻입니다. “여우 일곱, 다누키 여덟, 수달 아홉, 고양이 열”이라는 확장형도 있어, 짐승의 요력을 계단처럼 배열합니다. 《곤자쿠 이야기집》 권27 제22화[12]에서 늙은 다누키가 귀신이 되는 이야기도 같은 생각을 보여 줍니다. 오래 산 짐승일수록 강한 힘을 얻고, 긴초, 단자부로, 다사부로, 시바에몬, 이누가미 교부 같은 이름난 다누키는 다이묘진으로까지 모셔집니다.
여덟 다다미 음낭과 에도의 웃음. 다누키의 거대한 음낭은 생물학이 아니라 도시적인 농담입니다. 에도 금박 장인이 적은 금을 다누키 가죽에 싸서 여덟 다다미만큼 넓게 두드렸다는 말에서, 다누키의 금옥이 넓게 늘어난다는 상상이 생겼습니다. 우타가와 구니요시는 이를 우산, 그물, 방, 샤미센, 씨름판으로 그렸고, 쓰키오카 요시토시는 모린지 차가마의 기괴함으로 방향을 달리했습니다. 서민적 희화와 절의 괴담이 함께 근세 다누키 이미지를 만들었습니다.
삼명리狸와 삼대 다누키 전설. 두 목록은 자주 혼동됩니다. 일본 삼명리狸는 단자부로, 다사부로, 시바에몬입니다. 삼대 다누키 전설은 이누가미 교부[7], 모린지 분부쿠 차가마[8], 쇼조지 다누키바야시[14]입니다. 긴초와 로쿠에몬[4]을 중심으로 한 아와 다누키 전쟁은 다사부로가 중재자로 나오는 또 다른 흐름이며, 강담과 영화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시가라키 다누키의 팔상연기. 시가라키 다누키의 팔상연기[9]는 삿갓, 눈, 웃는 얼굴, 술병, 장부, 배, 돈주머니, 꼬리를 장사의 길상으로 읽습니다. 재난을 피하고, 사방을 살피고, 손님을 맞고, 먹고사는 덕을 얻고, 신용을 지키고, 침착하게 판단하고, 재물을 부르고, 끝까지 해낸다는 뜻입니다. 전후 상인의 윤리가 둥글고 친근한 다누키 몸에 투영된 셈입니다. 《폼포코》[10]가 개발에 밀려나는 다누키를 그린 것은, 가게 앞 시가라키 다누키를 낳은 소비사회와 맞닿아 있는 또 다른 얼굴입니다.
다누키가 살아남는 이유. 1994년 《폼포코》[10]는 다마 뉴타운 개발에 쫓겨난 지령으로 다누키를 그리고, 이누가미 교부[7]를 비롯한 유명 다누키를 모읍니다. 2007년 《유정천 가족》[11]은 교토를 다누키, 인간, 텐구, 여우가 겹쳐 사는 도시로 상상합니다. 다누키가 오래 살아남는 이유는 시대마다 새 모습으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에도의 농담, 메이지의 그림, 전후의 장사 길상물, 현대 도시 판타지는 모두 같은 다누키의 다른 변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