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와 타이샤의 공식 유서는 다케미나카타노 카미를 이즈모에서 스와로 이주하여, 새롭게 시나노국을 세우고 다스린 신[2]으로 이야기한다. 스와 신앙의 특징은 중앙 신화의 한 장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두께를 지닌다. 공식 스와 신앙 해설은 스와 타이샤를 본전 없이 자연 그 자체를 신체(ご神体)로 삼는 오래된 신앙[3]으로 제시하며, 다케미나카타노 카미를 비와 바람을 관장하는 힘 있는 신이자 농업·수렵·항해·승부의 수호신으로 설명한다. 즉 다케미나카타노 카미는 이즈모 신화의 패자인 동시에, 스와 분지의 자연과 생활을 통합하는 현지의 주신이다.
이 신의 위치 설정에는 고전학상의 흔들림도 있다. 고쿠가쿠인은 다케미나카타노 카미가 『고지키』의 오쿠니누시노 카미 계보에 이름을 보이지 않고 『일본서기』에도 등장하지 않지만, 『선대구사본기』나 『연희식』 신명장의 미나카타토미 신사(南方刀美神社)[1]를 통해 스와의 제신으로서 확인됨을 지적한다. 또한 『스와 다이묘진 에코토바(諏訪大明神絵詞)』에는 본래 스와의 신이었던 모리야노 카미(洩矢神)를 쓰러뜨리고 진좌했다고 전해진다. 다케미나카타노 카미는 고대 신화, 스와 현지의 제사, 무가의 수호신, 용신·수신 신앙이 겹쳐지는 지점에 서 있는 신인 것이다.
민화・전승
다케미나카타노 카미의 신화는 말을 통한 복속과 힘을 통한 저항을 대비시킨다. 나라 양보의 단락에서 고토시로누시노 카미는 오쿠니누시노 카미의 의향을 받아들여 아시하라노 나카쓰쿠니의 헌상에 동의한다. 한편, 다케미나카타노 카미는 다케미카즈치노 카미에게 힘겨루기를 시도하나, 손을 얼음과 검으로 바꾸는 상대의 신위에 패하여 시나노국의 스와노우미까지 달아난다. 고쿠가쿠인은 이 복속을 정치적·무력적 지배력의 헌상[1]으로 보는 설을 소개한다. 고토시로누시노 카미가 제사적인 복종을 나타낸다면, 다케미나카타노 카미는 무력적인 저항과 패배를 통해 국토 지배의 또 다른 측면을 짊어진다.
다만 스와에서는 패배가 끝이 아니라 시작으로서 다시 이야기된다. 스와 타이샤의 공식 유서는 나라 양보에 반대했던 다케미나카타노 카미가 이즈모에서 스와로 이주했다고 하며, 시나노국을 세우고 다스린 신으로 위치 짓는다. 곧 나라 양보에서 시작된 스와의 나라[2]인 것이다. 고쿠가쿠인은 나아가 『스와 다이묘진 에코토바』가 모리야노 카미를 쓰러뜨리고 진좌한 신으로서 다케미나카타노 카미를 이야기함을 보여준다. 여기서 다케미나카타노 카미는 도망자가 아니라, 스와의 오래된 지주신·제사 체계와 부딪히면서 스와 다이묘진으로서 지역을 통합해 가는 외래신이다.
스와 신앙은 자연 그 자체를 신체로 삼는 고층(古層)을 강하게 남기고 있다. 스와 타이샤는 본전이 없고 자연을 신체로 하는 신앙 형태를 전한다고 공식적으로 설명된다. 곧 본전 없이 자연 그 자체를 신체로 삼음[3]이다. 그 때문에 다케미나카타노 카미는 신전 안쪽에 닫힌 인격신이라기보다, 산·호수·바람·비·온바시라(御柱)·신목·얼음의 움직임 속에서 느껴지는 신이다. 스와호의 '오미와타리(御神渡り)'는 호수가 전면 결빙되었을 때 얼음의 균열이 산맥처럼 솟아오르는 현상으로, 나가노현은 이를 가미샤의 다케미나카타노 미코토가 시모샤의 야사카토메노 미코토에게 다녀간 흔적[4]이라고 전한다. 얼음의 길은 그 해의 농작물·사회 정세·기후 강수량을 점치는 신사이기도 하다.
수렵과 육식을 둘러싼 신앙도 다케미나카타노 카미를 스와다운 신으로 만든다. 스와 타이샤는 살생이 금기시되던 시대에도 스와 사람들은 신부를 받고 살기 위해 사슴 고기를 먹는 것을 허락받았다고 설명한다. 곧 사슴 고기를 먹는 것을 허락받았습니다[3]이다. 이는 단순한 면죄가 아니라, 산골의 생활과 불교적 금기 사이에서 신이 생명의 순환을 떠맡는 사상이다. 공식 유서가 7대 불가사의로 꼽는 온토제(御頭祭)의 귀 찢어진 사슴, 스와시 박물관이 전하는 개구리 사냥 신사 등도 스와 신앙에 남아 있는 공희적(供犠的)·수렵적인 고층을 보여준다.
무신으로서의 얼굴은 중세 이후에 더욱 강해졌다. 스와 타이샤는 스와 오카미가 무용·승부의 신으로 숭배받아, 미나모토노 요리토모, 호조씨, 아시카가 다카우지, 다케다 신겐,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으로부터 신앙을 받았다고 설명한다. 곧 역대 장군들에 의한 무운장구[2]이다. 특히 다케다 신겐은 스와 명신을 무가의 수호신으로 숭배하여 신전과 영지를 기진하고 제사 부흥에도 관여했다고 전해진다. 『고지키』에서 힘겨루기에 패했던 신이 훗날 전승과 승부의 신으로 숭경받은 것은 모순이 아니다. 패배의 장면에서 보여준 힘 그 자체가 스와에서는 거친 가호로 새롭게 읽힌 것이다.
온바시라 마쓰리(御柱祭)는 그 거친 힘을 오늘날에 보여주는 최대의 제의이다. 스와 타이샤는 정식 명칭을 식년조영 온바시라 대제[5]라 하며, 호랑이해와 원숭이해의 7년째마다 네 신사의 경내 네 모퉁이에 16개의 거대한 전나무를 끌어와 세운다고 설명한다. 산에서 마을로 기둥을 인력으로 끌어내어, 신성한 나기카마(薙鎌)를 박아 넣어 신목으로 인정하고, 보전(宝殿)의 조영이나 비품의 새로 고침을 행한다. 이 축제는 다케미나카타노 카미를 단순한 고전의 신이 아니라, 토지의 신체를 주기적으로 진동시키는 현재 진행형의 신으로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스와 가미샤에는 '오호리(大祝)'라는 독자적인 제도가 있었다. 스와시는 오호리를 스와 명신의 요리시로(빙의체)·현인신(살아있는 신)으로서 스와 신사의 정점에 위치했던 신직[6]으로 설명하며, 고대부터 근세 말까지 세습되었다고 한다. 신은 신전뿐만 아니라 사람의 신체에도 깃든다. 다케미나카타노 카미를 이해하려면 나라 양보의 패배, 스와호의 얼음, 온바시라의 거목, 수렵과 공희, 무가의 기원, 그리고 현인신으로서의 오호리를 하나의 연속된 신앙권으로 볼 필요가 있다.
다케미나카타노 카미를 깊이 읽으려면 『고지키』의 패배와 스와 다이묘진의 승리를 별개의 이야기로 만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나라 양보 신화에서 다케미나카타노 카미는 다케미카즈치노 카미에게 힘겨루기를 시도했다가 패하여 스와노우미로 쫓겨난다. 고쿠가쿠인은 이 장면을 다케미카즈치노 카미의 말에 의한 복속(言向け)을 거부하고, 힘겨루기라는 다른 승부를 걸었다[1]고 읽는 설을 든다. 즉 그는 하늘의 명령에 말로 복종하지 않고 신체의 힘으로 응답한 신이다. 패배는 이 신의 약함이 아니라, 힘으로 세계의 질서에 닿은 증거이기도 하다.
스와에 들어오면 그 패배는 현지 통합의 이야기로 바뀐다. 스와 타이샤는 다케미나카타노 카미가 이즈모에서 스와로 이주하여 시나노국을 세우고 다스렸다고 이야기한다. 곧 다케미나카타노 카미가 이즈모에서 스와로 이주했다[2]이다. 고쿠가쿠인은 『스와 다이묘진 에코토바』에 본래 스와의 신이었던 모리야노 카미를 쓰러뜨리고 진좌했다고 나와 있음을 소개한다. 여기에는 중앙 신화에서 온 신과 스와의 오래된 신들·제사가 겹쳐지는 구도가 있다. 다케미나카타노 카미는 그저 스와로 도망친 신이 아니다. 스와의 땅 그 자체와 충돌하고, 거기에 머물며, 땅의 이름으로 불리는 신으로 변한 것이다.
스와 다이묘진의 신격은 풍수의 신으로서 강하다. 스와 타이샤는 다케미나카타노 카미를 옛날부터 비와 바람을 관장하고 농업·수렵·항해·승부의 수호신으로 신앙되어 온 신이라고 설명한다. 곧 농업·수렵·항해·승부의 수호신[3]이다. 이 넷은 뿔뿔이 흩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비와 바람은 벼농사를 좌우하고, 호수와 강은 교통과 어로를 지탱하며, 산은 수렵의 장소가 되고, 승부는 무사뿐만 아니라 자연과의 교섭으로도 통한다. 다케미나카타노 카미는 거친 자연을 사람의 생활에 다시 묶는 신으로서 신앙되었다.
오미와타리는 그 묶음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만든다. 나가노현의 해설에 따르면, 스와호가 전면 결빙되면 얼음이 갈라져 높이 솟은 얼음 산맥이 생긴다. 이 길은 가미샤의 남신인 다케미나카타노 미코토가 시모샤의 여신인 야사카토메노 미코토에게 다녀간 흔적이라고 여겨진다. 곧 남신이 여신에게 다녀간 흔적[4]이다. 나아가 미와타리 신사에서는 그 길의 방향이나 모양으로 농작물, 사회 정세, 기후 강수량을 점친다. 얼음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신의 이동이며, 땅의 미래를 읽는 문자가 된다.
온바시라 마쓰리에서 다케미나카타노 카미의 힘은 나무와 사람의 운동으로 나타난다. 스와 타이샤의 온바시라 마쓰리 해설은 16개의 거대한 전나무를 네 신사의 경내 네 모퉁이로 끌어와 세우는 축제이며, 신령이 깃드는 나기카마를 박아 넣어 신목으로 인정한다고 설명한다. 곧 신령이 깃든다고 여겨지는 신성한 나기카마[5]이다. 기둥은 수레나 통나무 굴림을 쓰지 않고 오직 사람의 힘으로만 끈다. 여기서 신위는 고요한 내면이 아니라, 산에서 마을로 이동하는 거대한 나무, 위험을 떠맡는 우지코(氏子)의 신체, 그리고 신사의 네 모퉁이에 서는 기둥으로서 갱신된다. 스와의 신은 주기적으로 다시 세워진다.
수렵과 육식의 신앙도 이 신의 거침을 생활로 잇는다. 스와 타이샤는 살생이 죄악시되던 시대에도 스와 사람들은 오스와사마의 신부를 받고 살기 위해 사슴 고기를 먹는 것을 허락받았다고 이야기한다. 곧 살기 위해 사슴 고기를 먹는다[3]이다. 이는 불교적 금기를 부정한다기보다 산골의 현실을 신이 떠맡는 구조이다. 다케미나카타노 카미는 깨끗한 풍요만을 주는 신이 아니다. 피를 수반하는 사냥, 공물, 겨울의 호수, 거목의 위험을 포함하여 땅의 생명을 지킨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이 오호리(大祝)라는 현인신의 제도이다. 스와시는 오호리를 스와 명신의 요리시로이며, 살아있는 신으로서 스와 신사의 정점에 섰던 신직이라고 설명한다. 곧 스와 명신의 요리시로·현인신[6]이다. 다케미나카타노 카미의 신앙에서 신은 먼 신화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신체, 신사의 제도, 축제의 역할에도 깃든다. 나라 양보에서 패배한 신이, 스와에서 현인신을 통해 정치와 제사의 중심에 선다. 이 반전이야말로 다케미나카타노 카미의 가장 깊은 매력이다.
정면으로 힘을 시험하고, 패배하더라도 땅에 뿌리를 내리는 거친 신격. 풍우와 호수, 수렵과 농경, 승부와 제사를 통합하여, 밖에서 온 힘을 현지의 수호로 바꾼다.
궁합
승부, 수렵, 농경, 풍우, 물가, 지방의 자립, 오래된 제사에 끌리는 사람과 상성이 좋다. 추상적인 평온보다, 위험을 품은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감각을 선호한다.
능력·특기
다케미카즈치노 카미에게 힘겨루기를 시도한 무력과 저항의 신위스와호·풍우·물을 통해 풍흉이나 길흉을 나타냄수렵과 육식을 생명 순환으로서 떠맡음온바시라 마쓰리의 거목과 신전 갱신을 통해 땅의 영력을 다시 세움무가의 승부·전승·무운장구를 수호함오호리를 요리시로로 삼아 신위를 사람의 신체에도 깃들게 함
약점
고전상의 출신과 스와 현지 신앙의 층이 복잡하여, 단순한 패배신·군신·용신 중 어느 하나로 축소하면 본질을 잃는다. 스와라는 땅과의 결합이 강해, 맥락을 벗어나면 거침만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