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mōsa Province 香取の武神と将門の怨霊。下総国の妖怪事典

平将門・ムジナ・二口女。坂東の辺境に積もる古代国家の記憶

香取の武神と将門の怨霊。下総国の妖怪事典

Shimōsa Province · しもう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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下総国(しもうさのくに)は、坂東のなかでも古代国家の記憶が最も濃く刻まれた地である。利根川と江戸川に縁取られた低湿の平野は、今日の千葉県北部を中心に、茨城県南西部、さらに東京都東部の一角にまで及んだ。律令以前、この地には印波(いには)・下海上(しもつうなかみ)・千葉の国造が置かれ、応神朝にその祖が定められたと伝わる[1]。やがて令制国として「大国(たいこく)」に列せられ、国府は現在の市川市国府台(こうのだい)に営まれた。

下総を貫く一本の軸は、「東国の辺境(フロンティア)」という位相である。北の蝦夷(えみし)へ向かう大和王権の前進基地として、香取の地には武の神・経津主神(ふつぬしのかみ)が祀られた。その同じ坂東の地に、十世紀、新皇を称して討たれた平将門が現れる。香取の武神が国家の東漸を担う神であったなら、将門は国家に叛いて敗れた怨霊であった ── 服従と反逆、この二つの記憶が下総という土地の地霊を形づくっている。

本稿は下総国の妖怪文化を、古代国家の辺境という視座から辿る。香取の経津主神という武神の記憶、相馬御厨を本拠とした将門の怨霊、そして水郷の闇に化けるムジナと、家の罪から生まれた二口女 ── 怨霊・化獣・人妖の三層を、令制国の地理に縫い直してゆく。なお赤えいや船幽霊といった房総の海の怪、将門信仰の全体像は千葉県の妖怪事典に譲り、本稿は古代下総の内陸と古社の記憶に焦点を絞る。

香取の武神と坂東の古代

下総国の精神的な背骨は、利根川下流の香取の地に鎮座する香取神宮である。祭神は経津主神(ふつぬしのかみ)。記紀神話の国譲りに際し、武甕槌神(たけみかづちのかみ)とともに葦原中国へ降り、大国主神に国を譲らせた剣の神であり、日本でも屈指の武神とされる[1]

香取神宮が古代国家にとっていかに重い社であったかは、その社号が物語る。平安期の『延喜式神名帳』において、「神宮」の号で記されたのは、伊勢・鹿島・香取の三社のみであった[2]。利根川を挟んで相対する鹿島神宮(常陸国)の武甕槌神と、香取の経津主神は、ともに大和王権が東国の蝦夷(えみし)を制してゆく際の前進基地として崇敬を集めた、いわば国家の東の守りの要であった。香取神宮・鹿島神宮に、利根川河口の息栖(いきす)神社を加えた三社は、後世「東国三社」と呼ばれて篤い信仰を集めることになる。

ここで重要なのは、下総という土地が、最初から「国家が東へ伸びてゆく前線」として立ち上がったという点である。律令以前、この地には印波(いには)・下海上(しもつうなかみ)・千葉の三つの国造が割拠していた[1]。下海上国造は現在の銚子・旭・香取郡一帯を、印波国造は印旛沼周辺を治めたと伝わる。これらの在地勢力が大和の王権に組み込まれ、令制国・下総として再編され、市川の国府台に国府が置かれた。武の神を祀り、蝦夷へ向かう前線でありながら、その内側には統合されきらぬ在地の記憶が幾重にも沈んでいる ── この二重性こそ、やがて将門という巨大な反逆者を生む土壌となった。

香取の経津主神は武神でありながら、その荒ぶる力は決して妖異とは語られない。国家の秩序を体現する神だからである。だが同じ坂東の地に、その秩序を真っ向から否定した者が現れたとき、下総は神話の武神と人間の叛将という、対をなす二つの「武」の物語を抱え込むことになる。

新皇・平将門と相馬御厨

下総国の怪異を語るうえで、平将門は避けて通れない。承平・天慶のころ、桓武平氏の血を引くこの坂東の武者は、一族内の私闘から身を起こし、ついには関東諸国の国府を制圧して「新皇(しんのう)」を自称した。同時代の軍記『将門記』が、その乱の経緯を漢文で克明に記している。

다이라노 마사카도

たいらのまさかど

다이라노 마사카도는 헤이안 중기에 반도(坂東) 일대를 호령한 간무 다이라씨의 무인으로, 조정에 반기를 들어 “신노(新皇)”를 자칭하다 토벌된 인물이다. 죽은 뒤 그 잘린 머리에 얽힌 괴이 때문에 일본에서 가장 두려워한 원령의 하나로 여겨졌고, 이윽고 간토의 수호신·어령신(御霊神)으로서 간다묘진 등에 모셔졌다. 조헤이·덴교 무렵, 마사카도는 일족 안의 사투에서 몸을 일으켜 덴교 2년(939)에는 히타치를 비롯한 간토 여러 지방의 국부를 쳐서 동국을 제압하고, 하치만 대보살의 신탁을 칭하며 스스로 신노라 일컬었다 . 그러나 이듬해 덴교 3년(940), 다이라노 사다모리와 후지와라노 히데사토(다와라 도타)의 토벌군에게 이마를 맞아 전사했다. 그 생애는 동시대의 군기 『쇼몬키』에 자세하다. 마사카도를 요괴·원령으로 만든 것은, 사실로서의 난 그 자체보다 후세에 전해진 머리의 전설이다. 도읍에서 효수된 머리가 썩지 않고 밤마다 외치며 동쪽으로 날아갔다는 이야기는 도쿄 오테마치의 마사카도 무덤(구비즈카)에 대한 두려움과 결합해, 옮기면 재앙을 부른다는 신앙을 오늘에 전한다. 한편 간다묘진에서는 에도의 총진수, 무운과 장사 번성의 신으로 두텁게 받들어져, 재앙과 수호라는 어령신의 두 얼굴을 함께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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将門と下総国を結びつける最も具体的な土地が、相馬御厨(そうまのみくりや)である。相馬郡は下総国の西部 ── 現在の千葉県北西部から茨城県南部にかけての地で、大治五年(一一三〇)、平常重がこの地を伊勢神宮に寄進し、現地管理者である下司職(げすしき)に就いたことで、伊勢神宮領の荘園「相馬御厨」として文献に立ち現れる[4]。後世の系図は、将門の子・小次郎将国がこの相馬を称したと伝え、相馬氏の遠祖を将門に結びつける。史実としての血脈は判然としないが、将門が「相馬小次郎」とも呼ばれ、相馬の地を勢力圏としたことは、彼の物語が下総西部の在地に深く根を張っていたことを示している。

将門の最期もまた、下総の地に刻まれている。天慶三年(九四〇)二月、将門は下総国猿島郡(さしまぐん)の石井(いわい、現在の茨城県坂東市岩井)に営所を構え、追討に向かった藤原秀郷(俵藤太)と平貞盛の連合軍と決戦に臨んだ[3]。四百騎の精鋭で三千の敵を一時は圧したものの、にわかに風向きが逆転して形勢が傾き、北山へ退く途上、額に流れ矢を受けて討死したと伝わる。新皇僭称からわずか二か月足らずの最期であった。

将門が怨霊・神格の領域に入るのは、その死後である。京で晒された首が腐らず夜ごと叫んで東国へ飛び去ったという首の伝説は、はるか後世の『太平記』などに語られ、将門を菅原道真・崇徳院と並ぶ日本三大怨霊の一柱へと押し上げた。その神格化を最も静かな形で伝えるのが、終焉の地・坂東市岩井に立つ國王神社である。社伝によれば、将門の三女が奥州へ逃れて尼となり如蔵尼(にょぞうに)と号し、父の死後三十三年を経て郷里に戻り、霊木から一刀三拝して将門の像を刻み、小祠に祀ったのが起こりだという。御神体の寄木造の将門木像は、いまも文化財として伝わる。怨霊として畏れられる一方で、娘の手による木像として供養される ── 反逆者にして守護神という将門の二面性が、この古社に凝縮している。

将門にまつわる怪異でとりわけ知られるのが、影武者と桔梗(ききょう)の伝説である。将門には六人の影武者がいて、本物と寸分違わぬ七人の将門が並び立ったため敵は本体を見分けられなかったが、愛妾の桔梗が「本物だけはこめかみが動く」と内通したため討たれた、とも語られる。この影武者譚や桔梗伝説は史実とは言い難く、後世に膨らんだ伝承であるが、下総の各地には将門が拠った城跡や、桔梗の名を嫌って桔梗の花を植えないという村の禁忌まで残り、伝説は土地の記憶として今も生きている。なお首塚そのものや将門信仰の全体像、神田明神への展開は東京・千葉の記事に譲る ── ここで確かめておきたいのは、将門という叛将が、香取の武神と対をなす「もう一つの武」として、古代下総の地霊に組み込まれているという一点である。

水郷の闇に化けるムジナ

香取の武神と将門の怨霊が下総の「公」の記憶だとすれば、村の夜道や家のなかには、より身近な怪が潜んだ。利根川・印旛沼・手賀沼の広大な水郷に縁取られた下総の低地は、田と湿地と点在する農村が織りなす土地であり、アナグマやタヌキ ── すなわちムジナの棲み処と人里とが、ごく近く接していた。

무지나

Mujina

무지나는 주로 오소리를 가리키는 말로, 지역과 시대에 따라 너구리나 삵괭이(하쿠비신)와 혼용되기도 한다. 예로부터 사람을 속이는 짐승으로 전해지며, 밤길에서 길이나 강을 잘못 보이게 하고 음식이나 장소의 겉모습을 바꾸는 술수에 능하다고 한다. 『일본서기』에는 사람으로 변해 노래한 ‘후미’(오소리)에 대한 기록이 있으며, 에도 시대 이후로는 여우·너구리와 나란히 변술의 대표 격으로 회화와 설화에 자주 등장한다. 학술적 동정은 지역마다 흔들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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ムジナとは本来アナグマを指す語だが、地域や時代によってタヌキ・ハクビシンとも混称され、同定の定まらぬ獣の総称である。古くから狐・狸と並んで人を化かす獣とされ、その文献上の初出は『日本書紀』推古天皇三十五年(六二七)の条、「陸奥国に狢(むじな)有り。人と化(な)りて歌う」にまで遡る。奈良時代以前から、狢が人に化けるという観念は成立していたのである。

このムジナが、下総の地で独自の像を結んだのが「かぶきり小僧」である。おかっぱ頭(かぶきり=禿切り)に丈の短い着物をまとった小僧の姿で、人気のない夜道や山道に現れ、「水飲め、茶を飲め」と声をかけてくるという[8]。どこか間の抜けた、しかし不気味なこの小僧の正体は、人に化けたムジナだとされた。声をかけられても応じてはならぬとされ、夜道を急ぐ者を惑わす。重要なのは、このかぶきり小僧の伝承が、千葉県北部から茨城県南西部 ── まさに古代下総国の版図にまたがって語られてきたという点である。令制国としての下総が解体されて久しい近世以降も、ムジナの化身は旧国の地理に沿って息づいていた。

ムジナの化けものとして最も名高いのは、小泉八雲が『怪談』に収めた「むじな」ののっぺらぼう譚だろう。夜道で泣く女に声をかけると、振り向いたその顔には目も鼻も口もなく、つるりと卵のようであった ── 驚いて逃げ込んだ蕎麦屋の主人もまた同じ顔に変じる、という二度驚かしの物語である。この話は江戸・赤坂を舞台とするが、獣が人に化け、顔という最も人らしい部分を消し去るという想像力の源流は、まさに下総のような関東東部の里にあった。水と田に縁取られ、夜になれば人と獣の境が曖昧になる土地 ── かぶきり小僧ものっぺらぼうも、その水郷の夜の感覚そのものから立ち上がった怪なのである。

飢えと吝嗇の鬼女・二口女

ムジナが獣の悪戯から生まれた化け物だとすれば、二口女(ふたくちおんな)は人間の罪から生まれた、もっと暗い怪異である。江戸後期の絵入り奇談集『絵本百物語』(桃山人夜話、天保十二年=一八四一年刊)は、この怪を下総国の話として語る。

두구녀

Futakuchi-onna

두구녀는 뒤통수에 두 번째 입을 지닌 여성 요괴로 전해진다. 평소에는 긴 머리로 그 입을 가리지만, 배가 고프면 머리가 뱀처럼 꿈틀거리며 뒤쪽의 입이 제멋대로 먹을 것을 찾고 소란을 피운다고 한다. ‘에혼 효아쿠모노가타리’(천보 12년 간행) 등 기담에 보이며, 과도한 검약이나 비밀을 경계하는 교훈담으로도 이야기된다. 겉모습은 일반 여성과 다르지 않으나, 목덜미에 날카로운 이와 혀가 달려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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物語はこうである。ある家に後妻が嫁いだが、先妻の娘を憎んでろくに食事を与えず、ついに餓死させてしまった。それから四十九日の後、夫が薪を割っていた斧が、誤って後ろにいた妻の後頭部を割った。傷はいったん癒えたものの、やがて割れ目は唇の形となり、突き出た頭蓋骨の一部は歯に、肉は舌のようになって、決まった時刻になると激しく痛みだし、食べ物を押し込むと痛みが鎮まった。さらにある時、その口は人語をなし、先妻の子を飢え死にさせた己の心得違いを悔いる声を、小さく呟いたという[10]

後頭部のもう一つの口は、見て見ぬふりをした罪が決して消えず、自らを喰らい続ける業の具現である。表の口でいくら善人を装っても、見えぬ後ろの口が真実を語ってしまう ── 二口女は、罪は隠しおおせぬという因果応報の思想を、女の身体の異形として可視化した怪異なのである。継子を飢えさせた継母の祟りという主題は、飢えと吝嗇(りんしょく)という、近世農村の最も切実な恐怖に根ざしている。なお髪を蛇のように操って食物を口へ運ぶという有名な図像は『絵本百物語』の本文には記されず、挿絵を担った竹原春泉斎の創意とされ、文と画の間には齟齬がある。

ただし、この二口女を下総固有の古伝として鵜呑みにするのは慎みたい。研究では、二口女の物語は同地に古くから伝わったものではなく、編者・桃山人が編んだ創作的色彩が強いと指摘されている[10]。それでも、継子いじめという普遍的な罪を、わざわざ「下総国の話」として配置した作者の選択には注意が要る。江戸の読者にとって、下総は江戸のすぐ隣でありながら、なお怪異の似合う在地として意識されていた ── 香取の古社と将門の怨霊を抱える下総は、近世の奇談作者にとっても、業と祟りを根づかせるにふさわしい辺境だったのである。

辺境の地霊 ── 神・怨霊・化獣の重なる国

下総国の妖怪文化を貫くのは、「東国の辺境」という古代以来の位相である。香取の地には、蝦夷へ向かう大和王権の前線を守る武神・経津主神が祀られ、延喜式に「神宮」と記される国家的な聖地となった。その同じ坂東の地に、国家に叛いて新皇を称し、相馬御厨を本拠とし、猿島郡石井に討たれた平将門が現れ、怨霊から御霊神へと転じた。服従の武神と反逆の怨霊 ── 下総は、対をなす二つの「武」の記憶を抱える国である。

そしてその古代国家の記憶の足下に、村の夜の怪が息づいていた。水郷の闇に化けるムジナのかぶきり小僧は、令制国・下総の版図にまたがって語り継がれ、家の罪から生まれた二口女は、江戸の奇談作者によって「下総国の話」として配置された。神の社、叛将の塚、村の夜道、家の闇 ── 階層の異なる怪異が、一つの令制国の地理のなかに幾重にも積もっている。

下総とは、古代国家が東へ伸びる前線でありながら、その内側に統合されきらぬ在地の力を抱え続けた土地であった。武神を祀りながら叛将を生み、国家の秩序を体現しながら祟りと業の物語を育てた。この二重性こそが、香取の経津主神から将門の怨霊、ムジナの化身、二口女の業へと連なる、下総の妖怪文化の核心である。歩いて辿れる香取神宮の杜と、坂東市岩井の國王神社。下総の怪異は、いまも古代の地名とともに、利根川の畔(ほとり)に静かに息づいている。より広い房総半島の怪異、海の怪や将門信仰の展開については千葉県の妖怪事典を参照されたい。

Shimōsa Province의 모든 요괴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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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이라노 마사카도

    다이라노 마사카도

    신격

    たいらのまさかど

    간토의 어령신·다이라노 마사카도

    신령·신격간토 (지요다 구비즈카·간다묘진·반도 옛 땅)

    이 판에서는 사실과 전설의 경계를 가늠하면서, 한 반도 무인이 어떻게 “나는 머리”의 괴이가 되고, 다시 에도를 지키는 신으로 바뀌었는지 철저히 좇는다. 먼저 사실과 괴이를 나누어야 한다. 난 그 자체를 전하는 것은 동시대적인 『쇼몬키』로, 935년의 사투에서 시작해 간토 여러 국부의 제압, 신노 선언, 940년의 전사까지를 한문으로 적는다. 그러나 여기에 나는 머리의 괴이는 없다. 머리가 썩지 않고 외치며 날았다는 초자연의 이야기가 나타나는 것은, 그보다 수백 년 뒤 남북조기의 『다이헤이키』에서이며, 둘 사이에는 『곤자쿠 모노가타리집』 같은 설화적 중계가 끼어든다. 마사카도가 “요괴”로 이야기되는 것은 이 후세 전설의 층에서다. 그 구비즈카를 둘러싼 재앙의 이야기는 한층 더 새롭다. 오테마치 마사카도 무덤에 전하는 “움직이면 재앙”이라는 두려움은, 다이쇼·쇼와 무렵 도시 한복판에서 일어난 일들——간토 대지진 뒤 대장성 임시 청사 건설과 관련한 죽음, 점령기의 불도저 전복 사고——에 겹쳐 이야기되는 근대의 도시 전설이다. 사실로서의 사건과, 그것을 마사카도의 재앙으로 돌리는 해석은 신중히 갈라내야 한다. 한편 신격화의 갈래는 중세로 거슬러 오른다. 엔쿄 2년(1309), 역병을 마사카도의 재앙으로 본 지슈의 신쿄 쇼닌이 영을 가라앉혀 간다묘진의 제신에 더했다. 이는 미치자네와 마찬가지로, 사나운 원령을 모셔 올려 수호신으로 바꾸는 어령 신앙의 전형이다. 에도 총진수로서 서민의 숭경을 모으다가 메이지에는 역신으로 제신에서 물러나고 쇼와 말에 복귀하는 부침 또한, 왕권에 반역한 영웅이라는 마사카도 상의 두 얼굴을 잘 비춘다. 또한 후세에 딸 다키야샤히메가 거대한 해골을 부리는 이야기가 가부키와 요미혼에서 인기를 끌어 우타가와 구니요시의 “소마의 옛 궁궐”에 그려졌으나, 이는 마사카도 본인이 아니라 딸을 주역으로 한 파생임에 유의하고 싶다.

  • 무지나

    무지나

    에픽

    Mujina

    전통담 준거·속임수의 무지나

    일반분류일본 각지(동국에 전승 다수)

    각지의 무지나 설화를 바탕으로 한 ‘속임수’ 전문의 상. 개만 한 크기의 짐승 모습이며 앞다리가 다소 짧고, 늙으면 등털에 십자 무늬가 난다고도 한다. 사람의 주의와 방향 감각을 흐리는 술법에 능하여 밤길에서 논과 강, 둑과 수면, 볏단과 인영을 뒤바꿔 보이게 한다. 심성이 나쁜 것은 음식이나 변소를 딴것으로 보이게 하여 수치와 화를 부르기도 한다. 인간의 형상을 취할 때는 동자, 나그네, 촌부 등 눈에 띄지 않는 모습을 좋아하며, 목소리만으로 유인하기도 한다. 지역에 따라 너구리나 여우의 담과 혼효되어 이름만 무지나인 예도 많으나, 대체로 ‘속이는 짐승’ 범주에 든다. 무예나 주법으로 물리친 이야기보다 정체를 간파하면 사라지고 이후에는 가까이하지 않는 결말이 일반적이다. 속담 ‘같은 굴의 무지나’는 동류의 비유로, 굴을 함께 쓰는 관찰과 속임수 설화의 연상이 겹친 것으로 풀이된다. 전승은 동국에 풍부하며, 에도기의 회화 자료에도 ‘貉’의 제목으로 그려졌다.

  • 타키야샤히메

    타키야샤히메

    에픽

    takiyasha-hime

    소마 낡은 궁궐의 요술 공주 · 타키야샤히메

    영혼・망령시모사국 소마 미쿠리야 (현 이바라키현·지바현 북부 주변) / 다이라노 마사카도 전설의 후일담

    이 판본에서는 타키야샤히메를 '소마 낡은 궁궐의 요술 공주'로 읽는다. 그녀는 사료 속 마사카도의 딸을 그대로 옮겨놓은 인물이 아니라, 마사카도 전설의 공백에 요미혼(독본)과 연극의 상상력이 개입하여 탄생한 존재이다. 따라서 타키야샤히메를 이해하려면 실존 여부뿐만 아니라, 왜 후세가 그녀를 필요로 했는지를 보아야 한다. 타키야샤히메의 이야기는 패자의 기억을 여성의 요술에 집중시킨다. 다이라노 마사카도는 반역자이며, 원령이고, 동국의 영웅이기도 하다. 그의 딸로 여겨지는 공주는 아버지의 패배를 이어받아 폐허에서 재기를 노린다. 여기서 요술은 단순한 마법이 아니라, 잃어버린 정치적 꿈을 다시 무대로 불러오는 힘으로 작용한다. 구니요시의 《소마의 낡은 궁궐》은 이 공주를 요괴 도상의 중심으로 밀어 올렸다. 거대 해골은 이야기상 소환수로도 읽히지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소마의 폐허에 쌓인 죽은 자들과 원한이 시각화된 것이기도 하다. 공주의 등 뒤에 해골이 서 있음으로써, 개인의 복수는 일족과 전장의 기억으로 확장된다. 타키야샤히메의 매력은 공포와 아름다움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그녀는 귀녀처럼 그저 습격하는 것이 아니라, 멸망한 가문의 긍지, 여성의 고독, 요술의 화려함, 폐허의 어둠을 동시에 두르고 있다. 보는 자는 그녀를 단순히 악역으로만 처리할 수 없다. 패배한 측의 이야기가 해골과 함께 일어서기 때문이다. 이 판본의 타키야샤히메는 역사의 인물이 아니라, 역사가 낳은 환영이다. 역사적 사실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가치가 낮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료의 틈새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보았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소마 낡은 궁궐의 어둠, 마사카도의 이름, 거대 해골의 도상이 겹쳐지는 곳에서 타키야샤히메는 패배의 기억을 요괴적인 미(美)로 바꾼다. 타키야샤히메는 여성 요술사로서도 특이하다. 남성 무사가 칼로 복수하는 것이 아니라, 공주는 폐허와 주술과 환영을 사용한다. 이는 직접적인 무력을 빼앗긴 패자가 다른 형식으로 힘을 되찾는 이야기로 읽힌다. 그녀의 요술은 나약함의 이면이 아니라, 잃어버린 권력의 다른 이름이다. 소마 낡은 궁궐이라는 무대는 그녀의 존재를 강력하게 지탱한다. '다이리(内裏, 궁궐)'란 본래 정치 권력의 중심을 연상시키는 단어이다. 그러나 그것이 낡고 쇠퇴하여 괴이함의 소굴이 된다. 타키야샤히메는 멸망한 정치 공간에 서 있는 공주이며, 그곳에 거대 해골이 나타남으로써 과거의 죽은 자들이 다시 권력의 무대로 돌아온다. 이 판본에서는 타키야샤히메를 악녀로 규정짓지 않는다. 그녀는 반역과 원한을 두르고 있지만, 그 배경에는 패배한 아버지, 일족의 기억, 동국의 긍지가 있다. 그렇기에 보는 자는 공포와 동시에 애석함을 느낀다. 타키야샤히메는 토벌되어야 할 요술사이기 이전에, 역사에 패배한 측이 꿈꾼 또 하나의 무대인 것이다. 구니요시의 그림을 거친 타키야샤히메는 이야기의 등장인물을 넘어 시각 그 자체의 요괴가 되었다. 거대 해골 앞에 서 있는 공주라는 구도는 한 번 보면 잊기 어렵다. 그곳에서는 문자의 흐름보다 먼저, 패배와 죽음과 미(美)가 한 장의 화면으로서 다가온다.

  • 두구녀

    두구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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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utakuchi-onna

    두구치온나

    반인반요에도

    에도의 기담을 따르며, 뒤통수의 입이 본체의 허기를 증폭시키는 형이다. 겉의 입은 소식하는 체하지만, 등의 입이 머리를 조종해 그릇을 끌어당긴다. 주위의 음식을 훔쳐 먹어 가내불화를 일으키고, 살림살이와 체면을 둘러싼 이야기와 함께 전해졌다. 시각 표현에서는 결발 사이로 송곳니 난 입이 엿보이는 도상이 통례이며, 소리와 냄새에 민감하나 사람 앞에서는 능숙히 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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