稲荷・狐・命婦・荼枳尼天 ── 神使か神そのものか、聖と妖のあいだの白い狐

千本鳥居の朱に分け入る。伏見稲荷大社の妖怪事典

Fushimi Inari Taisha·ふしみいなりたいしゃ
지도에서 보기

稲荷山の麓に立ち、奥社へ続く参道を見上げると、朱の鳥居が隙間なく連なって一本の朱いトンネルになっている。千本鳥居である。願いが「通る」ように、あるいは「通った」礼として奉納された鳥居が、江戸期からこの山を覆い尽くしてきた千本鳥居。その朱の奥には、神でも獣でもない白い影が潜んでいる。狐である。

伏見稲荷大社は和銅四年 (711) の創建と伝わる、全国三万社余に及ぶ稲荷神社の総本宮だ。だが「お稲荷さん」と聞いて多くの人が思い浮かべるのは、祭神の名でも社殿でもなく、社頭に一対で座る白い狐の像ではないだろうか。稲荷とは何者で、狐はそこに何の縁があるのか ── この問いは、聖と妖の境界をそのまま走っている。本記事は京都府の妖怪事典がたどる千二百年の都の宏観を離れ、この一つの聖地に密着して、稲荷をめぐる四つの像を解きほぐす。

稲荷信仰の総本宮 ── 山がそのまま神域である

伏見稲荷大社の本質を理解する鍵は、社殿ではなく山そのものにある。背後にそびえる稲荷山は、東山三十六峰の最南端に位置する標高二三三メートルの霊峰で、古くから三ヶ峰と呼ばれ、三つの峰が西から東へ段々に高く連なっている稲荷山。社伝によれば、和銅四年 (711) 二月初午の日、渡来系氏族の秦伊呂具 (はたのいろぐ)がこの三ヶ峰の山頂に三柱の神を勧請したのが起源とされる (『山城国風土記』逸文)

이나리신 (稲荷神)

いなりのかみ

주축이 되는 제신은 우카노미타마노카미(우카노미타마노미코토)이다. 『고지키』, 『니혼쇼키』에 이미 등장하는 곡물과 음식의 신을 본모습으로 하는 일본 제일의 신앙 대상이다. 711년(와도 4년) 하타 씨에 의해 후시미 이나리 대사에 권청된 것을 기점으로 하며, 현재는 전국 3만여 개의 이나리 신사 및 분사에 모셔져 신사 수에서 일본 최대의 신앙 계통을 이룬다. 중세 이후에는 불교의 다키니텐과 습합되어 도요카와 이나리, 사이조 이나리 등 사찰에서도 본존으로 모셔지게 되었다. 여우는 신 자체가 아니라 신의 사자(신사)지만, 민간 신앙에서는 동일시되는 경우도 많다. 오곡풍양, 사업번창, 가내안전, 터주신으로서 신사, 사찰, 저택, 길가 사당, 회사 내 제단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모셔지고 있다.

자세히 보기

主祭神は宇迦之御魂神 (うかのみたまのかみ)。『古事記』上巻 (712)、『日本書紀』 (720、倉稲魂命) に既出の穀物・食物神である。名の「ウカ」は古代日本語の「食 (うけ)」に由来し、穀物に宿る霊力を擬人化したものだ。つまり稲荷の本義は、人を化かす狐ではなく実りの神にある。五穀豊穣を司る農耕神が、やがて商売繁盛・家内安全・開運出世へと祈りの幅を広げ、神社数で日本最大の信仰系統を築いた。

#

御山巡りとお塚信仰 ── 無数の私的な神

稲荷山の独自性は、参拝が本殿で完結しない点にある。山に登り、七神蹟や無数の塚を巡拝することを「お山する」といい、参詣の人は今も日夜あとを絶たないお山。明治になって七神蹟地が確定され親塚が建立されると、それを契機に、個々人が自らの信仰心から神名を石に刻んで奉納するお塚信仰が爆発的に広まったお塚信仰

明治三十五年 (1902) の時点で六三三基だったお塚は、昭和七年 (1932) には二二五四基、昭和四十二年 (1967) には七七六二基へと増え続けた[6]

このお塚の海は、稲荷信仰の核心を物語っている。人々は「何某稲荷大神」という、自分の家や自分だけの稲荷を勝手に名づけ、石に刻み、山に祀る。稲荷とは中央の一柱の神でありながら、同時に無数の私的な神でもある。この「分けても減らない」性格こそ、稲荷が三万社に増殖した原理であり、後に見る屋敷神化の土壌でもあった。

狐はなぜ稲荷の使いになったのか

ここでようやく狐が登場する。だが注意したいのは、狐は稲荷神そのものではなく神使 (御使い) だという正統の立場だ。社頭に狛犬の代わりに据えられる一対の白狐は、神意を運ぶ眷属であって、祈る対象は背後の神である。

では、なぜ数ある動物の中で狐が選ばれたのか。有力な説は語呂に発する。宇迦之御魂神の別名に御饌津神 (みけつのかみ) があるが、狐の古名は「けつ」であり、そこから「みけつのかみ」に「三狐神」と当て字したのが発端とされる御饌津神と三狐神。やがて狐は稲荷神の使い、あるいは眷属に収まった。興味深いことに、稲荷山はもともと弥生以来の蛇神信仰の地でもあり、狐を神使とする信仰が広まったのは平安期になってからだという[7]

実利的な側面も見逃せない。狐は秋に里へ下りて田畑を荒らす鼠を捕食する。稲を守る益獣が、稲を司る神の使いに重ねられるのは自然な連想だった。がくわえる稲穂・巻物・鍵・宝珠は、田の実り・言葉・倉・宝を媒介する者という、この神使の職能を視覚化したものだ。

#

命婦 ── 女官の格を授かった白狐

稲荷の神使思想がもっとも洗練された形をとったのが、命婦 (みょうぶ) である。伏見稲荷大社の末社・白狐社 (びゃっこしゃ) には「命婦専女神 (みょうぶとうめのかみ)」が祀られ、これは神格化された白狐の称号にほかならない白狐社

「命婦」とは本来、律令制下で宮中に仕えた女官の位階を指す語で、五位以上の女性に与えられた称号だ。これが稲荷の白狐に冠せられた背景には、稲荷社が天慶五年 (942) に正一位の極位を授けられた最高位の神であった事実がある。神格が極まった稲荷に近侍する狐もまた、宮中の女官になぞらえて高貴な存在と観念されたのだ

命婦という発想は、稲荷信仰が単なる素朴な動物崇拝ではなく、朝廷・神祇制度と深く結びついて成熟したことを示している。白狐の「白」は、神と同じく目に見えない清浄・透明な存在であることの徴とされた。白狐社は江戸初期の寛永年間 (1624〜1644) に建立された一間社春日造檜皮葺で、国の重要文化財に指定されている。神に仕える狐に位階を与えるという観念は、各地の稲荷社で「正一位稲荷大明神」の幟とともに広がり、白狐を命婦・専女 (とうめ) と呼ぶ習いを生んだ。

仏のお稲荷さん ── 荼枳尼天との習合

稲荷信仰のもう一つの顔が、仏教側から来た荼枳尼天 (だきにてん) である。サンスクリット語「ダーキニー (Ḍākinī)」に由来するこの天部の神は、白狐にまたがる天女の姿で表され、「仏のお稲荷さん」として信仰されてきた荼枳尼天

その源流は穏やかではない。ダーキニーはインド密教において、空を飛び人の死を予知してその心臓を食らう女性の鬼神であったダーキニー。中期密教で大黒天 (マハーカーラ) に調伏され、空海により平安初期に真言密教とともに日本へ伝わると、当初は胎蔵曼荼羅の閻魔天の眷属・奪精鬼として描かれた。半裸で血器・短刀・屍を持つ恐ろしい像である。

なぜこの鬼神が稲荷と結びついたのか。鍵はまたしてもだった。狐が古墳や塚に棲み屍を食らうとされたインド以来の観念と、神道で狐を稲荷神の神使とする伝統が、共通項を介して急速に重なった。東寺・真言宗が荼枳尼天を稲荷神に習合させて全国に布教した結果、荼枳尼天の概念を含んだ稲荷信仰が広まることとなる稲荷の神仏習合

#

神社の稲荷と寺院の稲荷 ── 明治の分岐点

ここで伏見稲荷と対比すべきが、寺院系の稲荷である。荼枳尼天を本尊とする豊川稲荷 (妙厳寺)最上稲荷 (妙教寺) は、鎌倉〜室町期に成立し、荼枳尼天を憑き物落とし・病気平癒・開運出世の福徳神として祀る寺院として発展した[12]

両者の道を決定的に分けたのが、明治の神仏分離である。神道色を求められた多くの稲荷社は宇迦之御魂神を祀る神社となり、伏見稲荷大社はその総本宮として神社の側に立った。一方、豊川稲荷などは荼枳尼天を本尊とする寺院として分離を免れ、仏教側に残った[12]。同じ「お稲荷さん」が、神社と寺院という二つの制度に分かれて今日に至るのは、この時の分岐の名残である。宇迦之御魂神と荼枳尼天は、江戸の庶民にとってはどちらも等しく「お稲荷さん」であり、白狐を介して一つに溶け合っていた

稲荷=狐の俗信はどう生まれたか

正統には狐は神使にすぎない。それでも民間で「お稲荷さん=狐神」という観念が根強いのはなぜか。その答えは江戸の都市にある。

#

屋敷神ブームと「伊勢屋稲荷に犬の糞」

江戸時代、各地から集まった武士が新開発の宅地に住みはじめると、土地の神として稲荷を祀る習慣が生まれ、それが屋敷神となって大名・旗本から商人へと広まった江戸の稲荷ブーム。庶民も町ごとに小祠を作り、「火事・喧嘩・伊勢屋・稲荷に犬の糞」と詠まれるほど稲荷は江戸の風景に偏在した。天保五年 (1834) の『祠曹雑識』には江戸有名稲荷一〇六社の番付が載り、裏長屋の小祠まで含めれば四千社以上にのぼったともいわれる[13]

先に見た稲荷山のお塚信仰と同じ「分けても減らない」性格が、ここでは都市スケールで作動した。各家・各町が自前の稲荷を持つようになると、中央の宇迦之御魂神という抽象的な神格よりも、目に見える社頭の白狐像こそが「お稲荷さん」の実体として人々の意識を占めていく。神使にすぎなかった狐が、信仰の前面にせり出したのである。

#

狐憑きと稲荷下げ ── 妖へ傾く稲荷

稲荷と狐の一体化は、聖なる方向だけでなく、不安と恐怖の方向へも振れた。狐憑きである。修験者や巫者が狐を神使とみなして修法や託宣を行う「稲荷下げ」は、稲荷信仰・荼枳尼天法・狐を使う託宣を背景に成立した習俗だった狐憑きと稲荷下げ

ここで稲荷の白狐は、命婦のような清浄な神使から、人に憑き家筋に取りつく野狐・管狐・オサキの系統へと滑り落ちる。同じ狐でありながら、福徳を運ぶ眷属と、災いを移す憑き物とが、稲荷という一つの名のもとに同居した。九尾の狐が玉藻前として王権を惑わす大妖狐になり得たのも、稲荷信仰が育てた「神に近い高貴な白狐」と「人の内側に入り込む危うい狐」の二面性があったからにほかならない。聖地・伏見稲荷の朱の鳥居の奥には、神使の白狐と、人を惑わす妖狐とが、ほどけずに同じ尾を共有している。

朱のトンネルの先にあるもの

伏見稲荷大社を歩くとは、稲荷という神格の重層を歩くことだ。山頂の三ヶ峰に降りた宇迦之御魂神という古い穀物神。社頭に座り稲穂をくわえる神使の白狐。女官の格を授かって白狐社に祀られる命婦。インドの鬼神から白狐に乗る天女へと変じ、寺院に「仏のお稲荷さん」として祀られる荼枳尼天。そして、神使と妖狐の境を行き来する狐そのもの。

千本鳥居の朱は、この多層を一本のトンネルに束ねている。願いが「通る」ようにと奉納された朱の連なりは、聖と妖、神道と仏教、中央の一柱と無数の私的な神を、矛盾のまま並走させてきた稲荷信仰の姿そのものだ。京都という結界都市の全体像については京都府の妖怪事典に譲るが、稲荷山という一点に立てば、日本人が神と妖と獣の境界をいかに緩やかに、そして豊かに引いてきたかが、白い狐の目を通して見えてくる。

Fushimi Inari Taisha의 모든 요괴4

Fushimi Inari Taisha와 관련된 요괴 전체 목록. 본문에서 다루지 못한 전승도 포함됩니다.

  • 다키니텐

    다키니텐

    신격

    dakiniten

    흰 여우를 탄 부처님의 이나리상·다키니텐

    신령·신격고대 인도 (다키니) / 도요카와 이나리·묘곤지 (현 아이치현 도요카와시) / 사이조 이나리·묘쿄지 (현 오카야마현 오카야마시)

    다키니텐은 산스크리트어 다키니(Ḍākinī)를 음역한 불교·천부의 신으로, 흰 여우를 탄 천녀의 모습에서 '부처님의 이나리상'으로 숭배된다. 신도의 이나리 오카미와 습합하여 도요카와 이나리·사이조 이나리 등 사원계 이나리의 본존이 되었다. 인도에서는 하늘을 날며 사람의 정기와 심장을 먹는 여성 귀신이었으며, 중기 밀교에서 대흑천에게 조복되었다. 구카이에 의해 헤이안 시대 초기에 일본에 전해져, 태장만다라에서는 염마천의 권속·탈정귀로 그려졌으나, 여우를 매개로 이나리 신앙과 결합하여 보주를 바치고 흰 여우를 탄 여천형으로 모습을 바꾸었다. 소원을 이루어주는 강력한 신통력 때문에 무장과 서민들에게 두터운 신앙을 받아 장사 번성·개운 출세의 신으로서 오늘에 이른다. 귀신으로서의 가혹함과 소원 성취의 자비를 아울러 갖춘 양의적인 신격이다.

  • 이나리신 (稲荷神)

    이나리신 (稲荷神)

    전설

    いなりのかみ

    오곡풍양과 사업번창의 신앙왕·이나리신

    신령·신격후시미 이나리 대사 (현 교토부 교토시 후시미구, 711년 와도 4년 창건·하타 씨 봉제) / 도요카와 이나리·묘곤지 (현 아이치현 도요카와시) / 가사마 이나리 신사 (현 이바라키현 가사마시) / 유토쿠 이나리 신사 (현 사가현 가시마시)

    이나리신의 주축 제신인 우카노미타마노카미(별칭: 우카노미타마노미코토)는 『고지키』 상권(712)에 등장하는 곡물과 음식의 여신격이다. 신명 ‘우카’(고대어 ‘식’)와 ‘미타마(영혼)’의 합성어로, ‘곡물에 깃든 영력의 의인화’라는 소박한 민속 기원을 간직하고 있다. 신앙의 본궁인 후시미 이나리 대사(야마시로국 기이군 이나리야마, 현 교토시 후시미구)는 711년(와도 4년) 2월 첫 오일에 하타 씨(도래계 씨족으로 교토 분지와 후시미 일대의 개척자)의 수장 하타노 이로구가 “떡으로 과녁을 만들어 쏘았더니 백조로 변해 날아가, 떨어진 산 정상에 벼가 자라났다”라는 기서(奇瑞)에 의해 이나리야마에 세 기둥의 신을 권청한 것을 기원으로 한다(『야마시로국 풍토기』 일문). 세 기둥이란 우카노미타마노오카미(주신)·사타히코노오카미·오미야노메노오카미이며, 훗날 다나카노오카미·시노오카미를 더한 다섯 기둥을 이나리 대신으로 총칭하게 된다. 헤이안 시대 이후 신앙이 급속히 확대되는 데에는 진언밀교의 본산인 도지(東寺)와의 결연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구카이가 도지 축조 당시 이나리신에게 협력을 구했다는 전설을 기점으로 진언밀교와 이나리 신앙은 깊게 결합했고, 인도 밀교의 여성 귀신 다키니텐(Ḍākinī)과 습합되는 전개를 보였다. 다키니텐은 본래 ‘인육을 먹는 야차녀’였으나 티베트와 중국을 거쳐 일본에 전래되는 과정에서 온화해져 ‘흰 여우를 탄 천녀’로 도상화되었고 이나리신과 동일시되기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불교계 이나리(도요카와 이나리·묘곤지=1441년 창건·아이치현, 사이조 이나리·묘쿄지=1300년대·오카야마현 등)라는 독자 계통이 성립되어 신도계 이나리(후시미 계열)와 병존하게 되었다. 에도 시대에는 무사·정인·농민을 불문하고 ‘터주신(야시키가미)’으로서 집집마다 소사당을 지어 권청하는 붐이 들끓었고, 에도 시내에서 보기 쉬운 것을 늘어놓은 센류 “이세야, 이나리, 개똥”이 성립될 정도로 보급되었다. 현대의 이나리 신사는 약 3만 2천 곳(주신 2,900곳 + 분사 + 터주 사당)으로 추산되어 신사 수에서 일본 최대의 신앙 계통을 이룬다. 여우와의 관계는 주의가 필요하다. 후시미 이나리 대사의 공식 설명에서는 “여우는 이나리신의 사자(신사·권속)일 뿐 신 자체가 아니다”라고 명시하고 있으나, 민속적으로는 여우 자체를 이나리신으로 보는 지역이 많아 에도 시대 이후의 ‘여우신 신앙’(오이나리상=여우신)은 지금도 민간 신앙의 주류를 이룬다. 신의 사자인 여우는 ‘흰 여우(뱟코·시로기쓰네)’라 불리며, 구슬·열쇠·벼이삭·두루마리 등 네 가지 중 하나를 입에 문 도상이 정형이다. 구슬은 신덕, 열쇠는 영창(靈仓)의 열쇠, 벼이삭은 곡물, 두루마리는 경전을 의미한다. 주요 기원 내용은 오곡풍양·사업번창·가내안전·화재예방·역병퇴산이며, 특히 에도 시대 이후 상가의 터주신화 과정에서 사업번창과 재물운이 주축이 되었다. 현대에는 회사·점포 내 제단(상업 빌딩 옥상 소형 사당) 및 길가 사당까지 보급되어 신사·사찰·저택·기업의 4층 구조로 일본 사회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연중행사로는 2월 첫 오일의 하쓰우마 마쓰리(이나리 대신 강림일)가 전국 이나리 신사에서 성대하게 치러진다.

  • 구미호

    구미호

    전설

    규비노키쓰네

    백면금모의 구미호

    동물 변화중국 청구산(《산해경》의 구미호) / 교토와 나스(다마모노마에·살생석 전승) / 일본 각지의 여우 신앙

    "백면금모의 구미호"는 말 그대로 흰 얼굴, 금빛 털, 아홉 꼬리를 가진 요호입니다. 오늘날에는 거의 곧바로 다마모노마에의 본모습으로 이해되지만, 이 형상은 처음부터 완성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중국 고전의 구미호, 달기가 구미호로 변했다는 대륙의 악녀 전승, 일본의 다마모노마에 전설, 나스의 살생석 전승이 오랜 시간 겹쳐지며 생겨난 모습입니다. 옛 구미호가 반드시 악한 존재였던 것은 아닙니다. 《산해경》의 청구 여우는 사람을 먹는 짐승으로 나오지만, 고대 중국에서 구미호는 상서로운 짐승으로도 여겨졌고, 일본에도 구미호를 신수로 보는 관념이 들어왔습니다. 다시 말해 아홉 꼬리는 단순한 악의 표지가 아니라, 이계의 힘이 극에 이른 표시였습니다. 그 힘은 왕권을 축복할 수도, 왕권을 무너뜨릴 수도 있습니다. 구미호의 불안함은 바로 그 양면성에서 나옵니다. 다마모노마에 역시 처음부터 백면금모 구미호였던 것은 아닙니다. 《신명경》에는 그 이름이 보이고, 《다마모노소시》에는 도바 상황을 섬긴 미녀가 여우로 드러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러나 이 오래된 형태에서 여우는 꼬리 두 개입니다. 데라시마 슈이치의 설명은 이 이야기와 다마모노마에가 구미호로 굳게 동일시되는 사이에 거의 400년에 가까운 재구성이 있었음을 강조합니다. 그 시간차를 보지 않으면 전설이 어떻게 다시 만들어졌는지 보이지 않습니다. 결정적인 변화는 달기의 여우와 다마모노마에가 이어진 일입니다. 은나라 주왕의 총애를 받은 달기가 구미호로 변했다는 이야기는 중국 주석서와 소설을 거치며 커졌고, 일본에도 일찍 전해졌습니다. 에도 후기의 요미혼은 달기, 인도의 가요부인, 다마모노마에를 한 여우의 전생과 화신으로 연결했습니다. 《에혼 산고쿠 요후덴》은 특히 중요합니다. 한 요호가 인도, 중국, 일본의 왕을 차례로 홀린다고 쓰면서, 다마모노마에를 백면금모 구미호가 일본에 나타난 모습으로 굳혔기 때문입니다. 살생석은 이 요호에게 죽은 뒤의 이야기를 주었습니다. 노 《살생석》에서 돌은 그저 독을 품은 바위가 아니라, 죽은 뒤에도 집착을 남긴 여우의 영이 머무는 곳입니다. 승려가 법력으로 돌을 깨고 달래는 줄거리는 요호 퇴치를 진혼의 이야기로 바꿉니다. 나스마치의 공식 전승도 이 돌을 인도와 중국에서 날아온 구미호가 변한 것으로 설명하고, 바쇼가 《오쿠노호소미치》에 적은 유황 풍경과 연결합니다. 다마모노마에는 궁정에서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 끝나지 않습니다. 돌로서 나스에 남습니다. 그림과 공연은 이 두 얼굴을 더 선명하게 보여 주었습니다. 1751년 초연된 인형 조루리 《다마모노마에 아사히노타모토》 이후, 다마모노마에는 절세의 미녀이면서 요호인 배역으로 조루리와 가부키 무대에 거듭 올랐습니다. 우타가와 구니요시의 〈아베 야스치카 기도하는 다마모노마에〉에서는 미녀 뒤로 아홉 줄기의 빛이 벌어져, 궁정의 우아함과 여우의 진실을 한 화면에 놓습니다. 거울, 비치는 물, 꼬리로 변하는 후광은 모두 다마모노마에가 꿰뚫어 보일 수 있는 존재임을 드러내는 장치입니다. 백면금모 구미호의 공포는 이빨이나 발톱이 아니라, 먼저 아름다움과 지성으로 나타난다는 데 있습니다. 그는 불전, 한적, 와카, 관현에 밝고, 질문에 막힘없이 답하며 신뢰와 총애를 얻습니다. 바깥에서 침입하는 것이 아니라 중심으로 초대됩니다. 그래서 힘만으로는 정체를 드러낼 수 없습니다. 점복, 기도, 거울, 물, 그리고 이 이야기를 거듭 말하는 서사가 숨은 여우를 밖으로 끌어냅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외부의 적도 아닙니다. 그는 이나리 흰여우, 천호와 공호의 위계, 여우 아내의 정, 여우 빙의의 두려움과 같은 여우 상상 속에서 나왔습니다. 다마모노마에로 나타나면 왕권을 기울게 하고, 살생석이 되면 땅에 독기를 남깁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달래고, 모시고, 그리고, 무대에 올리며 기억 속에 남겨 왔습니다. 백면금모 구미호는 지워진 악이 아니라, 패한 뒤에도 계속 이야기되는 악입니다.

  • 묘부

    묘부

    희귀

    myobu

    이나리 오카미의 하얀 신사·묘부

    동물 변화후시미 이나리 타이샤 뱟코샤 (현 교토부 교토시 후시미구)

    묘부는 이나리 오카미의 권속인 흰 여우를 신격화한 존재로, 후시미 이나리 타이샤의 말사인 뱟코샤에 '묘부토메노카미'로 모셔진다. 여우 자체를 신으로 여기는 속신과 달리, 묘부는 신을 가까이서 모시는 심부름꾼(신사)으로서의 흰 여우를 가리킨다는 점에 본질이 있다. '묘부'는 율령제 여관의 위계에서 유래한 칭호로, 정1위의 신계를 가진 이나리 오카미를 모시는 흰 여우를 궁중의 고위 여관에 비유하여 부른 것이다. 뱟코샤의 신전은 간에이 연간에 건립된 잇켄샤 카스가즈쿠리 편백나무 껍질 지붕 구조로 국가 중요문화재이다. 창건 시에는 '오쿠노묘부', '묘부샤'로 불렸으며, 하라다 하루미츠의 『이나리 신사 연기』는 아코마치·오스스키로쿠를 제신으로 삼고 스스무 묘부에 유래한다고 전한다. 벼 이삭·두루마리·열쇠·보주를 입에 문 흰 여우상은 묘부가 논의 결실·말·창고·보물을 매개하는 청정한 신의 사자임을 보여주는 도상 표현이다.

이어 읽기 ── 다른 지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