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부(命婦)는 이나리 오카미의 권속으로 봉사하는 흰 여우의 칭호이며, 후시미 이나리 타이샤의 말사인 뱟코샤(白狐社)에 '묘부토메노카미(命婦専女神)'로 모셔지는 신격화된 신의 사자(신사)이다[1]. 여우 자체를 신으로 보는 민간 신앙과는 선을 그으며, 묘부는 어디까지나 신의 뜻을 나르는 사자로서의 흰 여우를 가리킨다.
'묘부'란 본래 율령제하에서 궁중에 봉사하던 여관(女官)의 위계를 가리키는 말로, 5위 이상의 여성이나 5위 이상의 관인의 아내에게 주어진 칭호이다. 이것이 이나리의 흰 여우에게 붙여진 것은, 이나리사가 조정으로부터 정1위의 신계를 받은 고위 신이며, 그 신을 가까이서 모시는 여우 또한 궁정의 여관에 비유되어 고귀한 존재로 관념되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2]. 신의 사자이면서 위계를 갖는다는 발상은, 이나리 신앙이 조정·신기 제도와 깊이 결부되어 성숙했음을 이야기해 준다.
흰 여우의 '흰색'은 신과 마찬가지로 눈에 보이지 않는 청정·투명한 존재임을 나타낸다고 여겨지며, 이나리사에서는 고마이누 대신 여우상이 신사 앞에 놓인다. 묘부로서의 흰 여우는 벼 이삭·두루마리·열쇠·보주를 물고, 논의 결실·말·창고·보물을 매개하는 자로 도상화되어 왔다.
민화・전승
뱟코샤의 제신인 묘부토메노카미는 흰 여우를 가리키며, 창건 당초에는 '오쿠노묘부', '묘부샤'라고도 불렸다[1]. 하라다 하루미츠의 『이나리 신사 연기』에 따르면, 오쿠노묘부(현 뱟코샤)의 제신은 아코마치와 오스스키로쿠로 여겨지며, 스스무 묘부라고 불렸던 여관에서 유래한다는 전승을 전한다[1]. 사전(신전)은 에도 초기의 간에이 연간(1624~1644)에 건립된 잇켄샤 카스가즈쿠리 편백나무 껍질 지붕 구조로, 국가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겐로쿠 7년(1694)까지는 현재의 타마야마 이나리샤 주변에 위치해 있었다[1].
이나리의 흰 여우가 '묘부'라고 불리게 된 배경에는, 이나리사가 덴교 5년(942)에 정1위의 극위를 수여받은 최고위의 신이었던 사실이 있다. 신격이 정점에 달한 이나리를 모시는 여우 또한 궁중의 여관인 묘부의 격으로 대우받았다[2]. 각지 이나리사의 권속 여우가 '정1위 이나리 대명신'의 깃발과 함께 모셔지고, 흰 여우를 묘부·토메(専女)라고 부르는 관습은, 이러한 조정 유래의 격식 관념이 민간으로 퍼져나간 것이다.
묘부로서의 흰 여우는 사람을 홀리는 들여우(야코)·구다기츠네 등의 계통과는 명확히 구별된다. 같은 여우이면서도 이나리의 권속인 묘부는 복덕과 신위를 나르는 청정한 신의 사자이며, 신사 앞에 놓인 한 쌍의 흰 여우상으로서 오늘날에도 전국의 이나리사에 편재해 있다.
묘부는 이나리 오카미의 권속인 흰 여우를 신격화한 존재로, 후시미 이나리 타이샤의 말사인 뱟코샤에 '묘부토메노카미'로 모셔진다. 여우 자체를 신으로 여기는 속신과 달리, 묘부는 신을 가까이서 모시는 심부름꾼(신사)으로서의 흰 여우를 가리킨다는 점에 본질이 있다.
'묘부'는 율령제 여관의 위계에서 유래한 칭호로, 정1위의 신계를 가진 이나리 오카미를 모시는 흰 여우를 궁중의 고위 여관에 비유하여 부른 것이다. 뱟코샤의 신전은 간에이 연간에 건립된 잇켄샤 카스가즈쿠리 편백나무 껍질 지붕 구조로 국가 중요문화재이다. 창건 시에는 '오쿠노묘부', '묘부샤'로 불렸으며, 하라다 하루미츠의 『이나리 신사 연기』는 아코마치·오스스키로쿠를 제신으로 삼고 스스무 묘부에 유래한다고 전한다. 벼 이삭·두루마리·열쇠·보주를 입에 문 흰 여우상은 묘부가 논의 결실·말·창고·보물을 매개하는 청정한 신의 사자임을 보여주는 도상 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