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키니텐(荼枳尼天)은 산스크리트어 '다키니(Ḍākinī)'에서 유래한 불교 천부(天部)의 신이며, 흰 여우에 올라탄 천녀의 모습으로 표현되어 불교에서의 이나리, 즉 '부처님의 이나리상'으로 신앙되어 왔다[1][2]. 신도의 이나리 오카미와 습합하여 도요카와 이나리(묘곤지)·사이조 이나리(묘쿄지) 등 사원계 이나리의 본존이 되었다.
그 기원을 더듬어보면, 다키니는 인도 밀교에서 하늘을 날며 사람의 죽음을 예지하고 그 심장(인육·정기)을 먹는 여성 귀신이었다[2]. 중기 밀교에서는 대흑천(마하칼라)에게 조복되어 죽은 자의 심장을 먹도록 허락받은 존재로 자리매김한다. 헤이안 시대 초기에 구카이에 의해 진언 밀교와 함께 일본에 전해졌고, 태장만다라에서는 염마천의 권속인 탈정귀(奪精鬼)로 그려졌다[2].
이윽고 여우가 죽음을 예지하고 정기를 빼앗는 동물로 여겨진 인도 이래의 관념이 일본에서 여우를 신의 사자로 삼는 이나리 신앙과 결부되었고, 다키니텐은 흰 여우를 탄 여천형(女天形)의 불상으로 모습을 바꾸었다. 보주를 받쳐 들고 흰 여우를 탄 천녀상이 각지의 사찰에 모셔졌고, '다키니텐=이나리상'으로서 우카노미타마노카미와 나란히 서민들에게 친숙해졌다[1].
민화・전승
다키니텐의 이름은 '하늘을 나는 자'라는 뜻으로 여겨지며, 벵골 지방의 토착 신앙이 불교에 흡수된 것으로 생각된다[2]. 인도의 힌두교에서는 여신 칼리의 권속으로 여겨져, 적을 죽이고 그 혈육을 먹는 여귀·야차녀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중기 밀교에서 대흑천에게 조복되었고, 후기 밀교에서는 샤크티(성력) 신앙의 영향으로 수행자의 여성 배우존이 되기도 했다[2].
일본에서는 구카이가 진언 밀교와 함께 전파하여, 처음에는 염마천의 권속인 탈정귀로서 태장만다라 외금강부에 그려졌다. 반라에 피를 담는 그릇·단도·시신을 든 모습이었으나, 시대와 함께 흰 여우에 올라탄 여천형으로 변용되었고, '천(天)'이 붙어 다키니텐으로 불리게 되었다[2].
이나리와의 습합은 여우라는 공통점에 의해 급속히 진행되었다. 여우가 고분이나 무덤에 살아 시신을 먹는다고 여겨진 인도 이래의 관념과, 신도에서 여우를 이나리 신의 사자로 삼는 전통이 겹쳐져, '흰 여우를 탄 다키니텐'의 불상과 기존의 이나리 신앙이 융합하여 '이나리=다키니텐'의 습합이 성립되었다[1]. 전국시대에는 무장이 성의 수호신으로서 다키니텐을 이나리라는 이름으로 모셨고, 가마쿠라~무로마치 시대에는 도요카와 이나리(묘곤지)·사이조 이나리(묘쿄지) 등 사원계의 이나리가 성립한다. 소원을 이루어주는 위대한 신통력을 가졌다고 여겨져, 에도 시대에는 우카노미타마노카미와 함께 '이나리상'으로서 서민들에게 널리 숭배되었고, 장사 번성·개운 출세의 신으로서 지금도 사찰에 모셔져 있다[1].
다키니텐은 산스크리트어 다키니(Ḍākinī)를 음역한 불교·천부의 신으로, 흰 여우를 탄 천녀의 모습에서 '부처님의 이나리상'으로 숭배된다. 신도의 이나리 오카미와 습합하여 도요카와 이나리·사이조 이나리 등 사원계 이나리의 본존이 되었다.
인도에서는 하늘을 날며 사람의 정기와 심장을 먹는 여성 귀신이었으며, 중기 밀교에서 대흑천에게 조복되었다. 구카이에 의해 헤이안 시대 초기에 일본에 전해져, 태장만다라에서는 염마천의 권속·탈정귀로 그려졌으나, 여우를 매개로 이나리 신앙과 결합하여 보주를 바치고 흰 여우를 탄 여천형으로 모습을 바꾸었다. 소원을 이루어주는 강력한 신통력 때문에 무장과 서민들에게 두터운 신앙을 받아 장사 번성·개운 출세의 신으로서 오늘에 이른다. 귀신으로서의 가혹함과 소원 성취의 자비를 아울러 갖춘 양의적인 신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