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축이 되는 제신은 우카노미타마노카미(우카노미타마노미코토)[1]이다. 『고지키』, 『니혼쇼키』에 이미 등장하는 곡물과 음식의 신을 본모습으로 하는 일본 제일의 신앙 대상이다. 711년(와도 4년) 하타 씨에 의해 후시미 이나리 대사에 권청[2]된 것을 기점으로 하며, 현재는 전국 3만여 개의 이나리 신사 및 분사[3]에 모셔져 신사 수에서 일본 최대의 신앙 계통을 이룬다. 중세 이후에는 불교의 다키니텐[4]과 습합되어 도요카와 이나리, 사이조 이나리 등 사찰에서도 본존으로 모셔지게 되었다. 여우는 신 자체가 아니라 신의 사자(신사)지만, 민간 신앙에서는 동일시되는 경우도 많다. 오곡풍양, 사업번창, 가내안전, 터주신으로서 신사, 사찰, 저택, 길가 사당, 회사 내 제단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모셔지고 있다.
민화・전승
주축 제신인 우카노미타마노카미[1]는 『고지키』 상권(712)에 ‘우카노미타마노카미 ─ 음식의 신’, 『니혼쇼키』(720)에는 ‘우카노미타마노미코토’로 기록된 곡물과 음식의 신격이다. 이름의 ‘우카’는 고대 일본어의 ‘식(우케)’에서 유래했으며, ‘미타마(영혼)’를 붙여 곡물에 깃든 영력을 의인화한 것이다. 이나리 신앙의 본궁인 후시미 이나리 대사[2]는 711년(와도 4년) 2월 첫 오일(午日)에 도래계 씨족인 하타노 이로구[5]가 이나리야마 세 봉우리 정상에 세 기둥의 신(우카노미타마노오카미, 사타히코노오카미, 오미야노메노오카미)을 권청한 것을 기원으로 한다(『야마시로국 풍토기』 일문). 헤이안 시대 이후에는 조정의 신기관으로부터 폐백을 받았으며, 진언밀교(구카이·도지)와의 결속을 통해 다키니텐[4](Ḍākinī, 인도 밀교의 여성 귀신)과의 습합이 진행되었다. 가마쿠라~무로마치 시대에는 도요카와 이나리(묘곤지), 사이조 이나리(묘쿄지) 등 불교 사원 계열의 이나리도 성립되었다. 에도 시대가 되자 무사와 정인(상인)을 불문하고 ‘터주신(야시키가미)’으로서 집마다, 동네마다 권청되는 붐이 일어났고, 에도 시내에 흔한 것을 일컫는 센류 “이세야, 이나리, 개똥”이 읊어질 정도로 널리 보급되었다. 현대의 이나리 신사는 약 3만 2천 곳[3]이며, 길가 소형 사당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훨씬 방대하다. 여우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신의 사자(신사)라는 위치가 정통이지만, 민속적으로는 여우 자체를 이나리신으로 보는 지역도 많아, 에도 시대의 ‘여우신 신앙’(오이나리상=여우신)이 지금도 뿌리 깊게 남아 있다. 오곡풍양을 본래의 뜻으로 삼지만 상가의 터주신화 되는 과정에서 사업번창과 재물운이 주요 기원이 되었고, 현대에는 회사·점포 내 제단과 길가 사당까지 보급되었다. 2월 첫 오일의 ‘하쓰우마 마쓰리’(이나리 대신 강림의 날)는 전국 이나리 신사에서 성대하게 치러지는 연중행사이다.
이나리신의 주축 제신인 우카노미타마노카미(별칭: 우카노미타마노미코토)[1]는 『고지키』 상권(712)에 등장하는 곡물과 음식의 여신격이다. 신명 ‘우카’(고대어 ‘식’)와 ‘미타마(영혼)’의 합성어로, ‘곡물에 깃든 영력의 의인화’라는 소박한 민속 기원을 간직하고 있다. 신앙의 본궁인 후시미 이나리 대사[2](야마시로국 기이군 이나리야마, 현 교토시 후시미구)는 711년(와도 4년) 2월 첫 오일에 하타 씨(도래계 씨족으로 교토 분지와 후시미 일대의 개척자)[5]의 수장 하타노 이로구가 “떡으로 과녁을 만들어 쏘았더니 백조로 변해 날아가, 떨어진 산 정상에 벼가 자라났다”라는 기서(奇瑞)에 의해 이나리야마에 세 기둥의 신을 권청한 것을 기원으로 한다(『야마시로국 풍토기』 일문). 세 기둥이란 우카노미타마노오카미(주신)·사타히코노오카미·오미야노메노오카미이며, 훗날 다나카노오카미·시노오카미를 더한 다섯 기둥을 이나리 대신으로 총칭하게 된다. 헤이안 시대 이후 신앙이 급속히 확대되는 데에는 진언밀교의 본산인 도지(東寺)와의 결연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구카이가 도지 축조 당시 이나리신에게 협력을 구했다는 전설을 기점으로 진언밀교와 이나리 신앙은 깊게 결합했고, 인도 밀교의 여성 귀신 다키니텐(Ḍākinī)[4]과 습합되는 전개를 보였다. 다키니텐은 본래 ‘인육을 먹는 야차녀’였으나 티베트와 중국을 거쳐 일본에 전래되는 과정에서 온화해져 ‘흰 여우를 탄 천녀’로 도상화되었고 이나리신과 동일시되기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불교계 이나리(도요카와 이나리·묘곤지=1441년 창건·아이치현, 사이조 이나리·묘쿄지=1300년대·오카야마현 등)라는 독자 계통이 성립되어 신도계 이나리(후시미 계열)와 병존하게 되었다. 에도 시대에는 무사·정인·농민을 불문하고 ‘터주신(야시키가미)’으로서 집집마다 소사당을 지어 권청하는 붐이 들끓었고, 에도 시내에서 보기 쉬운 것을 늘어놓은 센류 “이세야, 이나리, 개똥”이 성립될 정도로 보급되었다. 현대의 이나리 신사는 약 3만 2천 곳[3](주신 2,900곳 + 분사 + 터주 사당)으로 추산되어 신사 수에서 일본 최대의 신앙 계통을 이룬다. 여우와의 관계는 주의가 필요하다. 후시미 이나리 대사의 공식 설명에서는 “여우는 이나리신의 사자(신사·권속)일 뿐 신 자체가 아니다”라고 명시하고 있으나, 민속적으로는 여우 자체를 이나리신으로 보는 지역이 많아 에도 시대 이후의 ‘여우신 신앙’(오이나리상=여우신)은 지금도 민간 신앙의 주류를 이룬다. 신의 사자인 여우는 ‘흰 여우(뱟코·시로기쓰네)’라 불리며, 구슬·열쇠·벼이삭·두루마리 등 네 가지 중 하나를 입에 문 도상이 정형이다. 구슬은 신덕, 열쇠는 영창(靈仓)의 열쇠, 벼이삭은 곡물, 두루마리는 경전을 의미한다. 주요 기원 내용은 오곡풍양·사업번창·가내안전·화재예방·역병퇴산이며, 특히 에도 시대 이후 상가의 터주신화 과정에서 사업번창과 재물운이 주축이 되었다. 현대에는 회사·점포 내 제단(상업 빌딩 옥상 소형 사당) 및 길가 사당까지 보급되어 신사·사찰·저택·기업의 4층 구조로 일본 사회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연중행사로는 2월 첫 오일의 하쓰우마 마쓰리(이나리 대신 강림일)[6]가 전국 이나리 신사에서 성대하게 치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