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ttsu Province 津の国に着いた怪。摂津国の妖怪と古代の海の玄関

茨木童子・天探女・鬼一口。難波津から開いた港の国の境界

津の国に着いた怪。
摂津国の妖怪と古代の海の玄関

Settsu Province · せっつ

다른 이름: 津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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摂津国(せっつのくに)は、ひとことで言えば「港の国」である。古代、大阪湾に面したこの地には難波津(なにわづ)という大陸への玄関口が開け、海の向こうの隋や唐へ向かう使節の船は、ここから帆を上げて外つ国へと漕ぎ出していった。難波津から淀川をさかのぼれば都へ、瀬戸内海を西へ下れば兵庫津・大輪田泊(おおわだのとまり)を経て九州・大陸へ ── 摂津は、ヤマトの内と外とを結ぶ蝶番(ちょうつがい)のような土地だった。

その範囲は、今でいえば大阪府の北中部から兵庫県の南東部、神戸の東半分と尼崎までを一続きに含む。現代の府県の境を越えて、大阪と神戸という二つの大都市を貫く一本の海岸線 ── それが令制国としての摂津の素顔である。だからこの地の妖怪を語ろうとすると、どうしても「港」と「境(さかい)」という二つの言葉に行き着く。外から人や物や神がやって来る入口であればこそ、ここは異界との境でもあった。

難波宮(なにわのみや)に都が置かれ、難波津に外交の船が着き、住吉の神が海路を守り、やがて平清盛が福原に夢を賭けた ── この港の国の長い記憶のなかに、三体の怪が深く根を張っている。摂津の里に生まれたと伝わる鬼の茨木童子、難波の高津に天磐船で泊まったという神話の女神天探女、そして摂津の川辺で女を一口に呑んだ鬼一口。本稿は、この古代の海の玄関口という地の性格から、三体の妖異の来歴をたどっていく。

難波津という古代の海の玄関

摂津の妖怪を語る前に、まずこの土地が何であったかを確かめておきたい。鍵は「津(つ)」、すなわち港である。

そもそも摂津国は、はじめ「津国(つのくに)」と呼ばれていたと考えられている。律令国家が都の外港としての難波津の重要性を重く見て、難波津とその一帯を管轄する特別な役所を置いた ── それが摂津職(せっつしき)である。摂津職は一般の国司と違い、難波津・難波宮の管理までを兼ねた、いわば「港湾都市庁」とでも呼ぶべき官だった[1]。やがて国名を二字にそろえる過程で、津国は「摂津国」と書かれるようになり、延暦十二年(七九三)、摂津職は廃されて摂津国へと改められた[1]。それでも古い「つのくに」という訓みは長く残り、この地が「津 ── 港の国」であることを名そのものが告げていた。

その港の中心が難波津である。瀬戸内海に臨むこの津は、外国使節を迎え、遣隋使や遣唐使の船を送り出す、古代国家の外港として栄えた[2]。船は難波津から外つ国へ向かい、帰ってきた使節もまずここに着いた。海の彼方の世界と日本とが触れ合う、最前線の渚だったのである。

この海の玄関に、都も降りてきた。六四五年の乙巳(いっし)の変ののち、孝徳天皇は飛鳥からこの地へ都を遷し、難波長柄豊碕宮(なにわのながらとよさきのみや) ── いわゆる前期難波宮を営んだ。宮は白雉三年(六五二)に完成し、朱鳥(しゅちょう)元年(六八六)正月に焼失するまで存続したと伝わる[3]。のちに聖武天皇も神亀三年(七二六)に新たな難波宮(後期難波宮)の造営を命じ、天平十六年(七四四)には一時ここを都とした[3]。都と港が同じ地に重なる ── 摂津とは、外交と政治が海辺で出会う特異な国だった。

海の道は、平安末にもう一度この国を歴史の表舞台へ押し上げる。淀川河口の港湾機能は、延暦四年(七八五)に神崎川が開削され、淀川と瀬戸内海が短く結ばれると、しだいに神崎・江口へと移っていった[2]。そして十二世紀、平清盛は摂津西端の大輪田泊(現在の神戸市兵庫区周辺)を大規模に修築し、日宋貿易の拠点とする。治承四年(一一八〇)には近くの福原へ都を遷そうとさえした ── もっともこの遷都は半年で頓挫し、福原は幻の都に終わる。清盛が福原で無数の髑髏に睨まれたという怪は、兵庫県の妖怪事典に詳しい。摂津は、古代の難波津から中世の兵庫津まで、つねに「海へ開く国」であり続けたのである。

港は、ただ物が出入りする場所ではない。外から見知らぬものがやって来る場所は、同時に異界との境でもあった。摂津の怪が「境にあらわれる鬼」「海路に連なる神」「川辺で人を呑む怪」という顔をもつのは、この土地の地理がそのまま怪の住処になったからにほかならない。

茨木の鬼 ── 茨木童子の本貫

摂津が生んだ最も名高い妖異は、鬼である。大江山に拠って都を荒らした酒呑童子(しゅてんどうじ)の、片腕とも副将ともいわれる茨木童子 ── その出生地として、摂津の名が挙がる。

이바라키 도지

Ibaraki Dōji

헤이안기에 주둔도지의 심복으로 꼽히는 오니. 출생지는 셋쓰국(도마쓰·이바라키) 설과 에치고국(고시군 가루이자와) 설이 있으며, 어릴 적부터 기괴한 상과 괴력을 보였다고 전한다. 오에산의 도적무리에 합류해 도성을 괴롭혔으나, 미나모토노 요리미쓰 일행의 토벌로 일당이 괴멸하고 이바라키 도지는 간신히 도주했다는 전승이 있다. 이후 와타나베노 쓰나에게 팔을 베였고, 변신하여 그것을 되찾아 갔다 하는 이야기가 중세 이후의 설화·노 교겐·가부키에 널리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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茨木童子の出生には越後国(現在の新潟県)説と摂津国説があり、摂津説では、現在の茨木市や、尼崎の富松(とまつ)あたりに生まれたとされる[4]。地誌『摂陽群談(せつようぐんだん)』など近世の文献は、この鬼が摂津の里に生を享けたと記し、尼崎・茨木の周辺にゆかりの地が残ると伝える[4]。土地に伝わる話では、十六か月もの難産の末に生まれた童子はすでに歯が生えそろい、生まれてすぐ歩き出したという。鬼のような赤子を持て余した親は子を捨て、髪結床(かみゆいどこ)に拾われて育つが、ある日客の血をなめてその味の虜となり、水鏡に映った自分の顔が鬼に変じているのを見て、ついに丹波の山へ去って酒呑童子の家来になった ── そう語り継がれてきた。「茨木」という名そのものが摂津の地名に由来する、というのである。

ここで断っておきたいのは、史実と伝承の区別である。茨木童子の出生譚は近世の地誌や地域伝承に記されたもので、平安期に確実な一次史料があるわけではない。出生地が摂津か越後かも定まらず、いずれも近世の地域的な脚色が大きい。確かなのは、「茨木の鬼」という像が、摂津の土地と分かちがたく結ばれて語り継がれてきたという事実のほうである。

その茨木童子を一躍有名にしたのは、渡辺綱(わたなべのつな)との腕斬り譚だ。『平家物語』の異本「剣巻(つるぎのまき)」系が伝えるところでは、源頼光(みなもとのよりみつ)の四天王の一人・渡辺綱が、一条戻橋(いちじょうもどりばし)で美しい女に出会い、馬に乗せたところ、女はたちまち鬼と化して綱の髻(もとどり)を掴み、愛宕(あたご)山へ攫(さら)おうとした[5]。綱は名刀で鬼の片腕を斬り落として難を逃れる。後日、鬼は綱の伯母(養母)に化けて屋敷に上がり込み、隙を見て自分の腕を奪い返して飛び去った ── 羅城門(らじょうもん)の鬼の話とも結びつくこの説話が、能『羅生門』や歌舞伎・浄瑠璃で繰り返し演じられ、斬られた腕の鬼は中世以降「茨木童子」と同定されていった[5]。ただし剣巻そのものは鬼の名を明示しておらず、茨木童子への同定は後世の付会である。

見逃せないのは、討つ側の渡辺綱もまた摂津に深く根ざした武人だという点だ。綱は摂津国西成郡渡辺(現在の大阪市中央区から北区にかけての一帯)を本拠とした渡辺党の祖とされ、「渡辺」という姓は淀川河口の渡し場の地名に由来する。渡辺の地は、まさに難波津の水際にあたる。つまり茨木童子の腕斬り譚は、摂津の里に生まれた鬼を、摂津の港を本拠とする武士が都で討つという、二重に摂津と結ばれた物語なのである。港の国は、鬼を生み、その鬼を斬る者をも生んだ。

伊勢物語芥川の鬼一口

港が外界との境であるなら、川もまた境であった。摂津を流れる川辺で、ひとりの女が鬼に一口で呑まれる ── 日本文学のなかでも屈指の名高い怪異が、この国の川を舞台に語られている。鬼一口である。

오니 한입

Oni Hitokuchi

‘오니 한입’은 특정한 개체라기보다, 오니가 사람을 한입에 삼켜 죽이는 일을 가리키는 명칭이다. 헤이안기의 설화와 가요물에 자주 보이며, 『이세 이야기』 아카타가와 단에서는 뇌우 속 창고에 숨은 오니가 여인을 한입에 먹어치우는 전개로 알려졌다. 도리야마 세키엔도 도해로 그려 이후 ‘오니 한입’이라는 이름이 퍼졌다. 전란이나 재난 속 실종을 설명하는 해석과 맞물려, 이계의 개입으로 풀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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その典拠は、平安前期の歌物語『伊勢物語』第六段「芥川(あくたがわ)」である[6]。長年慕った身分違いの女をついに盗み出した男が、芥川のほとりまで来たとき、女は草の上に光る露を見て「あれは何」と問うた。だが夜は更け、雷雨が激しくなる。男は荒れ果てた蔵に女を押し入れ、自分は戸口で弓を負って夜の明けるのを待った。ところが夜が明けて見れば、女はすでにいない。鬼が一口に呑んでしまったのだ。雷鳴のために、女の悲鳴さえ聞こえなかったという[6]。男は「白玉か何ぞと人の問ひし時露と答へて消えなましものを」と詠み、露のようにはかなく消えた女を悼んだ。この「鬼はや一口に食ひてけり」の一節こそが、鬼一口という怪異の名の出どころである。

舞台となった芥川は、摂津国三島郡(現在の大阪府高槻市)を流れ淀川に注ぐ支流とする説が有力である[7]。宮中の塵芥(じんかい)を流す溝とする解や、まったくの架空の川とする解もあるが、いずれにせよ「芥川」という名が摂津の地名として実在し、物語が摂津の川辺を想起させる構図になっていることは動かない。雷鳴に女の悲鳴がかき消されるという演出は、人知の及ばぬ異界の暴力を、摂津の川辺の闇に重ねている。

この段には、有名な「種明かし」が付されている。盗み出された女は実は二条后(にじょうのきさき)藤原高子(たかいこ、八四一 ── 九一〇)で、入内(じゅだい)前に在原業平(ありわらのなりひら)とおぼしき男と駆け落ちしたところを、兄の藤原基経(もとつね)や国経(くにつね)が連れ戻した ── その史実を、「鬼が呑んだ」と神話的に語り替えたのだ、という読みである[6]。ただし『伊勢物語』本文は男女の名を明示しておらず、これを業平・高子に当てるのは後人の付会(俗解)とされる。

それでも、この読みが示すものは深い。鬼一口の「鬼」とは、恋を引き裂く貴族社会の権力そのものの隠喩でもある、というのだ。怪異を語ることが、生々しい人事の悲劇を語る器になる ── 摂津の川辺を舞台に、そうした重層的な物語が平安初期にすでに紡がれていたことは、この港の国が単なる地方ではなく、王朝文学の想像力と地続きであったことを物語っている。なお鬼一口の話型は、男に化けた鬼が女を呑む『日本霊異記』の説話など、平安期に広く分布しており、後世には鳥山石燕(とりやませきえん)が妖怪画に「鬼一口」を描いたとも伝えられる。摂津の芥川は、その代表的な舞台として記憶された。

天の邪心 ── 天探女と難波の高津

港の国は、鬼や文学の怪だけでなく、神話の女神をもこの地に係留(けいりゅう)している。天邪鬼(あまのじゃく)の原像ともいわれる女神 ── 天探女である。

아메노사구메

Ame-no-Sagume

『고지키』에서는 ‘아메노사구메(天佐具売)’, 『일본서기』에서는 ‘아메노사구메(天探女)’로 표기되는 여신. 천와카히코(아메와카히코)를 따르는 존재로 등장하며, 꿩의 ‘나키메’ 울음을 흉조라 알린 일화로 알려져 있다. 무녀적 길흉 판단에 관여한 성격으로 해석되며, 천사귀(아마노자쿠)의 원형으로 보는 민속학적 견해가 있다. 아마쓰가미인지 구니가미인지는 사료에 따라 달라 신격의 위치가 특이하다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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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探女は、『古事記』では天佐具売(あめのさぐめ)、『日本書紀』では天探女と表記される女神で、葦原中国(あしはらのなかつくに)平定の神話に登場する[8]。高天原(たかまがはら)から地上へ遣わされながら復命しない天若日子(あめわかひこ、天稚彦)に付き従う巫女(みこ)で、天若日子のもとへ高天原から飛んできた雉(きじ)の鳴女(なきめ)の声を聞き、これを不吉として「あの鳥を射よ」と進言したと伝わる[9]。天若日子が放った矢は雉を貫いて高天原まで届き、神に投げ返された矢(還矢)が今度は天若日子自身の胸を貫いて、彼は死ぬ。鳥の声や人の心の吉凶を探り当てるこの巫的な女神が、のちに「人の心に逆らう小鬼」=天邪鬼の原像になったとする民俗学的な見解がある。神に仕える巫女の鋭敏な勘が、いつしか「天の邪(よこしま)な心」と読み替えられ、へそ曲がりの小鬼へと零落していった ── その変容の起点に、天探女の名がある。

この女神が摂津と結ばれるのは、難波の高津(たかつ)という地名を通してである。『摂津国風土記』の逸文(いつぶん)には、「天稚彦が天降りした時、これに付き従って下った神、天の探女」とあり、天磐船(あめのいわふね)に乗った天探女が泊(は)てた(停泊した)場所が高津であると記されている[10]。さらに『万葉集』巻三には、角麻呂(かどまろ)の歌として「ひさかたの天の探女が岩船の泊てし高津はあせにけるかも」が収められている[11]。天探女の岩船が泊まったというあの高津も、今では干上がってしまったことよ ── という嘆きの歌である。

この一首は、ただの神話の引用ではない。淀川の運ぶ土砂が河口に堆積し、かつて船を泊めた津(港)がしだいに陸地となって干上がっていく ── その地形の変化を、神話の岩船に託して詠んだものと解されている[11]。神話の女神が泊めた船着き場が、現実の地理の変動とともに失われていく。港の国が、海から少しずつ遠ざかっていくその実感が、天探女という神話の像に結ばれて歌になった。神話と地形と港の記憶が一首のうちに畳み込まれているこの歌は、「津の国」摂津という土地の本質を、これ以上ないほど鋭く言い当てている。

むすび ── 港の国の境界

摂津の里に生まれた鬼・茨木童子、摂津の川辺で女を呑んだ鬼一口、そして難波の高津に岩船を泊めた天探女。三体の妖異を並べてみると、いずれもが「境(さかい)」にあらわれていることに気づく。鬼は里と山の境、人と異界の境にあらわれ、鬼一口は川という此岸(しがん)と彼岸(ひがん)の境に潜み、天探女は天と地の境を岩船で渡ってきた。

それも当然なのだ。摂津とは、海と陸の境であり、内つ国と外つ国の境であり、都と地方の境であった。難波津に外交の船が着き、難波宮に都が降り、淀川と神崎川が都の物流を運び、やがて兵庫津に大陸との貿易が花開いた ── この港の国は、つねに「向こう側」と接していた。だからこそ、向こう側からやって来るもの ── 鬼も、神も、人を呑む怪も ── が、この地の記憶に色濃く刻まれた。

摂津国の妖怪をたどる旅は、現代の府県の枠を越えて、大阪府の難波・茨木・高槻から、兵庫県の尼崎・兵庫津へと、古代の海岸線をそのままなぞることになる。津 ── 港の名を負ったこの国にとって、妖怪とは、海の彼方の異界とこの地が交わり続けてきた、長い歳月のもうひとつの記録なのである。

Settsu Province의 모든 요괴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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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바라키 도지

    이바라키 도지

    전설

    Ibaraki Dōji

    이바라키도지

    반인반요셋쓰국 또는 에치고국으로 보는 설이 있음

    중세 군기물과 이야기본, 그리고 근세 연극이 빚어낸 형상에 따른 해석. 주정귀 술지마도지의 제일 심복으로 오에산에 근거했으나, 요리미쓰의 기책에 걸려 패주한다. 후일담으로 이치조 모도리바시와 라쇼몬에서 와타나베 쓰나의 팔 절단과 탈환 설화가 전한다. 출생지와 성별에는 여러 설이 있으나, 지역 전승에는 셋쓰와 에치고 양쪽에 흔적이 보인다. 여기서는 사료상 널리 유통된 줄거리를 골격으로 삼고 과도한 윤색을 피한다.

  • 아메노사구메

    아메노사구메

    에픽

    Ame-no-Sagume

    아마노사구메

    반인반요불명(기록 전승상으로는 다카마가하라 및 섯츠·난바 다카쓰와 관련)

    아마노사구메는 『기기』에 이름이 보이는 무적 성격의 여신으로, 길흉을 알리는 말로 사태를 전환시키는 존재로 그려진다. 아메와카히코에 수행한 것으로 전하며, 울부짖는 여인의 소리를 불길하다고 단정한 장면은 신의 뜻 전달과 말걸기가 정치 제의와 결부된 고층 관념을 반영한다. 『고사기』에서는 아마노사구메, 『일본서기』에서는 아마노사구메로 이자를 달리한다. 섭津국 풍토기 일문과 만엽가에 따라 천암선으로 다카쓰에 머물렀다는 전승이 알려지며, 난바의 지명 설화와 연결된다. 아마쓰카미인지 쿠니가미인지 속성은 사료마다 흔들리며, 존칭 부여도 일양적이지 않은 점이 특이하다. 민간전승 연구에서는 거스르고 비뚤어진 성을 띠는 텐구적 존재, 즉 아마노자쿠의 원상으로 보기도 하나 직접적 습합을 단정하지 않는 견해도 있다. 오늘날 전해지는 제의례는 적고, 와카야마의 히라마 신사에서는 아마노사구메노미코토, 사가미의 쇼텐 신사에서는 인연을 찾아주는 여신으로 전승된다. 창작적 가감을 피하고 사료 기재 범위에서 그 성격은 “점단과 말걸기로 사태를 움직이는 여신”으로 요약된다.

  • 와타나베노 츠나

    와타나베노 츠나

    에픽

    watanabe-no-tsuna

    라조몬의 오니 팔을 벤 무사·와타나베노 츠나

    인요·반인반요셋츠국 와타나베노츠 (현 오사카부 오사카시 주오구 부근) / 헤이안쿄 이치조 모도리바시·라조몬 전승

    이 판본에서는 와타나베노 츠나를 '오니의 팔을 벤 경계의 무사'로 읽는다. 츠나의 이름을 가장 강하게 남긴 것은 라조몬 또는 이치조 모도리바시에서 오니를 만나 그 팔을 베어 떨어뜨리는 이야기다. 장소가 문이나 다리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문은 도읍의 안팎을 나누고, 다리는 이승과 저승을 잇는다. 오니는 바로 그 경계에 나타난다. 츠나의 무용은 오니를 단칼에 완전히 없애지는 못한다. 팔을 벨 수는 있지만 오니 자체는 도망친다. 남겨진 팔은 전리품인 동시에 괴이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증거다. 여기에 오니 팔 전설의 묘미가 있다. 잘린 팔은 물건이 되어 저택으로 들어가 인간 측의 관리하에 놓이지만, 오니는 그것을 되찾기 위해 다시 사람의 세계로 돌아온다. 노파로 둔갑한 오니의 재방문은 츠나의 약점을 드러낸다. 그는 무력에는 뛰어나지만 친척의 모습을 한 상대에게 예의를 잃기 어려워한다. 오니는 그곳을 찌른다. 요괴 퇴치담에서는 괴이를 간파하는 안력이 무력만큼이나 중요하다. 츠나는 팔을 베는 데는 성공했지만, 변장한 오니를 완전히 막지는 못한다. 이 불완전함이 그를 인간적인 영웅으로 만든다. 요리미츠 사천왕으로서의 츠나는 오에야마 퇴치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단독 설화에서는 경계의 오니를 베고, 집단 설화에서는 요리미츠의 지휘 아래 슈텐도지에게 향한다. 즉 츠나는 개인의 무용과 팀의 오니 퇴치를 연결하는 인물이다. 그의 칼은 일대일 괴이에도, 거대한 토벌 이야기에도 참가한다. 이 판본의 츠나는 승리와 놓침 사이에 서 있다. 오니의 팔을 베는 장면은 강렬하지만, 오니가 팔을 되찾아가는 전개는 괴이가 단순하게 봉인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경계에서 괴이를 베어도, 괴이는 집 안으로, 친척의 모습으로, 기억 속으로 돌아온다. 와타나베노 츠나의 이야기는 오니 퇴치의 통쾌함과, 오니가 여전히 인간 세계로 파고드는 끈질김을 동시에 말하고 있다. 오니의 팔은 경계를 넘은 물건이다. 오니의 몸에서 떨어져 나간 순간, 그것은 이계의 일부이면서도 인간의 저택에 보관된다. 츠나는 승리의 증표로 팔을 갖지만, 그 팔은 오니가 돌아오기 위한 표식이 되기도 한다. 전리품은 동시에 주물(呪物)인 것이다. 노파로 둔갑한 오니는 츠나의 인간성을 공격한다. 무사는 오니에게는 강하지만 친척에 대한 예를 버릴 수 없다. 여기서 이야기는 힘의 승부에서 인식의 승부로 옮겨간다. 상대가 오니인 줄 알면 벨 수 있다. 그러나 오니가 가족의 얼굴을 빌렸을 때, 사람은 쉽게 칼을 휘두르지 못한다. 이 판본의 츠나는 완전무결한 퇴치자가 아니라, 경계에서 이기고 집 안에서 흔들리는 영웅이다. 그렇기 때문에 설화에 깊이가 생긴다. 오니 퇴치는 밖에서 끝나지 않고, 가지고 돌아온 것, 믿었던 상대, 열어버린 봉인에 의해 일상으로 돌아와서 다시 한 번 시작된다. 츠나의 매력은 이 흔들림을 포함하여 무사라는 점에 있다. 그저 강하기만 했다면 괴담은 짧게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강하면서도 동시에 속는다. 그래서 이야기는 칼의 일격에서 저택의 대화로 옮겨가고, 밖의 오니 퇴치에서 내면의 의심으로 깊어진다. 그 여운이 츠나의 무용을 단순한 승리담으로 남지 않게 한다.

  • 오니 한입

    오니 한입

    드문

    Oni Hitokuchi

    전승 준거판

    도깨비거인일본 민간전설

    오니히토쿠치는 고유한 형상 그 자체라기보다, 귀적 존재가 인간을 한 입에 베어 죽이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로 중세 이전 설화에 자주 보인다. 전형적으로 밤, 뇌우, 곳간이나 길가 같은 경계적 장면에서 남녀의 밀회나 도주 도중에 나타난다. 『이세 이야기』 아쿠타가와 단에서는 천둥소리가 비명을 삼켜 자취의 희박함이 ‘한 입’의 즉시성을 부각한다. 『령이기』와 『금석화어』에서는 남자로 변장하는 기만성이 드러나 혼인과 맹약 등 사회 질서의 일탈에 대한 경고로 기능한다. 세키엔의 도상화 이후 명칭이 고정되었고, 민간에서는 전란, 기근, 재해 시의 실종을 이계의 포식으로 다시 이야기하는 틀도 낳았다. 따라서 여기의 ‘오니히토쿠치’는 일종의 유형명으로, 모습은 일정하지 않으며, 먹는 속도와 흔적 없음이 요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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