都の北西、山城国と境を接する内陸の盆地に、丹波という古い国があった。現在の京都府中部(亀岡・南丹・福知山)と兵庫県東部(丹波篠山・丹波市)にまたがる山々と河谷の国である。「たには」と訓まれたこの地名は、『和名類聚抄』に「太迩波」と記され、その語源を『諸国名義考』は「田庭」(平らで広い耕地)に求める[1]。律令制以前の旧丹波はさらに広く但馬・丹後を抱え込んでおり、713年(和銅6)に北方五郡が丹後国として分立して、都に近い諸郡が丹波国となった。
平安京から見れば、丹波は北西に開く裏口であった。鬼門(北東)を比叡山が、裏鬼門(南西)を石清水八幡が固める一方で、丹波へ抜ける老ノ坂の峠道は、都の結界が最も薄くなる方角に当たる。だからこそ、この境の国には鬼が住んだ。

슈텐도지(酒呑童子)
슈텐도지(酒呑童子)는 도성에서 사람들을 납치하는 오니의 왕과 칙명을 받고 산에 들어가는 무사들의 대결을 그린 중세 오니 퇴치담의 중심인물이다. 이야기는 이치조 천황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실존 무장 미나모토노 요리미쓰와 후지와라노 야스마사를 등장시키지만, 헤이안 시대의 동시대 기록은 아니다. 이쓰오 미술관 소장의 중요문화재 《오에야마 에코토바》는 남북조 시대인 14세기에 제작된 현존하는 오에야마계 에마키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작품이다. 헤이안 시대라는 무대와 중세 작품의 성립을 구분해 읽어야, 이 이야기를 역사적 산적 토벌로 곧장 바꾸어 보지 않고 후대 사람들이 헤이안 무사와 오니 왕을 통해 그려 낸 세계로 이해할 수 있다. 이름 표기도 하나가 아니다. 《오에야마 에코토바》에는 주로 ‘酒天童子’라 적혀 있고, 도지는 술을 매우 사랑해서 권속들이 자신을 酒天童子라는 별명으로 부른다고 말한다. 이 밖에 ‘酒伝童子’, ‘酒顛童子(酒顚童子)’ 등의 표기도 있으며, 오늘날에는 ‘酒呑童子’가 널리 쓰인다. ‘도지’라는 말만으로 특정 나이, 머리 모양, 승려 신분을 단정할 수는 없다. 노 《오에야마》에서는 소년 모습의 마에시테가 정착한 반면, 《오에야마 에코토바》에서 낮의 모습은 키가 한 장(丈)쯤 되는 위엄 있는 인물로 묘사된다. 이야기는 크게 오니 왕이 오에야마에 산다는 계통과 오미국 이부키산에 산다는 계통으로 나뉜다. 산토리 미술관 소장의 《슈텐도지 에마키(酒伝童子絵巻)》는 다이에이 2년(1522)에 제작된 이부키산계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례로 여겨진다. 두 계통은 산 이름만 바꾼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전승본에 따라 인물 배치, 술의 이름, 오니 왕의 모습과 내력에도 차이가 난다. 그러므로 오에야마, 이부키산, 에치고, 오이노사카의 이야기를 한 슈텐도지가 밟아 간 확정된 생애로 이어 붙일 수 없다. 오에야마계의 가장 이른 본문에서는 도성에서 실종이 이어지고 아베노 세이메이의 점복이 오에야마의 오니 왕을 가리킨다. 칙명을 받는 이는 요리미쓰와 야스마사 두 장수이며, 이들은 가신들을 거느리고 산으로 향한다. 후대에 널리 알려진 ‘요리미쓰와 사천왕’만의 이야기로 줄여 버리면 오래된 전승본의 구성이 보이지 않는다. 일행은 산속에서 만난 신불의 화신(化現)에게서 야마부시 복장과 특별한 술을 받아 오니의 성에 들어가 도지의 연회에 합류한다. 오니 왕은 낮에는 한 장쯤 되는 도지의 모습으로 변해 위엄과 지혜를 보이지만, 밤에는 다섯 장쯤 되는 오니의 몸이 된다. 머리와 몸통은 붉고, 왼발은 검으며, 오른손은 노랗고, 오른발은 희며, 왼손은 푸르다. 눈은 열다섯 개, 뿔은 다섯 개다. 술에 취해 잠든 그를 신불의 화신이 붙들고 요리미쓰·야스마사 주종이 목을 베지만, 잘린 머리는 여전히 하늘을 날아 요리미쓰가 세 겹으로 쓴 투구에 달려든다. 슈텐도지는 술에 취해 쓰러지는 단순한 악귀가 아니다. 화려한 오니 성의 주인으로 손님을 맞고 자신의 내력을 이야기하는 한편, 붙잡은 사람들을 먹을거리로 삼는다. 손님을 대하는 예와 잔혹함, 지성과 거대한 오니의 몸, 패배와 날아다니는 머리가 한 이야기 안에 함께 놓인다. 노, 오토기조시, 에마키, 판본, 조루리와 가부키는 저마다 다른 슈텐도지의 모습을 널리 퍼뜨렸다. 도리야마 세키엔도 안에이 8년(1779)에 간행한 《곤자쿠 가즈 조쿠 햣키》에 ‘酒顛童子’를 그려, 술에 취해 누운 도지와 오니들을 요괴 화집의 한 쪽에 담았다. 슈텐도지는 한 모습으로 고정된 괴물이 아니라, 여러 전승본과 예능, 땅의 기억에 따라 거듭 이야기가 새로 쓰여 온 일본을 대표하는 오니 왕 가운데 하나다.
자세히 보기丹波の妖怪を辿ることは、都が「外」をどう想像したかを辿ることでもある。湖を拓いた神の伝承、一宮に祀られた出雲の神、保津川に立つ怪火、峠道の古木から落ちてくる生首 ── そのどれもが、盆地と河谷と国境という丹波固有の地理に根を張っている。本記事は都の妖怪事典である京都府の妖怪事典の北西を補う一篇として、丹波国の四体の怪を地に即して読み解く。
湖を拓いた神の国 ── 亀岡盆地と出雲大神宮
丹波の中心は、古代には桑田郡、いまの亀岡市あたりにあった。丹波国府の所在は確定していないが、桑田郡(亀岡)に置かれた[1]とみるのが通説で、保津川と園部川が集まるこの盆地が、国の政治と祭祀の核であった。
この盆地には、神話的な地形伝承が伝わる。かつて亀岡盆地は一面の湖であり、その水面が美しく赤く照り映えたことから「丹の湖」「丹波」と呼ばれた ── そして出雲の神・大国主命がこの湖の縁を蹴り裂き、保津峡を開いて水を流し、現れた肥沃な土地を人の住む国に拓いた、という。京都府埋蔵文化財調査研究センターの研究は、この「亀岡湖伝説」(蹴裂伝説)が盆地内の桑田神社・請田神社などの社伝や口承として伝えられてきたもので、統一された一つの物語ではなく、各社が少しずつ異なる形で語り継いできたと整理している[2]。学術的な裏づけは乏しく、あくまで伝承の域を出ない ── だが、盆地という閉じた地形が「もとは湖だった」という想像を呼ぶこと自体が、丹波の地の記憶のかたちである。
水を拓いた神が大国主であることは、偶然ではない。亀岡市千歳には、大国主命を主祭神とする出雲大神宮[3]が鎮座する。御蔭山を神体山とするこの古社は丹波国一宮であり、和銅2年(709)の創建と伝える。注目すべきは、社伝が「出雲大社のほうが当社から勧請を受けた」と語り、「元出雲」を通称とする点である。史実としての先後は措くとしても、山陰の出雲神話の圏が、都の北西の盆地にまで一つの大国主信仰として伸びていたことは確かで、湖を拓く神の伝承はその信仰の地層の上に立っている。
境の鬼 ── 大江山と酒呑童子
丹波の妖怪を語るとき、避けて通れないのが鬼である。都の女房を攫い、酒を好み、源頼光と四天王に討たれた鬼の頭領・酒呑童子。その住処として最も名高いのが、丹波(と丹後の境)の大江山であった。

이바라키 도지
헤이안기에 주둔도지의 심복으로 꼽히는 오니. 출생지는 셋쓰국(도마쓰·이바라키) 설과 에치고국(고시군 가루이자와) 설이 있으며, 어릴 적부터 기괴한 상과 괴력을 보였다고 전한다. 오에산의 도적무리에 합류해 도성을 괴롭혔으나, 미나모토노 요리미쓰 일행의 토벌로 일당이 괴멸하고 이바라키 도지는 간신히 도주했다는 전승이 있다. 이후 와타나베노 쓰나에게 팔을 베였고, 변신하여 그것을 되찾아 갔다 하는 이야기가 중세 이후의 설화·노 교겐·가부키에 널리 보인다.
자세히 보기ただし「大江山」がどの山を指すかは、時代によって揺れている。今日では京都府福知山市・与謝野町・宮津市にまたがる千丈ヶ嶽(大江山連峰)を舞台とするのが通説だが、平安から鎌倉にかけての都人にとって「おおえやま」といえば、山城と丹波の国境にある老ノ坂(大枝山)[4]を連想するほうが自然だった。老ノ坂は都から山陰道へ抜ける最初の峠であり、まさに都の北西の境である。頼光が討ち取った酒呑童子の首を埋めたとされる首塚(首塚大明神)も、この峠に残る。鬼が都に最も近づける道、そして首が都に入れず葬られた境界 ── 老ノ坂は二重に「境の地」であった。
現存最古の絵巻である『大江山絵詞』(逸翁美術館蔵、南北朝末-室町初期)[5]は、鬼の住処が陰陽師の占によって突き止められ、頼光らが山伏に身をやつして分け入り、神々から授かった神便鬼毒酒で酒呑童子を酩酊させて討つ筋を伝える。御伽草子[6]系ではさらに出生譚や住処の異伝が増補された。大江山の鬼退治譚そのものは landmark としての大江山の頁に深く譲るとして、ここで丹波の地理から見ておきたいのは、この鬼が「都の北西の山に拠って都を脅かした」という構造である。
酒呑童子の副将格として名を連ねるのが、茨木童子である。その出生は摂津国(富松・茨木の里)[7]説と越後説があり、丹波の生まれではない。にもかかわらず茨木童子が丹波に結びつくのは、大江山の賊徒として酒呑童子の片腕とされたからにほかならない。最もよく知られる説話は、『平家物語』剣巻[8]系に基づく。渡辺綱が一条戻橋で美女に出会い馬に乗せたところ、女は鬼と化して綱の髻を掴み愛宕山へ攫おうとする。綱は名刀髭切で鬼の片腕を斬り落とし、以後この刀は鬼切と呼ばれた。綱が持ち帰った腕は、のちに伯母(養母)に化けた鬼が奪い返して飛び去る ── この鬼を茨木童子と同定するのは後世の付会で、剣巻そのものは鬼の名を明示しない。腕を斬られた場所(一条戻橋)も腕を取り返す場所も都(山城)であって、丹波そのものではない。それでも茨木童子が丹波の名簿に並ぶのは、大江山という拠点が酒呑童子と茨木童子を一つの説話圏へ束ねたからである。境の鬼の物語は、摂津・越後・山城・丹波を一本の鎖でつないでいる。
河の怪火 ── 保津川に立つ姥ヶ火
盆地を拓いた大国主が水を流した先が、保津峡であり保津川である。亀岡盆地から嵐山へと深い峡谷を刻んで流れ下るこの川は、丹波の物資を都へ運ぶ筏と舟運の道であると同時に、怪火の現れる場所として語られた。

우바가비
우바가비는 비 오는 밤 등에 나타나는 괴화로, 주로 가와치국의 히라오카와 탄바국의 호즈강 유역 전승이 전한다. 한 자 남짓한 불덩이로 날아다니며, 때로는 노파의 얼굴이나 새의 형상을 드러낸다고 한다. 히라오카 신사의 기름을 훔친 노파의 저주, 혹은 아이를 버린 노파에 대한 천벌이 괴화가 되었다고 전하며, 고문서와 그림권에도 기록이 보인다. 사람에 스치면 불길한 일이 따른다고 전해진다.
자세히 보기姥ヶ火は、雨夜などに現れる一尺ほどの火の玉である。飛ぶうちに老女の顔や鳥の姿を見せ、人の肩をかすめると不吉をもたらすという。この怪火が最もよく知られるのは河内国の枚岡(現・大阪府東大阪市)で、『諸国里人談』[9]は枚岡神社の灯油を盗んだ老女の祟りが怪火となったと記し、『西鶴諸国ばなし』の「身を捨て油壷」[10]は、一里を瞬く間に飛ぶこの火が「油さし」と唱えると消えると伝える。鳥山石燕も『画図百鬼夜行』に図像を残した、近世にはよく知られた怪火である。
丹波における姥ヶ火の独自性は、その出自譚にある。山岡元隣『古今百物語評判』(天和3年・1686刊)[11]は、丹波の保津川で子を捨てた老女が溺死し、それ以後、川面に怪火が立つようになったと語る。河内の枚岡が「油盗みの祟り」であるのに対し、丹波の保津川では「子を捨てた母の溺死」という、河と母性をめぐる重い悔恨が怪火の核に置かれている。同じ姥ヶ火の名でも、土地が変われば物語の罪も変わる。深く狭い峡谷を流れる保津川の水音と暗さが、この川辺の母の火を呼んだのだろう。怪火は枚岡から山城を経て丹波へと往還しながら、その土地ごとの記憶を吸い込んでいった。
古木から落ちる怪 ── 釣瓶落としの故地
丹波が日本の妖怪史において持つもう一つの重みは、釣瓶落としの主要な伝承地であるという点にある。秋の日没のように、暗い梢からいきなり落ちてくるこの怪は、亀岡を含む丹波の山間の街道に色濃く伝わってきた。

쓰루베오토시
쓰루베오토시는 쓰루베오로시라고도 하며, 오래된 나무의 우듬지나 밤길 위쪽에서 갑자기 내려온다고 전해지는 요괴다. 모습과 행동은 지역마다 다르다. 단바국 소가베에서는 비자나무나 소나무에 숨어 웃음소리를 내거나, 잘린 머리의 모습으로 사람을 덮친다고 했다. 미노국 구제와 호쿠리쿠 지방에는 나무 위에서 우물 두레박을 떨어뜨려 행인을 놀라게 하는 이야기, 목소리만 들려와 사람을 붙들고 문답을 요구하는 이야기가 남아 있다. 같은 이름 아래에서도 무엇이 떨어지는지, 얼마나 해를 끼치는지, 눈에 보이는 몸이 있는지는 한결같지 않다. 오래된 나무 아래의 어둠과 머리 위에서 예고 없이 무언가가 내려온다는 공포가 여러 지역의 전승을 이어 주는 핵심이다. 쓰루베오토시는 쓰루베비와 자주 혼동된다. 야마오카 겐린의 《고콘 햐쿠모노가타리 효반》에는 〈니시노오카의 쓰루베오로시〉라는 제목의 나무 위 괴화 이야기가 있고, 도리야마 세키엔은 훗날 《가즈 햐키 야교》에서 이 불을 ‘쓰루베비’로 그렸다.근세의 쓰루베오로시와 근대 지방 자료에 보이는 떨어지는 두레박, 목소리, 잘린 머리, 식인 괴물은 이름뿐 아니라 나무 위에서 내려온다는 모티프도 겹친다. 현대 요괴 도감은 괴화인 쓰루베비와 위에서 떨어져 사람을 위협하는 쓰루베오토시를 대개 별개 항목으로 소개한다. 그러나 둘을 완전히 무관하다고 단정하기보다, 서로 겹치면서도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전개된 전승으로 읽는 편이 남아 있는 자료에 더 가깝다.
자세히 보기まず、根強い誤解を正しておく必要がある。鳥山石燕が描いたとしばしば言われるが、『今昔画図続百鬼』(1779)に釣瓶落としは収録されていない[12]。石燕が描いたのは類縁の「釣瓶火」で、こちらは前作『画図百鬼夜行』(1776)所収である。釣瓶火の原典は、まさに丹波と縁の深い『古今百物語評判』(1686)の「西の岡の釣瓶おろし」譚であり[13]、大木の精霊が雨夜に火の玉となって木から降りる怪を、元隣が五行説(木は火を生む)で理論づけたものだった。江戸期に「釣瓶落とし」という名で図像化された一次史料は確認できず、この妖怪はもっぱら明治から大正期の郷土誌・口承採集に登場する在地伝承である。釣瓶落としを掲げるなら、その故地は石燕の絵筆ではなく、丹波の街道筋の語りの中にこそ求めねばならない。
その語りの宝庫が、丹波である。大正期の郷土研究『口丹波口碑集』[14]は、亀岡周辺の釣瓶落としを具体的な字(あざ)の名とともに記録している。南桑田郡曽我部村字法貴(現・亀岡市曽我部町)では、カヤの木から落ちてきて「夜業すんだか、釣瓶下ろそか、ぎいぎい」とゲラゲラ笑いながら再び上っていったという。同じ曽我部村字寺では、古松から生首が降りて人を喰らい、飽食すると2、3日は現れなかったと伝わる。船井郡富本村(現・南丹市八木町)ではツタの絡まる松に、大井村字土田(現・亀岡市大井町)では人を食う怪として語られた。古松・カヤ・杉といった峠道や寺社境内の古木に宿る怪 ── これが丹波の釣瓶落としの素顔である。
この妖怪は、地域によって性格を大きく変える。京都(丹波)系は人を喰らう捕食型で、岐阜・滋賀系は釣瓶(井戸の桶)を木の上から落として驚かすだけの脅嚇型[15]である。丹波の釣瓶落としが「飽食した日は2、3日現れない」という捕食のリズムまで備えた殺害妖怪として恐れられたのに対し、隣接圏の同名の怪は実害の少ない物笑いに近い。釣瓶落としの分布は京都・岐阜・滋賀・和歌山・兵庫(丹波篠山)・愛知の中部・近畿に集中し[16]、その中で丹波は最も凶暴な捕食型の核心をなしている。なお、現代に広く流通する「赤ら顔の生首」の像は水木しげるの作画系統に由来するもので、在地伝承本来の標準形ではない ── 丹波の語りでは、生首・声を伴う精霊・無形の桶へと、その姿は一様ではなかった。
結び ── 都の北西を守る、
語りの境
丹波の四体を並べると、この国の妖怪が一本の地理に貫かれていることが見えてくる。盆地を拓いた大国主の蹴裂、その水が流れ下る保津川の母の火、都へ抜ける老ノ坂の鬼、街道の古木から落ちる生首 ── すべてが「湖と河と峠」という丹波の地形そのものに根を張っている。
そして四体に共通するのは、丹波が「境の国」であるという位相だ。酒呑童子と茨木童子は都と山陰を分かつ大江山・老ノ坂の鬼であり、姥ヶ火は河内から山城を経て保津川へ流れ着いた怪火であり、釣瓶落としは中部・近畿の山間街道を渡り歩いた怪である。いずれも一つの土地に閉じず、境を越えて往還しながら、丹波という結節点で固有の語りを結んだ。都が鬼門と裏鬼門を結界で固めたその裏側で、北西に開いた丹波の峠と河谷は、怪が都へ通い、また都から押し出される通り道であり続けた。
千年の都の妖怪を知りたければ、その北西の境に立つ丹波を見なければならない。鬼の都・大江山の深部、そして京都全体の妖怪文化の宏観については京都府の妖怪事典に譲るが、その都を都たらしめた「外」の最初の一歩が、この丹波国だったのであ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