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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 Hira 琵琶湖を見おろす天狗の山。比良山と次郎坊

八天狗の次席・比良山次郎坊、仏法を論じた大天狗、吹きおろす比良颪

琵琶湖を見おろす天狗の山。
比良山と次郎坊

Mt. Hira · ひらさん

다른 이름: 比良山地 / 次郎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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琵琶湖の西岸を南北につらぬいて、比良山地(ひらさんち)が屏風のように立っている。最高峰は武奈ヶ岳(ぶながたけ、標高一二一四メートル)、湖からじかに千メートル以上をせり上げる急峻な山並みで、その斜面はそのまま湖面へ落ちこむ。山と湖がこれほど近く向かいあう地形は、近江でも比良をおいてほかにない。だからこそこの山は、古くから「天狗の坐す山」として畏れられてきた。

比良の名を全国に知らしめたのは、一柱の大天狗である。愛宕山(あたごやま)の太郎坊に次ぐ序列を与えられ、日本を代表する八天狗の二番手に数えられた比良山次郎坊(ひらさんじろうぼう)── その伝承の厚みは、単なる山の怪を超えている。鎌倉時代には、比良の老天狗が人に憑いて仏法を論じたという宗教史料まで生まれた。湖を見おろす霊峰は、天狗を介して、信仰と怪異が交わる舞台になったのである。この記事は、滋賀県全体を束ねる滋賀県の妖怪事典が短く触れた比良の天狗を、山そのものに分け入って読み解くものだ。

琵琶湖を見おろす天狗の山

比良山地は、若狭湾と丹波高地の側から琵琶湖へ向かって、急斜面を一気に落としこむ。この地形は、ただ険しいだけではない。山の向こうから吹いてくる風を集め、湖へ叩きつけるように送り出す装置でもあった。湖西を歩く者は、晴れた日にも突然吹きつのる山の風に、何度も立ちすくむことになる。

山が高く、湖が深く、その境がほとんど垂直に切り立っている ── こうした地形は、人の想像のなかで「人ならぬものの領域」を呼び寄せやすい。里から見あげれば雲をまとう高嶺があり、頂に立てば足もとに巨大な水の器が広がる。天と地、山と湖のあいだに張りつめた緊張が、比良を天狗の山に押し上げた。比良の天狗は、湖国の地形そのものが生んだ怪だといってよい。

比良山地は、北の蛇谷ヶ峰(じゃたにがみね)から南の権現山(ごんげんやま)まで、およそ二十数キロにわたって尾根をつらねる。主峰の武奈ヶ岳をはじめ、堂満岳(どうまんだけ)、釈迦岳(しゃかだけ)、蓬莱山(ほうらいさん)といった名は、いずれも仏教や神仙の世界に由来する ── 釈迦、蓬莱という命名そのものが、この山並みが古来「俗世の外」「聖と異界の領域」として意識されてきたことを物語っている。湖西の里から見れば、比良は朝な夕なに姿を変え、雪をかぶり、霧を巻き、強風に雲を散らす。変幻きわまりないその表情が、山に何かが棲むという感覚を、人々の心に刻みつづけてきた。

히라산 지로보

ひらさんじろうぼう

히라산 지로보(比良山次郎坊)는 오미국 히라산에 뿌리내린 대천구로, 48천구·8대 천구에서 아타고산 다로보 다음가는 차석(제2위)에 이름을 올린다. 코가 높은 대천구로 그려지며, 산기(山氣)와 바람을 부리고 휘하의 천구를 거느리는 존재로 여겨진다. 비와호 서안에 솟은 히라 산계를 근거로 삼아, 중세에는 이 산의 천구가 실명으로 문헌에 나타난다. 게이세이가 엔오 원년(1239)에 지은 『히라산 고진 레이타쿠(比良山古人霊託)』는 히라산의 늙은 천구(고진)와의 문답을 적어, 히라가 예로부터 천구가 깃든 영산으로 관념되었음을 전한다. 아타고 다로보를 우두머리로 하는 천구계의 서열 속에서, 지로보는 그 차석으로서 종종 다로보와 짝을 이루어 이야기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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八天狗の次郎坊

日本各地の名山には、それぞれ主(ぬし)となる大天狗が宿るとされた。なかでも特に名高い面々を選んで「日本八天狗」と呼ぶ。その筆頭は京の北西を守る愛宕山の太郎坊、これに次ぐ二番手として据えられたのが、比良山の次郎坊である[1]。天狗の名を列挙する「天狗経(てんぐきょう)」のなかでも、四十八の天狗を数えあげる序列で、比良山治郎坊の名は太郎坊のすぐあとに記される。太郎坊が長兄なら、次郎坊はその弟分 ── 名そのものが序列をあらわしている。

その素性については、興味深い伝承がある。次郎坊はもともと比叡山に棲む天狗であったが、最澄(さいちょう、伝教大師)が比叡山に延暦寺を開き、仏法の力で山の魔物を鎮めていったため、多くの天狗を率いて比良の山へ移り住んだというのだ。次郎坊は天狗どもの頭領として里へ降り、しばしば人を悩ませたとも語られる。比叡と比良は、琵琶湖の西岸で背を接するように連なる山並みである。仏に追われた天狗が、隣の高嶺へ拠点を移す ── 比叡山が「都の鬼門を守る聖地」へと整えられていく過程の裏側で、行き場を失った山の精が比良に集まった、という語りになっている。聖なる山が一つ立てば、その影として魔の山が一つ生まれる。比良山次郎坊の来歴は、近江の山岳信仰の光と影を、そのまま映している。

愛宕山の太郎坊が京の北西を鎮め、鞍馬(くらま)の僧正坊(そうじょうぼう)が牛若丸に剣を授けた天狗として名高いのに対し、比良の次郎坊には、これといった一つの英雄譚があるわけではない。だが八天狗の序列で確固たる二番手を占めつづけてきたという、その「格」そのものが、比良山という山の重みを語っている。一山に一柱の主天狗がいるとすれば、次郎坊は、太郎坊に次いで全国に名を知られた山の王だった。琵琶湖を見おろす広大な山域を統べるにふさわしい、堂々たる大天狗である。

天狗とは、そもそも何者なのか。鼻の高い山伏姿、あるいは烏(からす)の嘴(くちばし)を持つ異形として描かれる天狗(てんぐ)は、修験道と深く結びついた山の怪である。験力(げんりき)と飛行の力を持ち、人を魔道へ誘う一方で、仏法を守る護法善神(ごほうぜんじん)の顔も併せ持つ。慢心した僧が死後に天狗道へ堕ちるという説もあり、聖と魔のあわいを行き来する存在だった。比良山次郎坊は、その天狗のなかでも頂点に近い「正統派の大天狗」── 人を化かす小天狗ではなく、一山を統べる王として畏敬された。湖を見おろす比良の高嶺は、それほどの天狗が坐すにふさわしい高さと険しさを備えていたのである。

仏法を論じた天狗 ── 『比良山古人霊託』

比良の天狗を語るうえで、ほかのどの山の天狗譚とも一線を画す史料がある。鎌倉時代の僧・慶政(けいせい)が記した『比良山古人霊託(ひらさんこじんれいたく)』である。延応元年(一二三九年)、九条道家(くじょうみちいえ)が病に伏したとき、慶政は法性寺(ほっしょうじ)へ赴いて快復の祈祷を行った。すると一人の若い女房に、比良山の老いた大天狗 ── 「古人(こじん)」── が憑依し、五月二十三日から二十八日にかけて、慶政と三度にわたる問答を交わしたのである。

その対話は五十余条にもおよんだと伝わる。道家に憑いた天狗とその病のこと、亡き人の後世(ごせ)のゆくえ、当時の人々の運命の予言、仏道修行のありかた、そして天狗とは何かという議論まで。たとえば故人の転生について、この天狗は、明恵(みょうえ)上人は兜率天(とそつてん)に生まれかわり、法然(ほうねん)は無間地獄(むけんじごく)に堕ちたと語ったという ── 当時の高僧の死後をめぐる、なまなましい証言である。注目すべきは、ここで天狗が、ただ人を惑わす妖怪としてではなく、仏法の深奥を論じる宗教的な存在として描かれていることだ。比良山次郎坊に連なるこの「古人」の像は、天狗が中世の宗教世界で占めた、両義的で奥行きのある位置をくっきりと示している。

中世という時代には、天狗は単なる山の怪ではなく、仏道のなかで明確な位置を与えられていた。慢心や邪見をいだいたまま死んだ者 ── とりわけ験力を誇った僧 ── は、成仏もできず地獄にも堕ちきれず、天狗道(てんぐどう)という中間の境涯に堕ちるとされた。だから天狗は、高い法力を備えながら、なお迷いを抱えた存在として描かれる。『比良山古人霊託』で比良の古人が仏法を滔々と論じられるのは、まさにこの「元は仏道の人であった天狗」という当時の世界観を前提にしている。天狗は人を惑わすと同時に、人より深く来世を知る者でもありえたのだ。

『比良山古人霊託』は、宮内庁書陵部本や高山寺(こうざんじ)本など複数の写本で伝えられ、いまも中世宗教史の重要史料として研究が続く。比良山が、ただ「天狗が住むと伝わる山」ではなく、「天狗が実名で仏法を語った記録を生んだ山」である ── この一点が、比良を全国の天狗信仰のなかでも特別な位置に押し上げている。多くの霊山が天狗の名と図像を伝えるなかで、比良はその天狗の「声」を、中世の一次史料として今日に残した、稀有な山なのである。

比良颪と山の怪

比良の険しい地形は、天狗の伝承だけでなく、実際の気象の怪をも生んだ。比良山地の東麓に吹きおろす局地風を、比良颪(ひらおろし)という。若狭湾や丹波高地から琵琶湖へ向かって、比良山地の南東斜面を駆け降りるように吹く北西の強風で、強いときには尾根の上に「風枕(かざまくら)」と呼ばれる雲がかかる[3]。湖西を走る列車を脱線させたこともあるほどの、侮れない風である。

この風がとりわけ荒れるのが、毎年三月下旬、天台宗の法会「比良八講(ひらはっこう)」のころだ。比良八講は、もとは比良大明神で法華経八巻を八座に分けて講じた法華八講(ほっけはっこう)の行で、ちょうどそのころに寒の戻りがあり、比良山系から湖南へ強風が叩きつける。この時季の荒れを「比良八荒(ひらはっこう)」あるいは「八講荒れ」と呼び、これが収まると本格的な春が来るとされた。昭和三十年(一九五五年)、この法会は箱崎文応(はこざきぶんのう)大僧正によって再興され、いまも三月二十六日に、僧侶が湖上へ水を注いで水難者を供養する行として営まれている[4]

比良八講には、悲しい伝承が寄り添っている。ある娘が、想いを寄せる僧と結ばれるため、湖を百夜(ひゃくや)漕ぎ渡ると誓った。だが満願まであと一夜という晩、比良颪が対岸の灯火を吹き消し、荒れた湖に小舟は呑まれて沈んでしまう ── 娘の果たせなかった想いが、毎年この時季の荒れた風になるのだ、と語り継がれてきた[4]。気象現象としての比良颪と、悲恋の魂という民俗の語りとが、ひとつの風のなかで重なりあっている。再興された法会で稚児(ちご)の娘たちが灯をかかげて湖を渡るのは、この娘の魂を慰め、果たせなかった渡しを成し遂げるためだという。

そして、比良の山に縁づけて語られる怪鳥がいる。以津真天(いつまで)である。ただし、これは留保して書かねばならない。以津真天は本来、比良山の生まれではない。その出自は『太平記』巻十二「広有射怪鳥事(ひろありけちょうをいること)」── すなわち都の物語にある。建武元年(一三三四年)、疫病が流行して死者が相次いだ平安京の紫宸殿(ししんでん)の上に、夜ごと「いつまで、いつまで」と鳴く巨鳥が現れ、人々を恐れさせた。弓の名手・隠岐次郎左衛門広有(おきのじろうざえもんひろあり)が、鏑矢(かぶらや)でこれを見事に射落とす[5]。人の顔、鋸(のこぎり)のような歯、蛇のごとき胴、剣のような爪を持ち、翼を広げれば一丈六尺におよんだというこの怪鳥に、「以津真天」の名を与えたのは、江戸の絵師・鳥山石燕(とりやませきえん)である ── 鳥が「いつまで」と鳴いた一句から、その名は生まれた。

この怪鳥が比良山と結びつけて語られることがあるのは、後世の連想による。「いつまで」と問いつづける死告(しこく)の鳥という不気味なイメージが、天狗の山・比良の暗い気配と響きあったのだろう。比良颪が荒れる夜空に、果てしなく問いを発する鳥の影を重ねる ── そうした語りは確かにあるが、太平記の原話そのものは都の怪であって、比良の山に出たと記すわけではない。比良に縁づくのは「〜と語られる」次元の話であり、史料の裏づけがあるのは紫宸殿の怪鳥のほうだ、と分けて受けとめておきたい。

天狗が結んだ山と都

比良山の妖怪をたどると、見えてくるのは「山と都を結ぶ天狗」という一本の筋である。次郎坊は比叡山を追われて比良へ移り、その血脈に連なる老天狗は都の僧と仏法を論じ、湖へ吹きおろす比良颪は法華八講の荒れとして都の信仰につながり、以津真天の怪鳥は太平記を介して紫宸殿の不安と響きあう。比良は孤立した辺境の山ではない。琵琶湖をはさんで都と向かいあい、天狗という回路を通じて、信仰と怪異と政争の記憶を受けとめてきた山なのだ。

湖の西岸にそびえる武奈ヶ岳の頂に立てば、足もとに琵琶湖が、その向こうに比叡の峰々が見える。仏に整えられた比叡と、天狗に守られた比良 ── 湖をはさんで対(つい)をなすこの二つの山影こそ、近江の霊性の根である。比良の天狗は、その霊性の影の側を一身に引き受けてきた。より広い近江の妖怪世界 ── 瀬田の大百足、三井寺の鉄鼠、甲賀の鬼を討つ将軍まで ── を見渡したい読者は、滋賀県の妖怪事典をあわせて訪ねてほしい。

Mt. Hira의 모든 요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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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덴구

    덴구

    전설

    てんぐ

    덴구란 무엇인가——유형과 도상의 총론

    산야의 괴이교토부·시가현·와카야마현 (각 영산의 대덴구 여러 좌)

    이 판은 특정 영산의 한 좌가 아니라, “덴구란 무엇인가”를 도상과 유형의 역사에서 철저히 풀어내는 총론이다. 각 좌의 개별 전승은 저마다 대덴구의 페이지에 넘긴다. 덴구의 모습은 한결같지 않다. 첫째 유형은 하나타카 덴구——붉은 얼굴에 높은 코, 야마부시의 도킨과 스즈카케를 두르고, 깃부채를 손에 외이 굽 높은 게다를 신는다. 둘째는 가라스 덴구로, 까마귀의 부리와 날개를 지니고 검이나 금강장을 쥔다. 셋째는 고노하 덴구·곳파 덴구라 불리는 하위 덴구로, 약하고 수가 많은 권속으로 여겨진다. 이것들은 고정된 분류라기보다, 시대와 지역에 따른 덴구 상의 폭을 비춘다. 도상은 시대와 함께 변천했다. 헤이안기의 덴구는 먼저 솔개 같은 새로 관념되었고, 가라스 덴구의 상은 그 자취를 간직한다. 긴 코가 두드러지는 것은 가마쿠라 말 이후로, 『제가이보 그림두루마리』에는 사람으로 둔갑했던 덴구가 새 모습으로 돌아갈 때 코가 길어지는 장면이 그려진다. 하나타카의 기원에 대해서는, 기가쿠 가면 가운데 코 높은 지도(治道) 가면에서 유래한다 하고 가라스 덴구를 가루라(가루다) 가면에 잇는 학설이 있으며, 긴 코를 새 부리의 도상적 잔존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어느 것도 정설이라 하기 어렵다. 『일본서기』에 코 길이 일곱 척(七咫)이라 그려진 사루타히코 신과 겹쳐져, 제례에서 사루타히코 역에 덴구 가면을 쓰는 풍습도 생겨났다. 덴구의 양의성은 불교 덴구도의 관념에 뿌리내린다. 불도를 배우기에 지옥에 떨어지지 않고, 사법을 다루기에 극락에도 가지 못하는 중간의 경지——거기에 떨어지는 것은 교만한 승려로 여겨졌다. 『덴구조시』는 이 관념을 칠대사 승려에 대한 풍자로 그리지만, “교만한 승려만이 덴구가 된다”는 단순화에는 지키리 고사이도 지나치다고 못 박는다. 마이면서도 조복되면 호법으로 바뀌고, 수험자가 『덴구경』을 외면 제국의 덴구를 불러 소원을 이룬다고 여겨졌다——호법과 마 사이의 이 진폭이야말로 덴구의 핵이다. “팔대덴구”라는 묶음의 확실한 중세 전거는 무로마치기의 요곡 『구라마 덴구』의 사장(詞章)에 있다. 대덴구가 거느린 제국의 덴구를 지리 순으로 불러 올리는 대목——“쓰쿠시에는 히코산의 부젠보, 사주(시코쿠)에는 시라미네의 사가미보, 오야마의 호키보, 이즈나의 사부로…… 오미네의 젠키 일당, 가쓰라기 다카마”——이 그것으로, 팔대덴구가 에도의 창작이 아니라 중세의 신앙과 예능에 뿌리내렸음을 보여 준다. 다만 그 구성은 자료에 따라 흔들리며, 이시즈치산 홋키보를 더하는 이전(異傳)도 있는 등 고정된 명부는 아니다.

  • 히라산 지로보

    히라산 지로보

    전설

    ひらさんじろうぼう

    차석의 대천구·히라산 지로보

    산야의 괴이오미국·히라산(시가현, 비와호 서안)

    히라산 지로보를 풀어내는 열쇠는 '다로보 다음가는 차석'이라는 서열의 의미와, 히라산 고유의 중세 전거에 있다. 천구계의 서열에서 지로보는 아타고산 다로보 다음가는 제2위로 여겨진다. 이 서열은 『덴구쿄』의 48천구에도, 8대 천구의 틀에도 거의 공통으로 보이며, '다로보'·'지로보'라는 호칭 자체가 '일'·'이'의 서수에서 비롯한다. 지로보는 단독으로 이야기되기보다, 다로보와 짝을 이루어 천구계의 쌍벽으로 나타나는 일이 많다. 히라 천구의 확실한 고층은 『히라산 고진 레이타쿠』(게이세이 지음, 1239)에 있다. 히라산의 늙은 천구가 게이세이의 물음에 답해 천구의 세계와 내세를 이야기하는 이 문답은, 히라가 중세에 천구의 영산으로 확고한 자리를 차지했음을 보여 주는, 히라산 고유의 일차 사료다. 여기서 한 가지, 흔한 혼동을 바로잡아 두고 싶다. 지로보는 종종 중국의 천구 지라 에이주(=제가이보)의 설화와 결부되지만, 『곤자쿠 모노가타리슈』 권20의 원화는 신단의 천구가 히에이산 승려에게 패하는 줄거리로, 일본 쪽 천구의 소재를 히라산이라 지목하지 않는다. 지라 에이주를 히라의 천구로 삼는 것은 후세의 정리이며, 히라산 자신의 고유 전승은 오히려 앞서 든 고진 레이타쿠에서 구해야 한다. 히에이산에서의 이좌전도 마찬가지로 사실이 아니라 영산의 주도권 교체를 이야기하는 후세의 설화로 풀이된다. 오미의 영봉 히라산을 근거로, 불법을 두려워하면서도 사람의 교만을 시험한다——이 삼감과 강의(剛毅)의 공존이 지로보의 상이다. 천구 연구의 지키리 고사이도 지로보를 다로보 다음가는 자리에 두었다.

  • 이쓰마데

    이쓰마데

    에픽

    Itsumade

    이쓰마데라 우는 죽음의 선고·이쓰마데

    동물 요괴헤이안쿄 다이리 시신덴(현 교토부 교토시) ── 『태평기(太平記)』의 괴조, 히라산(比良山)과도 연관됨

    '언제까지냐 울부짖는 죽음의 선고·이쓰마데'라는 이 버전은 단순한 물리적인 괴조를 넘어, 시대와 사회의 불안이 구체화된 '흉조(예언)의 요괴 새'로서의 측면을 강조한다. 『태평기』에서 괴조의 출현은 건무의 신정(1334년)이라는 정치적 격동과 궤를 같이한다. 괴조가 내지른 '언제까지(이쓰마데)'라는 울음소리는 표면적으로는 전염병으로 인한 죽음의 공포를 부추기는 것이지만, 문학적·역사적 맥락에서는 고다이고 천황의 친정 아래 피폐해진 민중들의 '이 전란과 고난은 대체 언제까지 계속되는가'라는 비통한 외침을 대변하는 정치적 알레고리(우화)로 기능하고 있다. 중세 문학에서 천황의 어소(자신전) 지붕에 괴물이 나타난다는 사건은 왕권의 불안정성과 덕의 결여에 대한 하늘의 경고(천벌)를 의미했다. 또한, 이 괴조 퇴치 시퀀스는 『헤이케 이야기』에 등장하는 미나모토노 요리마사의 '누에 퇴치'를 강렬하게 의식한 '틀'의 반복이다. 밤의 어소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합성수(키메라), 활의 명수에 의한 토벌, 그리고 천황으로부터의 은상이라는 구조는, 오키 지로자에몬 히로아리를 '새로운 요리마사'로 영웅화하고, 나아가 그를 거느린 건무 정권의 권위를 장식하기 위한 서사시적 장치이기도 했다. 그러나 누에가 '직박구리와 비슷한 소리'로 우는 것에 반해, 이 새가 명확하게 사람의 말에 가까운 '언제까지'라는 단어를 내뱉은 점에는 시대에 대한 더욱 직접적인 저주가 담겨 있다. 에도 시대에 토리야마 세키엔이 『금석화도속백귀』에 그렸을 때, 입에서 무시무시한 불꽃을 뿜는 모습이 덧붙여졌다. 원전인 『태평기』에는 불을 뿜는다는 묘사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밤하늘을 나는 괴광 현상이나 죽은 자의 원한을 실어 나르는 '화차'의 이미지가 겹쳐진 결과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이 '불꽃'과 '밤의 괴조'라는 시각적 임팩트가 훗날 쇼와 시대에 이르러 '방치된 시체에서 뿜어져 나온 원한이 요괴로 변한 것'이라는 원령적 해석으로의 전환을 결정지었다. 본 버전의 이쓰마데는 단순히 사람을 덮치는 맹금류가 아니라, 무연고 죽음의 원망이나 사회의 모순을 에너지 삼아 현현하는 '심판자'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그 울음소리는 물리적인 공격 이상으로 듣는 이의 정신에 직접 '너의 명운(혹은 죄)은 언제까지 버틸 것인가'라고 묻는 냉철한 죽음의 선고로 기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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