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리히메(田心姫神)는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御神)와 스사노오노 미코토(素戔嗚尊)의 서약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지는 무나카타(宗像)의 바다를 수호하는 여신이다. 무나카타 타이샤(宗像大社)에서는 타고리히메, 타기츠히메, 이치키시마히메를 무나카타 삼여신[1]으로 모시며, 그중 타고리히메는 겐카이나다(玄界灘)에 떠 있는 오키츠미야(沖津宮)[2]의 제신으로 여겨진다. 『고자기(古事記)』 본문에는 아마테라스 오미카미가 스사노오노 미코토의 검을 받아 아메노마나이(天之真名井)에서 씻고, 잘게 씹어 뱉어낸 안개에서 가장 먼저 타키리비메노 미코토(多紀理毘売命)[3](타고리히메)가 태어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타고리, 타키리, 타기리라는 이름은 먼 바다 위로 피어오르는 안개, 끓어오르는 조류, 섬을 감싸는 보이지 않는 경계를 떠올리게 한다. 인간 마을에 가까운 복덕의 신이라기보다는, 바다를 건너는 자가 경외심을 품고 우러러보는, 먼바다의 경계에 진좌하는 신이다. 오키노시마(沖ノ島)에서는 섬 자체가 신성시되어 제사 장소, 금기, 봉헌품이 겹겹이 쌓여 있으며, 신의 이름뿐만 아니라 섬의 침묵 그 자체가 타고리히메의 기척을 지탱하고 있다.
무나카타 삼여신은 종종 하나로 묶여 이야기되지만, 타고리히메를 독립적으로 살펴보면 세 여신 중 가장 외양적(外洋的)인 성격이 드러난다. 이치키시마히메가 헤츠미야(辺津宮)와 이츠쿠시마 신앙을 통해 인간 마을의 기도에 다가가고, 타기츠히메가 오시마(大島)의 나카츠미야(中津宮)에 진좌하는 반면, 타고리히메는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오키노시마에 자리 잡고 있다. 그곳에서 신은 인간의 소원을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접근하는 방식 자체를 선별한다. 타고리히메는 항해의 안전을 부여하는 수호신인 동시에, 바다를 건너는 자에게 침묵, 정화, 절도를 요구하는 신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그녀의 신위는 친근한 형상이 아니라, 멀리서 바라보고 숭배하며, 결코 다 말해지지 않음으로써 유지된다.
민화・전승
타고리히메의 이야기는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와 스사노오노 미코토의 긴장에서 시작된다. 다카마가하라(高天原)에 올라온 스사노오노 미코토를 아마테라스 오미카미가 의심하고,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서약(우케히)이 이루어진다. 무나카타 타이샤의 유서에 따르면, 아마테라스 오미카미가 스사노오노 미코토의 검을 씹어 부수고 숨을 불어넣어 세 기둥의 여신이 태어났다고 설명된다. 이 탄생 설화는 전쟁을 피하기 위한 맹세이면서도, 검, 물, 숨결, 안개에서 바다의 여신이 태어난다는 매우 상징적인 구조를 가진다.
신앙의 중심이 되는 오키노시마는 일본 열도와 한반도 사이에 위치하여 고대 항해자들에게 바다의 이정표였다. 세계유산 공식 자료는 4세기 후반부터 9세기 말까지 오키노시마에서 항해의 안전과 교류의 성취를 기원하는 제사가 거행되었다고 명시한다. 그곳에서 발견된 약 8만 점의 봉헌품[4]은 모두 국보로 지정되었으며, 거울, 검, 구슬, 금동 제품, 토기, 인형, 말 모양, 배 모양 유물 등이 고대 동아시아의 교류와 신을 향한 기도를 동시에 말해주고 있다.
오키노시마에 대한 경외는 지금도 금기의 형태로 남아 있다. 세계유산 공식 자료는 섬을 오이와즈사마(不言様, 말하지 않는 분)[5]라고도 부르며, 보고 들은 것을 밖으로 발설하지 않는다,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도 가지고 나가지 않는다, 상륙 전에 바다에서 목욕재계(미소기)를 한다는 등의 예법이 지켜져 왔음을 전한다. 이는 단순한 출입 통제가 아니라, 신의 섬을 인간의 소유물로 바꾸지 않기 위한 종교적인 거리두기다. 타고리히메의 영험함은 모습을 드러내어 사람을 벌하는 괴이가 아니라, 섬, 안개, 바닷길, 침묵 그 자체가 신역이 되는 데 있다.
세 궁(三宮)의 성립 또한 타고리히메의 성격을 고찰하는 데 빼놓을 수 없다. 세계유산 공식 자료는 7세기 후반까지 오시마의 미타케산 제사 유적이나 본토의 시모타카미야 제사 유적에서도 오키노시마 제사와 공통성을 지닌 노천 제사가 열렸고, 8세기 전반에 성립된 『고자키』와 『일본서기』에는 무나카타 씨족이 세 궁에서 무나카타 삼여신을 모신다는 기록이 있다고 설명한다. 즉, 타고리히메는 고립된 섬의 신인 동시에, 먼바다, 가까운 섬, 본토를 잇는 무나카타 타이샤의 구조 속에서 모셔져 온 신이기도 하다.
무나카타 씨족의 존재는 이 신앙을 현실의 역사와 연결한다. 세계유산 공식 자료는 오키노시마의 고대 제사를 고도의 항해 기술을 가지고 대외 교류에 종사했던 무나카타 지역 사람들이 주도했다고 본다. 고대에 바다를 건너는 것은 교역, 외교, 군사, 기원이 불가분하게 결합된 행위였다. 타고리히메가 진좌하는 오키노시마는 바다 너머로 향하는 길의 표지인 동시에, 국가와 지역의 기도가 봉헌품으로서 침묵의 섬에 놓이는 장소였다.
『고자키』의 오쿠니누시노 카미 계보[6]에서는 타키리비메노 미코토가 오쿠니누시노 카미의 아내로도 기록되어 아지스키타카히코네노 카미와 타카히메노 미코토를 낳는다. 무나카타의 바다 여신이면서 이즈모 신화의 계보에도 편입되어 있다는 점은 중요한데, 이는 타고리히메가 단순한 일개 지방의 섬 신이 아니라, 해상 교통, 왕권 제사, 이즈모 계보를 잇는 결절점이었음을 보여준다. 무나카타 삼여신 중에서도 타고리히메는 뭍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위치에서 육지의 정치와 바다의 위험을 다시 묶어내는 신이다.
타고리히메를 이해하는 열쇠는 오키노시마가 '먼 섬'이라는 데 있다. 무나카타 타이샤의 세 궁은 규슈 본토의 헤츠미야, 오시마의 나카츠미야, 겐카이나다의 오키노시마에 진좌하는 오키츠미야라는, 바다를 건널수록 신역의 깊은 곳으로 나아가는 배치를 취한다. 그중 가장 바다 멀리 놓인 오키츠미야[2]의 제신이 타고리히메라는 점은 그녀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사람의 마을에 기대어 수호하는 것이 아니라, 항해자가 섬의 그림자를 발견하고 조류를 읽으며 아직 보이지 않는 위험을 두려워할 때 일어서는 신격이다.
고전 본문에서 그녀는 검에서 태어난다. 『고자키』의 서약 단락은 아마테라스 오미카미가 스사노오노 미코토의 도츠카노츠루기(十拳剣)를 받아 아메노마나이에서 흔들어 씻고 씹어 부수어 불어낸 안개 속에서 타키리비메노 미코토[3]가 형성되었다고 기록한다. 검은 군사와 서약의 물건이고, 우물물은 정화의 매개체이며, 숨결과 안개는 형체가 없는 경계다. 타고리히메는 그 세 가지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단순한 해신이라기보다는 무력이 기도로 변환되는 순간의 여신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신명의 표기가 다양하다는 것은 그녀가 하나의 해석에 갇히지 않는 신임을 나타낸다. 『고자키』에서는 타키리비메노 미코토(多紀理毘売命) 또는 오키츠시마히메노 미코토(奥津島比売命)로 불리며, 『일본서기』 계통에서는 타고리히메(田心姫)나 타기리히메(田霧姫)라는 이름으로 전해진다. 타키리(多紀理)를 '끓어오르는(타기루)' 조류의 움직임으로 읽느냐, 타기리(田霧)를 바다 위의 안개로 읽느냐에 따라 엿보이는 표정이 조금 달라진다. 그러나 어느 경우든 그녀의 중심에는 수면 한가운데서 시야를 바꾸는 힘이 있다. 항해자에게 안개는 위험인 동시에 신의 영역을 알리는 징조이기도 했다.
무나카타 신앙에서는 이 신화가 실제 바닷길과 결합된다. 오키노시마는 일본 열도와 한반도를 잇는 해상 교통의 요충지이며, 세계유산 공식 자료는 4세기 후반부터 9세기 말까지 항해 안전과 교류 성취를 기원하는 제사가 열렸다고 설명한다. 봉헌품의 변화는 거암 위, 바위 그늘, 반 바위 그늘 반 노천, 노천으로 제사 장소가 이동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오키노시마의 고대 제사[4]가 자연 숭배에서 사전(社殿) 제사로 향하는 일본 고유 신앙의 형성을 고찰하는 데 필수적임을 말해준다.
섬을 둘러싼 금기는 타고리히메의 '보이지 않음'을 강화하고 있다. 세계유산 공식 자료는 오키노시마에서 보고 들은 것을 밖으로 말하지 않는다,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도 가지고 나가지 않는다, 신직(神職)이라 해도 바다에서 목욕재계를 거친 후 들어간다는 관습을 전한다. 이들은 비밀주의라기보다는 신역을 소비하지 않기 위한 예법이다. 타고리히메는 형상이나 이야기 속에 모든 것을 드러내는 신이 아니다. 말해지지 않는 것, 가져가지 않는 것, 섬에 남겨두는 것들에 의해 오히려 더욱 짙게 존재한다.
한편, 그녀는 오키노시마에만 갇혀 있지 않다. 무나카타 타이샤의 유서는 세 여신을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의 삼여신으로 삼고, 해외와의 외교, 무역, 국방적 기능을 수행했던 무나카타라는 땅이 국가 제사와 깊이 결부되었음을 이야기한다. 무나카타 타이샤의 유서[1]에 보이는 '국가 제사'의 기술은 타고리히메를 단순한 항해 안전의 신에 머물게 하지 않는다. 바다를 건너는 것은 고대 국가에게 교역이고, 외교이며, 군사이고, 기도이기도 했다. 그 복합성이 있기 때문에 그녀의 고요함은 나약함이 아니라, 바다 앞에서 국가와 인간이 지켜야 할 자세로서 울려 퍼진다.
더욱이 『고자키』의 계보에서는 타키리비메노 미코토가 오쿠니누시노 카미와의 사이에서 아지스키타카히코네노 카미와 타카히메노 미코토를 낳는다. 이는 무나카타의 해상 신이 이즈모 계보 안에서도 자리를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쿠니누시노 카미 계보[6]에 놓인 타고리히메는 북방 해상로의 수호신인 동시에, 이즈모 신화의 혈맥을 넓히는 모신(母神)이기도 하다. 바다 멀리 물러나는 여신이 도리어 육지의 신화를 연결한다. 이 이중성이야말로 타고리히메의 조용한 강인함이다. 그녀는 섬의 깊은 곳으로 물러날수록 신화 전체의 매듭으로서 확장되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