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 시대의 그림두루마리와 스고로쿠에 보이는 요괴 이름. 검은 구름 속에서 털이 수북한 얼굴과 길게 내민 큰 혀, 발톱 달린 손이 불쑥 드러난 모습이 통례이며, 전신이나 성격에 대한 문헌 기록은 분명치 않다. 도리야마 세키엔의 『화도백귀야행』에서도 수문 위에 그려졌으나 설명은 붙지 않는다. 동시대의 그림 스고로쿠 『십계쌍륙』, 『백귀야행그림권』에도 이름이 나타나며, 유사 도상인 ‘적구(赤口)’도 여러 그림권에 보인다. 명칭은 음양도의 적설신·적설일과의 관련성이 지적되지만 확증되지는 않았다.
민화・전승
근세 자료에서는 주로 도상으로 전하며, 성정이나 유래에 관한 본문 기록은 드물다. 세키엔의 수문 도상은 후대에 상징적으로 해석되었으나, 해당 서책 내에는 설명이 없다. ‘적구’라 제목 붙은 유사 도상은 사와키 소노미의 『백괴도권』 등에도 보이며, 육요의 적구와의 관계가 논의된다. 쇼와 이후의 각종 해설이나 쓰가루의 물다툼 설화 등은 후대의 해석·재화로 간주되며, 고문헌의 확실한 전승으로는 확인되지 않는다.
적설은 문자 사료보다 도상이 앞선 드문 예로, 핵심은 흑운에서 돌출한 거대한 혀와 짐승 같은 안면이다. 도리야마 세키엔은 수문 위에 이 상을 배치했고, 후대 연구자들은 ‘때’와 ‘찌꺼기’의 관념, 입·혀를 화의 문으로 보는 속담을 실마리로 상징적 독해를 제시했으나 세키엔 자신의 주석은 없다. 근세의 다른 자료에서는 수문이 첨가되지 않는 경우도 많고, 명칭도 ‘적설’과 ‘적구’로 흔들린다. 음양도에서 태세 방위를 지키는 ‘적설신’이나 육요의 ‘적구’와의 연관이 지적되나 직접 계보화는 어렵다. 쇼와 이후에는 우화적 설명과 지역담이 보급되었으나, 기초 사료의 서술을 넘어선 단정은 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