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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hihara-no-Nakatsukuniあしはらのなかつくに

Ashihara-no-Nakatsukuni에 전해지는 요괴 4가지. 이 땅에 뿌리내린 이야기를 따라갑니다.

  • 오게쓰히메노 카미

    오게쓰히메노 카미

    신격

    おおげつひめのかみ

    몸에서 오곡을 낳는 아와국의 음식 여신 오게쓰히메노 카미

    神霊・神格아와국 (현 도쿠시마현, 아와노 쿠니)

    오게쓰히메노 카미의 묘미는 토지와 음식과 신체가 하나의 이름에 겹쳐져 있다는 데 있다. 『고지키』의 국토 낳기에서는 이요노 후타나 섬의 한 면인 아와국이 오게쓰히메로 명명된다. 이것이 아와국의 이름으로서의 오게쓰히메이다. 신 낳기에서는 오게쓰히메노 카미가 태어난다. 나아가 스사노오노 미코토의 추방 대목에서는 신체에서 음식을 꺼내고, 죽임을 당해 오곡과 누에를 낳는다. 이 겹침은 고대의 이야기꾼들이 국토를 단순한 지도가 아니라 음식을 낳는 신체로 느끼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아와국은 그저 지명일 뿐만 아니라 음식 여신의 이름으로도 읽힌다. 그녀의 향응은 깨끗한 신찬의 반대편에서 시작된다. 음식을 요구받은 오게쓰히메노 카미는 코, 입, 엉덩이에서 여러 가지 음식을 꺼내어 조리하여 내민다. 이것이 코, 입, 엉덩이에서 나오는 음식이다. 여기서 신체의 개구부는 더러움의 장소인 동시에 음식이 세계로 나오는 문이기도 하다. 스사노오노 미코토가 이것을 더럽다고 본 것은 단순한 오해가 아니라 음식이 신체에 너무 가깝다는 데 대한 근원적인 혐오를 나타낸다. 식(食)은 생명을 유지하지만 그 뿌리는 혈육과 배설에 닿아 있다. 오게쓰히메노 카미는 이 불쾌한 가까움을 지우지 않고 내민다. 살해당함으로써 신의 신체는 씨앗의 목록으로 변한다. 머리에는 누에, 두 눈에는 벼 씨앗, 두 귀에는 조, 코에는 팥, 음부에는 보리, 엉덩이에는 콩이 생겨난다. 이것이 신체 부위에서 생겨나는 씨앗이다. 이는 기괴한 시체 변화인 동시에 농경 사회가 음식을 어떻게 느끼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씨앗은 무(無)에서 오지 않는다. 무언가가 부서지고, 찢기고, 죽은 뒤에 남는 것으로서 나타난다. 카미무스비노 미오야노 미코토가 그 씨앗들을 거두게 함으로써 시체는 단순한 상실이 아니라 재배 가능한 미래로 옮겨진다. 우케모치노 카미와 나란히 놓으면 오게쓰히메노 카미의 윤곽은 더욱 짙어진다. 『일본서기』의 우케모치노 카미는 쓰쿠요미노 미코토에게 살해당하고, 아마테라스 오미카미가 그 시체에서 생겨난 것들을 농경과 양잠의 질서로 편입시킨다. 이것이 우케모치노 카미의 오곡 양잠 기원이다. 거기서는 주야의 분리까지 이야기된다. 오게쓰히메노 카미의 경우 살해자는 스사노오노 미코토이며, 이야기는 타카마가하라에서 이즈모로 향하는 전환점에 놓인다. 달의 신의 침묵이 아니라, 추방당한 난폭한 신이 지상으로 향하기 전의 공백에 음식의 씨앗이 놓이는 것이다. 이 차이로 인해 오게쓰히메노 카미는 우주론보다 국토와 농경의 시작에 훨씬 더 깊이 다가간다. 고쿠가쿠인의 해설이 보여주듯, 이 이야기는 앞뒤 문맥과 직접 연결되기 어려워 원래는 별개의 전승이 삽화적으로 덧붙여졌다고 보는 설이 있다. 즉 삽화적 배치설이다. 하지만 그 '끼워 넣어진 듯한' 느낌이야말로 이 신화의 작용을 말해준다. 아마노 이와토 이후, 스사노오노 미코토가 완전히 이즈모의 이야기로 들어가기 전, 고지키는 음식 기원에 대한 작고 어두운 이야기를 배치한다. 나라 만들기라는 영웅담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 전에 사람이 먹는 세계가 필요했던 것이다. 오게쓰히메노 카미는 이야기의 틈새에서 지상 생활의 조건을 정돈한다. 오토시노 카미의 계보에 나타나는 모습도 놓칠 수 없다. 오게쓰히메노 카미는 하야마토노 카미와의 사이에서 와카야마쿠이노 카미, 와카토시노 카미, 와카사나메노 카미, 미즈마키노 카미, 나쓰타카쓰히노 카미, 아키비메노 카미, 쿠쿠토시노 카미, 쿠쿠키와카무로쓰나네노 카미를 낳는다. 이것이 하야마토노 카미와의 여덟 자식 신이다. 산, 해, 여름, 가을, 칡뿌리 같은 이름들이 늘어선 이 계보는 그녀를 단 한 번 살해당하는 신으로만 머물게 하지 않는다. 곡물의 기원을 낳은 뒤에도 산의 계절, 작물의 순환, 일 년 내내 이어지는 풍요로 확장되는 모신으로서 음식 세계의 시간을 지탱하고 있다. 비교 신화의 관점에서는 오게쓰히메노 카미는 하이누웰레형 신화로 읽혀 왔다. 고쿠가쿠인은 시체에서 갖가지 작물이 발생하는 유형을 소개하며, 인도네시아 세람섬의 소녀 하이누웰레 신화와 기키의 오게쓰히메노 카미·우케모치노 카미 신화의 유사성을 서술한다. 이것이 하이누웰레형 신화와의 비교이다. 다만 이 비교는 '외래니까 단순히 똑같다'는 의미가 아니다. 고쿠가쿠인도 기키 이전 전승의 실태나 자료의 한계 때문에 기원을 어느 한 지역으로 한정하기는 어렵다고 주의한다. 중요한 것은 죽은 신체에서 주식이 태어난다는 감각이 세계 각지에서 농경의 기원을 이야기하는 강력한 형태가 되었다는 점이다. 오게쓰히메노 카미의 신화는 먹는 것을 밝은 은혜로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음식은 고마운 것이지만 신체에서 나오는 것이기도 하다. 씨앗은 미래를 열지만 시체에서 생겨나는 것이기도 하다. 국토는 사람을 기르지만 거기에는 아와국이라는 음식 여신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오게쓰히메노 카미는 먹는 행위 안쪽에 있는 더러움, 죽음, 밭, 산, 계절을 한데 끌어안는 신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풍요는 그저 다정하지만은 않다. 코, 입, 엉덩이라는 경계에서 내밀어지고, 살해당한 신체에서 싹을 틔우는, 흙에 가까운 강렬한 풍요인 것이다.

  • 아메노사구메

    아메노사구메

    신격

    Ame-no-Sagume

    아메노와카히코의 수행신 · 아메노사구메

    반인반요기키 신화 · 셋쓰국 나니와 다카쓰 (아메노와카히코의 수행 여신)

    아메노사구메는 기키(記紀)에 이름이 보이는 무속적 성격의 여신으로, 길흉을 고하는 말이 사태를 전환시키는 존재로 그려진다. 아메노와카히코를 수행했다고 전해지며, 나키메의 소리를 불길하다고 단정한 장면은 신의 뜻 전달과 고토아게가 정치 제사와 결부되었던 고대의 관념을 반영한다. 『고지키』와 『일본서기』에서 각각 다른 한자를 사용한다. 셋쓰국 풍토기 일문이나 만엽집 노래를 통해, 하늘의 바위 배로 다카쓰에 정박했다는 전승이 알려져 나니와의 지명 설화와 결부된다. 아마쓰카미인지 구니쓰카미인지의 속성은 사료마다 흔들리며, 존칭의 부여도 일관되지 않은 점이 특이하다. 민간 전승 연구에서는 거스르고 비뚤어진 성질을 띠는 아마노자쿠의 원형으로 주목받기도 하지만, 직접적인 습합을 단정하지 않는 입장도 있다. 오늘날 전해지는 제사 사례는 적으며, 와카야마의 히라마 신사에서는 아메노사구메노 미코토로, 사가미의 쇼텐 신사에서는 인연을 찾는 여신으로 전승된다. 창작적 부가를 피하고 사료 기재의 범위 내에서 그녀의 성격은 "점단과 고토아게를 통해 사태를 움직이는 여신"으로 요약할 수 있다.

  • 天穂日命

    天穂日命

    신격

    あめのほひのみこと

    出雲へ傾いた天つ穂霊・天穂日命

    神霊・神格高天原/葦原中国/出雲国 (現·島根県東部、出雲国造祖神)

    아메노호히는 우케이(誓約)를 통해 태어난 순간부터 귀속의 흔들림을 띠고 있다. 아메노호히노미코토는 스사노오노미코토의 입김에서 나타나지만, 물실이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의 구슬이므로 아마테라스의 자식으로 여겨진다. 이 구조는 그의 생애를 선취하고 있다. 움직이는 자와 속한 곳이 다르다. 명령을 받는 곳과 마음이 향하는 곳이 다르다. 아메노호히는 천진신의 계보에서 태어났음에도 지상의 이즈모 깊숙이 파고드는 신이다. 신명에 깃든 '이삭의 영혼'이라는 성격도 중요하다. 고쿠가쿠인 대학의 주석은 '호'를 벼 이삭, '히'를 영혼으로 보아, 아메노호히를 천상계 벼 이삭의 신령으로 해석한다. 벼 이삭은 천상에서만 완결되지 않는다. 논으로 내려와 계절을 거쳐 땅의 습기와 사람의 손을 통해 여문다. 아메노호히가 아시하라노나카쓰쿠니로 파견되는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그는 하늘의 질서를 지상으로 옮기기 위한 벼 이삭이며, 동시에 지상의 흙에 닿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영혼이기도 하다. 아시하라노나카쓰쿠니 평정에서 그 성격이 위태로운 형태로 나타난다. 8백만 신과 오모이카네는 거친 국진신들을 설득할 사자로 아메노호히를 추천한다. 그러나 그는 오쿠니누시노카미에게 아첨하며 3년이 지나도록 복주(보고)하지 않는다. 이 부분만 읽으면 아메노호히는 임무를 포기한 신으로 보인다. 그러나 신화의 심층에서는 그가 지상에 동화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하늘의 명령이 지상에 닿았을 때, 그것은 곧바로 명령대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토착신, 인간의 제사, 이즈모의 기억에 의해 변질된다. 아메노호히는 그 변질을 온몸으로 떠안은 것이다. 이 '복주하지 않았다'는 한 점이 아메노호히를 단순한 풍요의 신에서 이야기의 마디로 밀어 올린다. 복주란 지상에서 본 것을 다카마가하라로 돌려보내어 명령의 순환을 닫는 말이다. 그가 그것을 하지 않음으로써 하늘의 명령은 공중에 붕 뜨게 되고, 다음 사자가 필요해진다. 침묵은 공백이 아니라 하늘과 땅 사이에 생긴 틈새이다. 그 틈새로 이즈모의 신들이 들어오고, 이윽고 '구니유즈리(국토 이양)'라는 거대한 교섭의 무대가 열린다. 이즈모노쿠니노미야쓰코 칸요고토의 전통은 이 신을 다른 빛으로 비춘다. 고쿠가쿠인 대학의 주석에 따르면, 칸요고토에서는 아메노호히가 지상의 국체를 보러 가고, 아들 아메노히나도리가 후쓰누시노미코토와 함께 거친 신들을 평정하는 줄거리로 전해진다. 여기에서 침묵은 불충이 아니라, 이즈모 국조가의 조상신으로서 지상을 헤아리고 제사의 정통성을 여는 과정이 된다. 아메노호히의 '아첨'은 중앙 신화에서는 정치적 일탈로, 이즈모의 제사에서는 신을 진정시키는 접근으로 읽힌다. 같은 행위가 보는 위치에 따라 배신으로도 중재로도 바뀐다. 이 신의 힘은 칼로 상대를 굴복시키는 힘이 아니다. 그는 상대방의 세계로 파고들어, 금방 돌아오지 않고 보고의 말을 늦춘다. 현대적으로 말하자면 아메노호히는 중간자의 신이다. 명령을 내리는 쪽에서 보면 다루기 까다롭고, 땅의 입장에서 보면 받아들이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그 뒤를 이어 더 강력한 사자나 무신이 등장할 필요가 생겨난다. 아메노호히의 실패가 구니유즈리 신화를 다음 단계로 밀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를 모시는 감각은 승리나 처벌보다는 관계의 재구축에 가깝다. 이즈모로 기운 것은 명령에 대한 배반인 동시에 지상의 소리를 너무 많이 들은 결과이기도 하다. 아메노호히는 상대를 이해하는 것과 본래의 사명을 잃는 것의 경계선에 서 있다. 그래서 그의 가호는 위태롭다. 사람을 부드럽게 만들지만, 휩쓸리기 쉽게도 한다. 집안이나 지역, 조직의 얽힘을 다룰 때 이 신은 "당장 돌아와서 보고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우선 땅에 들어가 상대의 신을 알고, 그 위에 어떤 말을 돌려주어야 할지 묻게 한다. 기도하는 자에게 아메노호히는 빠른 성공을 내려주는 신이 아니다. 오히려 대립하는 세계 사이에서 어디까지 상대에게 다가서고 어디서부터 본래의 사명으로 돌아와야 할지를 묻는 신이다. 교섭, 가계, 지역, 조직의 얽힘 속에서 단순한 올바름만으로는 움직일 수 없을 때, 아메노호히의 이야기는 깊은 도움이 된다. 벼 이삭이 땅에 뿌리를 내려야 비로소 열매를 맺듯, 이 신의 가호 또한 상대의 땅에 발을 디딜 각오에서 시작된다.

  • 우케모치노 카미

    우케모치노 카미

    신격

    うけもちのかみ

    죽음에서 오곡을 낳는 음식 기원신 우케모치노 카미

    神霊・神格아시하라노 나카쓰쿠니 (신화상의 지상 세계)

    우케모치노 카미의 핵심은 음식이 깨끗한 완성품으로서가 아니라, 신체에서 나오는 것으로 이야기된다는 점에 있다. 쓰쿠요미노 미코토를 맞이한 우케모치노 카미는 창고에서 쌀을 꺼내는 것이 아니다. 육지를 향하면 밥이, 바다를 향하면 물고기가, 산을 향하면 짐승이 입에서 나온다. 이것이 입에서 생겨나는 음식이다. 그것은 예의 없는 행동이 아니라, 신의 신체가 그대로 산·바다·육지의 음식 창고가 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자연계의 음식은 인간의 부엌이나 신찬의 형식으로 정돈되기 전, 신의 신체 안쪽에 혼연하게 존재한다. 우케모치노 카미는 그 혼연한 풍요를 손님에게 내민다. 그러나 쓰쿠요미노 미코토는 거기서 풍요를 보지 않고 더러움을 본다. 식(食)은 사람을 살리는 가장 친밀한 것이지만, 입에서 나오는 순간 타액이나 구토의 이미지를 띠게 된다. 신화는 이 이중성을 숨기지 않는다. 쓰쿠요미노 미코토의 분노는 불합리하면서도, 음식이 신체와 불가분이라는 사실에 대한 두려움을 비추고 있다. 우케모치노 카미는 음식의 은혜를 청정한 공물로서만 보고 싶어 하는 의식에 대해, 먹는다는 것은 본래 다른 생명이나 신체의 내부에 닿는 것임을 들이댄다. 그렇기에 이 신의 향응은 축복인 동시에 견디기 힘든 가까움이기도 하다. 살해를 통해 이야기는 반전된다. 쓰쿠요미노 미코토가 우케모치노 카미를 베자, 음식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고정된 자원으로서 나타난다. 정수리에서 소와 말, 두개골에서 조, 눈썹에서 누에, 눈에서 피, 배에서 벼, 음부에서 보리·콩·팥이 생겨난다. 이것이 시체에서 생겨나는 음식군이다. 신체의 각 부위가 가축, 곡물, 양잠으로 할당되는 이 나열은 그저 기괴한 변신이 아니다. 음식은 신의 생명을 분해하여 얻는 것이라는, 농경 사회 근저에 있는 감각을 신화의 형태로 만든 것이다. 씨앗은 청정한 추상물이 아니라 죽음의 편에서 온다.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의 역할은 우케모치노 카미의 죽음을 그저 한탄하는 것이 아니다. 아메노쿠마히토가 가져온 것을 보고, 아마테라스 오미카미는 그것을 사람들이 먹고 살아갈 것이라며 받아들여, 조·피·보리·콩을 밭의 씨앗으로, 벼를 논의 씨앗으로 나눈다. 이것이 밭과 논의 씨앗이다. 나아가 고치를 입에 머금고 실을 뽑아 양잠의 길을 시작한다. 여기서 폭력의 결과는 태양신의 손에 의해 생활 기술로 다시 짜인다. 우케모치노 카미의 신체는 단순한 시체가 아니라, 논밭, 가축, 뽕나무 누에, 계절의 노동으로 옮겨지는 원재료가 된다. 아마테라스 오미카미는 죽음에서 나온 것을 질서로 바꾸는 신이다. 이 신화가 무거운 것은 음식 기원과 일월 분리가 같은 장면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우케모치노 카미의 살해 소식을 들은 아마테라스 오미카미는 쓰쿠요미노 미코토를 악한 신으로 거부하며, 이후로 만나지 않겠다고 한다. 『일본서기』는 그것을 해와 달이 하루 낮밤을 격하여 살게 된 유래로 이야기한다. 이것이 낮밤이 나뉘는 이유이다. 즉 인간이 먹는 세계의 성립은, 태양과 달이 같은 장소에 있을 수 없게 되는 사건이기도 하다. 먹거리의 기원에는 시간의 기원이 겹쳐 있다. 아침에 밭을 보고 밤에 달을 보는 일상은, 우케모치노 카미의 죽음을 통과하여 질서화된 세계인 것이다. 『고지키』의 오게쓰히메노 카미와 비교하면 이 차이는 더욱 뚜렷해진다. 고쿠가쿠인 대학의 쓰쿠요미노 미코토 항목은 음식신이 살해되는 신화가 『고지키』에서도 보이지만, 거기서는 스사노오노 미코토가 오게쓰히메노 카미를 죽인다고 정리하고 있다. 이것이 스사노오노 미코토와 오게쓰히메노 카미의 형태이다. 스사노오노 미코토의 경우, 이야기의 무게중심은 난폭한 신의 폭력과 곡물 기원에 있다. 우케모치노 카미의 경우, 살해자가 쓰쿠요미노 미코토이기 때문에 달의 신의 침묵, 태양신과의 단절, 낮밤의 분리가 일체화된다. 비슷한 형태이면서도 신화의 울림은 크게 다르다. 우케모치노 카미는 음식 신화를 우주의 시간표에까지 밀어 넓히는 존재이다. 그렇기에 우케모치노 카미를 단순한 '음식을 내놓는 편리한 신'으로 취급하면, 가장 중요한 어두움이 사라진다. 우케모치노 카미는 음식이 언제나 죽음과 이웃해 있다는 것, 청결한 식상 앞에 신체의 찢김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찢김을 인간의 생활로 바꾸는 질서가 필요함을 이야기하는 신이다. 쌀, 조, 보리, 콩, 물고기, 짐승, 명주실이 늘어설 때, 거기에는 생명을 받는다는 말만으로는 다 희석할 수 없는 신화적인 폭력과 감사가 겹쳐 있다. 우케모치노 카미는 그 겹침을 한 몸으로 받아낸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신의 죽음에서 태어난 음식은 그저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낮과 밤 사이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세계 자체를 지탱하는 양식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