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나기
이자나기
창세, 국생, 미소기의 조신 이자나기노미코토
신세 칠대의 구조와 창세 신화의 우주론. 기본 설명에서는 국생과 신생을 보았다. 더 깊이 보면, 이자나기와 이자나미가 속한 신세 칠대 자체가 하나의 창세 질서이다. 『고사기』는 천지가 열린 뒤 조화 삼신과 별천신이 나타나고, 이어 구니노토코타치에서 시작하는 신세 칠대가 펼쳐진다고 말한다. 이 계보는 홀로 있는 추상적 신에서 점차 짝을 이룬 신으로 나아가고, 마지막에 부부신 이자나기와 이자나미에 이른다. 곧 신화는 추상에서 관계, 성, 혼인, 생산으로 이동한다. 두 신의 혼인과 국토의 탄생은 신적 가능성이 구체적 세계로 바뀌는 결정적인 순간이다. 아메노우키하시, 아메노누보코, 오노고로섬. 두 신이 아메노우키하시 위에 서서 아메노누보코로 바다를 젓는 장면은 고대 일본 우주관에서 매우 중요한 이미지이다. 다리는 하늘과 땅을 잇는 수직의 세계축이고, 창은 창조의 도구이다. 소금물이 굳어 섬이 되는 일은 액체가 고체로, 무형이 형태로 바뀌는 것을 뜻한다. 오노고로섬이라는 이름에는 저절로 굳어진 섬이라는 뉘앙스가 있어, 창조가 신의 명령만이 아니라 자연이 스스로 형성되는 힘을 지닌다는 생각도 드러난다. 이 장면은 중국의 반고 신화, 인도의 우주 알, 유라시아의 원초적 물을 젓는 신화와도 함께 읽을 수 있다. 요미노쿠니 방문, 동아시아 초기의 오르페우스형 신화. 이자나기가 요미노쿠니로 내려가고, 금기를 어기고, 죽은 자들에게 쫓겨 달아나는 이야기는 세계 신화학에서 죽은 아내를 되찾기 위해 저승에 들어갔다가 금기 위반으로 실패하는 유형으로 읽힌다. 그리스 신화의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가 가장 유명하지만, 『고사기』의 이자나기 이야기는 712년에 적힌 동아시아의 이른 문헌 사례이다. 몰래 보는 장면, 깨진 금기, 추격하는 죽은 자들, 벽사력을 지닌 복숭아는 인도, 중국, 유럽의 저승 이야기와도 통하며, 고대 유라시아 종교 상상력의 깊은 공명을 보여 준다. 미소기, 신도 정화 의례의 기원 신화. 요미노쿠니에서 돌아온 이자나기는 아와기하라에서 부정을 씻는다. 이것이 미소기와 하라에의 기원 신화이다. 몸에서 옷과 물건을 벗을 때 신들이 태어나고, 물가에서 몸을 씻을 때 바다 신들이 태어나며, 마지막에는 눈과 코에서 최고 신격이 나온다. 이 구조는 몸, 부정, 청정, 신의 탄생을 단단히 묶는다. 오늘날 신사 참배 전의 데미즈, 여름의 나고시노오하라에, 큰 제사 전의 정화 수행은 모두 이 신화에서 근원을 찾을 수 있다. 에다 신사와 이자나기 신궁이 이자나기를 미소기의 조신으로 모시는 일은 고대 신화가 현대 신도 실천 속에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 준다. 삼귀자 분치, 고대 일본의 우주 질서. 이자나기는 하늘, 밤, 바다를 삼귀자에게 나누어 준다. 아마테라스 오미카미는 다카마가하라, 곧 하늘과 낮과 빛을 맡는다. 쓰쿠요미노미코토는 밤의 나라, 곧 밤과 정적과 달력의 리듬을 맡는다. 스사노오노미코토는 바다, 곧 해양과 거친 힘을 맡는다. 이 삼분법은 단순한 신화 줄거리가 아니다. 훗날 황실 계보와 이세 신도의 정통성을 뒷받침하는 이야기로 쓰인다. 중세, 근세, 근대 일본의 정치사상과 국가론은 이 서사를 반복해서 불러냈다. 일본의 국가, 종교, 우주 질서를 관통하는 핵심 선이다. 다가 대사, 이자나기 신궁, 에다 신사의 역할. 이자나기 신앙의 세 성지는 신화의 서로 다른 단계와 대응한다. 효고현 아와지시 이자나기 신궁은 국생의 출발점, 두 신의 혼인, 이자나기의 유궁과 이어진다. 미야자키현 미야자키시 에다 신사는 아와기하라, 미소기, 삼귀자 탄생과 이어진다. 시가현 다가초 다가 대사는 근세 민간 신앙에서 장수와 생명력의 신으로 사랑받았다. 세 성지는 창세, 정화, 장수라는 흐름을 지리와 순례로 바꾸어 일본 전역의 이자나기 신앙을 떠받친다. 모토오리 노리나가의 『고사기전』과 국학 형성. 에도 시대 국학자 모토오리 노리나가(1730-1801)는 1798년에 『고사기전』 44권을 완성했다. 그는 엄밀한 문헌학과 언어학으로 『고사기』를 주석했고, 그 안에는 이자나기 신화도 포함된다. 신화를 역사적 사실로 읽을지, 상징적 서사나 문화 기억으로 읽을지에 대해서는 지금도 논쟁이 있다. 그러나 노리나가의 방법은 근대 일본 인문학의 중요한 토대를 놓았다. 이자나기는 그래서 단순한 신화 인물을 넘어 국학, 신도, 근대 국가론, 전후 민속학의 지식 전통 안으로 들어갔고, 일본 종교, 학문, 정치, 문화에 오래 영향을 주는 상징적 존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