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우케 오미카미
とようけのおおみかみ
아침저녁 신찬을 관장하는 외궁의 대신 도요우케 오미카미
도요우케 오미카미의 핵심은 '먹는 신'이라는 소박한 사실을 제사의 중심에 놓는 데 있다. 아마테라스 오미카미는 황조신(皇祖神)이고 내궁은 이세 신궁의 중심이지만, 그 아마테라스에게 신찬을 바치는 시스템은 외궁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 이세 신궁 공식 유서가 도요우케 오미카미를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의 미케쓰카미라 부를 때, 이는 단순히 음식을 관장하는 신이라는 의미에 머물지 않는다. 빛의 신을 빛의 신으로서 매일 맞이하기 위해 쌀, 물, 소금, 불을 맑게 하여 바치는 작용 자체가 신격화되어 있는 것이다. 외궁 진좌의 이야기는 도요우케 오미카미를 '필요해서 초빙된 신'으로 그린다. 『도유케구 의식장』 등에 기반한 신궁 공식 설명에서는, 아마테라스가 유랴쿠 천황의 꿈에 나타나 혼자 한곳에만 있는 것은 몹시 괴롭고 식사도 편안히 할 수 없으니, 히지노 마나이에 계신 도유케 오카미를 내 곁으로 부르고 싶다고 고한다. 여기서 아마테라스는 도요우케를 위에서 임명하는 것이 아니라, 식사를 둘러싸고 도요우케를 '필요'로 한다. 신화의 중심에 있는 것은 지배가 아니라 공급과 의존의 관계이다. 이 관계는 히고토 아사유 오미케사이를 통해 매일 실연되고 있다. 외궁의 미케덴에서는 아침과 저녁 두 번, 내궁·외궁·별궁의 신들에게 밥, 물, 소금 등이 바쳐진다. 신찬의 품목은 정해져 있으며, 이미비야덴에서 특별히 마찰로 일으킨 불로 조리되고 카미노미이 신사에서 긷는 물과 함께 맑게 준비된다. 여기서 도요우케의 힘은 번개나 칼처럼 일순간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불을 피우고, 물을 긷고, 밥을 짓고, 바치고, 축사를 올리고, 다시 다음 날 아침에도 반복하는 그 끊임없는 반복 속에 나타난다. 신찬의 세부 사항은 도요우케가 '일반적인 음식'이라는 모호한 상징이 아님을 가르쳐준다. 밥뿐만 아니라 물, 소금, 술, 생선, 해초, 채소, 과일이 정해져 있고 젓가락이 곁들여진다. 이는 자연의 산물을 그대로 놓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불과 물과 그릇을 통해 신에게 바치는 일련의 예법이다. 도요우케 오미카미의 신덕은 수확물을 낳는 것과, 그것을 청정하게 조리하여 신전으로 나르고 기도로서 성립시키는 것 양쪽에 미친다. 신화상의 도요우케 오미카미는 도요우케비메노 카미, 도유우케노 카미, 도유케 오카미라는 여러 이름으로 보인다. 고쿠가쿠인 대학 신명 데이터베이스는 도요우케비메를 와쿠무스비의 자식으로 보며, 음식 혹은 벼의 정령으로 읽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한편 도유우케노 카미에 대해서는 이세 외궁의 제신이라 여겨지면서도, 고지키 본문에서의 위치나 동일 신 여부에 신중한 논의가 남는다. 즉 도요우케 오미카미는 하나의 고전 속에서 완전히 닫힌 신이 아니다. 고지키의 음식신, 단바·단고의 마나이 전승, 이세 외궁의 의례가 겹쳐져 성립하는 제사 역사 그 자체의 두께를 지닌 신이다. 외궁 먼저 제사 지내는(外宮先祭) 관례 또한 이 신격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신궁의 제전에서는 먼저 외궁에서 미케쓰카미를 제사 지내고 나서 내궁으로 나아간다. 이는 외궁이 내궁보다 높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최고신을 배알하기 전에 그 최고신에게 음식을 바치는 작용을 정돈하는 순서이다. 도요우케는 중심을 빼앗지 않는다. 그러나 중심이 계속 중심일 수 있도록 필요한 것을 먼저 조용히 채운다. 이 '먼저 채우는' 작용이야말로 도요우케를 보조신이 아니라 제사의 입구에 서는 신으로서 돋보이게 한다. 신을 맞이하기 전에 식사를 준비한다는 감각은, 기도가 생활의 절차에서 시작됨을 보여준다. 이 모습은 현대의 독자에게도 이해하기 쉽다. 요리를 만드는 사람, 식탁을 지탱하는 사람, 농작물을 기르는 사람,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필요한 일을 시작하는 사람은 흔히 이야기의 주역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그 반복이 사라지는 순간, 생활도 제사도 유지될 수 없게 된다. 도요우케 오미카미는 신화의 무대 뒤에 있는 것이 아니다. 식사를 준비하는 일이야말로 신들의 질서를 움직이는 핵심적인 행위임을, 외궁에서 조용히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