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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mabara Peninsula 火の山と有明海、死者の記憶の半島。島原半島の妖怪

味噌五郎・不知火・河童・磯女。雲仙岳と有明海の怪異

火の山と有明海、
死者の記憶の半島。
島原半島の妖怪

Shimabara Peninsula · しまばらはんとう

다른 이름: 島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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島原半島は、長崎県の南東に突き出した、火と海と死者の記憶が幾重にも積もった土地である。半島の中央には雲仙岳がそびえ、その主峰の一つ普賢岳は今も活火山として湯気を上げつづける。山裾の雲仙温泉には硫黄の煙が地を裂いて噴き上がる地獄が広がり、東に下れば有明海が干潟と怪火をたたえて横たわる。火の山が地形を造り、海が暮らしを養い、そしてその同じ火と海が、おびただしい数の人命を一夜にして奪ってきた半島でもある。

だからこの土地の妖怪は、雲仙岳に腰を下ろす心優しい巨人から、有明海の沖に連なる無数の怪火、川淵に潜む水の怪、磯辺に立つ女の怪まで、いずれも火と水のあわいに立っている。本記事は、この半島がなぜこうした怪異群を育てたのかを、史料に残る事実と語りつがれた伝承とを分けながら辿る読み物である。半島を含む県全体の海洋怪異については、すでに長崎県の妖怪事典が対馬・壱岐・五島の海から論じている。本記事はそれを承けつつ、雲仙岳と有明海という一つの半島の風土に絞って深掘りする。

火の山と有明海の半島 ── 妖怪を育てた風土

島原半島の地形を一望すれば、その中心に雲仙火山群があることがわかる。普賢岳・国見岳・妙見岳を擁する雲仙岳は、四方へ裾を広げて半島そのものを形づくった火の山であり、その火山活動は地形だけでなく、人びとの世界観そのものを規定してきた。山裾の雲仙温泉に湧く高温の噴気孔群 ── 通称「雲仙地獄」── は、白い湯煙と硫黄の臭気で地を覆い、まさに地の底の地獄を地上に開いたかのような景観をなす。火の山は恵みの湯を与えると同時に、足元から噴き上がる熱と硫黄で、いつでも人を呑みうる気配を漂わせていた。

一方、半島の東に広がる有明海は、日本最大級の干満差をもつ内海である。引き潮になれば沖まで干潟がひらけ、満ち潮になればその同じ広がりが海に没する。この海は古来、豊かな漁場であると同時に、夜の沖に正体不明の火を連ねて漁師を惑わせる海でもあった。火の山と干満の海 ── この二つの極端な自然が向かい合う土地で、人びとは恵みと脅威の両義性を肌身で知りつづけてきた。

そして島原半島の風土を決定づけるもう一つの層が、おびただしい死者の記憶である。十七世紀のキリシタン殉教と島原・天草一揆、十八世紀末の眉山崩壊と大津波 ── この半島ほど、限られた範囲で短期間に大量の死を重ねた土地は、日本でも稀である。火と海が造った地形の上に、火と海が奪った命の記憶が幾重にも沈殿している。妖怪は、その記憶と折り合いをつけるための装置として、この半島に独特の像を結んだ。

雲仙に腰を下ろす巨人 ── 味噌五郎

島原半島の妖怪を語るとき、まず雲仙岳そのものを「腰掛け」にした巨人から始めたい。火の山が地形を造ったという事実を、伝承は一人の巨人の身体に置き換えてみせる。

미소고로

みそごろう

미소고로(味噌五郎)는 나가사키현 시마바라 반도에 전해지는 마음씨 착한 거인이다. 반도 남부의 다카이와산에 살며 운젠다케에 걸터앉아 아리아케해에서 세수를 하는 것을 일과로 삼았다고 전해지며, 그 엄청난 체구 때문에 반도의 지형 그 자체를 만든 조물주로서 친숙하게 여겨져 왔다. 이름의 유래는 유별난 된장(미소) 사랑으로, 하루에 4말이나 되는 된장을 핥아 먹었다고 전해진다. 밭일이나 산일을 혼자서 다 해치우고, 그 보수로 된장을 받으며 살았다는 인간 마을에 해를 끼치지 않는 온후한 일꾼 거인이다. 각지의 다이다라봇치(대태법사)형 거인 전설과 맥을 같이 하면서도, 악의를 가진 '괴물'이 아니라 지역을 돕는 친근한 수호자로서 구전되어 온 점이 시마바라 반도 미소고로상의 특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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味噌五郎(みそごろう)は、島原半島南部の高岩山に住んだとされる心優しい巨人である[1]。その桁外れの体躯ゆえに、雲仙岳に腰を下ろして有明海で顔を洗うのを日課にしたと語られ、半島の地形そのものを造った造化の主として親しまれてきた[2]。各地に伝わるだいだらぼっち(大太法師)型の巨人伝説 ── 山や湖沼の造化を巨人の所業に帰す系譜に連なりながら、味噌五郎は害をなす「化け物」ではなく、人里を助ける働き者として語られる点に特色がある。柳田國男も「ダイダラ坊の足跡」(1927)で、この種の足跡譚を全国から集めて論じている。

味噌五郎の伝説は、半島の地名・地形の起源を説く地名起源譚として濃密に分布する[1]。高岩山に腰掛けて足を踏ん張った際にできた足型が、足の形をした諏訪の池になったと伝えられ、また畑を耕した折に放り投げた土塊が有明海に落ちて湯島(談合島)になったとも語られる[2]。名の由来は無類の味噌好きで、一日に四斗もの味噌を舐めたという。畑仕事や山仕事を一人で平らげ、その報酬として味噌を受け取って暮らしたと伝わる。一日四斗という誇張は、巨人の規格外の身体性を、味噌を醸す半島の生活物資に託した語り口であり、巨人譚が在地の暮らしと深く結びついていることを示している。

この巨人譚は今日まで南島原市の郷土文化として継承されている。市役所前には味噌五郎の像が据えられ、西有家町須川商店街では毎年十一月に巨大な味噌五郎の像を山車に載せて練り歩く「みそ五郎まつり」が町おこし行事として催される[5]。昔話としても広く知られ、テレビ番組『まんが日本昔ばなし』では「みそ五郎どん」として放送された[6]。火の山に腰掛けて干潟の海で顔を洗うという破格の身体像は、雲仙岳と有明海という半島の二大景観を、たった一人の巨人の動作のうちに畳み込んでいる。半島の地形を生んだのは火山活動だが、その地質学的時間を、人びとは害なき巨人の親しい所業として語り直してきたのである。

有明海の沖に連なる怪火 ── 不知火

味噌五郎が顔を洗ったその有明海は、夜になると別の貌を見せる。沖に正体不明の火が連なる、不知火の海である。

시라누이

shiranui

시라누이는 규슈 연안, 특히 야쓰시로해와 아리아케해에 나타난다고 전해지는 정체불명의 불빛이다. 음력 8월 초하루인 핫사쿠 무렵, 바람이 약한 밤이면 먼바다에 한두 개의 ‘어미불’이 생긴다. 불은 좌우로 갈라지며 수를 늘려, 마침내 수백에서 수천 개의 빛이 수평선에 길게 늘어선다고 한다. 해수면 가까이에서는 잘 보이지 않고 높은 곳에서 더 또렷하며, 다가가면 그만큼 멀어진다고도 전한다. 센토로나 류토, 곧 천 등롱과 용등이라는 이름도 있다. 어부들은 출어를 삼가라는 징조로 두려워했다. 오늘날에는 신기루와 관련된 대기 광학 현상으로 설명하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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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知火(しらぬい)は、九州沿岸、とくに八代海や有明海に現れるとされた怪火である。旧暦八月一日(八朔)前後の風弱い夜、沖に親火が一つ二つ生じ、左右に分かれて数を増し、数百から数千の火が横に連なるという。海面近くからは見えにくく、高所からよく見えるとされ、近づけば遠ざかるとも伝えられた。千灯籠・竜灯とも呼ばれ、その夜の出漁を忌む予兆として恐れられてきた。

名の由来は古い。『日本書紀』景行紀は、景行天皇が九州遠征の海上で進路を失った際、遠方に赤々とした火が現れ、その火に向かって舵を取らせて無事に着岸したと伝える。土地の者が「誰が灯したか知らぬ火」と答えたことから、この海と火に「不知火」の名が起こったとされる。古代の天皇巡幸譚に名の起源を結びつけるこの伝えは、不知火がただの怪異ではなく、土地の由緒と分かちがたく結びついた火であったことを物語る。

今日では、不知火は蜃気楼の一種、すなわち大気光学現象として説明されている。干満差の大きい有明海・八代海では、夜の干潮時に干潟の上の空気が冷え、水路の上の空気が暖かいまま残る。この温度差が空気のレンズをなし、漁火の一つ一つが横に引き伸ばされて多数の火が連なって見える ── という機序である[8]。科学が現象を解き明かしたあとも、不知火という名と物語は土地に残った。火の正体が屈折した漁火だとわかっても、八朔の夜の沖に火が連なるという事実そのものは変わらず、そこに人が見てきた畏れの記憶も消えない。半島の漁村にとって不知火は、有明海という海の不可解さを一夜の景として凝らせたものだったのである。

淵と磯に立つ水の怪 ── 河童と磯女

火の山と怪火の海に対し、半島の川淵と磯辺には、もっと身近で生々しい水の怪が語られてきた。九州の河童と、有明海の磯女である。

河童は、川や池、沼などの水辺に棲むとされる、日本でもっとも名高い妖怪の一つである。背丈は四、五歳の子どもほどで、頭の上に水をたたえた皿をいただき、背に甲羅、手足には水かきをもつ。この頭の皿こそ力の源で、皿の水がこぼれたり乾いたりすると、たちまち力を失うと信じられてきた[9]。人や馬を水へ引きずり込んで命を奪う恐ろしい一面と、約束を固く守り相撲を好む律儀な一面とをあわせもつ。九州の河童は、薩摩でガラッパ、肥前・肥後でヒョウスベなど、土地ごとに八十をこえる呼び名をもち、なかでも春には山から川へ下り、秋には川から山へ帰るという、山と川を季節で行き来する性質が広く語られる。島原半島の淵にも、こうした九州型の河童 ── 子どもを淵へ引き込む水の怪が伝えられてきた。

河童をめぐる伝承で全国にもっとも広く分布するのが「駒引き」の話である。河童が川辺の馬や牛を水に引き込もうとして、逆に引きずり出されて捕らえられ、命乞いに詫び証文を書いたり、接骨の妙薬を伝えたりする筋立てで、播磨の『西播怪談実記』(1754)などにこの話がある。民俗学者の柳田國男は『山島民譚集』(1914)で、この駒引き伝説を全国から集めて整理した。古くは『日本書紀』仁徳天皇の条に堤の工事を妨げる川の神「河伯」が見え、これが神威を失って河童へ零落したものとも解される。火の山の伏流水が湧き、淵を穿つ島原半島は、河童が棲むにふさわしい水の地でもあった。

有明海の磯辺には、河童とは別の水の怪が立つ。磯女である。

이소온나

iso-onna

이소온나는 아마쿠사·시마바라·쓰시마·가카라시마를 비롯한 규슈 북서부 연안에 나타나는 여자 바다 요괴다. 모래사장과 갯바위, 정박한 배에 다가가 긴 머리카락으로 사람을 휘감아 피를 마신다고 한다. 상반신은 아름다운 여자와 비슷하지만 하반신은 희미하게 사라지거나 뱀처럼 이어진다고 하며, 뒤에서 보면 젖은 바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지역에 따라 이소조시·누레조시·아마·우미히메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바다가 잔잔할 때 모습을 드러내고, 해난 사망자의 원한과 연결되는 곳도 있다. 같은 해안의 위험한 존재인 우시오니와 함께 나타난다는 전승도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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磯女(いそおんな)は、九州北西部の沿岸に出没する女の海怪である。砂浜や磯辺、停泊中の舟に近づき、長い髪で人にまとわりついて血を吸うと伝えられる[13]長崎県南島原では、磯女が沖を凝視し、声をかけた者に甲高い叫びを放って髪を絡め、生血を吸うという。天草では夜、艫綱(ともづな)を伝って船に忍び込み、眠る者に髪を被せて害するため、見知らぬ港では艫綱を取らず錨のみを下ろす習いがあった。島原半島では、苫の茅を三本着物に乗せて寝れば磯女を避けられるとも伝わる。避け方が具体的な作法として残っていること自体が、この怪がどれほど切実に信じられていたかを物語る。

磯女は土地により水死者の霊と結びつけられ、北九州には蟹の化身とする説、福岡沿岸には水上を歩くという話も伝わる。海坊主や船幽霊が沖の舟を直接襲うのに対し、磯女は磯辺や停泊地という陸と海の境に立つ。これは島原半島という土地のあり方そのものでもある ── 干満差の大きい有明海では、磯辺はたえず海になり陸になりを繰り返す不安定な境界であり、その境こそ怪が立つにふさわしい場所だった。長い髪に絡め取られ生血を吸われるという主題は、海辺で命を落とした者への鎮魂と恐れが、女の姿に凝ったものだろう。

死者の記憶の土地 ── 火と海が奪った命

島原半島の妖怪を本当に理解するには、この土地が抱えてきた死者の記憶に触れねばならない。火の山と有明海は、味噌五郎や不知火の伝承を生んだだけでなく、実際におびただしい数の人命を奪ってきた。半島の怪異の影には、つねにその死の記憶が横たわっている。

まず十七世紀、この半島はキリシタン迫害と殉教の舞台となった。雲仙温泉の地獄、すなわち高温の噴気と熱湯の湧く一帯は、寛永年間(1627〜1632年頃)、島原藩主松倉重政らによる拷問の場とされた。棄教を拒んだ信徒は逆さ吊りにされ、熱湯の湯壺に浸けては引き出すことを繰り返された。最初期の殉教者パウロ内堀作右衛門とその子らは、両手の指を切り落とされたうえで雲仙地獄へ送られたと伝わる。火の山が湧かせる地の熱が、信仰を試す責め苦の道具に転じたのである。雲仙地獄には今も殉教の記念碑が立ち、湯煙の景の底にこの記憶が沈んでいる。

その迫害と苛政が、寛永十四年(1637年)に島原・天草一揆を引き起こす。過酷な年貢の取り立てとキリシタン弾圧に耐えかねた島原半島と天草の民が蜂起し、わずか十五、六歳の少年とされる天草四郎(益田時貞)を首領に推した。約三万七千の一揆勢は、半島南端の廃城・原城に立て籠もる。幕府軍はこれを包囲して兵糧を断ち、三月に及ぶ攻防の末、寛永十五年(1638年)に総攻撃をかけて原城は一日で陥落した。天草四郎をはじめ、籠城した者のほとんどが命を落としたと伝えられる。半島の南端に、三万を超える死者の記憶が刻まれたのである。この一揆を境に幕府はキリシタン禁制を強化し、鎖国体制を固めていった。原城跡は今、世界遺産「長崎と天草地方の潜伏キリシタン関連遺産」の構成資産として、その記憶を伝えている。

そしてもう一度、火の山が大量の死をもたらす。寛政四年(1792年)、雲仙岳の火山活動にともなう地震が続いたのち、島原の市街地背後にそびえる眉山が大規模に崩壊した。崩れ落ちた膨大な土砂が有明海へ雪崩れ込み、十メートルを超える津波を引き起こす。津波は島原側を襲い、わずか二十分ほどで対岸の肥後(現在の熊本県)へも達した。この一連の災害による死者は約一万五千人、うち島原側で約一万人、肥後側で約五千人にのぼったと伝えられ、日本史上最大規模の火山災害とされる。火の山が崩れて海が立ち上がり、半島と対岸の双方を呑んだこの惨事は、「島原大変肥後迷惑」の名で語り継がれてきた。半島各地には津波の到達点を刻んだ供養碑が今も残り、二百年を超えて犠牲者の供養が続けられている。

こうして見れば、島原半島の妖怪が立つ風景の意味が見えてくる。雲仙岳に腰掛けて有明海で顔を洗う味噌五郎は、火の山と海を一人の優しい巨人の所業へと和らげた語りである。八朔の沖に連なる不知火は、漁師の命を呑む有明海の不可解を、一夜の火の景として畏れたものだ。淵に潜む河童、磯辺に立つ磯女は、水が日々奪っていく命の理不尽を、目に見える怪の姿に結んだものだろう。火の山が湧かせた地獄での殉教、原城に散った三万七千、眉山崩壊の津波に呑まれた一万五千 ── これほど死を重ねた半島だからこそ、人びとは火と海に名を与え、姿を与え、物語を与えずにはいられなかった。

島原半島の妖怪は、火の山と有明海という風土が、おびただしい死者の記憶とともに生んだものである。雲仙岳に腰を下ろす巨人、八朔の沖の怪火、淵と磯に立つ水の怪 ── そのいずれもが、恵みと脅威の両義を抱えたこの半島で、人が火と海と死者に向き合うために語り出した姿なのだ。半島を含む長崎県全体の海洋怪異の地平については、長崎県の妖怪事典があわせて辿れる。

Shimabara Peninsula의 모든 요괴4

Shimabara Peninsula와 관련된 요괴 전체 목록. 본문에서 다루지 못한 전승도 포함됩니다.

  • 갓파

    갓파

    전설

    갓파

    강가의 접시 머리・갓파

    물의 요괴일본 전역의 강·연못·늪

    갓파란 사실 정해진 한 마리 요괴의 이름이 아니다. 강이나 연못에 깃든 물의 정령을, 온 일본이 저마다의 말로 불러 온 그 총칭일 따름이다. 남규슈에서는 가랏파, 도호쿠에서는 메도치, 시코쿠에서는 엔코, 주부에서는 가와란베, 긴키에서는 가타로, 규슈에서는 효스베――고장마다 이름도 모습도 조금씩 다르며, 그 수는 여든이 넘는다고도 한다. 원숭이에 가까운 것, 털이 수북한 것, 무리를 이루는 것. 그러나 어느 것이나 「물가에 있으면서 머리의 접시에 물을 담고, 사람과 말을 끌어들인다」는 핵심을 나누어 지닌다. 갓파란 이를테면 전국의 물의 정령이 한데 모인 커다란 일족의 공통된 이름인 것이다. 이토록 갖가지 변종을 하나로 묶어 내는 것이 민속학의 견해다. 야나기타 구니오와 오리쿠치 시노부는 갓파를 본래 물을 다스리던 신(물의 신)이 신앙이 쇠하면서 요괴로 영락한 모습이라고 보았다. 고마히키 전설에서 갓파가 늘 말이나 소를 물로 끌어들이려 하는 것도, 본디 물의 신에게 말과 소를 바쳐 풍작을 빌던 제사의 기억이 아닐까――이시다 에이이치로는 『갓파 고마히키 고』(1948)에서 이 말과 물의 신의 결합을 유라시아 각지의 신화와 견주어 보였다. 물을 다스리는 신이기에 갓파는 논에 물을 대고 물고기를 베풀며 접골의 묘약까지 전하는 한편, 사람을 빠뜨리고 시리코다마를 뽑는다. 은혜와 재앙의 두 면은 영락한 물의 신의 겉과 안인 것이다. 물의 신의 자취는 계절의 순환에도 보인다. 서일본에서는 갓파가 가을 피안에 산으로 들어가 야마와로가 되었다가, 봄 피안에 다시 강으로 내려와 갓파로 돌아온다고 널리 전한다. 봄에 산에서 마을로 내려오는 논의 신, 가을에 산으로 돌아가는 산의 신――그 오감의 관념과 갓파와 야마와로의 교대는 딱 맞아떨어진다. 일족의 변종끼리도 이렇듯 서로 땅으로 이어져 있다. 일족에는 우두머리 전설까지 있다. 규슈의 구마강에는 구천 마리나 되는 권속을 거느리고 대륙에서 건너온 갓파의 대장 「구센보」 이야기가 전한다. 가토 기요마사의 노여움을 사 그 일대에서 쫓겨나, 지쿠고강으로 옮겨 구루메의 스이텐구의 권속이 되었다고 한다. 갓파가 한낱 한 마리 괴물이 아니라 강에서 강으로 이어지는 일족으로 상상되었음이 이 두목 전설에 잘 드러난다. 갓파에 얽힌 고장은 전국에 있다. 이와테의 도노에는 갓파가 나타난다는 「갓파부치(갓파 못)」가 있고, 머리 접시의 물로 불을 끈 공으로 머리가 접시 모양을 한 「갓파 고마이누」가 조켄지에 모셔져 있다. 이바라키의 우시쿠 늪에서는 평생 갓파를 그린 화가 오가와 우센이 「갓파의 우센」이라 불렸고, 후쿠오카의 다누시마루는 「갓파족 발상의 땅」을 자처한다. 도쿄의 갓파바시에는 치수를 추진하던 상인을 스미다강의 갓파가 밤마다 도왔다는 전설이 남아 있다. 지금도 각지에서 갓파 축제가 열리고, 술 상표나 고장의 마스코트가 되기도 하면서, 갓파는 일본에서 가장 사랑받는 물의 요괴로 남아 있다.

  • 이소온나

    이소온나

    에픽

    iso-onna

    고물 계류줄을 타고 오르는 이소온나

    해안의 여자 요괴아마쿠사·시마바라·가카라시마·나가시마를 중심으로 한 규슈 북서부 연안. 고토 열도·쓰시마에서 가가 하시타테까지 관련 명칭이 전한다

    이소온나는 규슈 북서부 바닷가에 전하는 여자 해괴다. 허리 위는 바닷물에 젖은 긴 검은 머리를 늘어뜨린 젊은 여자처럼 보인다. 아래쪽은 안개와 파도 속에 풀려 발자국도 남기지 않거나, 길게 뱀의 몸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뒤에서 보면 젖은 바위로 착각할 수도 있다. 나가사키 미나미시마바라에서는 먼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다가 말을 거는 사람에게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고, 머리카락으로 붙잡아 피를 마신다고 전한다. 가장 두려운 습성은 정박한 배에 올라오는 것이다. 구마모토 아마쿠사에서는 어두워진 뒤 고물 계류줄을 타고 올라와 잠든 사람의 얼굴을 머리로 덮는다. 낯선 항구에서 밤을 보내는 배는 그래서 닻만 내리고 고물은 육지에 묶지 않았다. 배와 육지를 이어 주는 줄이 그대로 이소온나의 통로가 되는 셈이다. 지역마다 피하는 방법도 남아 있다. 시마바라반도에서는 이엉에서 뽑은 풀줄기 세 가닥을 옷 위에 올려놓고 자면 이소온나의 머리카락이 달라붙지 않는다고 했다. 야나기타 구니오가 감수한 『종합 일본 민속 어휘』도 규슈 연안의 이 여자 해괴를 이소온나·이소뇨보 등의 이름으로 기록했다. 이소온나는 먼바다에서 배를 공격하는 우미보즈나 후나유레이와 성격이 다르다. 갯바위와 정박지, 육지와 바다가 닿는 곳에 나타난다는 점이 이소온나의 가장 뚜렷한 특징이다. 많은 지역에서 물에 빠져 죽은 여자, 또는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다 죽은 여자의 한과 연결한다. 서일본에서는 우시오니와 짝을 이루어, 우시오니가 덮치기 전에 먼저 다가가 상대의 경계를 풀어 놓는다고도 한다. 머리카락과 피, 그리고 해안의 경계가 이소온나를 이루는 핵심이다. 고물줄을 타고 배에 오르는 이야기와 줄을 매지 않는 정박법, 이엉 풀 세 가닥을 두는 관습은 밤바다를 두려워하면서도 그 곁에서 살아가야 했던 어촌의 지혜를 함께 전한다.

  • 미소고로

    미소고로

    희귀

    みそごろう

    시마바라 반도의 마음씨 착한 거인·미소고로

    오니·거대 괴이다카이와산 (현 나가사키현 미나미시마바라시) / 니시아리에 (현 나가사키현 미나미시마바라시 니시아리에초)

    미소고로는 운젠다케에 걸터앉아 아리아케해에서 세수를 할 정도의 거체를 가졌으며, 그 일거수일투족이 시마바라 반도의 지형을 새겼다고 전해진다. 다카이와산에서 발을 버틴 자국이 스와 연못이 되고, 경작 시에 내던진 흙이 유시마(단고섬)가 되었다 ── 이러한 지명 기원담의 연속이 그를 단순한 괴이가 아닌 반도의 풍경을 낳은 조화의 거인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하루에 4말의 된장을 핥는다는 파격적인 식사는 거인의 몸을 지역의 생활 물자로 가늠하는 소박한 화법으로, 된장을 빚는 반도의 생활과 불가분하게 결합되어 있다. 다이다라봇치형의 거인담과 맥을 같이 하면서도, 악의 없이 사람을 돕는 온후함으로 이야기되는 점이 시마바라 반도 버전의 독자성으로, 오늘날에도 미나미시마바라시 향토의 상징으로서 동상이나 축제에 살아 숨 쉬고 있다.

  • 시라누이

    시라누이

    드문

    shiranui

    핫사쿠의 어미불 시라누이

    바다 위의 괴화구마모토·사가·나가사키 시마바라반도에 걸친 야쓰시로해와 아리아케해 연안

    이 모습의 시라누이는 음력 8월 초하루 새벽, 핫사쿠를 맞아 질서 정연한 대열로 나타난다. 해안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먼저 붉은빛 한두 개가 생기는데, 연안 사람들은 이를 오야비, 곧 ‘어미불’이라고 부른다. 빛은 양쪽으로 갈라져 ‘새끼불’을 계속 늘리고, 마침내 수백에서 수천 개가 바다 위에 한 줄로 이어진다. 전승에서는 그 길이가 4~8리, 약 16~32킬로미터에 이른다고 한다. 물가의 낮은 해변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지만, 수면보다 열 간가량 높은 곶이나 언덕에서는 또렷하다. 썰물이 가장 깊어질 무렵에는 물속 용의 비늘처럼 규칙적으로 깜박인다. 불빛은 뒤쫓으면 물러나고 배가 다가가면 다시 멀어진다. 붙잡으려는 사람 앞에서는 빛과 수면의 그림자가 함께 비켜 나가지만, 해안으로 돌아가는 방향만은 남겨 둔다. 옛 기록에는 게이코 천황의 배가 어둠에 갇혔을 때 이런 어미불이 나타나 뱃머리를 육지로 이끌었다고 한다. 누가 피운지 모르는 불이기에 해안마을은 더욱 경건하게 대했다. 핫사쿠 밤에는 그물을 거두고 노를 쉬며, 불의 대열이 흩어질 때까지 기다렸다. 어미불은 때때로 사나운 용신의 기척과 연결되지만 사람을 해치는 일 자체를 즐긴다고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오만과 조급함을 경고한다. 눈앞의 이익만 좇아 서두르는 배는 불빛 사이를 헤매다 결국 돛을 접는다. 조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해안의 소나무에 올라 빛의 리듬을 살핀 뒤 대열이 끊어진 곳으로 조용히 나간다. 그러면 먼 여울도 뜻밖에 잔잔하고, 돌아올 때에는 마지막 불 하나가 해안에서 배를 맞이한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이 빛을 천 등롱이나 용등이라 부르며 두 손을 모았다. 누군가 거칠게 이름을 외치거나 비웃으면 가지런하던 불빛은 곧 바다 안개처럼 흩어진다. 시라누이는 보통 불꽃처럼 바람을 먹고 커지지 않는다. 빛의 수와 밝기는 오직 밀물과 썰물의 흐름을 따른다. 그래서 곶이나 둔덕에서는 깨끗한 띠로 보이지만 파도 가까이에서는 사라진다. 바닷가 신사의 금줄이 물 쪽으로 조금 휘거나 등대 불빛의 색이 달라지면, 먼바다에서 불이 생기기 시작한 징조라고도 한다. 이를 아는 노인은 젊은 선원들에게 조수가 빠지고 불이 뜰 날이니 배를 띄우지 말라고 일러 준다. 재도 연기도 남지 않는다. 다만 해가 뜬 뒤 잠시 갯벌의 조개껍데기가 옅은 장밋빛으로 빛나고, 갈대 끝 이슬에 마지막 불빛이 남는다고 한다. 그런 아침이면 마을 사람들은 해변에 소금을 뿌리고 무사히 돌아온 생명에 감사한다. 어미불은 두려움과 예의를 아는 이에게 길을 열고, 자신만만한 이에게서 멀어지며, 사람과 바다 사이의 경계를 조용히 다시 그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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