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KAI.JP
Kuma River Basin 河童たちの故郷。球磨川流域の妖怪事典

九千坊と九千の眷属、ガラッパ・ひょうすべ。河童王国の源流をたどる

河童たちの故郷。
球磨川流域の妖怪事典

Kuma River Basin

다른 이름: 八代
지도에서 보기

日本三大急流のひとつ、球磨川。鹿児島・宮崎との県境に切り立つ九州山地のただなかに、ぽっかりと開けた人吉盆地から流れ出し、深い谷を激しく下って八代の海へ注ぐこの川は、ただ水量の豊かな川ではない。日本における河童伝承のもっとも濃い土地、いわば河童たちの故郷なのである。

この川には、九千匹の河童を率いた王が生まれたと伝わる。九千坊である。やがて彼らは肥後の領主に追われ、川を捨てて遠く筑後川へと去っていった ── 河童王国の興りと流転の物語が、この流域を貫いている。さらにこの地では、同じ河童が場所と季節によってガラッパ、山童、ひょうすべと名を変える。球磨川流域は、九州の河童文化の一大中心地であり、その呼び名の地図がもっとも複雑に折り重なる土地でもある。盆地の歴史と急流の地形をたどりながら、なぜここが河童たちの故郷になったのかを読み解いていきたい。

熊本県全体の妖怪文化については熊本県の妖怪事典に譲り、ここでは球磨川という一本の川と、その上流の人吉盆地に視点を絞る。

日本三大急流・球磨川という土地

球磨川は、富士川・最上川と並んで日本三大急流のひとつに数えられる[1]。鹿児島・宮崎の県境に連なる九州山地に四方を閉ざされた人吉盆地に発し、巨岩のひしめく谷を縫って八代平野へと一気に下る。中流域はかつて、人吉から八代まで急流と岩礁が続いて舟をやるのも難しかったが、江戸期に相良藩の御用商人が舟路を開削して以降、球磨川は外との物流をつなぐ幹線となった[1]。いまも観光の球磨川下りとして、その急流の名残を木船で体感できる。

この閉ざされた盆地を、ひとつの大名家が驚くほど長く治めた。相良氏である。建久四年(一一九三年)に地頭としてこの地に入った相良氏は、四方を山に守られた地の利を生かして外敵を拒み、戦国の世を生き延び、江戸時代を経て明治維新までこの地を領した ── 日本史でも稀な「相良七百年」と称される長期支配である。隠れ里のように外と隔てられたこの盆地で、球磨独自の言葉と文化、そして妖怪の呼び名がはぐくまれた。九州のなかでも人吉球磨が突出して濃い河童伝承を残すのは、この地理的な孤立と無縁ではない。

急流と深い淵は、人を呑む。淵に沈んだ水死者の記憶は、水辺の見えざる主への畏れ ── すなわち河童信仰の苗床となった。人を引き込む川であればこそ、その川には主がいると人々は考えた。球磨川が急流であることと、この流域が河童の故郷であることは、地つづきの事実なのである。盆地に閉ざされた土地では、語りは外へ拡散せず、内へと深く沈殿する。相良七百年のあいだ、人吉球磨で繰り返し語られた淵の主の物語は、こうして他のどこよりも濃密に堆積していった。

河童たちの故郷 ── 球磨川という水のゆりかご

갓파

갓파

갓파는 강이나 연못, 늪 같은 물가에 깃든다는, 일본에서 가장 이름난 요괴 가운데 하나다. 키는 네다섯 살 아이만 하고, 정수리에는 물을 담은 접시(사라)를 이고 있으며, 등에는 등딱지, 입은 부리, 손발에는 물갈퀴가 달려 있다. 몸빛은 푸르거나 불그스름하며 비린내가 난다고도 한다. 머리의 이 접시야말로 힘의 원천이어서, 접시의 물이 쏟아지거나 마르면 그 즉시 힘을 잃는다고 믿어져 왔다. 그래서 갓파에게 깊이 절을 되돌려 받게 하여 접시의 물을 쏟게 한 뒤 사로잡는다는 지혜도 전해 내려왔다. 갓파에게는 두 얼굴이 있다. 사람이나 말을 물속으로 끌어들여 목숨을 앗아가는 무서운 면이 있는가 하면, 약속을 굳게 지키고 스모를 즐기며 때로는 접골의 묘약을 전해 주는 의리 있는 면도 있다. 전국에 널리 퍼져 고장마다 가랏파, 메도치, 엔코, 효스베 등 여든이 넘는 이름으로 불린다. 일본의 요괴 가운데서도 이토록 지역에 깊이 뿌리내린 존재는 드물다.

자세히 보기

河童は人の尻子玉を抜き、胡瓜を好み、子どもや馬に相撲を挑む ── 全国の河童と共通するこうした性質を、球磨川流域では「ガラッパ」「ガワッパ」の名で語ってきた。馬を川へ引き込もうとして失敗し、逆に捕らえられて詫び証文を書かされるという駒引き譚も、この水の国には濃く根づいている。

なぜ球磨川がこれほど河童に満ちた土地になったのか。その答えは、この流域が上流の盆地から下流の河口まで、性格の異なる水辺をひとそろい備えていることにある。上流の人吉盆地では、田を潤す用水路や深い淵に山あいの河童が棲み、中流の急峻な谷ではその淵ごとに主が語られ、下流の八代では河口の港に大陸からの渡来譚が結びついた。ひとつの川が源流から海まで多様な水辺を抱えるからこそ、河童はひとつの姿にとどまらず、場所ごとに名と性質を変えて棲み分けた。球磨川は、河童という想像力を育てる水のゆりかごだったのである。

その故郷の中心で、九千匹もの河童を統べる王が生まれたと伝わる。球磨川の河童文化の核は、この一族の盛衰の物語にある。

九千坊 ── 九千の河童を率いた王の流転

규센보

규센보

규센보(きゅうせんぼう, くせんぼう)는 규슈의 모든 갓파를 거느린다는 총대장으로, 전설 속의 요괴다. 에도 시대의 『본조속언지』에 따르면, 본디 중국 황하에서 일족을 이끌고 건너와 히고의 야쓰시로에 상륙하여 구마강에 자리 잡은 갓파로, 그 무리가 구천에 이르렀기에 두목을 「규센보」라 불렀다고 한다. 생김새는 여느 갓파와 다를 바 없고, 별난 형상을 지닌 것도 아니다. 규센보를 두드러지게 하는 것은 생김새가 아니라, 규슈의 갓파 구천 마리를 거느리는 「두목」으로서의 자리다. 한 지방을 들썩이게 할 힘을 지니고도, 갓파의 천적인 원숭이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 강하면서도 두려워하는 갓파의 본성이, 일족 전체의 규모로 크게 비친 셈이다. 뒷날 지쿠고강으로 옮겨, 사람을 해치는 마물에서 물난리로부터 사람을 지키는 수신의 권속으로 돌아선, 그 개심의 이야기로도 이름났다.

자세히 보기

江戸中期の地誌菊岡沾涼『本朝俗諺志』(延享三年・一七四六年)は、河童がはるか中国の黄河から一族をなして海を渡り、肥後・八代の球磨川に住み着いたと記す。やがて川に増えた河童は九千匹に達し、その首領が九千坊と呼ばれるようになったという[4]。八代市本町、前川橋のたもとの徳渕(とくぶち)が上陸の地とされ、中世にはここを「徳渕津」と呼んで大陸や南方の船が出入りした実在の良港であった。海の彼方から異形が訪れるという物語が、この港の記憶から立ちのぼったのは自然なことだろう。

この九千坊の物語は、ここで終わらない。むしろ球磨川を去ってからが、河童王国の本筋である。肥後を治めた加藤清正との確執には、二つの語り口が伝わる。ひとつは、清正の愛する小姓が川に引き込まれて溺死し、激怒した清正が河童の天敵である猿を九州じゅうから集めて攻めさせたという猿狩り版。いまひとつは、川に毒を流して河童を追い詰めたという版である。いずれにせよ、攻め立てられた九千坊は本拠の球磨川を捨てざるを得なくなった。

追われた九千坊が新たな住処に選んだのが、筑後川である。久留米藩主・有馬氏から「人畜に害をなさぬ」ことを条件に居住を許された九千坊はその恩に報いて久留米水天宮の眷属となり、領民を水害から守ると誓ったと伝わる。注意したいのは、九千坊は水天宮の祭神そのものではなく、その使い・眷属とされる点である。さらに有馬家が水天宮を江戸日本橋の蛎殻町へ勧請したとき、九千坊の一族も隅田川へと移り住んだとも語られる。

ここで肝心なのは、この大移動の物語が、球磨川を「失われた故郷」として位置づけている点だ。久留米の河童たちは筑後川の主として今に祀られ、田主丸の悟真寺に伝わる契約では、鐘が淵とめぐり渕のあいだで子どもが泳ぎ紙漉きの人が働いても決して命を取らないと河童が誓ったと語られる[5]。だが、その久留米の河童の出自はいつも「もとは球磨川にいた」と語られる。九州各地に散った河童伝承が、その源流をこの一本の川に求めている ── 球磨川流域が河童文化の中心地と呼ばれる根拠は、まさにこの「すべての河童はここから出た」という流転譚にある。

退治され追われた妖怪が、よその土地で水神の眷属へと昇華していくという結末は珍しい。多くの妖怪譚は退治されて終わるが、九千坊はそうではなかった。本拠を追われてなお一族を率いて移動し、新たな川を治め、ついには水神の使いとして人を守る側へと立場を変える ── この長大な物語の弧は、九千坊の伝説が、球磨川の河童をいかに格の高い、いわば王のような存在として語ってきたかを示している。故郷を追われた王の流転という構図そのものが、この流域の河童に独特の風格を与えているのである。

ガラッパとひょうすべ ── 河童の呼び名の地図

球磨川流域の河童には、ほかの土地にはあまり見られない著しい習わしがある。季節をめぐる移動と、それにともなう呼び名の変化である。

人吉球磨で河童を指すガラッパは、一般の河童と違って手足が長く、座ると膝が頭より高くなり、全身に毛があって後ろ足で立って歩くとされる。八代から人吉球磨にかけての熊本県南部、さらに鹿児島県本土まで、河童をガラッパと呼ぶ文化圏が広がっている。このガラッパは、夏のあいだ川に棲むが、秋の彼岸になると山へ入って山童(やまわろ)となり、春の彼岸にふたたび川へ下りてガラッパに戻るとされた。

この交替を、人吉球磨では独自の言葉で語る。川に棲むあいだは「川ん太郎(かわんたろう)」、山に入れば「山ん太郎(やまんたろう)」と呼び分け球磨郡では二月一日の「太郎朔日(たろうついたち)」にこの二者が入れ替わるという。同じ存在に二つの名を与え、その境目を暦の一日に定めるという発想は、この地の人々が河童を自然の一部としてどれほど精緻に観察し、暮らしの時間割のなかに組み込んでいたかを物語る。山に入った山ん太郎は木こりの山仕事を手伝うこともあるが、約束した酒や握り飯を必ず求め、違う物を出されると怒って姿を消すとも伝わる。

柳田國男は、この山と川を往復する性質を、農耕暦に従って去来する田の神と山の神の信仰の反映と読み解いた。春に山から下りて田を見守り、収穫を終えると山へ帰る神 ── その去来の型が、河童の季節移動にそのまま重なる。河童は単なる水の怪ではなく、稲作の季節そのものと結ばれた存在だったのである[8]。米どころの人吉盆地でこそ、この読みは実感をもって理解できる。

효스베

효스베

효스베는 규슈 각지에 전해지는, 물가에 깃든 털 많은 요괴다. 갓파와 같은 무리, 혹은 가까운 친족으로 여겨지며, 춘분·추분 무렵이면 강에서 산으로 오간다고도 한다. 「효—효—」 하고 새처럼 우는 데서 그 이름이 붙었다고 전한다. 가지를 즐겨 먹어, 그해 첫 가지를 바치는 풍습이 일부 지방에 남아 있다. 인가의 욕조에 몰래 들어가 물을 쓰고 나면 그 뒤의 물에 짐승 털 같은 체모가 잔뜩 떠 있었다는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있으며, 그 모습을 본 사람은 열병에 걸린다고도 전해진다.

자세히 보기

同じ九州の河童の仲間に、ひょうすべがいる。毛深く、禿げた頭で、歯をむき出してけたけたと笑うこの妖怪は、肥前(佐賀)を中心としつつ、球磨川流域をふくむ肥後にも分布する。「ヒョーヒョー」と鳥のように鳴くことが名の由来とも語られ、彼岸のころに川と山を行き来する河童的な性質をひょうすべに帰す伝承も多い。茄子を好むため、畑の初茄子をひょうすべに供える風習が伝わった。『北肥戦誌(九州治乱記)』はひょうすべの縁起を記し、その名は古代の渡来神「兵主神(ひょうずしん)」の「ひょうず」に由来するとする説もある。なお「ひょうすべに笑い返すと死ぬ」「見た者は高熱を出す」といった怖い言い伝えは、比較的近年に広まった俗説とみられる。

河童・ガラッパ・山童・ひょうすべ ── これらはばらばらの妖怪ではなく、ひとつの存在が場所と季節で呼び名を変えた姿である。川にいればガラッパ、山に入れば山ん太郎、隣国から流れてくればひょうすべ。同じ一族が地形と暦に応じて名を着替えるというこの発想こそ、源流から海まで多様な水辺を抱える球磨川流域ならではの、河童の呼び名の地図にほかならない。

相良の城下と水神信仰 ── 河童を生んだ土地の祈り

河童たちの故郷を語るうえで、相良七百年の城下町・人吉と、その水神信仰を欠かすことはできない。盆地の中心に流れる球磨川のほとり、人吉市上青井町には、熊本県で初めて国宝に指定された青井阿蘇神社が鎮座する。平安時代の大同元年(八〇六年)に阿蘇神社の三神を勧請して創建されたと伝わり、阿蘇開拓の神・健磐龍命(たけいわたつのみこと)らを祀る。現在の社殿五棟は、初代人吉藩主・相良長毎(さがらながつね)と重臣・相良清兵衛の発起により慶長十五年(一六一〇年)から十八年にかけて造営されたもので、急勾配の茅葺屋根に黒漆と赤漆を併用する人吉球磨独自の意匠を伝える。茅葺の社寺建築が国宝に指定されたのは全国でも初めてのことであった[10]

開拓の守護神を盆地の中心に祀り、急流の球磨川とともに生きてきたこの土地では、水は恵みであると同時に、人を呑む畏怖の対象でもあった。河童とは、その畏怖が結晶した姿である。神社で水の神を祀る祈りと、淵の河童に詫び証文を書かせる伝承とは、同じ水への畏れの裏表だったといえる。八代に建つ「河童渡来之碑」は、捕らえられた河童が「この石がすり減るまでは人や馬に悪さをしない」と誓い、その代わりに毎年の祭を願い出たという伝承を伝える。淵を完全に封じるのではなく、河童と約束を交わして共に生きていく ── ここには、荒ぶる水を排除ではなく取り決めによって鎮めようとする、この流域の作法がにじむ。

球磨川はまた、米の文化の川でもある。盆地の豊かな米は球磨焼酎を生み、その仕込み水と原料を支えたのもこの川の水であった。田を潤す用水のほとりに山ん太郎が下りてきて、稲作の暦とともに山と川を往復する ── 河童が農耕の神の影を帯びていたという柳田の読みは、この米どころの盆地でこそ実感をもって理解できる。

源流の盆地から八代の河口まで、球磨川は性格の異なる水辺をひとつの川に束ね、その全身に河童を棲まわせてきた。九千の河童を率いた王・九千坊がここから流転をはじめ、ガラッパと山ん太郎が暦とともに山河を往き来し、ひょうすべが隣国から流れ込む。九州じゅうに散った河童たちが、その源流をこの一本の川に求める ── 球磨川流域とは、まさしく河童たちの故郷であり、日本の河童文化がもっとも深く根を張った水の国の、その心臓部にほかならないのである。

Kuma River Basin의 모든 요괴4

Kuma River Basin와 관련된 요괴 전체 목록. 본문에서 다루지 못한 전승도 포함됩니다.

  • 갓파

    갓파

    전설

    갓파

    강가의 접시 머리・갓파

    물의 요괴일본 전역의 강·연못·늪

    갓파란 사실 정해진 한 마리 요괴의 이름이 아니다. 강이나 연못에 깃든 물의 정령을, 온 일본이 저마다의 말로 불러 온 그 총칭일 따름이다. 남규슈에서는 가랏파, 도호쿠에서는 메도치, 시코쿠에서는 엔코, 주부에서는 가와란베, 긴키에서는 가타로, 규슈에서는 효스베――고장마다 이름도 모습도 조금씩 다르며, 그 수는 여든이 넘는다고도 한다. 원숭이에 가까운 것, 털이 수북한 것, 무리를 이루는 것. 그러나 어느 것이나 「물가에 있으면서 머리의 접시에 물을 담고, 사람과 말을 끌어들인다」는 핵심을 나누어 지닌다. 갓파란 이를테면 전국의 물의 정령이 한데 모인 커다란 일족의 공통된 이름인 것이다. 이토록 갖가지 변종을 하나로 묶어 내는 것이 민속학의 견해다. 야나기타 구니오와 오리쿠치 시노부는 갓파를 본래 물을 다스리던 신(물의 신)이 신앙이 쇠하면서 요괴로 영락한 모습이라고 보았다. 고마히키 전설에서 갓파가 늘 말이나 소를 물로 끌어들이려 하는 것도, 본디 물의 신에게 말과 소를 바쳐 풍작을 빌던 제사의 기억이 아닐까――이시다 에이이치로는 『갓파 고마히키 고』(1948)에서 이 말과 물의 신의 결합을 유라시아 각지의 신화와 견주어 보였다. 물을 다스리는 신이기에 갓파는 논에 물을 대고 물고기를 베풀며 접골의 묘약까지 전하는 한편, 사람을 빠뜨리고 시리코다마를 뽑는다. 은혜와 재앙의 두 면은 영락한 물의 신의 겉과 안인 것이다. 물의 신의 자취는 계절의 순환에도 보인다. 서일본에서는 갓파가 가을 피안에 산으로 들어가 야마와로가 되었다가, 봄 피안에 다시 강으로 내려와 갓파로 돌아온다고 널리 전한다. 봄에 산에서 마을로 내려오는 논의 신, 가을에 산으로 돌아가는 산의 신――그 오감의 관념과 갓파와 야마와로의 교대는 딱 맞아떨어진다. 일족의 변종끼리도 이렇듯 서로 땅으로 이어져 있다. 일족에는 우두머리 전설까지 있다. 규슈의 구마강에는 구천 마리나 되는 권속을 거느리고 대륙에서 건너온 갓파의 대장 「구센보」 이야기가 전한다. 가토 기요마사의 노여움을 사 그 일대에서 쫓겨나, 지쿠고강으로 옮겨 구루메의 스이텐구의 권속이 되었다고 한다. 갓파가 한낱 한 마리 괴물이 아니라 강에서 강으로 이어지는 일족으로 상상되었음이 이 두목 전설에 잘 드러난다. 갓파에 얽힌 고장은 전국에 있다. 이와테의 도노에는 갓파가 나타난다는 「갓파부치(갓파 못)」가 있고, 머리 접시의 물로 불을 끈 공으로 머리가 접시 모양을 한 「갓파 고마이누」가 조켄지에 모셔져 있다. 이바라키의 우시쿠 늪에서는 평생 갓파를 그린 화가 오가와 우센이 「갓파의 우센」이라 불렸고, 후쿠오카의 다누시마루는 「갓파족 발상의 땅」을 자처한다. 도쿄의 갓파바시에는 치수를 추진하던 상인을 스미다강의 갓파가 밤마다 도왔다는 전설이 남아 있다. 지금도 각지에서 갓파 축제가 열리고, 술 상표나 고장의 마스코트가 되기도 하면서, 갓파는 일본에서 가장 사랑받는 물의 요괴로 남아 있다.

  • 가랏파 (Garappa)

    가랏파 (Garappa)

    에픽

    Garappa

    남규슈 몰락한 물의 신・가랏파

    물의 요괴센다이강 유역 (가고시마현 사쓰마센다이시) / 구마강 유역 (구마모토현 남부)

    야나기타 쿠니오가 『요괴담의』 등에서 지적하듯이, 가랏파는 '과거 물을 관장하는 수신으로 신앙되던 존재가 시대의 변천과 함께 요괴로 몰락한 모습'을 일본 전국의 갓파 전승 중에서도 가장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는 존재입니다. 겨울이 다가오면 산으로 들어가 '야마와로'가 되고, 봄에 다시 강으로 돌아오는 계절적 변용은 벼농사 문화에 있어서 논의 신과 산의 신의 순환 그 자체입니다. 이들은 종종 인간에게 장난을 치고 때로는 목숨을 빼앗는 수난의 상징으로 두려움의 대상이 되지만, 반대로 인간 측에서 예를 다하면 풍성한 어획을 가져다주고 중노동인 모내기를 밤새워 도와주는 '듬직한 이웃'이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양면성이야말로 애니미즘의 핵심입니다. 가랏파는 단순한 강의 요괴에 그치지 않고, 남규슈의 험준한 산과 풍요로운 강에 둘러싸인 혹독한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품었던 '자연에 대한 경외'와 '공생에 대한 기도'가 투영된 지역 사회의 필수 불가결한 존재입니다.

  • 규센보

    규센보

    희귀

    규센보

    규슈의 갓파를 거느리는 총대장·규센보

    물의 괴이구마모토현 야쓰시로·구마강 → 후쿠오카현 구루메·지쿠고강(갓파의 총대장)

    이 판본에서 찬찬히 볼 것은, 규센보가 한 마리 요괴라기보다 「갓파라는 족속의 우두머리」라는 그 남다른 자리매김이다. 갓파는 본디 고장마다 이름을 바꾸어, 곳곳의 강에 흩어져 이야기되는 요괴다. 그 가운데 규센보는, 규슈 일원의 갓파 구천 마리를 한 손에 거느리는 「총두목」으로 그려진다. 이는 여우의 천호 같은, 한 마리가 수행으로 위계를 올리는 세로의 사다리와는 다르다. 규센보가 차지한 것은 많은 갓파를 거느리는 가로의 자리 — 말하자면 한 군대의 대장으로서의 권위다. 그 권위가, 가토 기요마사와의 대결에서 시험에 든다. 『본조속언지』가 전하는 이 한 판은, 갓파의 강함과 약함을 한꺼번에 비춘다. 구천의 권속을 거느리고도, 갓파가 예부터 가장 두려워한 원숭이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패한다. 승부가 무력이 아니라 천적이라는 이치로 갈리는 데에 — 갓파라는 요괴의 본성이 또렷이 드러난다. 패배 뒤에 오는 것이, 수신으로의 변신이다. 지쿠고강으로 옮긴 규센보는, 사람을 덮치는 마물에서 물난리를 막는 수호자로 자리를 바꾼다. 구루메 스이텐구를 섬긴다는 이 인연은, 갓파가 「물의 위험」과 「물의 은혜」 두 뜻을 함께 진 존재임을 말해 준다. 야쓰시로 갓파 도래의 땅에 선 비석, 스이텐구의 갓파 탈, 그리고 히노 아시헤이가 쇼와에 결성한 갓파족 — 규센보의 이야기는, 에도의 수필에서 오늘날의 마을 가꾸기까지, 규슈 사람들이 강과 더불어 자아낸 기억의 축으로서, 지금도 살아 있다.

  • 효스베

    효스베

    드문

    효스베

    규슈 강가의 털 갓파, 효스베

    물의 요괴규슈 (규슈 강가의 털 많은 갓파 무리·각지)

    이 판본에서는 효스베가 「집안의 금기」와 깊이 결부된 규슈형 갓파라는 점을 살펴본다. 갓파 이야기 대부분이 강이나 깊은 못을 무대로 삼는 데 비해, 효스베의 이야기는 욕실과 목욕탕, 그리고 마구간 안으로 파고든다. 털 많은 효스베가 쓰고 난 목욕물은 체모가 떠 더럽혀진 것으로 여겨져, 그 물에 닿은 말이 쓰러진다거나, 물을 함부로 빼낸 자가 앙갚음을 당해 말을 잃는다는 이야기가 각지에 전한다. 목욕물을 언제 빼는가, 누가 쓰는가 — 그러한 생활의 법도에 대한 경계가 효스베의 재앙이라는 형태로 이야기된 것이다. 밭에서는 가지를 즐겨 망친다 하여, 첫 가지를 바쳐 비위를 맞추었다. 「효—효—」 하는 새 같은 울음소리는 그 이름의 유래라고도 한다. 에도 시대의 『百怪図巻』과 『画図百鬼夜行』에 그려진, 털북숭이에 대머리인 우스꽝스러운 모습은 두려움보다는 오히려 사람의 생활 바로 곁에 깃든 친근한 요괴로서의 효스베를 잘 전해 준다.

이어 읽기 ── 다른 지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