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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akusa 海とキリシタンと峠の島。天草の妖怪

草隅越の油すまし、山と川を行き来する山童、艫綱を伝う磯女

海とキリシタンと峠の島。
天草の妖怪

Amakusa · あまくさ

다른 이름: 天草諸島 / 天草下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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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草は、海に抱かれた島である。熊本県の南西、有明海と八代海(不知火海)、そして西の天草灘(東シナ海)に三方を囲まれた天草下島・上島を中心とする島々で、下島は五百七十平方キロを超える熊本県最大の島だ。山地が島の背骨を成し、海食崖が西岸を削り、入り組んだ湾と峠が暮らしを分かつ ── ここでは平地は乏しく、人は海で魚を獲り、峠を越えて村と村を結んできた。海と峠、その二つの道のあわいに、天草の怪は棲んでいる。

天草を語るとき、妖怪より先に思い起こされるのは、海を渡ってきた信仰の記憶だろう。十六世紀なかば、この島にキリスト教が伝わり、漁村にまで根を張った。やがて禁教の世が来て、寛永十四年(一六三七年)には島原と天草の領民が蜂起する ── 島原天草一揆である。その記憶は史実として島に深く刻まれている。だが、それとは別の層に、峠の声や磯辺の女、山と川を行き来する童といった、もっと古く土着の怪異の語りがある。一揆や殉教は歴史であり、妖怪はそれとは異なる民俗の層に属する ── この記事では、その二つを混ぜずに、しかし同じ島の想像力としてたずねていきたい。父なる熊本県の妖怪事典が火の国全体の妖怪文化を束ねるなら、ここでは天草という島々に固有の怪に焦点をしぼる。

海とキリシタンと峠の島 ── 天草という風土

天草の地形は、そのまま妖怪の棲みかの地図になる。島の大半は標高二百から四百メートルの小起伏の山地で占められ、西海岸には五十メートルを超える海食崖が連なる。妙見浦のような景勝の断崖は、白亜紀の砂岩と頁岩が海底で堆積し隆起してできたものだ。下島の南、牛深のあたりでは魚貫湾・久玉湾・深海湾といった大小の湾が複雑に入り組み、八代海側にも天草灘側にも小島が点在する。平地の乏しいこの島で、人々は海に出て魚を獲り、椿や山茶花の実から油を搾り、村と村のあいだの峠を歩いて越えた。

この風土が二種類の怪を生んだ。ひとつは海辺の怪 ── 磯に立つ女や、沖を行く船にまつわる影。いまひとつは峠と山の怪 ── 人気のない山道に立つ声や、川と山を行き来する童である。天草の妖怪は、ほとんどがこの「海」か「峠・山」のどちらかに属している。漁村と峠の島という暮らしの形が、そのまま怪異の分布を決めているのだ。

そしてこの島には、もうひとつ別の層の記憶がある。海を渡ってきた信仰、すなわちキリシタンの歴史である。これは妖怪とは異なる史実の層だが、天草という島を語るうえで切り離せない。まずは島の暮らしに最も近い峠の怪から、順に島をめぐっていこう。

峠に立つ油すまし ── 草隅越の声

天草を代表する妖怪を一体だけ挙げるなら、それは油すましだろう。いまや芋のような頭に大きな目、蓑をまとった姿で全国に知られるが、その出自はまぎれもなく天草の峠道にある。

아부라스마시

あぶらすまし

아부라스마시(油すまし)는 히고 아마쿠사의 깊은 산속 고갯길에 나타났다고 하는 요괴이다. 도롱이를 두르고, 감자 같은 머리에 큰 눈을 가진 체구가 작은 모습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지만, 본래의 전승에서는 확실한 모습을 가지지 않고 소리나 기척으로 나타나는 괴이였다. 민속학자 하마다 류이치의 『아마쿠사도 민속지』(1932)가 채록한, 스모토마치 가와치와 혼도 시모우라 사이에 가로놓인 구사즈미고에(草隅越)의 이야기로 잘 알려져 있다. 이름인 '스마시'는 아마쿠사 방언으로 기름을 '짜다(搾る)'라는 뜻이라고 하며, 동백이나 애기동백 열매에서 귀중한 기름을 짰던 지역의 풍토를 배경으로 한 요괴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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油すましの伝承を書きとめたのは、天草出身の民俗学者・濱田隆一である。濱田の『天草島民俗誌』(一九三二年)は、栖本町河内と本渡下浦のあいだに横たわる草隅越(くさずみごえ)という峠の話を伝える。孫を連れて峠を通りかかった老婆が、昔をしのんで「ここにゃむかし、油びんさげたとんが出よらいたちゅぞ(ここには昔、油瓶を提げたものが出たそうだよ)」と語ると、すかさず「今もー出るーぞー」と応える声があった、というのである。話はこれだけだ。だが、姿を見せず、噂を口にした者の言葉尻をとらえて現れるという、この素朴な不気味さこそ油すましの本来の姿であった。

名の「すまし」は、天草の方言で油を「絞(すま)す」── すなわち搾(しぼ)ることを指すといわれる。椿や山茶花の実から貴重な油を搾った天草の土地柄が、この妖怪の名の背景にある。海の島でありながら、油すましは海の怪ではなく、油という山の恵みと峠の暮らしから生まれた在地の怪なのだ。

この天草の小さな伝承が全国に知られたのは、柳田國男が雑誌『民間伝承』連載の「妖怪名彙」に書きとめたからであり、決定的だったのは水木しげるが『ゲゲゲの鬼太郎』に蓑笠姿の油すましを登場させたことだった。芋頭に大目玉という今日のイメージは、この水木の絵から定着したものである。もとの天草の伝承には、確たる姿の描写はなかったことを思い出しておきたい。草隅越の峠道には、頭部を欠いた地蔵に似た石像が「油すましの墓」として残り、近くの墓石には天明・文政の年号が刻まれる。妖怪ブームのなか二〇〇四年ごろに再発見され、いまは天草市の史跡として整備されている[2]。一体の妖怪が、峠の声から国民的キャラクターへと旅をした稀有な例である。

山と川を行き来する山童

油すましが峠の声なら、山そのものに棲むのが山童(やまわろ)である。天草の山にも、九州山地に広く分布するこの怪が伝わってきた。

山童は、河童が秋に山へ入った姿だと語られることが多い。子どもほどの背丈に長い脚、全身に細かな毛を生やし、人の言葉を解すという。『和漢三才図会』は、赤褐色の長い髪に丸顔、犬のように尖った耳をもち、鼻の上にただ一つの目をもつ姿を記す。山仕事をよく手伝う一方で相撲を好み、牛馬に悪戯をするともいう。熊本では、大工の使う墨壺(すみつぼ)の墨線を嫌い、それを引いておけば近づかないと伝えられた。

天草を含む熊本一円で語られる山童の核心は、季節をめぐる移動にある。河童は秋の彼岸に山へ入って山童となり、春の彼岸にふたたび川へ下りて河童に戻る── 柳田國男はこれを「河童の渡り」と呼んで書きとめた[4]。川の神と山の神とが季節ごとに姿を変えるという、古い農耕信仰の名残だと考えられている。山に入った童は樵(きこり)や炭焼きの仕事を助け、礼に酒や握り飯を求めるが、約束には厳しく、先払いすると仕事をせずに食い逃げし、約束を違えると激しく怒るとされた。呼び名は土地によってやまんぼ、山ん太郎、セコなどと分かれ、ほかの山の小さな妖怪と重なり合っている。

この山と川を往復する性質は、天草が「海の島」であると同時に「山と川の島」でもあることを思い出させる。河童の本場である球磨川流域の河童王国とは水系こそ異なるが、河童が秋に山へ移るという同じ信仰の型が、海に囲まれた天草の山にも生きていた。なお河童そのものの大伝承 ── 九千坊や河童渡来の物語は、球磨川と八代を舞台とする父県・熊本の領分であり、ここでは深入りせず、天草の山に立つ山童の姿に焦点を置く。

磯に立つ女 ── 天草の磯女

海の島・天草が生んだ最も天草らしい怪は、やはり海辺に立つ女、磯女(いそおんな)であろう。

이소온나

iso-onna

이소온나는 아마쿠사·시마바라·쓰시마·가카라시마를 비롯한 규슈 북서부 연안에 나타나는 여자 바다 요괴다. 모래사장과 갯바위, 정박한 배에 다가가 긴 머리카락으로 사람을 휘감아 피를 마신다고 한다. 상반신은 아름다운 여자와 비슷하지만 하반신은 희미하게 사라지거나 뱀처럼 이어진다고 하며, 뒤에서 보면 젖은 바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지역에 따라 이소조시·누레조시·아마·우미히메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바다가 잔잔할 때 모습을 드러내고, 해난 사망자의 원한과 연결되는 곳도 있다. 같은 해안의 위험한 존재인 우시오니와 함께 나타난다는 전승도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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磯女は、九州北西部の沿岸 ── 天草、島原、対馬、加唐島などに出没する女の海怪である。砂浜や磯辺、停泊中の舟に近づき、長い髪で人にまとわりついて血を吸うと伝えられる。上半身は美しい女に近いが、下半身は朧ろであるとも蛇状ともいい、背後から見れば岩にしか見えないとも語られる。凪の折に姿を見せ、水死者の怨霊と結び付けられる地域もある。

天草の磯女には、固有の語りがある。天草では夜、艫綱(ともづな)を伝って船に忍び込み、眠る者に髪を被せて害するため、見知らぬ港では艫綱を取らず錨のみを下ろす習いがあったという。船を岸に繋ぎとめるための綱そのものが、女の侵入路になる ── これは漁村の暮らしの細部から立ちのぼった、いかにも天草らしい怪異の像である。隣接する鹿児島の長島や、海をへだてた長崎の島原半島でも磯女は語られ、島原では苫(とま)の茅を三本着物に乗せて寝れば避けられるとされた。同じ女の海怪が、天草では艫綱の吸血として、島原では茅の呪いとして、それぞれの漁村の作法とともに語り継がれてきたのである。

磯女は、海坊主や船幽霊のように沖の舟を直接襲う怪とは異なる。磯辺や停泊地という、陸と海の境に立つところに本質がある。北九州には磯女を蟹の化身とする説もあり、小値賀では水死者の霊とする説もあるが、天草に伝わったのは、艫綱を伝い髪と血をめぐる女の像であった。海食崖と入り江がきざむ天草の海岸線は、まさにこの「陸と海の境」に満ちた地形であり、磯女がこの島に色濃く根づいたのも偶然ではないだろう。

一揆と殉教の記憶 ── 妖怪とは別の、
島の歴史層

ここまでたずねてきた峠の声や磯辺の女は、土着の民俗が育てた怪である。だが天草という島の名を全国に知らしめたのは、妖怪ではなく一つの史実 ── 島原天草一揆であった。これは怪異の語りとは層を異にする歴史であり、その区別をはっきりさせておきたい。

天草と対岸の島原は、十六世紀なかばからキリスト教が深く根を張った土地である。一五六九年にイエズス会のアルメイダが布教を始めると、信仰は漁村にまで広まった。やがて徳川の世に禁教が厳しくなり、それに重税と凶作が重なって、寛永十四年(一六三七年)、島原と天草の領民が蜂起する。一揆軍は当時十六歳の青年・天草四郎(益田四郎時貞)を総大将にいただき、最終的に約二万六千の人々が島原半島の原城に籠城した。翌寛永十五年(一六三八年)、幕府軍の総攻撃により原城は陥落し、籠城した人々はほぼ皆殺しとなった。これは日本史上最大規模の一揆として知られる、まぎれもない史実である。

一揆ののち、天草のキリシタンは絶えたと思われていた。だが百六十年あまりを経た時代、天草下島西部の大江や崎津で、ひそかに信仰を守り継いできた潜伏キリシタンの存在が明らかになる。崎津の集落では、漁村ならではの形で信仰が生きていた ── 貝殻の内側の模様を聖母マリアに見立て、漁の神を「デウス」になぞらえるなど、海の暮らしに根ざした祈りの形であった。明治の禁教解除ののち、南フランスから来島したガルニエ神父が私財を投じて大江天主堂を建て、天草で四十九年を村人とともに生きた。こうした天草の潜伏キリシタンの記憶は、二〇一八年、「長崎と天草地方の潜伏キリシタン関連遺産」の構成資産として崎津集落が世界文化遺産に登録されたことで、あらためて世界に知られることとなった。

くりかえすが、これらの一揆や殉教は史実の層に属し、油すましや磯女といった妖怪は民俗の層に属する。両者を安易に結びつけ、「一揆の死者が妖怪になった」といった因果を語るのは、史実への敬意を欠く。だが同じ一つの島が、海を渡ってきた信仰と峠に立つ声、殉教の記憶と磯辺の女を、それぞれ別の層として同時に抱えてきたこと ── そこにこそ、天草という島の想像力の厚みがある。

港町の唄と、
語り継がれる島

天草の海の文化は、暗い怪異だけではない。下島南端の牛深には、江戸時代から伝わる陽気な民謡「牛深ハイヤ節」がある。海上交通の要であった牛深港には、大阪から鹿児島を往復する帆船が風待ち・時化待ちのために寄港した。その船乗りたちをもてなす酒宴の席で牛深の女たちが唄ったのがハイヤ節の始まりだと伝わる。「牛深三度行きゃ三度裸、鍋釜売っても酒盛りゃしてこい」── そう唄って船乗りたちは港々へこの節を運び、やがて全国四十か所以上のハイヤ系民謡のルーツとなった。磯女が忍び込む夜の港と、ハイヤ節が響く昼の港 ── 同じ牛深の海が、怪と祭の両方を抱いている。

海と峠に囲まれたこの島で、人々は魚を獲り、油を搾り、峠を越え、海を渡る信仰を守り、そして怪を語ってきた。峠に立つ油すまし、山と川を行き来する山童、艫綱を伝う磯女 ── 天草の妖怪は、いずれも島の暮らしの細部から生まれている。一揆と殉教という史実の重みを別の層に抱えながら、土着の怪異もまた、いまも栖本の河童ロマン館や草隅越の史跡、郷土の語りのなかで生き続けている。海とキリシタンと峠の島・天草は、歴史と民俗の幾層もの記憶を、波の音とともに今日に伝えているのである。父なる火の国の妖怪文化の全体像は、熊本県の妖怪事典をあわせて読まれたい。

Amakusa의 모든 요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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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소온나

    이소온나

    에픽

    iso-onna

    고물 계류줄을 타고 오르는 이소온나

    해안의 여자 요괴아마쿠사·시마바라·가카라시마·나가시마를 중심으로 한 규슈 북서부 연안. 고토 열도·쓰시마에서 가가 하시타테까지 관련 명칭이 전한다

    이소온나는 규슈 북서부 바닷가에 전하는 여자 해괴다. 허리 위는 바닷물에 젖은 긴 검은 머리를 늘어뜨린 젊은 여자처럼 보인다. 아래쪽은 안개와 파도 속에 풀려 발자국도 남기지 않거나, 길게 뱀의 몸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뒤에서 보면 젖은 바위로 착각할 수도 있다. 나가사키 미나미시마바라에서는 먼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다가 말을 거는 사람에게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고, 머리카락으로 붙잡아 피를 마신다고 전한다. 가장 두려운 습성은 정박한 배에 올라오는 것이다. 구마모토 아마쿠사에서는 어두워진 뒤 고물 계류줄을 타고 올라와 잠든 사람의 얼굴을 머리로 덮는다. 낯선 항구에서 밤을 보내는 배는 그래서 닻만 내리고 고물은 육지에 묶지 않았다. 배와 육지를 이어 주는 줄이 그대로 이소온나의 통로가 되는 셈이다. 지역마다 피하는 방법도 남아 있다. 시마바라반도에서는 이엉에서 뽑은 풀줄기 세 가닥을 옷 위에 올려놓고 자면 이소온나의 머리카락이 달라붙지 않는다고 했다. 야나기타 구니오가 감수한 『종합 일본 민속 어휘』도 규슈 연안의 이 여자 해괴를 이소온나·이소뇨보 등의 이름으로 기록했다. 이소온나는 먼바다에서 배를 공격하는 우미보즈나 후나유레이와 성격이 다르다. 갯바위와 정박지, 육지와 바다가 닿는 곳에 나타난다는 점이 이소온나의 가장 뚜렷한 특징이다. 많은 지역에서 물에 빠져 죽은 여자, 또는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다 죽은 여자의 한과 연결한다. 서일본에서는 우시오니와 짝을 이루어, 우시오니가 덮치기 전에 먼저 다가가 상대의 경계를 풀어 놓는다고도 한다. 머리카락과 피, 그리고 해안의 경계가 이소온나를 이루는 핵심이다. 고물줄을 타고 배에 오르는 이야기와 줄을 매지 않는 정박법, 이엉 풀 세 가닥을 두는 관습은 밤바다를 두려워하면서도 그 곁에서 살아가야 했던 어촌의 지혜를 함께 전한다.

  • 야마와로

    야마와로

    희귀

    やまわろ

    산과 강을 오가는 규슈의 산 아이·야마와로

    산과 들의 괴이규슈 산간부 (치쿠젠·고토 열도·히고·휴가) / 고토 열도

    야마와로는 규슈 산지에 고유한 산의 괴이이면서도, 갓파와 일신이상(一身二相)을 이룬다는 점에 가장 큰 독자성을 지닌다. 테라지마 료안이 『화한삼재도회』에서 치쿠젠과 고토에 야마와로가 산다고 기록한 것은, 근세 지식인이 서국 산간의 이형 전승을 박물학의 틀로 끌어들인 증거이며, 고토 열도가 일찍부터 야마와로 전승의 땅으로 지목되었음을 보여준다. 왕래 신앙에서는 춘추 피안을 기점으로 강의 갓파와 산의 야마와로가 교체된다고 여겨지는데, 이는 농경력·수신 신앙과 산신 신앙이 하나의 존재 상으로 결정된 것이라 생각된다. 나무꾼에 대한 조력과 품삯인 주먹밥, 씨름을 좋아함, 소금이나 게를 좋아하는 식성, 개 귀·붉은 머리·외눈이라는 이형은 모두 화한삼재도회나 규슈 각지의 구전에 뒷받침된다. 바다와 산으로 둘러싸인 고토의 삶 속에서 야마와로는 갓파(가타로)와 떼려야 뗄 수 없게 이야기되며, 물가와 산지를 관통하는 토지의 영성을 체현하는 존재가 되었다.

  • 아부라스마시

    아부라스마시

    희귀

    あぶらすまし

    구사즈미고에의 목소리 ── 아부라스마시

    산야의 괴이구사즈미고에 (현 구마모토현 아마쿠사시 스모토마치 가와치) / 아마쿠사 시모시마

    아부라스마시의 핵심은 '모습'이 아니라 '응답'에 있다. 고개에서 누군가 소문을 입 밖으로 낸 순간에 "지금도 나온다"고 대받아친다 ──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소환이 되는, 말에 씌는 요괴이다. 도롱이와 삿갓, 감자 머리의 도상은 미즈키 시게루를 거쳐 널리 퍼진 후세의 조형으로, 아마쿠사의 원형 전승은 어디까지나 소리와 기척뿐이었다. 배경에는 아마쿠사에서 동백과 애기동백 열매로 '가타시 기름(片子油)'을 짰던 생활이 있다. 부족한 기름을 훔치거나 낭비한 자에 대한 경고가 고갯길의 어둠 속에 기름병을 든 그림자로 결정되었다고 보는 설이 유력하며, 아부라보, 아부라보즈 등 각지의 기름에 얽힌 괴이와 계보를 같이한다. 스모토의 구사즈미고에에 남아 있는 무명 석상이 '무덤'과 결부된 것은 근대의 재해석이지만, 지역의 기억이 사물에 깃든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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