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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 Omine 鬼が護法に転じる修験の山。大峰山の妖怪事典

大峰前鬼坊・天狗・小雨坊。役行者が鬼神を従えた吉野〜熊野の霊地

鬼が護法に転じる修験の山。
大峰山の妖怪事典

Mt. Omine · おおみねさん

다른 이름: 大峯山 / 山上ヶ岳 / 前鬼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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奈良県の南、吉野から熊野へと山並みが幾重にも連なる大峰山脈は、日本の山岳信仰がもっとも濃く凝った場所である。なかでも標高一七一九メートルの山上ヶ岳(さんじょうがたけ)は、修験道の祖・役行者(えんのぎょうじゃ)が開いたと伝わる根本の霊地で、いまもなお女人禁制を守り続ける数少ない山として知られる。ここで生まれた妖怪たちには、一本の太い筋が通っている ── 鬼が、敵から護法へと転じるという筋である。

人を喰らっていた鬼が修行者を守る天狗となり、その天狗が雨夜の行場に僧形の怪を呼ぶ。役行者が孔雀明王(くじゃくみょうおう)の呪法で鬼神を意のままに操ったという伝説は、ただの怪力譚ではない。山の荒ぶる力を調伏し、味方へと組み替えてゆく修験道そのものの世界観が、そこには畳み込まれている。大峰の怪異は、都の町に出る鬼とは位相が違う。それは、都が霊力を求めて頼った聖なる深山の住人なのだ。本記事では、この山を象徴する大峰前鬼坊天狗小雨坊の三体を軸に、史実と伝説を慎重に分けながら、鬼が護法へと転じる山の物語をたどる。なお、大峰山を含む奈良全体の妖怪文化については奈良県の妖怪事典も併せて読まれたい。

役行者が開いた修験の山

大峰山は、ひとつの峰の名ではない。吉野の金峯山(きんぷせん)から山上ヶ岳・大普賢岳・弥山(みせん)・八経ヶ岳(はっきょうがたけ、近畿最高峰)を経て、はるか熊野へと続く大峰山脈の総称である。この険しい尾根全体が、千三百年にわたって修行の道場とされてきた[1]

開祖と伝わるのは、飛鳥時代の呪術者・役行者、本名を役小角(えんのおづの)という。大和国葛上郡の茅原(ちはら、現在の御所市)に生まれ、賀茂氏の出とされる。彼が金峯山で千日の修行の末に金剛蔵王権現(こんごうざおうごんげん)を感得し、その忿怒の姿を山桜に刻んで吉野に祀ったことが、修験道の根本道場・金峯山寺(きんぷせんじ)の開創と伝えられる[2]。蔵王権現は、釈迦・千手観音・弥勒という三尊が、荒ぶる山の力に応じて忿怒の相に変じた姿とされる ── おだやかな仏が、山においては怒りの形をとる。この発想こそ、大峰の妖怪文化を貫く「転じる」という主題の、いわば神格版である。

ただし、ここで史実と伝説をきちんと分けておきたい。役行者について語る唯一の同時代正史は『続日本紀(しょくにほんぎ)』で、文武天皇三年(六九九年)五月、「役君小角を伊豆嶋に流す」と記す。同書によれば、葛城山に住んで呪術を能くした小角は、弟子の韓国連広足(からくにのむらじひろたり)がその能力を妬んで「人を妖惑する」と讒言したため、遠流に処されたという。つまり史実として確かなのは、葛城に呪術者がいて、讒言により伊豆へ流された、という事実だけである。鬼神を従えたという超人的な逸話は、後世の説話が育てた伝説の層に属する。

その伝説層を代表するのが『日本霊異記(にほんりょういき)』である。九世紀前半に成った日本最古の仏教説話集は、役優婆塞(えんのうばそく)が孔雀明王の呪法を修めて鬼神を自在に使役し、葛城と金峯のあいだに橋を架けさせようとしたと伝える。鬼神が苦役を嫌って働かなかったため、葛城の神・一言主(ひとことぬし)が「役行者は謀反を企てている」と天皇に讒言し、行者は伊豆へ流された ── という筋立てになっている。正史では讒言者は人間の弟子だが、説話ではそれが神へとすり替わる。事実が信仰のなかで磨かれ、神話的な対立構造へと組み替えられてゆく過程が、ここにはっきりと見てとれる。大宝元年(七〇一年)に赦免されたのち、行者は母を連れて天上へ飛び去ったとも伝わる。

鬼が護法となる ── 前鬼後鬼と前鬼の里

役行者が従えた鬼神のなかで、もっとも名高いのが前鬼(ぜんき)・後鬼(ごき)の夫婦である。伝えによれば、この二鬼はもともと生駒の山中に棲み、里の人の子を喰らう恐ろしい鬼であった。役行者は不動明王の秘法を用いて彼らの末子を岩窟に隠し、わが子を失う嘆きを通して「他人の子を奪う親の悲しみ」を悟らせた。改心した二鬼は行者に従い、その身辺を守り、山々を巡る修行に付き従う護法(ごほう)へと転じたという。

오미네 젠키보

おおみねぜんきぼう

오미네 젠키보(大峰前鬼坊)는 야마토국 오미네산에 자리한 대천구로, 8대 천구의 하나로 꼽힌다. 무로마치 요쿄쿠 『구라마 텐구』에 '오미네의 젠키 일당'으로 읊어진다. 그 이름은 수험도의 시조 엔노 교자(엔노 오즈누)를 따른 귀신 젠키(前鬼)에서 비롯한다. 엔노 교자는 현존 최고(最古)의 설화집 『니혼료이키』에 귀신을 부려 하늘을 난 주험자로 그려진다. 젠키는 본래 사람의 아이를 채가는 귀신이었으나, 엔노 교자에게 붙잡혀 마음을 고쳐, 고키(後鬼)와 함께 그 종자가 되었다. 귀신이 고행을 거쳐 대천구로 전화한 예로서, 젠키보는 수험도의 중심지 오미네에 자리해, 48천구의 하나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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この前鬼が、のちに天狗へと昇華した姿が大峰前鬼坊である。諸国の天狗を列挙する『天狗経(てんぐきょう)』は、大峰前鬼坊を四十八天狗の一に数え、また那智滝本前鬼坊(なちたきもとぜんきぼう)の名でも呼んで、愛宕山太郎坊・鞍馬山僧正坊らと並ぶ八大天狗の一に挙げる。人を喰らう鬼が、改心して護法となり、ついには山を守護する大天狗へと位を高めてゆく ── 敵から守護者への転生こそ、大峰前鬼坊という存在の核心であり、この山の宗教観を一身に体現している。

特筆すべきは、この物語が単なる伝承にとどまらず、生きた習俗として千三百年も続いてきたことだ。前鬼の子孫は、大峰山脈の東麓・下北山村の「前鬼(ぜんき)」と呼ばれる谷に住みつき、大峯奥駈道をゆく修行者の宿坊を代々営んできた。前鬼の五人の子 ── 五鬼助(ごきじょ)・五鬼継(ごきつぎ)・五鬼上(ごきじょう)・五鬼童(ごきどう)・五鬼熊(ごきくま)── がそれぞれ宿坊を構え、最盛期には五つの坊が立ち並んでいたが、明治五年の修験道廃止令を経て修行者が減り、住む者も山を下りていった。いまでは五鬼助家の小仲坊(おなかぼう)ただ一軒だけが残り、六十一代目・五鬼助義之(ごきじょよしゆき)氏が法灯を守り続けている。人を喰らった鬼が改心して聖地の門番となり、その血を六十一代・千三百年余りも伝える ── これほど鮮やかに「怖れの対象が、そのまま信仰の担い手へと変わってゆく」さまを示す例は、全国を見渡してもそうはない。鬼の子孫を名乗ることが、この谷では誇りなのである。

山に棲む天狗

大峰の宗教世界では、天狗もまた、ただ鼻の高い慢心の妖怪ではない。山伏の験力、風と飛行の超能力、仏道から外れた者の堕した姿、そして山を守る護法 ── それらが幾重にも折り重なった、両義的な存在として立ちあらわれる。大天狗はしばしば、その山の護法天狗として祀られた。大峰前鬼坊が八大天狗の一に数えられるのも、まさにこの「霊山には必ず守護の大天狗が坐す」という信仰の現れである。

天狗が棲むと信じられたのは、人跡まれな岩屋や絶壁である。大峰の深部には、修験者が籠もって法力を練る笙の窟(しょうのいわや)のような行場が点在し、江戸期の遊行僧で稀代の仏師でもあった円空(えんくう)も、ここで厳しい修行を積んだと伝わる。岩を穿った窟、断崖の鎖場、そうした人間を拒む険所にこそ、天狗は棲むとされた。

修行そのものが、人を超越した存在へと近づく擬死の体験でもあった。山上ヶ岳の名高い行場「西の覗き(にしののぞき)」では、行者が両足を縄で支えられ、絶壁から上半身を逆さに突き出される。眼下に広がるのは死そのものの深淵だ。そこで先達から「親を大切にするか」「悪事を働かぬか」と問われ、戒めを誓わされる。鎖を頼りに岩壁を攀じる鐘掛岩(かねかけいわ)もまた、命がけの行である。死と隣り合わせの行を通して山の霊力に近づこうとする者にとって、天狗は畏怖と憧憬がないまぜになった、半ば師のごとき存在だった。山を究めた修験者が、死後に天狗になるという伝承が各地に残るのも、この感覚と地続きである。大峰の天狗は、町の噂が生んだ妖怪ではなく、命を懸けて山に入る者たちの宗教的体験そのものから立ちのぼった存在なのだ。

雨の夜の小雨坊

大峰の山岳信仰が生んだ怪のなかで、もっとも地名がはっきりと刻まれているのが小雨坊である。江戸中期の絵師・鳥山石燕(とりやませきえん)は、妖怪画集『今昔百鬼拾遺(こんじゃくひゃっきしゅうい)』の雨之巻に、この僧形の怪を描いた。添えられた解説文はごく短い ──「小雨坊は雨そぼふる夜、大みねかつらぎの山中に徘徊して斎料(ときりょう)をこふとなん」。雨のしとしと降る夜、大峰と葛城の山中をさまよい、僧侶への布施である斎料を乞う、というのである。

소우우보우

Kosamebō

에도 시대 화가 토리야마 세키엔의 『금석백귀습유』에 보이는 비 오는 밤의 승려 형상의 요괴. 세키엔은 “비 내리는 밤, 오미네·가쓰라기의 산중을 배회하며 공양을 구한다”고 주석하여, 수행의 영산에서 우야(雨夜)에 나타나 보시를 청하는 존재로 그린다. 도상 외의 세부 성격이나 기원은 불분명하며, 특정 지역의 구전과 직접 연결되는 근거는 박하다. 후대 해설에서 걸식승 이미지가 강조되지만, 근거 문헌은 제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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この一文の値打ちは、「大みね」「かづらき」という具体的な山名が、はっきりと書きこまれている点にある。多くの妖怪が「とある山」「深い森」といった漠然たる舞台で語られるなかで、小雨坊は大峰・葛城という修験道の二大霊場を名指しで棲み処とする。つまりこの怪は、修験の山という土地の文脈を抜きには成立しない。雨に煙る大峰の山道で、ふいに僧の姿があらわれ、施しを乞う ── そこには、奥駈道をゆく修行者が雨夜に出会ったかもしれぬ、行き倒れの行者や落魄した山伏の影が重なって見える。聖なる山を歩く者は、聖性の裏側にひそむ零落や死もまた、すぐ隣に感じていたのだろう。

小雨坊が大峰と葛城の双方に出るとされるのも示唆的だ。葛城は役行者が金峯とのあいだに橋を架けようとした、もう一方の修験の聖地である。雨夜の僧形の怪は、この二つの霊場を結ぶ修験のネットワークの上を、いまも徘徊しているのである。

奥駈道と女人禁制 ── 山が守り続ける境界

大峰の妖怪を語るうえで、その舞台となる二つの「境界」に触れておかねばならない。大峯奥駈道(おおみねおくがけみち)と、女人禁制である。

大峯奥駈道は、吉野の金峯山寺から山上ヶ岳・弥山を越え、熊野本宮大社へと至る、全長およそ八十キロにおよぶ峻険な修行の道だ[1]。この道には「靡(なびき)」と呼ばれる行所が点在し、伝統的に七十五靡(しちじゅうごなびき)と数えられる。修行者は靡ごとに経を唱え、礼拝を重ねながら、何日もかけて山また山を踏破する。吉野(金剛界)から熊野(胎蔵界)へと貫くこの道は、二つの曼荼羅(まんだら)のあいだを歩いて渡る、巨大な聖地の縦走路なのである。前鬼の里は、この奥駈道のちょうど中ほど、行者たちが体力の限界に近づくあたりに位置し、だからこそ千三百年にわたって宿坊が必要とされ続けた。鬼の子孫が守る一軒の宿は、修行者の命綱だったのだ。

そして山上ヶ岳は、いまもなお女人禁制を守る。登山口には「女人結界門」が立ち、女性はそこから先へ立ち入ることができない。男女平等の現代にあって議論を呼び続ける習俗だが、これもまた、大峰という山が「境界」を生命線としてきた歴史の延長線上にある。聖と俗、生と死、彼岸と此岸 ── 山伏たちは、無数の境界を越えることで法力を得てきた。二〇〇四年、大峰山を含む紀伊山地の霊場と参詣道はユネスコの世界文化遺産に登録された。

こうして大峰山を歩くと、この山の妖怪たちが、いずれも「境界を越える」という主題のもとに集まっていることがわかる。鬼は敵と味方の境を越えて護法となり、天狗は人と超越者の境にまたがって行場に坐し、小雨坊は雨の夜に聖性と零落の境をさまよう。大峰山は、ただ怪異の出る場所ではない。荒ぶる力を畏れ、調伏し、味方へと組み替えてきた、千三百年の祈りの結晶なのである。元興寺の鬼や飛鳥の四神など、奈良全体の怪異の広がりについては奈良県の妖怪事典に詳しい。

Mt. Omine의 모든 요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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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미네 젠키보

    오미네 젠키보

    전설

    おおみねぜんきぼう

    귀신에서 전화한 호법의 천구·오미네 젠키보

    산야의 괴이야마토국·오미네산(나라현 요시노군)

    오미네 젠키보의 본질은 '귀신이 천구로 전화한다'는 전생의 구조에 있다. 그것은 수험도의 마음을 한 몸에 체현한 이야기다. 그 원류는 엔노 교자와 귀신의 오래된 설화에 있다. 엔노 오즈누를 그리는 현존 최고의 문헌은 『니혼료이키』(헤이안 초기)로, 귀신을 부려 하늘을 나는 주험자로 그린다. 『곤자쿠 모노가타리슈』 권11은 엔노 교자가 귀신에게 산의 다리를 놓게 하는 설화를 실어, 귀신을 거느리는 엔노 교자상의 정착을 보여 준다. 젠키는 본래 사람의 아이를 채가는 거친 귀신이었다. 엔노 교자는 후도 묘오의 비법으로 이를 붙잡아, 마음을 고쳐 종자로 삼았다. 일설에, 엔노 교자가 젠키 부부의 막내를 쇠솥에 숨겨, 제 자식을 빼앗기는 슬픔을 통해 남의 아이를 채가는 죄를 깨우쳤다고도 전한다. 마음을 고친 젠키·고키는 호법의 귀신이 되어 엔노 교자의 수행을 떠받쳤다. 이 젠키가 오랜 고행 끝에 대천구로 승화한 것이 오미네 젠키보다. 거친 존재가 불법을 지키는 자로 전화하는 이 줄거리는, 사람을 채가는 천구라는 두려움과 사람을 지키는 천구라는 신앙이 본디 한 뿌리임을 가장 분명히 보여 준다. 젠키보가 자리한 오미네는 수험도의 성지다. 엔노 교자를 개조로 하는 오미네의 수행처, 세계유산에도 등록된 오미네 오쿠가케미치는, 지금도 행자가 목숨을 걸고 밟아 닦는 험로이며, 젠키보는 그 수호자로 관념되었다. 무로마치 요쿄쿠 『구라마 텐구』에 '오미네의 젠키 일당'으로 읊어지고, 『덴구쿄』의 48천구에 든다('나치 다키모토 젠키보'로 하는 자료도 있다). 그리고 이 전승에서 가장 무거운 한 점은, 젠키의 혈맥이 당대에 살아 있다고 전하는 것이다. 젠키·고키의 다섯 자녀가 운영한 다섯 슈쿠보 가운데, 고키조 가문의 오나카보만이 지금도 남아, 당대의 고키조 요시유키가 오미네 오쿠가케미치의 행자를 계속 맞이하고 있다. 이 계보는 고문서에서 명문 전거를 찾기 어렵고, 현존하는 슈쿠보의 구비로 전하는 것이지만, 마음을 고친 귀신의 후예가 일천삼백 년을 넘어 수험의 길을 지킨다는 이 현실의 연속이, 오미네 젠키보를 한낱 전설이 아니라 살아 있는 신앙의 상징으로 만든다. 천구 연구의 지키리 고사이도 이를 여러 산의 대천구 체계에 두었다.

  • 덴구

    덴구

    전설

    てんぐ

    덴구란 무엇인가——유형과 도상의 총론

    산야의 괴이교토부·시가현·와카야마현 (각 영산의 대덴구 여러 좌)

    이 판은 특정 영산의 한 좌가 아니라, “덴구란 무엇인가”를 도상과 유형의 역사에서 철저히 풀어내는 총론이다. 각 좌의 개별 전승은 저마다 대덴구의 페이지에 넘긴다. 덴구의 모습은 한결같지 않다. 첫째 유형은 하나타카 덴구——붉은 얼굴에 높은 코, 야마부시의 도킨과 스즈카케를 두르고, 깃부채를 손에 외이 굽 높은 게다를 신는다. 둘째는 가라스 덴구로, 까마귀의 부리와 날개를 지니고 검이나 금강장을 쥔다. 셋째는 고노하 덴구·곳파 덴구라 불리는 하위 덴구로, 약하고 수가 많은 권속으로 여겨진다. 이것들은 고정된 분류라기보다, 시대와 지역에 따른 덴구 상의 폭을 비춘다. 도상은 시대와 함께 변천했다. 헤이안기의 덴구는 먼저 솔개 같은 새로 관념되었고, 가라스 덴구의 상은 그 자취를 간직한다. 긴 코가 두드러지는 것은 가마쿠라 말 이후로, 『제가이보 그림두루마리』에는 사람으로 둔갑했던 덴구가 새 모습으로 돌아갈 때 코가 길어지는 장면이 그려진다. 하나타카의 기원에 대해서는, 기가쿠 가면 가운데 코 높은 지도(治道) 가면에서 유래한다 하고 가라스 덴구를 가루라(가루다) 가면에 잇는 학설이 있으며, 긴 코를 새 부리의 도상적 잔존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어느 것도 정설이라 하기 어렵다. 『일본서기』에 코 길이 일곱 척(七咫)이라 그려진 사루타히코 신과 겹쳐져, 제례에서 사루타히코 역에 덴구 가면을 쓰는 풍습도 생겨났다. 덴구의 양의성은 불교 덴구도의 관념에 뿌리내린다. 불도를 배우기에 지옥에 떨어지지 않고, 사법을 다루기에 극락에도 가지 못하는 중간의 경지——거기에 떨어지는 것은 교만한 승려로 여겨졌다. 『덴구조시』는 이 관념을 칠대사 승려에 대한 풍자로 그리지만, “교만한 승려만이 덴구가 된다”는 단순화에는 지키리 고사이도 지나치다고 못 박는다. 마이면서도 조복되면 호법으로 바뀌고, 수험자가 『덴구경』을 외면 제국의 덴구를 불러 소원을 이룬다고 여겨졌다——호법과 마 사이의 이 진폭이야말로 덴구의 핵이다. “팔대덴구”라는 묶음의 확실한 중세 전거는 무로마치기의 요곡 『구라마 덴구』의 사장(詞章)에 있다. 대덴구가 거느린 제국의 덴구를 지리 순으로 불러 올리는 대목——“쓰쿠시에는 히코산의 부젠보, 사주(시코쿠)에는 시라미네의 사가미보, 오야마의 호키보, 이즈나의 사부로…… 오미네의 젠키 일당, 가쓰라기 다카마”——이 그것으로, 팔대덴구가 에도의 창작이 아니라 중세의 신앙과 예능에 뿌리내렸음을 보여 준다. 다만 그 구성은 자료에 따라 흔들리며, 이시즈치산 홋키보를 더하는 이전(異傳)도 있는 등 고정된 명부는 아니다.

  • 소우우보우

    소우우보우

    희귀

    Kosamebō

    석연 도상 준거

    산림정령오미네산·가쓰라기산 주변(전)

    토리야마 세키엔의 도상과 짧은 주기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상. 비에 젖은 왜소한 승려 모습으로 산중의 비 내리는 밤에 나타난다. 오가던 이에게 재료, 곧 승려에게 주는 보시를 삼가 권하나, 거절되어도 곧바로 해를 끼치는 것은 아니다. 슈겐의 성역인 오미네와 가쓰라기와 장소성이 이어지지만, 구체적 사찰이나 인물과 결부된 전승은 확증이 없다. 후대 문헌에 보이는 음식이나 동전을 구걸한다는 해설은 세키엔의 ‘재료’ 어의를 평이화한 것으로, 직접적인 구전 뒷받침은 엷다. 배회는 가는 빗발의 밤에 한정된다고 하며, 맑은 밤이나 호우 시의 출현담은 확실치 않다. 퇴산·초래의 작법도 불명으로, 산길에서의 해후는 일과성 괴이로만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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