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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 Kurama 牛若が天狗に剣を学んだ霊山。鞍馬山の妖怪事典

僧正ヶ谷の大天狗・護法魔王尊・八大天狗の筆頭。京都洛北の聖地に座す山の主たち

牛若が天狗に剣を学んだ霊山。
鞍馬山の妖怪事典

Mt. Kurama · くらまやま

다른 이름: 鞍馬寺 / 僧正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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京都の市街を北へ離れ、叡山電鉄の終点・鞍馬で降りると、空気が変わる。杉木立が陽を遮り、谷の底を冷たい水音が流れる。標高五百メートルあまりの鞍馬山は、平安京を見下ろす北方の山塊の一角であり、古来「天狗の棲む山」として畏れられてきた。ここは京都という結界都市の妖怪を語るうえで欠かせない一点であり、より広い見取り図は京都府の妖怪事典に譲るとして、本稿は鞍馬という聖地そのものに分け入る。

구라마산 소조보

くらまやまそうじょうぼう

구라마산 소조보(鞍馬山僧正坊)는 교토 구라마 깊숙한 소조가타니(僧正ヶ谷)에 자리한다고 전하는 대천구로, 우시와카마루(훗날의 미나모토노 요시쓰네)에게 검술과 병법을 가르쳤다는 전설로 이름 높다. 8대 천구의 하나로 꼽히며, 코가 높은 노상(老相)의 야마부시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 병법 전수 이야기는 무로마치 시대의 요쿄쿠 『구라마 텐구』로 무대화되었고, 근세에는 가와나베 교사이와 쓰키오카 요시토시의 우키요에에도 그려져 널리 사랑받았다. 다만 유의할 점은, 우시와카가 구라마 천구에게 배운다는 줄거리는 『기케이키(義経記)』에는 보이지 않으며, 후대에 성립·부가된 전승이라는 점이다. 기케이키가 전하는 것은 음양사 기이치 호겐이 우시와카에게 병법서를 내려 주는 이야기이며, 훗날 '구라마 천구=기이치 호겐'으로 동일시하는 설도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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鞍馬山の妖怪を語ることは、ひとりの大天狗を語ることにほぼ等しい。それが、僧正ヶ谷に座すと伝えられる鞍馬山僧正坊である。八大天狗の筆頭格に数えられ、幼い牛若丸――のちの源義経――に剣術と兵法を授けたという伝説で、この山の名は日本中に知られた。

鞍馬という霊山の成り立ち

鞍馬山が信仰の場となった起こりは古い。寺伝鞍馬蓋寺縁起によれば、鑑禎(がんちょう)が宝亀元年(七七〇)にこの地へ草庵を結んで毘沙門天を安置し、のちに藤原伊勢人が延暦十五年(七九六)に伽藍を建てて鞍馬寺の基礎を据えたと伝わる。平安京の遷都(七九四)とほぼ同じ時期に、都の真北を守る霊場として整えられていったのである。

その立地そのものが、信仰の核心だった。鞍馬は平安京から見て北方――すなわち、北方を守護する武神・毘沙門天(多聞天)の方位にあたる。都の北を固める毘沙門天の山という性格が、この霊山に独特の緊張感を与えた。山は守りの場であると同時に、人の世の外にある異界でもある。守護と異形、聖と魔が同居する場所として、鞍馬は天狗を呼び寄せた。

鞍馬山は、都を守る最前線であり、同時に都の外側に開いた山の口でもあった。

山道を登ると、寺の本殿金堂から奥へ、いわゆる「奥の院参道」が続く。木の根が地表を這う木の根道、源義経を祀る義経堂、最澄ゆかりと伝わる不動堂、そして大天狗伝説の舞台・僧正ヶ谷へと至る。地質的にも鞍馬山は硬い砂岩やチャートからなり、杉の根が地中へ伸びられず地表でうねる――その異様な景観が、ここを「ただならぬ場所」と感じさせてきた。

木の根道という異界の路

奥の院参道のなかでも、木の根道と呼ばれる一帯はとりわけ印象が強い。鞍馬山を構成する砂岩やチャートは堅く、杉の根が地中深くへ潜ることを許さない。そのため根は地表へ溢れ出し、参道一面に網の目を描いて広がっている。歩く者は、生きた木の根を踏み越えながら山を進むことになる。

この景観は、長く修行と伝説の舞台として語られてきた。義経はここで跳躍の稽古を積んだとも伝わり、訪れる者の足を取る根のうねりは、いつしか天狗の領域へ踏み込む結界のようにも観念された。人の理屈で整えられた里の道とは異質な、山そのものの論理が剝き出しになった場所――そこに天狗の物語が宿るのは、自然な成り行きであった。

僧正ヶ谷の大天狗――鞍馬山僧正坊

鞍馬山の主は、奥の院・僧正ヶ谷に座すとされる大天狗、鞍馬山僧正坊である。鼻高き老相の山伏姿で描かれ、羽団扇を手にし、武芸と山の法を体現する存在として畏敬された。

その名を不滅のものにしたのが、牛若丸への兵法伝授の物語である。鞍馬寺に稚児として預けられた幼い牛若が、夜ごと僧正ヶ谷に通い、大天狗から剣理と兵法を授けられた――この筋立ては、室町期の謡曲『鞍馬天狗』によって舞台化され、近世には歌舞伎へ展開し、河鍋暁斎や月岡芳年の武者絵にも繰り返し描かれて、庶民にまで親しまれた。

ただし、ここには注意すべき来歴がある。**牛若が鞍馬の天狗に学ぶという筋は、義経伝説を集成した軍記『義経記』そのものには見えない。** 義経記が語るのは、一条堀川の陰陽師・鬼一法眼(きいちほうげん)が秘蔵する兵法書「六韜三略」を牛若が手に入れる話であり、天狗は登場しない。

「鞍馬天狗=鬼一法眼」という後世の統合

では、なぜ天狗と鬼一法眼が結びついたのか。両者を同一視する説は、ずっと後の江戸期に生まれた創作である。浄瑠璃『鬼一法眼三略巻』(享保十六年=一七三一、竹本座初演)が、鬼一法眼を「かつて鞍馬山で牛若に剣術を授けた天狗」とする筋を立て、ここで義経記の鬼一法眼伝と、謡曲の天狗兵法伝授伝とが一本に統合された。

つまり、私たちが今「鞍馬天狗の伝説」として思い描く一体の物語は、中世以前には別個の二つの伝承――山の天狗の兵法伝授と、陰陽師鬼一法眼の兵法書――であった。それが芸能の力で縫い合わされ、ひとつの英雄譚として定着したのである。伝説の輪郭を正確に辿ろうとすると、聖地・鞍馬の物語は、信仰と文芸が幾重にも積み重なった地層として立ち現れる。

なぜ義経の物語が天狗を必要としたのか

牛若丸が天狗に学んだという伝説が広く受け入れられた背景には、義経という英雄像そのものの性格がある。少年の身でありながら、のちに一ノ谷・屋島・壇ノ浦で常識を超えた戦さばきを見せた義経の武勇は、人の師から学んだだけでは説明しきれない――そう感じられたとき、人ならざる存在からの伝授という物語が要請された。山の異形であり武芸の達人でもある天狗は、この役を担うのにこれ以上ない存在だった。

鞍馬寺に預けられた少年が、深夜ひとり奥山へ分け入り、人外の師から技を授かる。この構図は、英雄の起源を聖地に結びつけ、同時に鞍馬という山の神聖さを物語によって裏づけた。義経が天狗を必要とし、鞍馬が義経を必要としたのである。義経堂が今も奥の院参道に祀られ、義経を護法魔王尊の脇侍・遮那王尊として山に留めているのも、この相互の結びつきの名残といえる。

八大天狗の筆頭としての鞍馬

鞍馬山僧正坊は、単独の天狗ではない。諸国の霊山に座す大天狗たちを束ねる「八大天狗」の枠組みのなかで、その一角――しばしば筆頭格――として位置づけられてきた。

愛宕山太郎坊・比良山次郎坊・鞍馬山僧正坊を冒頭に、飯綱三郎・大山伯耆坊・彦山豊前坊・大峰前鬼坊・白峰相模坊らを連ねる八大天狗の名は、すでに謡曲『鞍馬天狗』の詞章に列ねられており、近世の創作ではなく中世まで遡る信仰と芸能の所産である。ただしその顔ぶれは資料により異同があり、固定した教義ではない。江戸中期の祈祷秘経『天狗経』は、諸国の天狗の総数を四十八に数え上げ、鞍馬山僧正坊もそのなかに据えられた。

ここで一歩引いて、そもそも天狗とは何かを見ておきたい。鞍馬の大天狗を理解するには、天狗という存在そのものの両義性を知る必要があるからである。

天狗とは何か――魔と護法のあいだ

天狗は、日本の山岳に棲むとされる妖怪にして神格的存在であり、修験道の山伏と分かちがたく結びついた山の主である。その図像には大きく二系統がある。赤ら顔に高い鼻、山伏装束に羽団扇と一本歯の高下駄を具えた鼻高天狗と、鴉のくちばしと翼をもつ烏天狗であり、さらにその下に木の葉天狗・木っ端天狗といった下位の眷属が連なる。古くは鳶(とび)のような鳥の姿で観念されたものが、中世を通じて長鼻の山伏像へと固まっていった。

天狗の本質は、その両義性にある。仏法を妨げる魔でありながら、調伏されれば仏法を護る護法神に転じる。 慢心した高僧が堕ちて天狗になるという観念は、仏教の説く「天狗道」と結びつき、永仁四年(一二九六)頃の絵巻『天狗草紙』は、南都北嶺の驕れる僧たちを天狗に擬えて風刺した。一方で山岳信仰のなかでは、天狗は山の守護者であり、武芸と法力の達人として畏敬され、修行者を試し、あるいは導く存在とされた。

中国から渡来した大天狗・是害房が比叡山の高僧の法力に敗れる『是害房絵巻』の説話も広く知られ、その原話は『今昔物語集』巻二十の智羅永寿(ちらえいじゅ)の物語にさかのぼる。これらの絵巻のなかで、人に化けた天狗が正体を現すとき鼻が伸びるように描かれ、長鼻の鼻高天狗の像が形づくられていった。

鞍馬の天狗が「師」である意味

天狗が魔であると同時に師でもあるという両義性は、鞍馬において一方の極――導く師の天狗――として結実した。鞍馬山僧正坊が魔として人を惑わすのではなく、英雄に武芸を授ける師として語られたのは、この山が毘沙門天の守護の地であり、修行者を鍛える聖域であったことと無縁ではない。山の守護者としての天狗の側面が、鞍馬では前面に出たのである。

なお「天狗」の語そのものは、もと古代中国で凶事を告げる流星をさす言葉であった。日本での初出は『日本書紀』舒明天皇九年(六三七)の条で、唐帰りの学僧・旻(みん)が空を流れた大星を「これ天狗(あまつきつね)なり」と評したと記す。ここでの天狗は天体の怪であって、のちの山の妖怪とは断絶している。天狗研究を集大成した知切光歳は、諸山の天狗を一つの体系として整理し、鞍馬をその枢要に位置づけた。

護法魔王尊と尊天――鞍馬の宇宙論

鞍馬寺は現在、本尊を「尊天」とし、これを毘沙門天王・千手観世音菩薩・護法魔王尊の三身一体として祀る。月の精霊=愛(千手観音)、太陽の精霊=光(毘沙門天)、大地の霊王=力(護法魔王尊)の三身を一体とする壮大な宇宙論であり、この護法魔王尊こそが僧正坊と結ばれてきた。

ただし、その来歴には近代の層がある。護法魔王尊が六百五十万年前に金星から地球へ降臨した――という現在広く語られる教説は、鞍馬寺が天台宗から独立して鞍馬弘教を立てて以降に整えられた近代の教義であって、近代神智学の影響を色濃く受けたものである。「クマラ」を「鞍馬」と結ぶこの宇宙論は、魅力的ではあるが、中世以来の天狗伝承とは系統を異にする。

中世以来の僧正坊は、あくまで山の天狗――武芸と山の道を授ける師としての大天狗であった。金星の魔王尊と山の大天狗は、同じ「鞍馬の主」を指しながら、生まれた時代も信仰の文脈も別である。両者を区別したうえで重ね見るとき、鞍馬という聖地が積み重ねてきた信仰の厚みが見えてくる。

火を掲げる夜――鞍馬の火祭

鞍馬の信仰を体感できる行事が、毎年十月二十二日の夜に行われる鞍馬の火祭である。鞍馬寺の鎮守社・由岐(ゆき)神社の例祭で、京都三大奇祭の一に数えられる。

その起源は古い。天慶三年(九四〇)、朱雀天皇の詔により、御所に祀られていた由岐大明神を都の北方・鞍馬へ遷座した際、鴨川の葦で作った松明を掲げて篝火を焚き、行列を組んで送ったのが始まりと伝わる。当時頻発していた大地震や平将門の乱(天慶の乱)など、世の乱れを鎮めるための遷座であった。行列の長さは十町(約一キロ)に及んだという。住民が松明を掲げて山里を練り歩くこの祭は、闇のなかに火を点して妖異と災いを払う、鞍馬の山の信仰そのものの姿である。

天狗の棲む山に、火が掲げられる。守護と魔が同居するこの霊山では、人もまた火を手にして山の力に応えてきた。

結び――聖地に積もる地層を読む

鞍馬山の妖怪を辿ることは、ひとつの聖地に積み重なった信仰の地層を一枚ずつ剥がしていく作業である。最下層には、平安京の北を守る毘沙門天の霊場という古い信仰がある。その上に、中世の天狗信仰と謡曲『鞍馬天狗』の兵法伝授伝が重なり、さらに江戸期の浄瑠璃による「鞍馬天狗=鬼一法眼」の統合が積もり、近代には金星から来た護法魔王尊の宇宙論が乗った。

伝説の年代や来歴を丁寧に分けていくと、ひとつの大天狗の像が、いかに多くの時代の手によって彫り直されてきたかが見えてくる。鞍馬山僧正坊は、その彫り直しのすべてを身に纏った、日本でもっとも豊かな天狗である。京都という結界都市の妖怪を全体として見渡したい読者は、京都府の妖怪事典へ歩を進めてほしい。

Mt. Kurama의 모든 요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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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라마산 소조보

    구라마산 소조보

    전설

    くらまやまそうじょうぼう

    우시와카에게 병법을 가르친 구라마산 소조보

    산야의 괴이야마시로국·구라마산 소조가타니(교토시 사쿄구)

    구라마산 소조보의 전설은 사실과 후대의 부가를 신중히 갈라서 읽어야 할 주제다. 그 무대의 신뢰성은 구라마데라의 역사에 있다. 구라마부키데라 연기(鞍馬蓋寺縁起)는 간초가 호키 원년(770)에 초암을 짓고, 후지와라노 이세토가 엔랴쿠 15년(796)에 가람을 창건했다고 전한다. 이 오래된 영산은 소조보가 자리하는 소조가타니를 품고, 고호 마오손 강림의 땅으로 여겨졌다. 우시와카마루에게 병법을 전수했다는 이야기의 확실한 무대화는 무로마치 시대의 요쿄쿠 『구라마 텐구』에서 시작된다. 헤이케에 쫓겨 구라마데라에 몸을 의탁한 우시와카에게 구라마의 대천구가 병법을 가르치는 줄거리로, 노의 다섯 번째 부류(고반메모노)로 연행되어 후대의 가부키·우키요에로 널리 전개되었다. 그러나 이 전수 전승은 더 오래된 『기케이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기케이키가 전하는 것은 음양사 기이치 호겐이 비장한 병법서(육도삼략)를 우시와카가 손에 넣는 이야기이며, 천구는 등장하지 않는다. 둘을 잇는 '구라마 텐구=기이치 호겐'의 동일시는 근세에 생겼다. 그 출처는 조루리 『기이치 호겐 산랴쿠노마키』(1731, 다케모토자 초연)로, 기이치 호겐을 '옛날 구라마산에서 우시와카에게 검술을 가르친 천구'라 말하는 장면이 있다. 여기서 기케이키의 기이치 호겐과 요쿄쿠의 천구 병법 전수 전승이 하나로 통합되었다. 따라서 오늘날 널리 알려진 '우시와카가 구라마 천구에게 병법을 배웠다'는 이야기는 기케이키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무로마치 요쿄쿠를 기점으로 에도의 조루리에서 기이치 호겐과 맺어진 중층적 전설로 보는 것이 옳다. 또 하나 유의할 점은 고호 마오손과의 관계다. 구라마데라가 이를 소조보와 잇는 현재의 장대한 교설은, 쇼와 24년에 천태종에서 독립해 구라마코교를 연 이후에 정비된 근대의 교의로, 중세 소조보의 전승과는 별개의 계통이다. 중세 이래의 소조보는 48천구의 하나로서, 무예와 산의 도를 가르치는 스승 천구였다.

  • 덴구

    덴구

    전설

    てんぐ

    덴구란 무엇인가——유형과 도상의 총론

    산야의 괴이교토부·시가현·와카야마현 (각 영산의 대덴구 여러 좌)

    이 판은 특정 영산의 한 좌가 아니라, “덴구란 무엇인가”를 도상과 유형의 역사에서 철저히 풀어내는 총론이다. 각 좌의 개별 전승은 저마다 대덴구의 페이지에 넘긴다. 덴구의 모습은 한결같지 않다. 첫째 유형은 하나타카 덴구——붉은 얼굴에 높은 코, 야마부시의 도킨과 스즈카케를 두르고, 깃부채를 손에 외이 굽 높은 게다를 신는다. 둘째는 가라스 덴구로, 까마귀의 부리와 날개를 지니고 검이나 금강장을 쥔다. 셋째는 고노하 덴구·곳파 덴구라 불리는 하위 덴구로, 약하고 수가 많은 권속으로 여겨진다. 이것들은 고정된 분류라기보다, 시대와 지역에 따른 덴구 상의 폭을 비춘다. 도상은 시대와 함께 변천했다. 헤이안기의 덴구는 먼저 솔개 같은 새로 관념되었고, 가라스 덴구의 상은 그 자취를 간직한다. 긴 코가 두드러지는 것은 가마쿠라 말 이후로, 『제가이보 그림두루마리』에는 사람으로 둔갑했던 덴구가 새 모습으로 돌아갈 때 코가 길어지는 장면이 그려진다. 하나타카의 기원에 대해서는, 기가쿠 가면 가운데 코 높은 지도(治道) 가면에서 유래한다 하고 가라스 덴구를 가루라(가루다) 가면에 잇는 학설이 있으며, 긴 코를 새 부리의 도상적 잔존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어느 것도 정설이라 하기 어렵다. 『일본서기』에 코 길이 일곱 척(七咫)이라 그려진 사루타히코 신과 겹쳐져, 제례에서 사루타히코 역에 덴구 가면을 쓰는 풍습도 생겨났다. 덴구의 양의성은 불교 덴구도의 관념에 뿌리내린다. 불도를 배우기에 지옥에 떨어지지 않고, 사법을 다루기에 극락에도 가지 못하는 중간의 경지——거기에 떨어지는 것은 교만한 승려로 여겨졌다. 『덴구조시』는 이 관념을 칠대사 승려에 대한 풍자로 그리지만, “교만한 승려만이 덴구가 된다”는 단순화에는 지키리 고사이도 지나치다고 못 박는다. 마이면서도 조복되면 호법으로 바뀌고, 수험자가 『덴구경』을 외면 제국의 덴구를 불러 소원을 이룬다고 여겨졌다——호법과 마 사이의 이 진폭이야말로 덴구의 핵이다. “팔대덴구”라는 묶음의 확실한 중세 전거는 무로마치기의 요곡 『구라마 덴구』의 사장(詞章)에 있다. 대덴구가 거느린 제국의 덴구를 지리 순으로 불러 올리는 대목——“쓰쿠시에는 히코산의 부젠보, 사주(시코쿠)에는 시라미네의 사가미보, 오야마의 호키보, 이즈나의 사부로…… 오미네의 젠키 일당, 가쓰라기 다카마”——이 그것으로, 팔대덴구가 에도의 창작이 아니라 중세의 신앙과 예능에 뿌리내렸음을 보여 준다. 다만 그 구성은 자료에 따라 흔들리며, 이시즈치산 홋키보를 더하는 이전(異傳)도 있는 등 고정된 명부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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